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 각종 설교 모음

때의 진리

미션(cmc) 2009. 1. 27. 08:32

때의 진리(전3:1~16)
서문 강 목사(중심교회)

 
  ▲ 서문 강 목사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과 동행하자

이기적 욕심을 벗고 주어진 시간 주님 영광을 위해

 

우리는 해가 바뀌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이러한 때를 빌어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하고 관조하여 보는 것은 지혜롭고 합당한 일입니다. 특히 때와 세월, 또는 시간의 현실 앞에 우리의 삶의 좌표를 읽어 보고 싶어지는 시절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계시된 ‘때에 대한 진리’를 숙고함으로써 이런 시절에 주시는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오늘의 본문 이해를 위해서 전도서 전체의 기조(基調) 읽어야 합니다.

전도서의 목적은 ‘해 아래 사는 인생의 허무를 극복하는 오직 유일하고 충분한 대안’을 제시하는 데 있습니다. 전도서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어구나 단어는 ‘해 아래’와 ‘헛되다’는 말입니다. 인생을 해 아래의 차원에 국한시켜 보면 아무리 대단한 내용의 인생을 구가하여도 결국 ‘헛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질을 가진 ‘해 아래서 사는 인생의 허무의 실상’을 극복하는 길은 ‘해 위에 계신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는 데 있다’고 전도자는 말합니다(2:25-26, 3:1-18, 12:1.11-13).궁극적으로 인생 창조와 섭리와 심판과 구원의 문제를 손에 쥐고 계신 하나님과 그 정하신 목적 속에서만 인생의 진정한 의미가 있고, 그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하시는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이 어떠한 처지에 있는 인생의 본문이라는 것입니다(3:1-3;12:13).이것이 인생을 보는 하나님께서 주신 해법입니다.
 
2.때와 시간의 진정한 비밀은 하나님의 영원(永遠)하신 목적 속에서만 풀려진다 하십니다.

전도서 기자는 본문 1절에서 ‘천하에 범사에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다’고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늘 아래 존재하는 만유와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우발적인 것들이 아니고 정해진 ‘목적’을 향하여 ‘주밀하고 적확하게’ 운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범사의 때’는 ‘그 목적이 이루어지는 종착점’을 향해 신묘하게 배치되고 관리되고 운용되는 섭리의 점(點)들입니다.
 
3.물론 여기서 말하는 ‘목적’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목적입니다.

11절에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하였습니다.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그 정하신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섭리하여 나가시는 중에 범사와 그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시어 한 치의 오차도 없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서 ‘아름답다’ 하신 것은 단순한 시각적(視覺的)인 의미의 아름다움이 아닙니다. 창세기 1장에 있는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다’ 의미의 ‘아름다움’입니다. 그러니 그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완전하시고 선하신 뜻을 위해 ‘일조(一助) 한다’는 의미에서의 아름다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목적을 위해서 그러한 의미의 필요하고 합당한 것을 ‘적확한 때’에 공급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바, ‘들에 피는 백합화,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솔로몬의 입은 모든 영광보다 더한 것으로 입히셨다’는 것도 그러한 의미의 차원에서 보아야 합니다(마6:28-30). 그러니 사람이 낳고, 살고, 죽고, 그 사이 순례길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속에서도 그 하나님의 ‘아름다운 행사’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2-9절까지 우리네 인생들 모두에게 일어나고 겪는 일들이 열거되었는데, 그 일들 속에 그러한 하나님의 아름다운 행사가 있습니다.
 
4.이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영화롭게 하시려는 데 있습니다.

바울은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3:15)라 하였습니다. 에베소서 1장에서 사도는 우리를 향하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과 목적을 포괄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해 아래 살아가는 의미와 가치와 목적도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영원한 목적 속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8장 28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한 것도 그런 맥락과 일치합니다.
 
하나님을 모른 채 인생을 깊이 숙고한 이들은 반드시 허무주의의 종착역에 도달하였습니다. ‘노인과 바다’로 유명한 헤밍웨이는 하나님 없이 인간의 현상만 치중하여 바라보다가 깊은 허무에 빠져 삶의 의미와 가치를 상실하고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노인과 바다’는 극도의 허무주의적 관점으로 본 그의 인생현상이었습니다. 반면에 50대에 자기에게도 반드시 찾아올 죽음의 현실 앞에서 인생은 오직 허무밖에 거둘 것이 없음을 감지한(물론 하나님의 은혜로) 톨스토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아 남은 날들을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세모(歲暮)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를 향하신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시간들이 그 만큼 지났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그 점을 유념하지 않은 채 그 날들을 우리의 ‘육적이고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서만 썼다면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등지고 ‘헛 짓’을 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회개하고 용서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그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에 따라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영광에 사로잡히게 하여 주십사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질 것입니다. 아멘.

설교노트
세모에 ‘때에 대한 진리’를 알아 하나님의 목적 속에 있는 우리 인생의 좌표를 바르게 읽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견실한 믿음의 진정성을 확인하고 지난 순례길 속에서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앞으로 새로운 해에 주실 은혜를 사모하며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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