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설교] 완강한 암소인가? 어린양인가?(호4:16)
백동조 목사(목포 사랑의교회)
날마다 나를 낮춰 복종합시다
나는 죽이고 예수로 사는 순종의 어린양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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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동조 목사 |
1.신앙생활의 년 수가 많아지고 귀한 직분을 받고 귀하게 쓰임 받는다면 어린양이 될까?
성경에 보니까 신앙생활 년 수가 많다고 해서 어린양이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귀한 직분을 맡았다고 해서, 주님의 손에 크게 쓰임 받았다고 해서 어린양이 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신앙의 년 수가 많고, 귀한 직분을 받아 큰 사역을 한 사람들이 완강한 암소로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베드로와 고넬료가 기도하는 시간에 주님이 나타나십니다. 고넬료에게는 ‘베드로를 청하라’ 하시고, 베드로에게는 ‘고넬료 가정에 가라’하십니다. 즉시 순종해야 할 베드로는 세 번이나 거절하지만 고넬료는 즉시 순종합니다. 고넬료는 어린양과 같고 베드로는 완강한 암소와 같지 않습니까?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베드로처럼 신앙의 년 수가 있고, 제자훈련 받고, 오순절 성령 충만을 경험하고, 그가 복음을 전할 때 3000명 5000명이 회개하는 큰 역사를 이루었다고 해서 어린양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로 나도 예외일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사울은 왕이 되기 전에 어린양처럼 순수했고 겸손했습니다. 왕이 된 후에 사울의 모습은 완강한 암소의 모습으로 변합니다. 목동시절 어린 양과 같았던 다윗에게도 왕이 되고 큰 은총을 받은 후에 완강한 암소와 같은 모습이 드러납니다. 솔로몬도 초기 모습은 어린양이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님이 주신 큰 지혜와 부귀를 누리면서 완강한 암소의 모습으로 변합니다.
목사가 되고, 선교사가 되고, 장로가 된다고 해서,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고 크게 쓰임 받았다고 해서 어린양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귀한 직분과 크게 쓰임 받음으로 오히려 완강한 암소가 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어린양과 같던 모세도 반석을 명하여 물을 내야 했던 순간에 감정적으로 반석을 칠 때는 완강한 암소의 모습이었습니다.
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아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닫고 신대원에 들어가서 1학년, 2학년, 3학년, 졸업 후 강도사가 되고, 목사 안수를 받고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3년, 4년 그렇게 23년이 지나면서 어린양의 모습은 사라지고 완강한 암소가 되어 가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싸워야 할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을 들여다보십시오. 평신도들은 어린양 같은데 오히려 중직자들의 모습은 완강한 암소의 모습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습니까? 우리 교단을 들여다보면 어떻습니까? 교회와 성도들만을 바라보며 섬기는 젊은 목사님과 장로님들과 총회를 섬기는 지도자들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서 우리 스스로를 살펴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쓰임 받다가 버림받아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완강한 암소가 아닌 어린양들이 모이는 교회, 노회, 총회가 되기를 주님은 원하고 계십니다.
2.우리는 호세아를 통해서 주신 말씀에 모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완강한 암소처럼 완강하니 이제 여호와께서 어린 양을 넓은 들에서 먹임 같이 그들을 먹이시겠느냐“(호 4:16)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넓은 들’ 즉 울타리에 제한받지 않고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은혜를 베풀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완강한 암소라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3.어떻게 넓은 들을 누리며 사는 어린양이 될 수 있을까?
바울은 완강한 암소가 되지 않기 위해서 날마다 죽는다(고전15:31)고 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과 함께 자신의 옛사람이 죽었음을 항상 짊어지고 산다(고후 4:10)고 했습니다.
날마다 죽는 구체적인 방법을 쉽게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나는 이미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죽고 내 안에 예수님이 살고 계심을 인정하고(갈2:20), ‘주님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서 이미 죽었습니다.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십니다’라고 고백하고, 선포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날마다 죽는 삶이며 예수 죽인 것을 항상 몸에 짊어지며 사는 삶입니다. 매 순간마다 이렇게 살면 나의 옛 자아(육신, 죄)가 힘을 잃고 나를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리고 내 안에 사신 예수님이 나를 움직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완강한 암소가 아닌 어린양이 됩니다.
완강한 암소는 교만해서 옛 자아의 고집대로 사는 신자입니다. 반대로 어린양은 ‘나는 죽고 예수님으로 사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나는 죽고 예수님으로 산다는 것은 예수님의 눈으로 사람을 본다는 것이며,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람을 대한다는 것이며, 예수님의 인격으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며, 예수님의 지혜로 세상을 산다는 것입니다. 나는 죽고 예수님으로 목회하면 목회가 힘들지 않습니다. 나는 죽고 예수님으로 이웃을 섬겨보세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나는 죽고 예수님으로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넓은 들을 약속하셨습니다.
설교노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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