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민족적인 대 위기(에 3:8-11)

미션(cmc) 2009. 3. 1. 07:30

민족적인 대 위기

(에 3:8-11)


 

(8) 하만이 아하수에로 왕에게 아뢰되 한 민족이 왕의 나라 각 지방 백성 중에 흩어져 거하는데 그 법률이 만민의 것과 달라서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아니하오니 용납하는 것이 왕에게 무익하니이다 (9) 왕이 옳게 여기시거든 조서를 내려 그들을 진멸하소서 내가 은 일만 달란트를 왕의 일을 맡은 자의 손에 맡겨 왕의 금고에 드리리이다 하니 (10) 왕이 반지를 손에서 빼어 유다인의 대적 곧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에게 주며 (11) 이르되 그 은을 네게 주고 그 백성도 그리하노니 너의 소견에 좋을 대로 행하라 하더라

 오늘 설교는 위기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위기란 어떤 상황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영상을 보시겠습니다.
 미국 동부와 중서부 지역에 눈보라를 동반한 겨울 폭풍이 몰아치면서 23명이 숨지고 1백만 가구 이상이 정전 사태를 빚는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눈과 얼음을 동반한 겨울 폭풍은 미국 중.남부 지역에서 동부 해안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에 정전 사태를 일으켰고, 항공편 취소나 지연도 잇따르고 있다.  이에 따라 겨울 폭풍 경보가 28일 남부 텍사스주에서 동북부 뉴잉글랜드주까지 내려졌고, 일부 주에서는 휴교령이 내려졌다. 사망자 대부분은 얼어붙은 도로를 운전하다 발생한 교통사고 관련 희생자로 전해졌다.  
 가정이나 국가가 없는 개인은 존재할 수 없으며, 설령 존재 할지라도 패전국 백성이나 정치적인 망명자들을 보면 그것이 얼마나 불행스러운 것인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개인이 행복하려면 돈만 많이 벌면 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국가의 정치, 경제, 군사 등 모든 분야가 안정되어야만 개인의 평안도 보장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부단히 기도해야만 합니다.
(딤전 2:1,2)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더구나 국가의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고, 졸업시즌이 되었지만 일자리가 없어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취업 박람회를 방황하고, 중소기업들이 문을 닫고 도산을 하고, 자영업자들이 빚을 얻어 개업을 했지만 손님이 없어서 하루하루가 걱정과 시름이 가득한 현실에서, 정치가들은 민생과 경제회생을 위한 노력보다는 당리당략에 승부를 걸고, 군사적으로는 북한의 도발이 예상되는 불안한 상황은 영락없는 민족적 대 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 민족은 무엇을 해야 하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모르드개의 자존심
 지금까지 우리는 에스더를 통해서 앗수르와 바벨론 제국을 물리치고 세워진 페르시아 대 제국의 흥망성쇠가 아하수에로 왕의 손에 의해 좌우 되는 것이 아니라 비록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으나 분명히 살아 역사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에 의해 좌우됨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에스더를 통해서 그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는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우리나라와 민족의 흥망성쇠는 물론 우리 개개인의 행불행조차도 좌우하심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페르시아 제국의 부귀영화와 자신의 권세를 만천하에 자랑하려다가 와수디 왕후만 폐위시키는 불상사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기회를 이용하여 포로인 유다 백성 중에서 부모를 잃은 고아출신 에스더가 왕후로 간택되는 기회로 삼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위장된 고난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이 처한 고난을 통해서도 그와 같은 축복을 준비해 주심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약소국이요 패전국의 백성인 에스더가  대 페르시아 제국의 왕후로 간택 받게 되었을 때 모르드개를 포함한 전 유다 백성들의 마음은 한 없이 기뻤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에스더가 왕후가 되었으니 이제부터 바벨론 땅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에게는 자유가 선포되고 위상이 높아지고 페르시아 사람들로부터 사람 대우를 받게 되었나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에스더가 유다 출신으로 대 페르시아 제국의 왕후가 되었을 때 그로 인해 유대인들에게는 도리어 위기가 찾아 왔습니다.
 그것은 에스더를 친딸처럼 양육하여 에스더를 왕후가 되게 하는 일에 일등공신 역할을 한 모르드개 때문이었습니다.

