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바른 복음, 다른 복음(갈 1:1-9)

미션(cmc) 2009. 4. 19. 21:01

바른 복음, 다른 복음

(갈 1:1-9)


 

(갈 1: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갈 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갈 1: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세계에서 짝퉁을 가장 잘 만들어 공공연하게 팔고 있는 나라가 중국입니다. 중국의 짝퉁 시장은 개혁 개방이후 명품은 물론 휴대폰, 자동차, 첨단 신제품이 개발되면 얼마 안 있어 모조품을 만들어 절반 값으로 시장에 내놓을 정도로 기술 수준이 높아진 것입니다.
 그러나 전문가가 아닐지라도 꼼꼼히 살펴보면 재질이나 칼라나 마무리 부분에 차이가 나며, 사용해보면 얼마 못가서 변질이나 변색이나 고장이 나게 됩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명품을 생산하는 세계적 기업들이 큰 피해를 입는 중에 한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나나 수출품의 효자라는 한국산 휴대폰도 중국에서 유통되는  판매량의 12%가 모조품으로 돈으로 따지면 약 11억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손실을 다른 나라가 아닌 대한민국이 보게 되는 것입니다.
 물건만 짝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종교도 짝퉁기독교가 있습니다. 바로 이단입니다. 얼핏 보기에는 기독교 같으나 알고 보면 기독교가 아니라 기독교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있는 이단들입니다. 오늘 성경에서 갈라디아 지방의 교회 안에도 짝퉁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사도 바울이 모진 고난을 무릅쓰고 생명을 걸고 전한 바른 복음을 희석하여 본질과 다른 기독교로 변질시키는 이단자들로 바울이 전한 복음과 전혀 다른 짝퉁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그와 같은 이단 사상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가르치고 있는지 오늘 성경 본문을 통해서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1. 바른 복음을 전한 바울
  사도 바울은 본래 기독교를 핍박하는 일에 혈안이었던 그가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는 길목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한 후 변하여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갈 1:13, 14)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정도가 아니라 반대하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생명을 거는 사도로 변신을 하였습니다.
 그 후로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 투옥 될 때까지 30 여년 동안 세 차례에 걸쳐 여러 나라, 여러 지역을 순회하며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갈라디아와 아시아와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에도 복음을 전하며 교회들을 세웠는데 그 중에 하나가 오늘 성경의 갈라디아 지방의 교회들입니다.
 바울이 갈라디아 지역에 세운 교회들 가운데 이단자들이 침투한 거짓 선지자들이 다른 복음을 전함으로 바울이 전한 바른 복음을 변질시킨다는 소식을 접하였습니다. 바울이 그에 대응하기 위해 기록한 것이 바로 오늘 성경 갈라디아서입니다.
 말세의 여러 가지 특징 중에 하나는 사람들이 자기를 자랑하기를 좋아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어느 누구보다 겸손한 사람으로 자기를 과시하고 자랑하는 대신에 항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갈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성경을 보면 바울은 마치 자기를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자신의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제일 첫마디가 마치 자기를 자랑하는 사람처럼 오해 될 정도로 사도권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갈 1: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여기서 ‘사도’라는 말(ajpovstolo")은 사람이 임명하거나 세운 직분이 아니라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께서 친히 택하시고 세워 복음 전도를 위해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바울 사도가 이처럼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사도권을 주장하는 이유는 바울이 전해준 복음이 그의 지식이나 경험을 전해 준 것이 아니라 그를 사도가 되게 하신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시해 주신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갈 1:11,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그렇다면 복음이 무엇입니까? ‘복음’이란 말 그대로 듣는 이에게 기쁨을 주는 승리의 소식을 뜻합니다. 복음은 성경을 가리키는데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믿기만 하면 죄사함을과 구원을 얻게 되는 복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세상에서 공생애를 시작하여 마칠 때까지 가장 비중을 두신 일이 바로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고, 또한 부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부탁하신 일도 역시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의 말씀이었습니다.
(마 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막 16: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복음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려 값 주고 사신 것으로 너무나 소중하고 고귀한 것임을 뜻합니다. 사도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도 복음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복음 전하는 일에 무관심하였고 오히려 복음을 믿는 것조차 불안해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에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후에는 오로지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온갖 고난은 물론 가장 고귀한 생명을 다 바치면서 아까워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복음이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한지를 체험하고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수 많은 성도들이 복음 전도를 위해 시간이나 물질만이 아니라 단 하나 뿐인 생명까지도 다 바쳐 복음 전도의 불쏘시개로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이 어디있습니까? 다 잘살자고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모든 수고와 노력은 결국 늙고 병들어 죽어 지옥에 가는 것을 막지 못합니다.
 그러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신 은혜로 우리가 사죄함을 받고 ,  또한 죽은 지 사흘 만에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믿음으로 우리도 예수님처럼 부활하여 영생을 얻게 된 것이 바로 복음의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
 바로 그 복음이 오늘 날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얻은 생명의 복음임을 깨닫고 마치 국보처럼 복음을 소중히 여기고 예수 믿는 자답게, 구원받은 자답게,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빌 1: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2. 다른 복음을 전한 이단자들
  예수께서 천국에 대해 여러 가지 비유로 말씀하시는 중에 ‘천국은 마치 좋은 씨를 자기 밭에 뿌리는 농부와 같다’고 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농부가 밭에 좋은 씨를 뿌렸음에도 불구하고 밤사이에 원수가 와서 좋은 씨를 뿌린 밭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고 하였습니다.
 (마 13:24-26)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여기서 천국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이며 밭은 교회이며, 좋은 씨를 뿌리는 것은 바른 복음을 전하는 것이요, 원수는 기독교를 대적하는 사단의 세력이요, 가라지는 바른 복음과 본질적으로 다른 이단사상을 뿌려 바른 복음이 자라지 못하게 훼방하는 것을 뜻하는 비유입니다. 그와 같은 일이 모든 시대마다 있었습니다.

