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성령의 능력으로(눅 4:14-15)

미션(cmc) 2009. 3. 1. 07:26

성령의 능력으로
(눅 4:14-15)
 
  
 
 “(14)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15)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누구나 다재다능하다는 말을 듣기를 원하지만 세상에 어느 누구도 무엇이든지 다 잘할 수 있는 슈퍼맨은 없습니다.
 그러나 부족한 것이 많을지라도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은 대학교 교수는 남다른 실력이 있어야 하고, 운동선수는 남다른 체력이 있어야 하고, 사업가는 남다른 재력이 있어야하고, 예술인은 남다른 재능이 있어야 하되 무엇보다 반드시 이루겠다는 뜨거운 열정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예화
08년 3월 4일 오후 1시 서울대 자연대 강의실에 전동휠체어를 탄 중년의 남자가 첫 강의에 들어왔다. 그는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이상묵(46) 교수였다.
  인도네시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어릴 적부터 꿈꾸어온 해양학자가 되기 위해 서울대 해양학과에 진학하여 졸업 명문 MIT 대학원으로 유학길에 오른다. 9년 동안의 연구를 마치고 MIT를 떠나는 날 앞으로 시작될 희망찬 미래를 꿈에 부풀었다.
 이상묵 교수는 학생들을 이끌고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과 서울대가 공동으로 미국에서 진행한 지질야외조사의 마지막 코스인 데스밸리(Death Valley)로 향하던 중 이상묵 교수가 운전하던 밴이 전복되는 바람에 차 지붕이 그의 목을 짓눌렀다. 사고 3일 만에 깨어난 그는 머리 부분 외에 사지가 마비됨으로 "내 인생도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LA에 있는 컴퓨터를 활용한 재활센터’로 이송되어 3주간의 피나는 훈련으로 입과 눈으로 작동할 수 있는 수십 가지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배운 후 한국으로 돌아와 오직 머리만으로도 예전처럼 연구와 강의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그의 첫 번째 강의는 휠체어에 연결된 ‘입김으로 작동되는 마우스’에 입을 갖다 댔다.  마우스의 끝을 빨면 ‘왼쪽 클릭’, 불면 ‘오른쪽 클릭’, 두 번 빨면 ‘더블 클릭’이 됐다. 프로젝터를 통해 보이는 컴퓨터 화면의 커서가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의 입이 손과 팔과 다리였다. 모두 입으로 했다. 장장 9시간 준비 한 강의였다. 그의 감동적인 인생 드라마는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셨고, 우리나라뿐 아니라 <뉴욕타임스>에도 특집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이상묵 교수가 비록 전신장애를 입었어도 가지고 있는 실력과 불굴의 열정이 사람들에게 그토록 감동을 주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물론 주일성수, 꾸준한 기도, 빠짐없는 예배, 쉬지 않는 기도, 성경에 대한 지식 등 여러 가지가 필요하겠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께 먼저 구하고 받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1.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
 성경이 본래 구약은 히브리어로. 신약은 헬라어로 기록되었으며 그것을 흔히 성경 원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는 ’권능‘이란 말은 원어로 duvnami" 로 하는데 이는 힘, 세력, 능력, 역량, 가능성, 신체적, 지적, 영적인 능력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어로 된 구약을 현대인들에게 읽히기 위해 성경학자들이 헬라어로 번역한 것을 흔히 ‘칠십인 경’이라고 하는데, 히브리어로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말을 헬라어로 번역할 때 duvnami" 로 번역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능력이 신구약 전체 여러 곳에 동일하신 분으로 기록하였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은 어떤 것일까요?
 
 1) 세상을 창조하심
 인간이 아무리 능력이 많다고 하지만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창조의 단계에는 이르지 못합니다. 다만 기존에 있는 것을 가지고 변형을 시키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은 티끌만큼도 가능성이 전무한 상태에서 아름다운 모든 것들을 존재하게 하셨습니다.
(창 1:1-2)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그러나 인간은 어느 누구도 재료나 장비나 인력이 전혀 없이 단시간에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없음을 깨달을 때 겸손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2) 생사화복을 주장하심
(삼상 2:6-7)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7)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구약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민족신이 아니며, 가나안 땅만을 통치하시는 지역신이 아니라 온 우주 만물을 통치하시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믿을 때 교만하거나 비굴해지지 않게 됩니다.