 1) 모르드개의 공로
 모르드개는 평소 왕궁을 지키는 시위대원으로 왕을 암살하려던 자객을 색출하여 에스더에게 보고하고 에스더는 왕에게 보고하여 암살범 두 사람을 사형에 처하게 함으로 아하수에로 왕과 페르시아 제국을 위기에서 건져내는 공을 세운 사람이었습니다.
 (에 2:22,23) 모르드개가 알고 왕후 에스더에게 알리니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이름으로 왕에게 아뢴지라 (23) 조사하여 실증을 얻었으므로 두 사람을 나무에 달고 그 일을 왕 앞에서 궁중 일기에 기록하니라
 그렇다면 모르드개는 특진을 하고 왕으로부터 후한 상을 받아야 하는데 전혀 그런 바가 없었습니다.
 정작 공을 세운 사람은 아무런 대접도 못 받고 그 사람을 이용하여 엉뚱한 사람이 상을 가로 채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이 세상입니다. 이것이 예나 지금이나 불공평한 세상사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반면에 아말렉 사람 하만은 무슨 공을 세웠는지 모르지만 왕으로부터 총애와 상급을 독차지 하였습니다.
 설령 하만이 공을 세웠을지라도 왕의 목숨을 지킨 모르드개 보다 더 소중한 일은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르드개는 상을 받지 못하고 하만은 왕에게 특별한 상을 받았습니다.
(에 3:1)  그 후에 아하수에로 왕이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의 지위를 높이 올려 함께 있는 모든 대신 위에 두니
 그렇다면 큰 공을 세운 모르드개가 얼마나 억울하고 속상한 일입니까? 그러나 모르드개는 평소와 다름없이 대궐 문 앞에서 묵묵히 왕궁을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의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바람직한 자세인 것입니다.