 1) 구약 시대에 선지자들이 바른 복음을 전할 때마다 거짓 선지자들의 핍박을 받아 마치 잘못된 복음을 전하는 것처럼 모함을 당하고 오해를 받아 선지자들이 매를 맞고 죽임을 당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렘 20:1,2) “임멜의 아들 제사장 바스훌은 여호와의 성전의 총감독이라 그가 예레미야의 이 일 예언함을 들은지라 이에 바스훌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베냐민 문 위층에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으로 채워 두었더니”
 예레미야가 고난을 받은 이유는 백성들이 원하는 것이 평안의 소식임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정반대로 멸망의 소식을 예언하였기 때문입니다.
(렘 38:4) “이에 그 고관들이 왕께 아뢰되 이 사람이 백성의 평안을 구하지 아니하고 재난을 구하오니 청하건대 이 사람을 죽이소서 그가 이같이 말하여 이 성에 남은 군사의 손과 모든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나이다”
 그처럼 어리석은 백성들은 바른 복음을 전하는 예레미야 보다는 다른 복음을 전하는 거짓 선지자들의 편을 좇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아 하나님 한분만이 바른 복음을 전하는 예레미야의 손을 들어 주셨습니다.

 2) 예수님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성전이 있었고 성전에는 제사장과 서기관 율법사와 바리새인들이 백성들에게 성경을 철저하게 성경을 읽히고 가르쳤습니다.
 물론 성경을 가르쳤지만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균형 있게 가르치지 않고 공의에 편향되어 가르침으로 백성들에게 죄의식만 조장하고 평안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백성들에게 사죄와 구원을 위해 메시아가 분명히 세상에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눈을 가려 메시아를 보지 못하게 하고 여전히 율법의 노예가 되게 하였습니다.
 그에 반해 예수님은 선지자들의 예언을 밝혀 약속하신 메시아가 이미 세상에 오셨으며, 회개하고 믿는 자에게 사죄와 영원한 자유를 선포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천국 복음인 것입니다.
(막 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그 증거가 바로 메시아가 아니면 현대 의학으로도 고치기 어려운 각색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어 놓임을 얻게 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약속대로 오신 메시아의 표적인 것입니다.
(요 6:14)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행하신 표적은 본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자 기득권을 가진 종교 지도자들이 기득권에 손상이 올 것을 두려워하여 온갖 거짓과 술수로 예수님을 이단자와 반 로마정치범으로 몰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막 3:22)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3) 사도 바울의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본래 교회를 탄압하고 신자들을 잡아 죽이는데 선봉장일 정도로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이었던 바울을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나타나셔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직접 부르셨습니다. 
 (행 9: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특별한 체험과 계시를 받은 바울이 여러 나라와 지역을 두루 다니면서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바른 복음을 씨 뿌리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을 믿기만 하면 구원과 영생을 얻게 된다는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 같은 바른 복음을 소아시아와 갈라디아와 여러 지역에 교회들에게 전하였으며 갈라디아 교회들도 그 중에 하나로 처음에는 복음을 잘 받은 모범적인 교회였었습니다.
 그러한 갈라디아 교회들 가운데 이단자들이 가만히 침투하여 바울 전한 복음과 본질이 다른 복음을 씨뿌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다른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더라도 율법이 시키는 대로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만 믿는 것보다 할례라는 확실한 표를 받는 것처럼 오해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바울이 전한 복음만으로는 구원을 얻기에 부족하다는 말이 되며 그것은 결과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만으로는 구원 얻기에 미흡하다는 말로 십자가의 진리를 약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이단인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처음에 바른 복음을 잘 믿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갈라리아 교회들은 다른 복음에 미혹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갈라디아 교회들이 그와 같은 이단자들에게 미혹을 받아 갈라디아 교회들 안에 갈등과 혼란이 발생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사도 바울이 그것을 수습하기 위해 오늘 성경을 기록해 보낸 것입니다.
(갈 1: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여기서 ‘이상하게 여기노라’는 말은 평소 흔히 볼 수 없는 새로운 사실에 깜짝 놀라는 모습을 뜻하는 말로 예수님이 하신 여러 가지 기적을 보고 사람들이 놀랄 때 사용한 말로 갈라디아 교회들의 뜻밖의 반응에 바울이 깜짝 놀라는 심정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마 8:27)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 (막 5:20)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더라”

