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연수과/소요리 문답

[연재/장로교 기초, 요리문답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미션(cmc) 2009. 4. 23. 06:33

사랑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

죄를 자복하고 의지하면 끝까지 책임지셔


   
  ▲ 김서택 목사  

130여 년 전, 우리나라에 서양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처음 복음을 전했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혀 인격적인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조상을 숭배하고 산신령을 믿었다. 그래서 외모가 우리와 다른 서양 선교사들이 와서 복음을 전했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야소교는 서양 귀신을 믿는 종교”라고 말을 했다. 그러나 선교사들이 “우리는 서양 귀신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죄를 위해서 독생자 예수를 죽게 하셨다”라고 전했다. 결국 어느 누구의 사랑도 받지 못하던 우리 민족은 독생자를 주실 정도로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마음이 녹아져서 예수를 믿게 되었고, 이 뜨거운 하나님의 사랑이 한국교회 대부흥의 원동력이 되었다.

〈요리문답 문4〉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답〉 하나님은 신이신데 그의 존재하심과 지혜와 권능과 거룩하심과 공의와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이 무한하시며 무궁하시며 불변하시다. (대요리문답 문7. 웨스트민스트 신앙고백 제2장 1, 2항 참조)

1.창조의 하나님

우리 인간이 하나님에 대하여 경외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이 엄청난 자연과 우주를 통해서이다. 인간들은 우리가 사는 이 지구가 엄청나게 큰 것에 놀란다. 그러나 지구는 큰 태양계의 한 혹성에 불과하고, 우주 속에는 이런 태양계 같은 별들이 수억개 이상 존재한다. 그뿐만 아니라 자연의 법칙이나 동식물의 생태를 보면 이 세계를 만드신 창조자의 지혜가 오묘 막측하며 무궁무진한 것을 알 수 있다. 이 절대적인 능력과 지혜를 가지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 인간들은 거의 하나의 벌레나 먼지 정도 밖에 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인간들의 생각은 근본적으로 공포이고 두려움이다. 그 이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연 속에서 우리 인간의 존재가 너무 미약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과 모든 피조물들이 충분히 살 수 있도록 아름다운 환경을 만들어 주셨고, 또 우리가 사는데 필요한 공기와 물과 태양열을 무한정으로 공급해주고 계신다. 우리가 한 평생 이 세상에 살지만 하나님은 집세나 임대료를 전혀 요구하시지 않으시고, 어부가 바다에서 아무리 많은 고기를 잡아도 하나님은 일체 돈을 받지 아니하신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지만, 우리 인간 자체가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가장 완벽한 증거이다.

2.하나님의 거룩하심

하나님은 너무 크시기 때문에 우리 인간의 머리로는 도저히 다 알 수 없다.

보통 인간들이 생각하는 신은 인간 스스로가 머리로 상상한 신이다. 그래서 우리 인간들처럼 탐욕스럽고 변덕스럽고 비도덕적일 때가 많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하나님 자신을 소개한 성경을 주셨다. 성경에서 보는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신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거룩하시며 죄는 절대로 용납하지 못하신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죄가 있는 자는 절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다. 그래서 죄에 빠진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께서 자연 가운데 주신 일반적인 축복은 누릴 수 있지만, 하나님의 신성에 접근할 수 없으며 그가 주시는 무한한 영적인 축복을 받을 수가 없다.

3.하나님의 인자하심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발견하는 가장 놀라운 점은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것을 성경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라고 말을 한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한번 겪어 본 자가 아니면 절대로 알지 못한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 앞에 교만하여 죄를 지으면 하나님은 우리의 죄에 대하여 진노하신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그 죄를 인정하고 자복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며 죄를 사하여 주신다. 하나님이 어느 정도로 죄인을 사랑하시는가 하면, 죄를 짓고 회개하는 죄인을 죄짓지 않은 사람보다 더 사랑해주신다. 그래서 예수님의 비유에 양을 치는 목자는 양 한 마리를 잃어버렸을 때 다른 양 아흔아홉 마리를 두고 그 양을 찾으러 가며 드디어 그 양을 찾았을 때 더 기뻐한다.

또 탕자가 아버지를 떠나서 죄를 짓고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이 탕자를 집을 나가지 않은 아들보다 더 사랑하여 큰 잔치를 베푼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자복하는데 조금도 주저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믿고 의지하는 자는 아무리 연약하고 미련해도 절대로 버리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책임져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