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사람(느1:1~11) |
이찬수 목사(분당우리교회) |
위기의 시대, 소망 전하는 지도자로 서야
▲ 이찬수 목사 |
2절에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조국에 대한 여러 가지 어두운 소식을 접하고 있던 느헤미야가 방금 그 조국의 실정을 살펴보고 온 이 하나니에게 다급하게 한 질문이 무엇입니까?
느헤미야의 우선순위는 불탄 조국의 그 현실 앞에서 우리 동족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들이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는지, 사람에게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 땅을 사는 예수 믿는 우리에게 우선순위를 두고 기도해야 될 제목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또 하나님께서는 어떤 우선순위를 갖고 있는 사람을 기쁘게 사용하십니까?
출애굽기를 읽을 때마다 찾아오는 한 가지 질문이 있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출애굽 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지도자로 모세를 세우시기를 저렇게까지 원하시나? 모세는 ‘난 준비가 안 되었습니다. 나는 말이 어눌합니다. 나는 못합니다’ 라는 변명으로 지도자 되기를 거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모세가 말을 잘 못하는 것을 알고 말 잘하는 형 아론을 붙여주기로 준비하시고 있다는 겁니다. 그냥 아론을 지도자로 세우면 문제가 간단한데 왜 모세를 사용하셔야만 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출애굽기 32장에서 얻게 되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산으로 들어갔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겁니다. 이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이 우상에게 절하고 숭배하자고 아론을 충동질 하고, 아론은 그 충동질에 넘어갑니다. 아론이 말을 잘했는지는 몰라도 왜 지도자로서 쓰임 받지 못했는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여기에 반해서 모세는 말은 좀 어눌할지 몰라도 우상숭배를 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산 그 민족을 위해서 오히려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하나님한테 목숨을 걸고 중보기도를 합니다. 사람에게 관심이 있는 모세의 모습입니다.
이어서 3절에 ‘저희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이와 같은 비극적인 소식을 접한 느헤미야가 즉각적으로 두 가지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4절에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첫 번째로 사람에게 관심이 있던 느헤미야가 자기 동족이 지금 고통당하고 있다는 이 사실을 전해 듣고는 수일동안 고통하며 괴로워하며 울었다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은 감정이 살아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힘과 능력의 원천은 바로 감정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위하여 울고 계십니까? 교회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우리의 눈물의 원인이 너무 사소한 손해 하나 보는 것 가지고 견딜 수 없는 분노를 느끼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면, 하나님 앞에 하나님 우리 눈물의 질을 바꾸어 주시기 원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눈물을 회복하되 민족을 생각하고 나라를 생각하고 느헤미야처럼 하나님 조국을 생각하며 수일동안 고통하며 눈물 흘리는 그런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 원합니다. 이 민족의 지도자들이 조국 대한민국의 현실을 놓고 울게 되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 어두운 시대에 자신들의 무능함과 연약함을 두고 고통하며 우는 일부터 이 민족의 회복이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 느헤미야가 했던 일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금식하고 기도했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가 아니라도 정말 조국을 사랑해서 눈물로 고통 하는 의식 있는 지도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울어도 조국을 위하여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그저 슬퍼하고 울기만 할 것이 아니라 문제 해결의 열쇠가 살아계신 하나님께 있다는 이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이 민족을 놓고 눈물로 기도하고 하나님이 일하시면 이 민족은 회복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때 우리는 금식하고 기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느헤미야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위로이시다’는 뜻입니다. 느헤미야란 이름을 정할 때 아버지 하가랴의 중심에 어떤 생각이 있었겠습니까? 슬픔을 당한 이 민족,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좌절 속에 신음하던 그 동족들을 통하여 너는 이 민족의 위로자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진실한 약속을 지키는 도구로 쓰임 받게 될 것이다 라는 아버지 하가랴가의 끊임없는 의식교육과 신앙교육이 느헤미야로 하여금 민족과 나라를 위하여 자기의 부귀영화를 내려놓을 수 있는 원동력을 마련했다고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자녀교육을 어떻게 행하고 계십니까? 교육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고 계십니까?
설교노트 이제 우리 하나님 앞에 새로운 각오를 가지고, 이 민족을 향한 눈물을 회복시켜주시고, 중보기도를 회복시켜주시는 은혜를 구하시기를 원합니다. 이 소망을 가지고 부모가 변하면 여러분의 자녀도 느헤미야처럼 위기를 만난 민족의 지도자로 우뚝 서게 될 줄로 믿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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