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위장된 번영(에 1:4-9)

미션(cmc) 2009. 3. 1. 07:28

위장된 번영

(에 1:4-9)


 

(4) 왕이 여러 날 곧 백팔십 일 동안에 그의 영화로운 나라의 부함과 위엄의 혁혁함을 나타내니라 (5) 이 날이 지나매 왕이 또 도성 수산에 있는 귀천간의 백성을 위하여 왕궁 후원 뜰에서 칠 일 동안 잔치를 베풀새 (6) 백색, 녹색, 청색 휘장을 자색 가는 베 줄로 대리석 기둥 은고리에 매고 금과 은으로 만든 걸상을 화반석, 백석, 운모석, 흑석을 깐 땅에 진설하고 (7) 금 잔으로 마시게 하니 잔의 모양이 각기 다르고 왕이 풍부하였으므로 어주가 한이 없으며 (8) 마시는 것도 법도가 있어 사람으로 억지로 하지 않게 하니 이는 왕이 모든 궁내 관리에게 명령하여 각 사람이 마음대로 하게 함이더라 (9) 왕후 와스디도 아하수에로 왕궁에서 여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라

 우리가 2009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위기 중에 신앙인의 바람직한 자세에 대해서 살펴보았다면, 고린도서 강해를 마치고 오늘부터 매주 구약 에스더를 강해하고자 합니다.
 여행 중에 제일 먼저 알아야 할 것은 그 지역에 날씨와 기온입니다. 열대 지방이라면 여름옷만 준비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귀국을 대비하여 겨울옷도 함께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마치 먼 나라를 여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경제적인 겨울을 만났다면 그것을 견디기 위해 위기관리만 준비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번영을 주실 것을 기대하고 풍요 속에서 어떤 믿음을 준비해야 하는지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서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1. 페르시아 제국의 번영
 오늘 성경은 주전 537년에서 458년 사이에 페르시아 제국에서 일어났던 유대 민족의 구원 역사 중에 하나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석고상처럼 굳어있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강물처럼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상황이 끊임없이 변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과거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단되었을 때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 제국은 멸망당할 것처럼 보이지 않았었으나, 남쪽 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 제국을 이기지 못했고, 바벨론 제국은 신흥 제국 페르시아아의 고레스에게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바벨론 제국이 거대하기 때문에 결코 멸망할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니엘 선지자의 예언대로 바벨론 제국은 벨사살왕(주전 550-539)을 끝으로 신흥국가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에게 정복을 당함으로 페르시아 대제국이 급부상하게 되었습니다.
(단 8:19,20) 이르되 진노하시는 때가 마친 후에 될 일을 내가 네게 알게 하리니 이 환상은 정한 때 끝에 관한 것임이라 (20) 네가 본 바 두 뿔 가진 숫양은 곧 메대와 바사 왕들이요
 당시 페르시아 제국의 위세가 근동은 물론 인도에서 북아프리카 에치오피아 지경까지 위세를 떨쳤고, 당시 맹주였던 통치자 아하수에로 왕은 자만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에 1:1) 이 일은 아하수에로 왕 때에 있었던 일이니 아하수에로는 인도로부터 구스까지 백이십칠 지방을 다스리는 왕이라
 세계 역사에서는 크세르크세스(B.C 486-465)라고 더 잘 알려진 아하수에로 왕이 즉위한 지 삼년이 되던 해에 자신의 번영을 온 천하에 널리 떨치고 싶은 충동에 전국 에 흩어져 있는 지도자들을 수산 궁으로 소집하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각 제국과 나라와 가정과 개인의 흥망성쇠의 최후의 주도권이 전능하사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바벨론 제국에게 멸망을 당한 유다 백성들 가운데 상당수가 포로로 끌려가서 75 년이라는 기나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유다 백성들의 자유와 해방은 불가능하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페르시아 제국의 고레스 황제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마침내 바벨론 제국에 의해 포로로 잡혀 왔던 유다 백성들 가운데 오만여명이 자유와 해방을 얻어 꿈에 그리던 예루살렘으로 일차 귀환하였습니다.
 이로써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이 한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하게 하신 예언의 진실성을 또 한 번 입증하였습니다.
 바벨론 땅에는 아직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지 못한 상당수의 유다 백성들이 예루살렘 귀환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 수 있는지 계산이 나오지 않는 처지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예루살렘만이 아니라 모든 이방 사람들까지 다스리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을 부인하고, 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 자들을 하나님은 늘 낮추셨으며, 끝까지 회개하지 않을 때는 가차 없이 심판하셨습니다.
(삼상 2: 10)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성경에 아하수에로 왕은 그의 선왕 고레스와 달리 페르시아 대 제국의 번영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기에게 돌리려고 만조백관들을 수산궁으로 초대하여 대  연회를 벌리고자 한 것입니다.
(에 1:,4) 왕이 여러 날 곧 백팔십 일 동안에 그의 영화로운 나라의 부함과 위엄의 혁혁함을 나타내니라
 아하수에로 왕은 자신의 통치하에 있는 페르시아 제국의 영광스러움과 부와 위대함과 아름다움과 귀중함을 만천하에 자랑하고 싶은 명예심 때문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해 아래서 영원한 제국이나 영원한 나라는 없음을 과거의 화려했던 고대 제국의 유물들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한 결 같이 무너지지도, 불에 타지도, 썩지 않는 돌로 웅장한 신전과 왕궁을 화려하게 건축하였습니다.
 그러나 때가 지나니 일부러 무너뜨리려고 해도 쉽지 않은 거대한 석조 건물들이 마치 공기 돌처럼 산산이 부서져 뒹구는 제국의 유적지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대제국의 멸망의 원인이 각기 다르겠지만 공통점은 자칭 신이라고 할 정도로 교만하였고 약소국에 대해서 무자비하였고, 무고한 백성들을 많이 괴롭히고 죽였습니다.
 로마제국이 그러했고, 대영제국, 나치제국, 대일본제국이 다 그러했다면 오늘의 강대국도 그 전철을 밟는다면 국가나 개인이나 결국은 파멸하고야 마는 것이 역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공의의 법칙입니다.

