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 각종 설교 모음

십자가를 증오하는 시대

미션(cmc) 2009. 1. 27. 08:19

십자가를 증오하는 시대(마태복음 5:13~16)
박승준 목사(한성교회)

   
  ▲ 박승준 목사  

지금은 빛과 소금이 필요합니다

증오의 시대에 더욱 강력한 자기 헌신 있어야

 

지금 대한민국은 심상치 않게 불길한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그것은 일명 기독교를 향한 적대심을 품은 사람들의 안티클럽의 모임들이 마치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지금 백만회원 서명운동까지 벌이면서 한껏 목청을 높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실로 스스로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기독교를 향한 증오심으로 치를 떨면서 십자가를 향하여 거침없는 모욕과 성경을 향한 저주스러운 독설들을 서슴없이 내뱉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마치 자신들이 기독교를 극렬히 비난하고 그토록 유린하면 결국 머지않아서 기독교는 자멸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 자신들에게 뿐만 아니라 이 나라와 민족을 향하여서도 매우 안타깝고 불행한 일입니다. 그것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역사 이래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발악하는 민족과 그 시대가 망하지 않은 나라가 없었다는 사실은 바로 우리가 두려워해야할 심각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 경제 규모로는 10위권의 국가라고 하지만, 국제 투명성기구가 발표한 국가 청렴도로는 180개국 중 43위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오늘날은 사회질서가 무너지고 모든 기강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이 나라를 지탱해오던 민족정신마저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13절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로마의 역사가 폴리니는 “소금과 태양만큼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것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 만큼 소금은 매우 유용한 것입니다. 나트륨(Na)과 염소(Cl) 이 두 원소가 결합하여 염화나트륨(NaCl) 곧 소금이 됩니다. 소금은 아주 유용한 것이지만 이것이 염소와 나트륨으로 각각 두 원소로 분리되면 해로운 악취를 풍기게 되며, 또 인체에 해로운 독소가 될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소금입니다. 이처럼 마치 교회, 곧 성도가 서로 하나 되지 못하고 분열되거나 또 근본 사명인 소금으로서의 사명과 역할을 바로 수행하지 못하게 될 때, 결국 이 사회를 오염시키는 악취와 독소의 역할로 전락할 수도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왜 기독교를 향한 안티들이 생기고 교회를 향하여 비난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까? 물론 저들은 사탄의도구로서 이 시대 악한 역할을 하기로 작정된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그렇게만 매도하기보다는 그 비난의 원인이 오늘날 교회와 성도의 책임도 적지 않게 있음을 우리는 통감해야 합니다. 마땅히 소금이 소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까닭으로 지금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밟히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또 오늘 성경말씀 16절에서는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씀은 “이같이…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라는 말씀 속에 있습니다. “이같이 하여…”는 곧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는 일’ 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세상에 비추어야 할 ‘빛’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성경은 ‘너희의 착한 행실’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도의 착한 행실은 곧 세상의 빛이라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세상이 부패되고, 썩어지고 어두워지고, 무질서해진 것은 어떤 의미로서는 그것이 바로 이 세대 빛과 소금의 역할을 바로 하지 못한 교회와 성도들에게 그 책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빛은 올바르고 곧게 나아가는 특성이 있습니다. 빛은 돌아갈 수 없습니다. 성도는 의롭게 정직하게 살아야 합니다. 빛은 빛 자체가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위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처럼 성도의 삶도 그와 같아야 합니다. 그래서 빛은 켜서 말 아래 두지 않고 등경위에 둡니다. 빛과 소금은 모두 자신을 희생하면서 주변을 살린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진정한 기독교 정신은 기독교 신앙을 통하여 섬김과 봉사와 희생과 사랑이 함께 동반되어야 합니다.

지금 이 세대에도 예외 없이 그 어느 시대와 마찬가지로 교회는 무엇이며, 또 교회는 무엇을 위하여 이 땅에 존재해야 하는가? 라 고 사람들은 묻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분명한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교회는 이 시대에 빛과 소금으로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입으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통하여 세상에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

성경 요일1:5절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또 동시에 예수그리스도가 빛이십니다. 요12:46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도 된 우리가 세상의 빛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5:14)” 우리가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그것이 곧 비극이며 심각한 문제입니다. 성도의 모든 삶의 현장이 바로 성도가 빛을 밝혀야 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 빛을 성경은 ‘우리의 착한 행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는 돈을 벌 때에도 착하게 벌어야 하고, 돈을 쓸 때에도 착하게 써야 합니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이 사회를 병들게 하고 어둡게 하고 부패하게 하는 일곱가지 치명적인 죄를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첫째, 일하지 않고 얻은 재산입니다. 둘째, 양심이 결여된 쾌락입니다. 셋째, 윤리가 결여된 직업입니다. 넷째, 성품이 결여된 지식입니다. 다섯째, 인간성이 결여된 과학입니다. 여섯째, 희생 없는 종교입니다. 일곱째, 원칙 없는 정치입니다. 교회가 세속화 된다는 것은 세상으로 속해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소금이 그 맛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가 지금 세상 사람들에게 밟히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설교노트
지금은 기독교 웅변가가 필요한 시대가 아니라 자신을 녹이고 산화시킬 줄 아는 빛과 소금이 필요한 시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