 2) 하만의 분노
 아하수에로 왕은 모든 신하들에게 명령하기를 왕에게 꿇어 절하듯이 하만에게 꿇어 절하라고 명령을 내릴 정도로 하만을 총애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르드개는 그것이 왕의 특별한 명령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하만에게 무릎 꿇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모르드개에게 주변 사람들이 왕의 명을 거역하지 말라는 권고를 들었고, 또한 결과적으로 어떻게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하만에게 절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만을 무척 화나게 만들었습니다.
(3: 5) 하만이 모르드개가 무릎을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함을 보고 매우 노하더니
 여기서 ‘절하지 아니함을 보고’는 미완료로 성문을 지날 때마다 보게 되는 것이며, ‘매우’라는 말은 음식 솥에 김이 가득차서 뿜어 나오며 뚜겅이 열리는 것처럼 분노가 가득한 상태를 가리키며, ‘노하더니’는 하만이 그러한 모르드개의 모습을 볼 때마다 화가 멈추지 않는 미완료 상태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르드개는 자기 한 사람만 하만에게 무릎을 꿇으면 온 민족이 편안할 것인데 왜 끝까지 자존심을 앞세우고 하만에게 무릎을 꿇지 않았을까요?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하만은 유다인들이 미워하는 아말렉 족속 아각의 자손이기 때문에 하만에게 무릎을 꿇는 것은 그의 내면의 애국심과 자존심과 신앙심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에 3:4) 날마다 권하되 모르드개가 듣지 아니하고 자기는 유다인임을 알렸더니 그들이 모르드개의 일이 어찌 되나 보고자 하여 하만에게 전하였
 우리가 모르드개의 그러한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왜정시대에 신사참배를 거부했던 수많은 신앙의 선진들이 투옥을 당하고 매를 맞고 순교를 당한 이유에 대해서 이해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십계명에 우상숭배를 금하는 계명이 있지만 신사참배는 종교행위가 아니라 애국행위라고 호도하는 기독교 지도자들이 신사참배가 신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결정해 주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신사참배를 하므로 피해를 당하지 않았는데도, 주기철 목사님과 같은 분은 끝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순교당한 이유는 신앙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사단에게 당한 시험과 유혹도 그와 같은 신앙의 자존심 대결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아무리 배가 고프다고 할지라도  빵 한 덩어리와 어찌 바꿀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과연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앙의 자존심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지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오늘도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눈에 보이는 작은 유익을 위해 모르드개와 주기철 목사님들이 지킨 신앙의 자존심을 쉽사리 포기하고 있는지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2. 아각 자손 하만의 자존심
 아말렉 자손이요 아각 사람인 하만은 모르드개가 유대인이기 때문에 자기 민족을 멸시하고 자기에게 절하지 않는다는 말에 더욱 자존심이 상하여 모르드개만이 아니라 유대인 전부를 페르시아 제국 내에서 싹쓸이 대 청소를 하겠다고 결심을 하였습니다.
 하만의 분노는 모르드개 한 사람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전 유대인에 대한 증오심으로 발전하여 이 기회에 페르시아 전역에 있는 유대인들을 싹쓸이 하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만들었습니다. 구약 시대 ‘홀로고스트’인 유태인 대학살 사건의 발단인 것입니다.
(3: 6) 그들이 모르드개의 민족을 하만에게 알리므로 하만이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아하수에로의 온 나라에 있는 유다인 곧 모르드개의 민족을 다 멸하고자 하더라
 여기서 ‘멸한다’는 말은 재기할 수 없도록 파괴하고 근절시키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최근 국내적으로는 화황산 산불 사건과 국외적으로는 호주의 산불로 다수의 사상자와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적이 있습니다.
 그와 같은 산불은 매우 작은 불씨에서 시작이 되어 확산되는 것처럼 하만이 모르드개가 자기를 멸시한다는 불쾌한 감정이 마침내 전 유대인을 말살시키는 무서운 분노로 발전했한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분노를 억제하지 못해서 공든탑을 무너뜨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혼을 하고, 친구와 원수를 맺고, 심지어 살인까지도 저지르게 되는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분노는 사단이 지옥에서 붙여온 불씨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설령 어떤 사람에게 오해가 있고 미움이 있다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었는지 사안별로 구분해서 생각을 해야지 그 한 가지 때문에 그 사람과 관계된 모든 것을 부인하고 미워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자해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하만은 페르시아 제국 내에 있는 전 유대인들을 진멸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아하수에로 왕의 권력이 필요함을 알고, 하만은 아하수에로 왕이 자기에게 모든 대신들이 절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을 마치 전 유대인들이 거역한 것처럼 거짓말을 하면서 막대한 뇌물 공세를 하면 한 민족을 진멸하자고 막대한 뇌물 공세를 하면서 제안하였습니다.
(3:8) 하만이 아하수에로 왕에게 아뢰되 한 민족이 왕의 나라 각 지방 백성 중에 흩어져 거하는데 그 법률이 만민의 것과 달라서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아니하오니 용납하는 것이 왕에게 무익하니이다 (9) 왕이 옳게 여기시거든 조서를 내려 그들을 진멸하소서 내가 은 일만 달란트를 왕의 일을 맡은 자의 손에 맡겨 왕의 금고에 드리리이다 하니
 과연 아하수에로 왕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물론 아하수에로 왕은 하만의 충성심에 감동을 먹고 조서를 내릴 때 필요한 어인인 도장을 손가락에서 빼어 하만에게 넘겨 줄 정도로 신임을 하였습니다.
 (3:10,11) 왕이 반지를 손에서 빼어 유다인의 대적 곧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에게 주며 (11) 이르되 그 은을 네게 주고 그 백성도 그리하노니 너의 소견에 좋을 대로 행하라 하더라
 거짓과 뇌물은 불의한 세상에서 무엇이든지 다 해결하게 하는 사단이 즐겨 사용하는 만능열쇠인 것입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거짓과 뇌물이라는 사단의 도구에 놀아나고 있는지 모릅니다.
(잠 17:8) "뇌물은 그 임자가 보기에 보석 같은즉 그가 어디로 향하든지 형통하게 하느니라" (사 5:23) "그들은 뇌물로 말미암아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에게서 그 공의를 빼앗는도다"
 과연 이같이 거짓과 뇌물이 통하고 진실과 정직과 신앙이 짓밟힘을 당하는 세상에서 과연 모르드개처럼 신앙의 자존심을 위해 목숨을 거는 일이 지혜로운 삶일까요? 아니면 어리석은 삶일까요?
 오늘도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문제로 갈등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럴 때 어떤 결과물을 보고 마음을 결정하려고 한다면 다 낙심하고 말 것입니다. 신앙을 고집하며 산다는 것이 어리석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거짓과 뇌물을 버리고 진실과 정직과 신앙으로 사는 것이 내게 유익이 되기 때문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는 소신이 아니고는 시험을 이길 수 없는 것입니다.

