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일어나 희망을 노래하자(벧전 1:3-4)

미션(cmc) 2009. 4. 13. 06:59

일어나 희망을 노래하자

(벧전 1:3-4)


 

(벧전 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 1: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개인이나 가정이나 국가를 막론하고 지난날을 돌이켜 보게 되면 아무런 희망을 가질 수 없었던 절망스러운 날 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일제 삼십육년의 압제를 당할 때 우리 민족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았었습니다.
 이 민족에게 희망이 보이지 않았던 때가 그 때만은 아니었습니다. 동족상잔의 6. 25 사변의 잿더미에서 아무런 희망을 찾을 길 없었고, 찢어질 듯 가난했던 보릿고개를 넘을 때에도 아무런 희망이 보이질 않았고, 군사독재, 오일 쇼크 아엠에프 등 여러 번 위기 때에도 전혀 희망이 보이질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매일 어두움을 가르는 새벽종을 울리며 이 민족을 일깨워 희망을 노래하게 하였고, 주일마다 강단에서 위기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기회라고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전파하였고, 수많은 성도들이 밤마다 새벽마다 구국의 기도를 하였고 전도지를 나누며 십자가와 부활을 전파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처한 현실은 어떻습니까? 희망이 보입니까? 희망이 없습니까? 세계적인 경제 대란이라는 악재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과 일본, 중국과의 통화스와프를 통해 외화 유동성위기를 벗어나보려고도 하였으나 원화와 주식 가격이 곤두박질을 치고 수출과 생산이 격감하는 한국경제는 희망이 보이질 않고 있습니다.
 단일 민족을 자랑해왔지만 예나 지금이나 이념과 명분에 따라 사색당쟁(四色黨爭)에 골몰하는 한국정치, 동서사방을 둘러보아도 희망이 보이질 않는 이 민족을 향해 오늘의 교회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구동성으로 희망이 보이질 않는다고 부정적으로 말하고 있을 때에 교회와 성도들은 다시 이 민족을 향해 또 다시 희망을 노래하고 희망을 전파해야 할 때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교회들이 이 민족을 위기에서 건질만한 금과 은이나 권력이 없습니다. 오히려 빚을 진 교회들이 많습니다. 그럴지라도 교회가 이 민족을 향해 희망을 노래하고 전파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오늘 성경 말씀 때문입니다.
(벧전 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 부활이 우리에게 최대한 희망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1)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이 무죄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예수님의 부활은 십자가의 죽으심을 우리의 죄가 다 속죄 되었음을 보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예수님의 부활은 장차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얻을 부활에 대한 보증이기 때문입니다.
(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4) 예수님의 부활은 오늘 우리에게 희망을 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부활의 희망을 전파할 때 그 사람도 부활을 믿어 영생을 얻는 축복의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함을 받은 이스라엘 나라가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제국과 같은 강대국의 침략으로 죽거나 아니면 죽는 것보다 더 나을 것이 없는 비참한 삶을 살아야만 하였습니다.
 물론 현실이 아무리 고통스러울지라도 자유와 해방에 대한 꿈과 희망마저 포기하지는 말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유와 해방은 고사하고 생존마저 위협을 당하면서  희망을 꿈꾸기 어려운 절망적인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선지자들을 통해서 약속하신 구세주가 와서 이스라엘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사 35:10)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
 하나님께서 그 예언을 이루실 때가 이르렀을 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인류의 구세주로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2.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망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는 반드시 처녀의 몸에 잉태되어 원죄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으신 분이어야만 하였습니다. 
(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예수 그리스도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것도 바로 절망스런 세상을 살아가는 인류에게 희망을 주시기 위해 오신 메시아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공생애를 통해 사람들에게 천국의 희망을, 불치의 병자들에게 치유와 회복을, 귀신의 노예가 된 자들에게 영적인 자유와 해방을 주신 것들은 메시아임을 입증하는 증거입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예수님에게 기대와 희망을 걸었고 가시는 곳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지를 보내고 따랐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정치적인 해방이 아니라 불행의 근본 원인인 죄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대속의 죽음을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정치적인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은 예수님이 체포되어, 채찍질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것을 보고 실망하여 예수님을 버리고 절망뿐인 옛 생활로 되돌아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요 21: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3. 희망을 나누는 사람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장사되자 예수님을 따랐던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떠났을 뿐 아니라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고 거듭 말씀 하신 부활에 대한 약속을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요 20:9)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여전히 소망이 없었고, 천국에 대한 소망마저 잊은 채 죄와 질병과 고통과 죽음으로 한 평생을 마감해야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밤이 깊으면 새벽이 찾아오는 것처럼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게 하심으로 인류 최대의 원수인 사단의 권세를 이기시고 승리하셨습니다.
