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 각종 설교 모음

어떤 인생으로 살 것인가

미션(cmc) 2009. 1. 27. 09:00

어떤 인생으로 살 것인가(마11:1~15)
이찬수 목사(분당우리교회)

사명을 향해 원없이 달려갑시다

목적과 방향이 바로 선 크리스천이 돼야

 

   
  ▲ 이찬수 목사  
마태복음 11장 1절을 읽는 가운데 발견되어지는 우리 예수님의 본받고 싶은 귀한 성품 2가지를 발견하고서 힘과 위로를 얻습니다. 그 하나는 솔선수범 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께서 열두제자에게 명하시기를 마치시고 이에 저희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가시니라.’제자들에게 가르치셨던 그 말씀 직접 나가서 실천하시고 또 복음을 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남을 가르치려고만 들고 자기는 행하지 않는 부패한 이 세상 지도자들과 달리 모범을 보여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하고 거기서 도전이 되는 깨우침을 많이 받았습니다.

솔선수범이라는 덕목이 지도자에게 얼마나 필요한 것입니까? 예를 들면 1967년도에 있었던 6일간의 중동전쟁. 이 전쟁에서 여러 가지 면에서 이스라엘이 절대적인 열쇠였음에도 불구하고 승리했습니다. 거의 파죽지세로 시나이반도, 요르단 강 주변 등등을 점령해 나아가는 그 이스라엘을 보면서 세계가 다 놀랐었는데 나중에 많은 군사 전략가들이 이스라엘 승리의 비결을 이렇게 진단했습니다. 두 나라가 전쟁에 임했을 때 아랍 군 지휘관의 공격명령은 ‘가라’였는데, 여기에 반해 이스라엘군 지휘관들은 병사들에게 ‘나를 따르라’라는 것이었습니다. 상징적으로 느껴지는 뭔가 있지 않습니까? 솔선수범하는 지휘관을 둔 군대의 군사는 눈으로 보여 지는 무기나 군사숫자나 이런 것들로 가늠할 수 없는 사기와 응집력이 거기에 담겨져 있더라는 것이며 그것이 결국은 승리로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발견되어지는 예수님의 성품은 험담하지 않으시고 칭찬하시는 예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인격모독에 가깝게 회의하고 의심하는 세례요한을 예수님이 오히려 칭찬해 주셨는데 본문 7절에서 9절 안에 답이 담겨져 있습니다. ‘저희가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려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동시에 이 말씀 안에서 예수님이 칭찬하시고, 그렇게 살아가기 원하시는 세 부류의 인생을 보여주십니다.

첫 번째는 목적 없이 사는 인생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을 칭찬하시면서 그가 갈대와 같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존재가 아니기에 칭찬받을 만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열왕기상 18장 21절에 보면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하니 백성이 한말도 대답지 아니하는지라’왜 대답을 못할까요? 갈대와 같은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편에 섰다가 혹시 아합이 이끌고 있는 바알신이 이기면 어떻게 하느냐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의 태도에 비해서 여호수아 24장 15절에 나오는 이 여호수아의 결연한 의지를 보십시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여러분 이러한 심지를 가지고 사는 사람.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이 칭찬하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부류의 사람은 잘못된 목적을 가지고 사는 인생을 말하는 것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그 당시 옷이라는 것은 신분과 계급을 나타내는 수단이었다고 합니다. 인생의 목표라는 것이 부드러운 옷 입는 것이 전부인 사람, 이 땅에서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좋은 집에서 살고 이런 것만이 전부인 잘못된 목적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 주님이 지적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사명으로 사는 인생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9절에 보니까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려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지금 예수님이 세례요한을 왜 칭찬하십니까. 그가 비록 실수는 있고 갈등이 있고 회의가 있지만 그는 사명을 아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사명을 위하여 모든 자기 기득권을 내려놓고 메시야를 증거 하다가 감옥에 갇히는 비극을 경험하고 거기서 30쫌 넘은 나이에 목숨을 잃는 그 어려운 험난한 길을 택했습니다. 비록 세례요한이 그 과정에서 약간의 갈등은 있었고 약간의 우를 범했지만 예수님은 거기에 초점을 두지 않으시고 그 사명이라는 중심을 보시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을 왜 살아가고 계십니까? 목표도 없고 달려갈 결승점도 없고, 그럭저럭 안주해서 편하게 사는 인생, 부드럽고 화려한 옷을 입고 왕궁에 사는 것을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뭘까요. 오늘 우리에게 호흡이 남아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맡겨 주신 사명감이 있다는 줄로 믿습니다.

설교노트
 ‘각설탕’이라는 영화에서 천둥이라는 경주마를 훈련시켰던 조련사가 한 말을 저는 잊지를 못합니다. ‘경주마가 달리는 것이 그의 운명이라면 원 없이 달리다 죽는 것도 행복일 것이다.’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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