 2. 아하수에로 왕의 잔치
 아하수에로 왕은 페르시아 제국이 얼마니 강하지를 과시하기 위해 두 번으로 나누어 잔치를 벌렸습니다.

  첫 번 째 잔치는 대상이 제한된 잔치였습니다.
(에 1:3) 왕위에 있은 지 제삼년에 그의 모든 지방관과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 바사와 메대의 장수와 각 지방의 귀족과 지방관들이 다 왕 앞에 있는지라
  이들은 페르시아 제국 이십 개의 행정구역을 맡아 다스리던 이십 명의 총독과 왕 곁에서 필요한 지혜를 자문하는 모사들과 페르시아 군대를 통솔하는 장군들로 페르시아 제국의 실세들이었습니다.
 여기서 ‘백팔십일’이라고 하면 일 년의 절반인 육 개월이라는 말인데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기도 합니다.
 만일 180일 동안 이들을 한곳에 불러 모아 놓고 잔치를 벌린다면 국정이 마비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 기회를 이용하여 피지배국들이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180일 이란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전국 127도의 지도자들이 빠짐없이 잔치에 참석하게 하기 위한 기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야만 페르시아 정국에 안정에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이들을 수산궁으로 초청하여 180일 동안 연회를 벌리는 동안 세계사에 나오는 페르시아 전쟁을 기획하고 127개 도의 지도자들이 아하수에로 왕에게 더욱 충성을 다짐하는 기회로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두 번 째 잔치는 대상이 무제한 인 잔치였습니다.
(에 1:5) 이 날이 지나매 왕이 또 도성 수산에 있는 귀천간의 백성을 위하여 왕궁 후원 뜰에서 칠 일 동안 잔치를 베풀새
 여기서 ‘귀천간’이라는 말은 어근이 백성과 민족을 뜻하는 말로 일반적인 백성의 집단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이러한 잔치를 벌이는 왕을 찾아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수산 궁에 사는 전 시민에게 왕궁을 개방하고 초청하여 그들을 위해 칠일 동안 잔치를 베풀었다면 백성들이 음식을 먹고 마실 때 마다 ‘성은이 망극 합니다’라고 외치면서 왕에게 충성을 다짐하였을 것입니다.