(고전 15: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고전 15: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부활하신 예수님은 사십일 동안 희망을 잃고 실패의 삶을 사는 제자들에게 찾아가셔서 다시 새 희망을 부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부터 희망을 설교하고 희망을 전파하고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죽음의 권세조차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부활을 전파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을 믿는 자의 부활을 약속하는 첫 열매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전과는 판이하게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후부터 희망을 노래하고, 희망을 전파하는 사람들로 새롭게 변화되었습니다.
(벧전 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때나 부활하신 이후에는 당시 상황은 조금도 변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이후 사람들의 마음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교회가 새롭게 달라졌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모여 싸우고 지지고 볶는 모임이 아니라 교회 안에 기적이 일어나고 사람들로 모여 서로를 걱정하고 염려하고 사랑을 나누는 아름다운 사랑의 공동체로 변화한 것입니다.
(행 2: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행 2: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행 2: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행 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이러한 변화가 오늘의 한국 교회와 성도들에게서 일어나야만 비난을 받는 교회가 아니라 사랑과 희망을 나누는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인간에게 절망을 가져다주는 불행의 근원인 죄와 죽음을 단방에 희망으로 바꾸어 놓은 날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도 부활하게 될 것에 대한 보증입니다. 이제 우리도 부활을 믿음으로 거듭나 희망을 전파한 제자들처럼 부활을 크게 기뻐하고 감사하며 희망을 전파하는 제자의 삶을 사는 것만이 진정한 행복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가 바로 그 때문입니다.
 모든 만물이 엄동설한 추위에 죽은 듯 얼어붙었다가 새봄이 오면 다시 살아나 새로운 잎이 돋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처럼 예수님의 부활은 죄와 죽음의 세력이 뒤덮은 세상이 물러가고 부활이라는 희망찬 새봄을 맞게 된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현실이 아무리 절망스럽게 생각될지라도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이야기를 하는 불행의 바이러스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사막에 두 사람이 조난을 당했습니다. 구조를 받기 위해서는 더 긴 시간을 견뎌야 하는데, 두 사람 다 수통에 물이 반병이 남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한사람은 아직도 반병이 남았다고 생각했고, 다른 사람은 반병밖에 남지 않았네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두 사람에게 어떤 결과가 일어났을까요?
1)  반병밖에 남지 않았네!라고 생각한 사람은 그 생각으로 인해 불안해 질 것이고 그러면 생리적으로 자율신경계가 항진을 하게 되어 입이 타고 가슴이 뛰는 등, 불안에 대한 반응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를 가리켜 의학적인 전문 용어로 플라세보 이팩트(placebo effect)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물을 더 자주, 더 많이 먹을 수 밖에 없고 그렇게 물이 줄어들수록 그 사람은 더 불안해 져서 일반인이 그 물로 만약 12시간을 견딜 수 있는 것이 평균이라면, 이 사람은 2-3시간도 견디질 못했을 것입니다.
 2) 아직도 많이 남았네! 라는 생각으로 마음이 느긋할 수 있어 자신이 견딜 수 있을 때까지 견디고 꼭 필요할 때만 물을 조금씩 마셔서 이런 식으로 마신다면 보통사람보다 훨씬 긴 24시간도 견딜 수 있을 것입니다.
 두 사람의 애초 상황은 꼭 같았으나 생각의 차이 결과적으로 구조를 받을 수 있게도 하고 구조를 받을 수 없게 한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전반에 부정 비관 불신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고 그런 분위가 실제로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이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향해 교회와 성도들은 또 다시 희망을 설교하고 희망을 노래할 때입니다. 
 그 이유는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를 온 국민이 입을 모아 부르는 대한민국의 지난날의 역사는 한마디로 절망을 극복한 정도가 아니라 절망으로 희망으로 역전시킨 역사입니다.
 과연 누가 이 민족에게 그 같은 희망을 주었습니까? 서로 비난과 비판만을 일삼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하게 하신 하나님은 이 민족을 긍휼히 여기사 수많은 위기를 역전의 기회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믿는 성도들은 어떤 절망스러운 일을 만나도 불만을 품고 불평을 하지 말고 절대 절망인 십자가를 절대 희망인 부활로 역전 시킨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시오, 예수 그리스도가 지금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희망을 노래하고 희망의 복음을 전파하고 사랑을 몸소 실천하여야 합니다.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지금까지 이 민족과 한국 교회를 축복하신 하나님을 희망을 노래하고 희망을 전파하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영생의 부활을 허락하시고 또한 전화위복으로 축복하실 것입니다. 부활의 희망을  이웃만이 아니라 온 세계에 선교하기를 그렇게 소원하여 경제의 불황에도 선교를 중단하지 않는 한국교회를 반드시 경제 회복과 더불어 세계 선교 2위에서 미국 교회를 제치고 세계 선교 1위의 선두 주자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한국의 공산품이 일본을 하나 하나 제치고 선두주자가 되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제 2. 3. 4. 5의 김연아가 계속하여 일어나게 되는 희망찬 내일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고 희망을 노래하고 희망을 전파하는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