 4) 그렇다면 현대교회는 어떻습니까? 지난 124 년 전 복음의 불모지였던 조선 땅이 일본의 압제를 받아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종교적으로 매우 혼미한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불쌍히 여기시고 선교사들을 보내어 이 땅에 바른 복음을 씨 뿌리게 하셨습니다.
 물론 전통 종교와 반 기독교적인 문화로 인해 많은 핍박을 받았지만 굴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여 오늘에 와서는 전국 방방곡곡마다 교회가 세워지고 전통종교를 제치고 기독교가 정치 경제 문화 교육 각 방면에 많은 영향을 끼침으로 민족 재건에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단자들은 기독교가 2천년 동안 지켜온 삼위일체 교리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자기들 멋대로 성경을 비유로 해석하는데도 결국은 그것을 따라가다 보면 하나님이나 예수 그리스도 보다 인간 교주를 메시아로 신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단 집단에서 15년 이상 강의를 해오다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탈퇴를 한 베테랑급 모 강사의 증언을 빌리면 다른 복음을 전하는 이단과 바른 복음을 전하는 정통신학과 근본적인 큰 차이를 발견하게 됩니다.
① 바른 복음은 성부 성자 성령을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말하지만 다른 복음을 전하는이단자들은 성령을 ‘거룩한 천사’들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이단자를 보혜사 성령으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② 예수님의 부활도 육의 부활이 아니라 영의 부활이라고 주장합니다. 예수님이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셨지만 그 몸은 육의 부활이 아니라 영의 부활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의 육체의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것입니다(고전 15:12-19).
③ ‘오직 예수님을 믿어야만 구원 받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지식 ․ 믿음 ․ 행함’이 있어야 구원에 이른다고 말합니다. 그 지식은 요한계시록의 실상을 본 보혜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열어보여 줘야만 성경을 이해할 수 있고 그 시각으로 성경 전체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④ 이단자들은 사람이 이 땅에서 육체로 영생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계시록에 144,000명으로 선택된 사람들은 죽은 ‘순교자의 영인 144,000’이 ‘살아있는 육체 144,000’에 덧입히면 영과 육이 영생한다는 것입니다.
⑤ 아담 시대에는 아담에게, 노아 시대에는 노아에게, 아브라함 모세 시대에는 아브라함과 모세에게, 예수님 시대에는 예수님을 목자로 세운 것처럼, 이 시대는 이긴자 요 보혜사인 이만희를 목자로 세우셨다고 주장합니다.
⑥ 주로 성경을 비유로 해석하는데 많이 사용하는 비유 중 ‘씨를 뿌리면 나물보다 커서 큰 나무가 되고 새들이 와서 깃들다’라는 말씀을 씨는 말씀이요, 나무는 선악과를 대신할 만한 생명나무인 이만희를 비유한 것으로 이만희가 주는 말씀만이 열매라고 합니다. 
 이는 아무리 보아도 인간을 우상화하기 위해 성경을 억지로 해석한 것이기 때문에 누가 믿을까? 생각되는데도 불구하고 전통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조차 이단에 미혹을 받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그것이 말세에 미혹의
영이 사람들을 미혹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요일 4:6)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3. 이단자들에 대한 저주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여 세운 여러 교회들 가운데 정치적인 문제, 윤리적인 문제, 신학적인 문제들로 어려움을 겪을 때 이단들이 득세를 하는 것처럼 교회가 혼란스러울 때 그 틈을 이용하여 이단들이 득세를 합니다.
