김관선 목사(산정현교회)
칼과 수금(삼상18:10~12)
지금 무엇을 들고 있습니까
손에 쥔 칼 내려놓고 사랑의 수금 들어야
본문에서 사울과 다윗의 대조적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손에 들고 있는 것이 다릅니다. 우리들은 무엇을 손에 잡고 사는지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손에 잡은 것들 사울은 그 손에 창이 있습니다. 집안에 앉아서 창을 왜 잡고 있습니까? 이것은 악령에 사로잡힌 모습입니다. 사단은 우리로 하여금 손에 창을 잡고 살게 만든 것입니다. 누군가를 찌르고 죽일 독소를 쌓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사울은 정작 창을 잡고 블레셋과 싸워야 할 17장에서는 그것을 쓰지 못했습니다. 두려움 속에 떨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손에 창을 잡을 이유가 없는 때인데 그의 손에는 창이 있습니다.
반면 다윗의 손에는 수금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손에 든 수금을 연주하여 사울의 정신을 치료했습니다. 자신의 손에 있는 수금을 아름답게 사용했습니다. “평일과 같이”라는 말씀은 늘 그렇게 살았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사울은 손에 들고 있던 창을 자기를 위해 연주하는 다윗을 죽이기 위해 던집니다. 두 번이나 그랬습니다(11절).
다윗과 사울의 이런 모습은 계속 됩니다. 19:9,10 “다윗이 손으로 수금을 탈 때에 사울이 단창으로 다윗을 벽에 박으려 하였으나” 사울은 손에 든 단창으로 다윗을 죽이려고 하지만 다윗은 여전히 수금이 들고 사울을 위해 연주합니다.
우리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손에 무엇을 들고 있느냐는 중요합니다. 들고 있는 그것은 언젠가 사용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용해도 괜찮은 것을 들고 다녀야 합니다. 손에 따뜻한 사랑이 있는 사람은 그것을 사용해서 누군가를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그러나 손에 칼을 쥐고 사는 사람은 그것으로 누군가를 아프게 합니다. 그런데 손에 들고 있던 창과 수금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에 품고 있는 것입니다. 손에는 수금을 들고 있어도 마음에는 창을 품고 살 수 있습니다. 손에는 회초리를 들어도 따뜻한 사랑을 품고 있는 부모는 자식에게 복입니다.
우리 손에 무엇을 들고 있습니까? 우리 마음에 무엇을 품고 있습니까? 가인은 분노를 품고 있다가 동생 아벨을 죽이고 맙니다. 마음에 품은 칼과 창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수금처럼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사랑을 품어야 합니다.
다윗의 경우 사울이 던진 창에 죽을 뻔 했는데도 또 단창을 든 사울 앞에서 수금을 연주합니다. 상대는 나를 향해 창을 던지는데 나를 그를 위해 수금을 타는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칼과 창을 든 자가 더 강해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실은 수금을 든 자가 더 강한 자입니다. 두려움과 연약함이 손에 칼과 창을 쥐게 합니다. 그러나 칼과 창을 든 자 앞에서 수금을 연주하는 자가 더 강하지요. 사울은 창을 손에 쥐고도 다윗을 두려워합니다(12,15절).
칼과 수금의 결과
각각 손에 칼과 수금을 들고 있던 사울과 다윗은 어떻게 됩니까?
사울은 결국 자기 칼에 엎드려져 죽습니다. 삼상31:4-6 “이에 사울이 자기의 칼을 뽑아서 그 위에 엎드러지매 무기를 든 자가 사울의 죽음을 보고 자기도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그와 함께 죽으니라 사울과 그의 세 아들과 무기를 든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이 다 그 날에 함께 죽었더라”. 사울은 자기 칼에 엎드러져 죽습니다. 자기가 손에 쥐고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애쓰던 바로 그 칼입니다. 자기 칼이 자기를 찌르는 것입니다. 칼을 품고 다니면 내가 불행합니다. 사울뿐 아니라 세 아들들까지 다 칼에 죽고 맙니다.
그러나 수금을 손에 쥐고 있던 다윗은 어떻게 됩니까? 대상29:28 “저가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다가 죽으매 그 아들 솔로몬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사울의 죽음과 다윗의 죽음이 이렇게 대조됩니다.
다윗은 손에 수금을 가지고 위로와 평안을 주다가 존귀하고 평안하게 죽고 그 아들은 왕이 됩니다. 사울과 얼마나 다릅니까?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마 26:52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칼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칼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망한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손에 쥐면 언젠가는 사용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다윗도 칼을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밧세바로 인한 우리야 살해 사건이 그것입니다(삼하11장). 그 결과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삼하12:10)는 말씀을 듣습니다. 또 사무엘하 24장에서 인구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단순한 인구조사가 아닙니다. 칼을 쓸 수 있는 군대의 숫자를 조사한 것입니다(삼하24:9). 그 결과 7만 명이 죽어 칼이 줄어듭니다. 칼로 인한 부작용입니다.
새 하늘, 새 땅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리, 표범, 사자, 곰, 독사 같은 자들이 그 날카로운 이빨과 독소들을 포기할 때 만들어지는 세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오시면 그렇게 변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사11:6-8). 그 때 비로소 새로운 하늘과 새 땅이 만들어집니다.
이 세상은 온유한 자가 차지할 것입니다(시37:11, 마5:5). 칼을 쥔 사울은 모든 것을 잃었고 하나님을 의지한 다윗은 세상을 차지했습니다. 주님은 사랑으로 세상을 정복하셨습니다. 칼과 창의 힘이 아닙니다. 칼을 쥐고 창을 던지던 자들이 주님의 이 사랑 앞에 엎드리면서 세상이 변하는 것입니다. 우리 손의 칼과 창을 내려놉시다. 손에 흐르는 피를 닦읍시다.
이 세상의 테러와 복수와 폭력의 악순환을 보십시오. 안타깝습니다. 총과 칼로 평화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손에 사랑과 나눔의 수금을 들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면 좋겠습니다. 이리 저리 갈라져 욕심을 품고 갈등하는 이 사회와 세상에 아름다운 수금 소리가 울려 퍼지게 합시다. 내 손은 무엇을 들고 있습니까?
설교노트 양육강식, 적자생존의 정글법칙이 여전한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성경의 원리를 사울과 다윗의 삶의 양식에서 찾아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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