 세 번 째 백성들이 호화로운 왕의 잔치에 참여 하였습니다.
(에 1:7) 금 잔으로 마시게 하니 잔의 모양이 각기 다르고 왕이 풍부하였으므로 어주가 한이 없으며  (8) 마시는 것도 법도가 있어 사람으로 억지로 하지 않게 하니 이는 왕이 모든 궁내 관리에게 명령하여 각 사람이 마음대로 하게 함이더라
 여기서 왕이 풍부하였다는 말은 흔히 하는 말로 ‘손이 크다’는 뜻입니다.
 문민정부 시절에 '변화와 개혁'은 청와대 칼국수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대통령 취임 직후 수석비서관들과의 오찬에 등장한 칼국수는 시중 음식점에서 '김영삼 칼국수'란 명칭으로 식단에 오를 정도로 유명해졌으며, 청와대로 초청받은 사람이 대통령과 칼국수를 함께 칼국수를 먹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럽게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물며 수산 궁에 사는 백성들일지라도 왕이 사는 수산궁을 구경만 하는 것도 영광인데 심지어 왕이 먹고 마시는 잔치에 초청을 받아 왕이 하사한 술을 금잔에 부어 주량대로 실컷 먹고 마실 수 있었다는 것은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이처럼 만조백관은 물론 시민들까지 초청하여 잔치를 벌린 것은 나름대로 치밀한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부왕 다리오의 숙원 사업인 서진정책을 마무리 하기 위한 그리스 원정 계획을 성사시키기 위한 준비 상황을 점검하고 제국 내의 백성들의 여론을 결집하여 페르시아 전쟁 수행에 협력하게 하기 위해서 준비된 잔치였습니다.
 아하수에로가 그렇게 한 의도는 단지 먹고 마시고 즐기는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제국의 단합을 도모해서 숙적 헬라제국을 침공하기 위해 사기를 북돋우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였습니다.
 여기서 아하수에로 왕이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탁월한 리더십을 통해서 지도자 큰일을 수행하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3. 자만이 자초한 위기
  당시 아하수에로 왕이 왕궁에서 잔치를 베푸는 동안 왕후 와스디는 아하수에로 왕처럼 별궁에서 페르시아 제국의 영향력 있는 여인들을 왕궁으로 초청하여 더불어 잔치를 베풀고 있었습니다.
 (에 1:9) 왕후 와스디도 아하수에로 왕궁에서 여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라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술을 마시게 되면 취하게 되는 것이고 취하면 탐욕에 빠져 죄와 실수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 5:10)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아하수에로 왕은 잔치가 무르익어 가면서 술에 취할수록 그 잔치를 통해서 페르시아 제국의 흥망성쇠가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의 주권에 달려 있다는 것을 만백성에게 드러내 보이고 싶어 하는 자만심이 불타올랐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백성들 앞에 자신의 영향력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계획에 없는 일을 하나 벌렸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 여인과 사는가를 자랑하고 싶어서 왕후 와스디를 만조백관과 백성들 앞에서 소개하려고 일곱 사람을 뽑아서 예의를 갖추어 왕후를 잔치 자리로 초대하였습니다.
(에 1:11) 왕후 와스디를 청하여 왕후의 관을 정제하고 왕 앞으로 나아오게 하여 그의 아리따움을 뭇 백성과 지방관들에게 보이게 하라 하니 이는 왕후의 용모가 보기에 좋음이라
 와스디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부르심을 받고 높임을 받은 것처럼, 왕의 선택과 총애의 덕택으로 왕비로서의 그녀의 지위를 부여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의관을 정제하고 백성들 앞에 나아와 그녀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라는 왕의 명령은 그녀에게 매우 기쁘게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순종해야 할 그녀의 특권인 동시에 의무였습니다.
 와스디는 리디아의 왕인 알얄트(Alyalt)의 딸로서 당시 막강한 국력을 과시하던 바사의 왕 아하수에로의 왕비였습니다. 그녀는 영광과 권세와 부를 함께 나누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그녀가 좀더 겸손한 자세로 왕의 명령에 복종했더라면 그녀의 일생은 부귀를 누리는 행복한 나날이 계속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왕의 명령을 왕비는 일언지하에 거절하였습니다. 왕비의 이러한 거절은 그러한 제의를 한 왕은 물론 그 잔치에 배석한 모든 방백과 신하들을 노하게 하였습니다.   분명히 아름다운 용모는 매력적입니다. 그러나 그에 상응하는 내적 아름다움이 없을 때 그 외적 아름다움은 오히려 올무가 되었습니다.

 1) 왕의 진노를 자초하였습니다.
  (에 1:12) 그러나 왕후 와스디는 내시가 전하는 왕명을 따르기를 싫어하니 왕이 진노하여 마음속이 불 붙는 듯하더라
 왕비의 불순종은 그 자신에게만 불행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왕에게는 기쁨을 걷어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기쁨 대신에 대단한 노여움을 가져왔습니다. 가장 기쁘고 즐겁게 해 주어야 할 사람에게 그녀는 불순종함으로써 가장 큰 분노를 가져왔던 것입니다.

