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징조 (사7:10~17) |
서문 강 목사(중심교회) |
놀라운 구원의 평화 누리십시오 성탄의 계절, 조건없는 사랑과 은혜 증거합시다
오늘 본문 중에 이사야 7장14절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말씀은 성탄의 기사 속에 인용되어(마1:23) 성탄의 핵심적 성구로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이 말씀이 이사야를 통해 예언되었을 때 어떤 역사적 환경과 처지 속에서 주어졌는지 알면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열심과 그 사랑의 더욱 크게 누릴 것입니다. 1.이 말씀은 주전 734년 경, 악한 왕 아하스 통치기에 유다가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절박한 위기에 처했을 때 주신 말씀입니다. “유다 왕 아하스 때에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 왕 베가가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쳤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 혹이 다윗 집에 고하여 가로되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 백성의 마음이 삼림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 절체절명의 위기였습니다. 피할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본문을 통해 우리 인생의 영적 현실의 절박함을 연상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 죄의 실상과 그에 상응하는 하나님의 가공할 진노, 지옥으로 예비된 그 영원한 형벌의 진상을 적나라하게 아는 눈을 가지게 되면 누구나 대번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7:24)고 울부짖게 될 것입니다. 2.그러나 하나님께서 아하스 왕과 그 백성에게 주신 말씀은 절대소망의 메시지였습니다. “때에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이르시되…너는 삼가며 종용하라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연기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 말며 낙심치 말라…이 도모가 서지 못하며 이루지 못하리라.” 그리고 유다를 치러 동맹한 그 나라들이 “65년 내에 패망하여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이는 앗수르에 의한 이스라엘의 패망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리시면서 그 백성들에게 한 가지 조건을 명하십니다. 견고한 믿음입니다. 3.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무조건적인 선택적 사랑의 발로였습니다. 당시 이 메시지를 들은 아하스는 친 앗수르 정책을 펼쳐 앗수르의 종교 행태를 배워 실행하고 성전의 각종 규례들을 앗수르 왕을 위해 제멋대로 고치고 만든 패역하기 짝이 없는 왕이었습니다(왕하16:9-19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마치 의로운 왕에게나 주실 소망의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그러니 그 하나님의 행사는 사람의 평면적 논리로는 전혀 납득되지 않습니다. 백성들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마치 오직 선행만 행한 자들을 대우하듯이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행사에 대한 이해의 열쇠는, 당신의 기뻐하심을 따라 택한 사랑하시는 백성들을 구원하시려는 그 열심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 믿음 견지할 것을 촉구하십니다. “만일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정녕히 굳게 서지 못하리라”(9절). 4.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열심 속에서 사람이 꿈꾸지 못하는 징조를 친히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아하스에게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서든지 높은 데서든지 구하라.” 하셨습니다. 곧 약속하신 소망의 말씀이 확실함을 입증할 ‘징조를 구하되 한계를 두지 말고 원하는 대로 구하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하스는 그 하나님의 요청에 대해 “나는 구하지 않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치 아니하겠나이다”라고 짐짓 믿음 있는 체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신앙이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명하시는 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불신앙은 ‘하나님을 괴롭게 하여 드리는 일’입니다(13절).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불신앙은 하나님을 노엽게 합니다(히11:6, 롬1:18). 그러한 불신앙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친히 징조를 주셨습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14절). 그 징조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과 상상의 차원을 훨씬 초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약속한 확실한 약속(창12:1-5, 사55:4),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유다와 다윗으로 이어지는 혈통 속에서 오실 그리스도(롬1:2-4) 탄생을 당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신 것입니다. 아하스와 유다는 자신들의 공력은 커녕 악행으로 징치 받아야 하는데도 ‘다윗의 집’에 속하여 있었기에 그 은택을 입었습니다. 하나님의 그 열심을 막을 것이 없습니다. 성경을 구속사(救贖史)의 줄기에서만 바르게 이해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성탄의 계절에 성삼위의 영광을 기리고 노래합시다. 아버지께서 본질상 우리의 죄됨과 그 모든 악행에도 불구하고 창세전에 택하신 우리를 사랑하시어 세우신 그 구원 계획을 실행하시려 그 영원하신 아들을 사람으로 보내시되,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에게서 나셨습니다. 아하스에게 주신 징조가 이루었습니다. 그러니 불신앙에 대한 어떠한 불신앙도 핑계도 통하지 못할 증거가 성탄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오직 그 성탄의 영광을 믿음으로 받는 자, 곧 “땅에서 기뻐하심을 받는 자들”(눅2:14)에게는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약속한 그 놀라운 구원의 평화와 영광과 사랑의 은택 속에서 영원한 보장을 받습니다. 오,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여, 이 성탄의 계절에 아기로 오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아버지의 선택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과 그 불가항력적인 은혜의 영광을 더욱 깊이 체험하고 노래하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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