 3. 유대 민족이 만난 대 위기
 유대인들을 진멸하는 전권을 왕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것을 상징하는 아하수에로 왕의 인장반지(印章斑指)를 받은 하만은 유대인들을 말살하기 위한 대 학살 계획을 매우 조직적으로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하나 하나 진행해 나갔습니다.

 1) 대학살 일
 하만은 점을 치듯이 어느 날이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날이 좋은지 제비를 뽑아서 먼저 달과 날을 골랐습니다.
 (3: 7) 아하수에로 왕 제십이년 첫째 달 곧 니산월에 무리가 하만 앞에서 날과 달에 대하여 부르 곧 제비를 뽑아 열두째 달 곧 아달월을 얻은지라
 아달월 중에 십삼일 하루를 전 페르시아 지역 안에 살고 있는 전 유대인들을 말살하는 날로 정하였습니다.

2) 어인을 찍음
 전국 127 도에 왕의 법률로 조서를 내려 어인까지 찍어 보냈습니다. 대 제국이다 보니 각기 다른 민족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각 지방의 문자와 언어로 조서를 내려 빠짐이 없이 유대인들을 살해하도록 아하수에로 왕의 이름으로 조서를 내렸습니다.
(3:12) 첫째 달 십삼일에 왕의 서기관이 소집되어 하만의 명령을 따라 왕의 대신과 각 지방의 관리와 각 민족의 관원에게 아하수에로 왕의 이름으로 조서를 쓰되 곧 각 지방의 문자와 각 민족의 언어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치니라
 그러므로 만일 이웃에 있는 유대인들을 죽이지 않는 것은 아하수에로 왕의 명을 거역하는 일이기 때문에 자신이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3) 학살 방법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명분을 주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하만은 유대인들의 남녀노소를 가리지 말고 다 죽이고 그 재산을 탈취하라고 하였습니다.
(3:13) 이에 그 조서를 역졸에게 맡겨 왕의 각 지방에 보내니 열두째 달 곧 아달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인을 젊은이 늙은이 어린이 여인들을 막론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또 그 재산을 탈취하라 하였고
 타락한 인간은 돈 때문에 부모 형제도 청부살인을 하고 불을 질러 죽이는 세상에 유대인들을 죽이고 재산을 탈취하라고 하였을 때 얼마나 신이 나서 죽이겠습니까?
 