 3) 재물을 얻게 하심
(신 16:19) "너는 재판을 굽게 하지 말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또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게 하셨을 뿐 아니라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고 그 땅에서 많은 재물을 얻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으며 마침내 그것을 다 이루셨습니다.
(신 8: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습니까?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저마다 행복을 원하고 그것을 위해 불철주야로 노력을 하지만 결과는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불행의 늪에 빠져 허덕이는 존재가 아닙니까?
(전 6:6) "그가 비록 천 년의 갑절을 산다 할지라도 행복을 보지 못하면 마침내 다 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 아니냐"
 하나님이 약소국 이스라엘을 택하신 이유가 바로 행복을 위해서이며, 오늘 우리를 예수 믿게 하신 궁극적인 목적도 역시 우리의 행복을 위함입니다.
(신 33: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그러므로 행복을 원하며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나누는 통로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깨닫지 못한 채  교만하거나 하나님을 불신하지 말고, 능력이 많으신 여호아 하나님을 의지하고, 행복을 위해 명령하신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지혜요 또한 행복의 비결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
  구약 성경의 핵심은 예수님이 세상에 어떻게 태어나실 것인가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라면, 신약 성경은 그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었는가를 증거하는 말씀입니다. 그 가운데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매우 구체적으로 예언하였습니다.

 1) 누구에게?
  죄 없는 몸으로 태어나시기 위해 고금의 역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없었던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2) 어디서?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뜻밖에도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을 구체적으로 약속하셨습니다.
(미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3)  어떻게?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는 교만한 사람은 얼마든지 무시하고 지나칠 수밖에 없는 초라한 외모로 태어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사 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실 때 그와 같은 구약의 예언의 말씀을 한 마디도 빠짐이 없이 다 이루셨습니다.
 인류를 구원하실 구세주가 강대국 로마 제국대신에 속국 이스라엘 나라를 택하시고, 예루살렘의 부요한 가정이 아니라 나사렛 목수의 가정을 택하시고, 유래가 없는 말구유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물론 그와 같은 예수님은 외모지상주의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볼 때 가문도 학벌도 지위도 재산도 명예도 권세도 자랑할 것이 없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무시와 외면을 당하셨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인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 공생애 기간에 어떤 권세를 가진 자와 비교가 되지 않는 탁월하고 위대한 일들을 하심을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1) 가르치심
 예수님의 가르치심이 종전의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과 달리 너무나 탁월하셨기 때문에 사람들이 크게 놀랐습니다.
(막 1:22)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2) 잔잔케 하심
 갈릴리 호수에서 갑자기 일어나는 노도광풍을 말씀 한 마디로 잔잔케 하시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크게 놀랐습니다.
(막 4: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막 6:51)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3) 죽은 자를 살리심
 아무리 의학이 발달되었다고 하지만 죽은 자를 살아나게 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살아나게 하셨으며 그 무덤이 지금도 있습니다.
(요 12: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사람들은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삼십년을 지내실 때 아무런 능력도 나타나지 않았으나 공생애에 접어들어 그같이 놀라운 능력이 나타남을 보고 사람들이 크게 놀라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마 13:55)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렇다면 예수님이 잠잠히 계셨던 삼십년의 침묵의 기간과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을 시작하신 삼년과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이었습니까?
  물론 외모도 아닐 것입니다. 사회적인 출세도 아닐 것입니다. 가장 큰 차이는 능력인 것입니다.
 삼십년 동안 주변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이 평범하게 지내셨던 예수님이 공생애 기간에는 귀신도 벌벌 떨고 자연도 순종하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에 그 같이 놀라운 일들을 하신 것은 외모만을 보고 당신이 구약에 약속하신 구세주로 오신 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메시아이심을 증거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3. 성령님의 능력
 신구약 성경은 40여명에 가까운 여러 사람들이 각기 흩어져서 1500 여년이나 긴 시간에 걸쳐 기록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신비 중에 신비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성령의 권능과 역사에 대한 일관성입니다.
  1) 성령과 창조
 창조주 하나님께서 가능성이 전무한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실 때에 성령님과 더불어 창조하신 것은 전능하신 성령의 능력을 잘 나타내 보여주는 증거인 것입니다.
(창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여기서 수면위에 운행하신 성령이 바로 예수님의 머리위에 임하신 성령님이신 것입니다.