 성경은 이단에 대해서 매우 단호하였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종교 다원주의 시대라고 하지만 이단에 대해서는 단호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함부로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미 들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조급하게 정죄하고 비판하기 전에 그 같은 교회들을 위해 기도를 하고, 말씀을 가르치고 회개를 촉구하였으나 유독 오늘 성경에서는 갈라디아 교회에 침투하여 다른 복음을 전하는 이단자들에 대해서는 무서운 저주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갈 1: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여기서 저주는 현재 명령형으로 저주가 계속적으로 임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것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 흘림만으로도 모든 죄를 넉넉히 사할 수 있고, 예수님의 부활이 믿는 모든 사람을 능히 구원하고도 남는 능력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불완전한 것처럼 변질시키고 약화시켜 바른 복음을 믿지 못하도록 만들어 결국 구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설령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가 하늘에서 내려 온 천사라도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다면, 지상에서 다른 복음을 전하는 이단자들이 저주를 피할 수 없음을 뜻합니다.
 다른 복음은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기만 하면 모든 죄를 사함 받고, 구원받을 수 있다는 바른 복음과 달리 예수만 믿어서는 구원받을 수 없고 율법대로 할례를 받아야만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는 어떻게 생각하면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할례를 추가한 것뿐인데 그것이 저주를 받을 다른 복음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 지나치지 않는가? 라고 생각될 수도 있으나, 그 말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짝퉁은 싸구려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명품을 모조하는 것처럼 영적인 짝퉁인 이단은 사이비 교회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정통 교회를 모방하여 짝퉁 신학을 유포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이단은 노골적으로 그리스도를 부인하였기 때문에 성경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쉽게 구분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요일 2:22,23)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그러나 현대판 이단은 처음에는 바른 복음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잘 구분이 되지 않지만 신학적으로 깊이 들어가 보면 교묘하게 그리스도를 약화시키고 십자가를 무력화시키고 결국 특정 인간을 우상화하는 것이 이단의 공통점입니다.
(유 1: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한국 교회는 짧은 역사 속에서 성령의 역사도 강력했지만 이단의 천국이라고 할 정도로 수많은 이단들이 일어나서 갈라디아 교회의 이상한 신자들처럼 많은 신자들이 미혹을 받아 이단으로 넘어갔습니다.
 전도관 통일교 구원파 신천지 등 온갖 이단 들이 교인들을 미혹하여 빼가고 평소에 믿었던 교역자들과 교회 중직자들과 각기관 회장들조차 이단에 빠져들어 교회들을 충격에 빠지게 할 정도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전통교인들이 이단에 미혹을 받게 되는 것일까요?  몸이 약해지면 감기에 잘 걸리는 것처럼 한국교회가 신학적으로, 윤리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어떤 죄인이든지 다 용납을 하지만 이단만은 절대로 용납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명령하고 있음을 깨닫고 설령 친한 친구라고 할지라도 단호하게 멀리해야 합니다.
(요이 1:10)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오늘의 시대는 거짓이 참에 섞여 있고 미혹하는 영이 하나님의 백성을 끌어가는 시대입니다. 미혹의 영에 이끌리지 말고 참과 거짓을 분별하여서 하나님 앞에서 지혜롭고 거룩한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단의 유혹을 단호히 물리쳐야 하고, 신앙과 삶에 근본이 되는 성경을 바르게 배우고, 구원의 확신을 갖고, 올바른 신학으로 무장하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며, 세상 사람들에게 바른 복음을 열심히 전하여 이단들이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