 2) 왕을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에 1:15) 왕후 와스디가 내시가 전하는 아하수에로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아니하니 규례대로 하면 어떻게 처치할까
 와스디의 불순종이 왕에게 가져온 것은 분노만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처벌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하는 새로운 근심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적극적으로 진언하는 신하들의 말을 따라 왕후 와스디를 폐위시키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물론 그것은 왕의 기강을 바로 잡는 일에는 당연한 것이지만 아하수에로왕 자신에게는 사랑하는 아내를 버려야만 하는 마음 아픈 일이었습니다.
 왕은 백성들에게는 자유롭게 잔치에 임할 것을 허락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왕후에게는 강압적인 명령을 하므로 결국 왕비를 폐위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것은 순전히 아후수에로 왕의 자만이 자초한 비극이었습니다.
 성경에서 그와 유사한 사건이 바벨론 왕 벨사살 왕의 잔치입니다.  바벨론 왕 벨사살은 귀인 1천 명을 초대하여 큰 잔치를 배설했습니다.
 그는 부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해 온 금, 은기명을 가지고 그것으로 술을 마시면서 금, 은, 동, 철, 목, 석으로 만든 그들의 신을 찬양했습니다.
 그때 난데없는 손가락이 나타나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란 글씨를 썼으며, 그날 밤, 벨사살 왕은 살해되고 바벨론 왕국은 종말을 고했습니다.
 (단 5:30-31) 그 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31)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는데 그 때에 다리오는 육십이 세였더라”
 그의 오만과 신성 모독이 그가 베푼 대연회를 통해서 그와 그의 왕국을 멸망시키는 비극을 가져온 것입니다.
 우리가 본문에 나타난 왕의 마음을 짐작하건대 잔치를 배설한 동기가 교만과 허영에 사로잡혀 왕궁의 호화로움과 자신의 영화를 나타내 보이려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의 마음은 세계를 지배하는 높은 권세를 가졌다는 사실로 한껏 부풀어 있었고, 온 세상의 영광을 한 몸에 지니고 싶었을 것입니다.
 정치적이나 문화적이 도덕적인 업적으로가 아니라, 물질적인 허영과 사치를 통한 방법으로 존귀와 영광을 얻으려 하였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한 인간의 그러한 야망과 영화 뒤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죽음이 가려져 있는 ‘위장된 번영’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하수에로 왕이 자신의 번영을 자랑하기 위해 벌린 잔치에 마음껏 마시고 취하도록 하사한 술은 아무 죄없는 양민들이 흘린 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오늘도 북한, 이락, 가자지구, 아프리카 도처에서 한 인간의 권력에 대한 탐욕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사람들에 기근으로 죽어가고, 눈에 피눈물을 흐르게 하고, 죄 없는 어린 아이들마저 채 피워보지도 못한 꽃처럼 죽어가는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모두가 탐욕의 결과인 것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들도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병들게 하는 두 가지는 낙담과 탐욕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건강은 “몸이 병들었을 때 조심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건강관리는, 건강하다는 소리를 들을 때 조심하여야 한다. 그 중에 필수적인 것은 건강할 때 겉으로 들어나지 않은 부분까지 꼼꼼히 진찰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육신의 건강만이 아니라 영적인 건강인 신앙도 “ 위기를 만났을 때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소망 중에 더욱 주님을 의지함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정반대로 번영할 때는 자만하지 말고 겸손해야만 번영을 오래 유지하는 대신 위기를 자초하지 않을 수 있다” 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론과 머리로는 잘 알지만, 실제의 삶에서는 그 원리를 적용하지 않기 때문에 위기 중에 좌절하거나, 번영할 때 자만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아하스에로 왕이 왜 그러한 불행을 맞이하게 되었을까요? 만일 아하수에로 왕이 고레스 왕처럼 겸손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면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라 1:2)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오늘 우리도 고난 중에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성공과 번영을 주실 때 자만하다가 아하수에로 왕처럼 불행을 자초하는 위장된 번영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개인이나 국가나 번영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임을 깨닫고 그 같은 복을 주신 섭리를 깨닫고 자만하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선한 일에 힘쓰는 진정한 번영의 축복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딤전 1:17)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