2) 성령과 기름부음
 구약 시대에 하나님이 쓰신 사람들의 공통점 중에 하나는 반드시 그 머리에 기름을 붓게 하신 일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로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입니다. 그러므로 기름 부음은 하나님이 구별하신 사람임을 나타내 보여주는 증거인 것입니다.
(출 40:15) "그 아버지에게 기름을 부음 같이 그들에게도 부어서 그들이 내게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게 하라 그들이 기름 부음을 받았은즉 대대로 영영히 제사장이 되리라 하시매"

3) 메시아와 기름부음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기름을 부어 구별하게 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후일에 세상에 오실 메시아가 그와 같이 성령에 기름 부음을 받으실 분이라는 예표인 것입니다.
(사 61: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그 예언을 이루시기 위해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예수님의 머리 위에 임하셨습니다.
(마 3: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그것을 예수님 혼자서만 보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푼 세례 요한도 목격한 사실을 증거하였습니다.
(요 1: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그와 같이 예수님 머리 위에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바로 구약에 약속하신 메시아이심을 성부 하나님이 친히 증거하시는 인감도장과 같은 증표임을 음성으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마 3: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그와 같은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내내 성령의 능력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천국복음을 전파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는 일을 하심으로 메시아임을 증거하셨습니다.
 (행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그러나 예수님이 그와 같은 일을 하신 기간은 삼년에 불과하며,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 세상에는 구원을 필요로 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남아있었습니다.
 문제는 누가 그 나머지를 마무리해야 할 것인입니다. 예수님은 그 일을 제자들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성경의 일관성에 따라 구약 시대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들처럼, 신약 시대에 예수님처럼, 예수님이 남겨 놓으신 구원의 사역을 마무리해야 할 제자도, 역시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이어야만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문제는 누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도행전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핵심인 것입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권능’이라는 말씀이 바로 구약에 하나님이 행하신 권능이며, 하나님이 쓰시던 사람들에게 입혀 주셨던 권능이며, 예수님이 행하셨던 권능이며, 제자들에게 입혀 주셨던 권능이며, 승천 하신 후에 지상 교회와 성도들에게 약속하신 권능입니다.
(행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만일 예수님께서 지상 교회와 제자들에게 그와 같은 성령의 권능을 입혀 주시지 않았다면 기독교가 오늘에 이르지 못하고 중도에 소멸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이 비록 무식하고, 무능할지라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능력을 받아 변하여 새 사람이 되었을 때 온천하에 복음이 전파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막 16:15-17)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그와 같은 성령의 능력을 받은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예수님의 사랑과 성령의 능력이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지상에 교회들이 세워지고 많은 사람들이 우상과 죄악을 버리고 주님께로 나아옴으로 말미암아 시작이 미약했던 기독교가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가 되면 누구나 좋은 계획과 새로운 결심들을 하지만 작심 삼일에 그칠 때가 많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며 어떻게 그것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물론 예수를 믿은 지 오래고, 지금 교회를 잘 다니지만 과연 나는 성령 충만한 사람인가? 성령의 능력을 받은 사람인가? 라고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아볼로에게 성경을 열심히 배웠으나 바울이 방문하여 던진 질문에 대해 실망스런 반응을 보인 적이 있습니다.
 (행 19:2)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 사도는 그러한 에베소 교회를 향해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명령한 것을 우리가 주목해야 합니다.
(엡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그 이유는 우리가 예수를 믿지만 성령으로 거듭나고, 성령 충만하고, 성령의 권능을 받지 못했다면 혹시 구원은 받을 수 있는지 모르나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2009년 새해 목회 표어를 ‘미래를 준비하는 교회’라고 정하고 과거 어느 때보다 전 교인들이 의욕을 갖고 새해를 맞이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표어가 좋다고 할지라도 작심삼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해야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타락한 인간의 힘으로는 그것이 이론적으로 공감은 할 수 있지만 실천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권능을 힘입지 못한 그리스도인들 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옛 사람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롬 7: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보여주시기 위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성을 가지신 분이지만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능력이었기 때문인 것처럼 오늘 우리도 예수님과 같은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성령의 권능을 받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새사람이 되어야 하고,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으나 구원의 감격이나 사명감이 없는 성도들은 성령의 충만함과 기름 부음과 다양한 은사와 권능을 받아야만 합니다.
 (고후 1:21)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문제는 어떻게 해야 우리도 성령의 능력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마음으로 내게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기도할 때마다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눅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2009년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성령의 능력을 충만히 받아 미래를 준비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또한 받았다고 다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성령의 능력을 소멸하지 말고 열심히 기도하고 말씀을 사모하고 주신 직분에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