 4) 준비하게 함
 하만은 그 계획한 일을 급하게 시행하지 않고 미리 시간적인 여유를 준 것은 전국 방방곡곡에 다 전해지기 위함이고 그것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3:14) 이 명령을 각 지방에 전하기 위하여 조서의 초본을 모든 민족에게 선포하여 그 날을 위하여 준비하게 하라 하였더라
  이는 유대인들을 말살하고자 하는 하만의 계략이 얼마나 주도면밀한가? 를 잘 나타내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당사자인 모르드개는 무슨 대비를 하였습니까? 이에 대해 유대인들은 무슨 대비를 할 수 있습니까?
 하만에게는 대 페르시아 제국의 이인자라는 막강한 권력이 있었습니다. 하만에게는 막대한 돈이 있었습니다. 하만에게는 거대한 조직이 있었습니다.
 하만은 무소부재한 지존처럼 보였을 것이고 모르드개와 유대인들은 더욱 무기력하고 무능하게만 보였을 것입니다.
 그 때 유대인들의 숫자는 대략 75만 정도로 추산을 한다면 모르드개 한 사람의 자존심 때문에 아무 죄도 없는 유대인들이 미치광이 하만에게 몰살을 당해야 한다는 것은 유대 민족의 대 위기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 백성들은 아무런 대안이 없다는 것은 더 큰 위기인 것입니다. 더구나 여호와 하나님은 유대 백성들의 구원을 위해 어떤 약속이나 신호도 보내지 않고 있으시다는 것은 더 큰 위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만일 하만의 계략이 통하는 세상이라면 과연 하나님은 정의로우신 하나님이시며, 개인과 가정과 민족과 세계의 흥망성쇠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이신지 의문이 들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과연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백성이라는 말이 무슨 의미가 있고 무슨 유익이 있는지? 회의가 들게 될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서 그 답을 찾아보아도 아무런 답이 없습니다. 전 유대민족이 하루 아침에 몰살을 당하고 재산을 다 빼앗기게 될 민족적 대 위기의 날이 확정되었을 때 설령 에스더가 왕후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모르드개가 하만을 찾아가서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며 애걸을 한다고 해도, 유대 민족이 단합하여 봉기를 한다고 해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니느웨 도성의 죄악으로 심판을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죄한 12만명의 어린이들을 보시고 살려주신 하나님께서 바벨론 땅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75만의 유다 백성들을 버리시지는 않으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 양심을 가지고 우리가 처한 현실을 바라볼 때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심상치 않은 상황에 직면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경제위기에 국민들이 고통 받고 있는 상황인데, 여기에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마저 고조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남북 간에 군사적 충돌이라도 발생하게 될 경우, 지금 같은 환경에서는 경제에도 직격탄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 관계는 경색의 도를 넘어 군사적인 대결 구도로 갈 수 있는 불안한 징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북한 최고 군수뇌가 직접 군사적 대결을 선언하고, 함경북도 무수단리 미사일 기지에서 장거리 미사일인 대포동 2호 발사 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거리가 4천300~6천㎞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대포동 2호가 미국 일부 지역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도 긴장을 하고 요격태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편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군사훈련 횟수를 증가하고, 최근 사거리 20㎞의 76㎜, 100㎜ 해안포를 사거리가 30~40㎞로 늘어난 개량된 해안포로 교체한 것으로 알려져 군 당국이 바짝 긴장하고 있습니다.
 만일 남북 함정 간 충돌이 발생할 경우 북한 해안포로 인해 함정간 교전을 했던 과거 두 차례의 연평해전과 같은 아군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에 대해 당국은 북한이 우리 함정을 향해 해안포 공격을 감행했을 경우에 해군 함정은 물론 공군력을 이용한 무력화 방안도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만일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하고 서해안에서 교전을 벌리게 된다면 어느 편이 이기고 지는 것을 따지기 전에 당장 경제에 대한 불안심리가 확산될 것이고, 국제신인도에도 문제가 생겨 투자가 중단될 것이고 외국자본이 한국을 떠나게 날 것입니다.  그로 인해 누구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가난한 국민들이 받는 고통과 불안은 더 가중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우리나라의 현실을 우리들 보다 외신들이 더 걱정을 하는 가운데 경제만이 아니라 군사적으로 6. 25 사변 이후 최대의 위기라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이 지금 전혀 두려움이나 염려가 없는 것이 과연 믿음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무지한 것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럴 때 과연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 답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것밖에 다른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며, 기독교를 비웃고 조롱하는 안티세력이 급증하고, 국민은 정부를 불신하고, 단체들마다 나라와 민족보다 개인의 이권에만 급급하여 집단이기주의가 난무하고, 사회는 폭력과 부정과 불법이 난무한데,  교인들마저 민생고를 빙자하여 교회를 떠나고, 예배와 기도를 소홀히 하는 신앙인의 자존심을 돈이나 명예 앞에 무릎을 꿇고 신앙 양심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이 더 큰 위기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민족적인 대 위기를 만난 유대인들의 소망은 그들의 어떤 노력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지켜보시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음을 믿고, 단절되고 소홀했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돈돈히 하는 것만이 사는
 길이요, 행복의 길임을 오늘 우리도 믿어야 합니다. 그것이 사람들이 볼 때는 무능력한 것 같고 무책임한 것처럼 보이지만 유일한 희망의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시 115:11)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여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