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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또 한 명의 가족’ 에브라

미션(cmc) 2009. 5. 25. 06:40

박지성의 ‘멈추지 않는 도전’ ③ ‘또 한 명의 가족’ 에브라 [중앙일보]

“서울 나이트클럽 구경 좀 시켜줘” 에브라 위해 007작전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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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테베스, 박지성, 파트리스 에브라(앞줄 왼쪽에서 둘째부터). 세 선수는 단짝이다. 힘든 외국 생활에서 서로에게 의지하다 보니 그렇다. 16일 프리미어리그 우승 확정 후 기념촬영 때도 세 선수는 나란히 붙어 섰다. [중앙포토]

박지성 아버지를 ‘파파’라 부르는 에브라

 맨유 수비수 파트리스 에브라(28·프랑스)는 박지성의 단짝이다. 박지성과 에브라는 훈련장과 경기장은 물론, 집에 와서도 늘 붙어 다닌다. 가족끼리도 왕래가 잦아 에브라는 박지성의 아버지(박성종씨)를 ‘파파’라고 부를 정도다. 영국에선 이방인인 두 선수는 서로를 의지하며 외국생활의 어려움을 견뎌낸다. 박지성과 에브라의 숨은 일화들을 박성종씨가 공개했다.


맨유가 비행기를 타고 원정길에 나설 때면 우리 집은 맨유 선수들의 집합소가 된다. 공항 주차료가 무척 비싸다 보니 선수들은 내가 운전하는 차를 얻어 타고 맨체스터 공항으로 가기 위해 우리 집에 오는 것이다. 파트리스 에브라, 카를로스 테베스, 에드윈 판데르사르,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등이 단골손님이다. 지성이까지 5명이 탄 차를 몰고 가다 보면 가끔 섬뜩하다. 몸값을 합치면 수천억원인 스타들인지라 혹시나 사고가 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서다. 이때마다 어설픈 유머로 긴장을 풀어 주는 친구가 바로 에브라다. 16일 아스널전에서 맨유가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확정했을 때도 에브라는 우리 가족에게 달려와 함께 포옹하고 기념촬영을 했다. 에브라는 평소 나를 ‘파파’라고 부른다. 또 한 명의 우리 가족이다.

#동갑내기에 성격도 비슷

에브라의 국적은 프랑스지만 원래는 세네갈 출신이다. 에브라의 아버지는 세네갈계 프랑스인으로 외교관을 지냈다. 에브라는 어린 시절 프랑스 파리 외곽 레울리라는 동네에서 자랐다. 이 지역은 흑인 깡패들이 득실거린다는데 에브라 역시 어린 시절 한때를 뒷골목에서 전전했다. 티에리 앙리(바르셀로나) 역시 이 지역의 뒷골목에서 지낸 과거가 있다. 축구는 그런 에브라의 방황을 멈추게 해준 은인이다.

지성이와 에브라는 동갑이다. 지성이보다는 좀 더 사교적이지만 에브라도 말수가 적고 내성적이다. 예전 뤼트 판 니스텔로이(레알 마드리드)나 지금의 판 데르사르 등 지성이가 잘 어울리는 친구들을 보면 대부분 외국 선수다. 영국 출신 선수들끼리 무리 지어 다니기 때문에 외국인 선수들끼리 서로 의지하는 것이다.

2년 전인 2007년 여름 아시아 투어 때문에 한국에 들른 에브라는 경기 전날 수원의 우리 집을 찾았다. 맨체스터에 있을 때부터 “한국에 가면 꼭 집 구경을 시켜 달라”던 에브라는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아 잠도 오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고 우리 집에 들렀다. 집 구경만 한 게 아니다. 방한 경기가 끝난 뒤 에브라는 지성이를 졸라 서울의 한 나이트클럽에도 가봤다고 한다. 평소 나이트클럽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 지성이지만 친구 부탁에는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날 지성이는 ‘007작전’을 방불케 하며 나이트클럽을 다녀왔다고 한다.

#처음에는 적으로 만나

지성이와 에브라가 맨유에서 처음 만난 것은 아니다. 지성이는 PSV 에인트호번에서 뛰던 2005년, AS 모나코(프랑스)에서 뛰던 에브라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맞붙었다. 공교롭게도 지성이가 오른쪽 윙포워드로, 에브라가 왼쪽 풀백으로 나서는 바람에 경기 내내 둘은 끊임없이 맞부딪쳤다. 결과는 1차전 1-0, 2차전 2-0. 에인트호번의 완승이었다. 에브라는 종종 당시 이야기를 하곤 한다. “지성이에게 호되게 당해 별로 친해지고 싶지 않았다”고 우스갯소리를 하면서도 “지성이에게서 강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한다. 스치고 지나치는 인연이 될 수도 있었지만 지성이 역시 에브라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안 되는 영어로도 끈끈한 우정을 나누는 둘을 볼 때면 ‘친구 사이도 운명이 존재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픔을 서로 보듬는 절친

에브라는 2006년 1월 맨유 입단 초기 팀에 잘 적응하지 못해 마음고생이 심했다. 당시 맨유의 왼쪽 풀백으로는 미카엘 실베스트르(아스널)와 가브리엘 에인세(레알 마드리드)가 버티고 있었다. 에브라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가끔 주어지는 기회에서는 실수를 연발했다. 공격에 가담했다가 수비 복귀가 늦어 맨유 팬들과 언론으로부터 ‘돌아오지 않는 풀백’이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의지할 사람이 없어 고민하던 에브라에게 다가가 위로해준 게 지성이였다. 네덜란드에서 겪은 경험담을 얘기해 주면서 에브라를 격려했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줬다.

2007년 2월 우리가 에브라의 옆집으로 이사가면서 둘은 더 친해졌다. 에브라는 부인 파트리샤가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프랑스)에 가면 아예 우리 집에 와서 살다시피 한다. 가끔은 자기 집으로 지성이를 불러 함께 시간을 보낸다. 에브라는 고마움을 기억하는 의리파다. 지성이가 왼쪽 발목 수술을 받았을 때는 깁스에다 쾌유를 비는 문구를 적어 줬다. 오른쪽 무릎 수술을 받은 2007년 봄, 맨유가 AS 로마(이탈리아)를 7-0으로 격파했다. 당시 골을 넣은 에브라는 “이 골을 부상 중인 박지성에게 바친다”고 얘기했었다.

#아버지 앞에서 결장…울컥한 에브라

에브라의 고향인 세네갈 다카르에는 에브라 가문의 집성촌이 있다고 한다. 아버지가 여러 차례 결혼해 에브라에게는 배다른 형제가 10명이 넘는다. 에브라 얘기로는 “우리 마을에 가면 여기도 에브라, 저기도 에브라, 모두가 에브라, 에브라, 에브라”라고 한다. 평소에는 세네갈에 머물던 에브라 아버지가 한번은 맨체스터를 찾았다.

에브라는 올드트래퍼드에서 자신의 플레이를 아버지에게 보여준다는 생각에 한껏 들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날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에브라를 벤치에 앉혀 뒀다. 경기 후 에브라 표정은 심각했다. 성질을 꾹꾹 눌러 참았던 에브라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폭발했다. 괴성을 지르며 가재도구를 마구 집어 던졌다. 모처럼 아버지에게 멋진 아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에브라는 자신을 결장시킨 퍼거슨 감독이 무척 야속했던 모양이다. 에브라를 보면서 ‘지성이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성이는 자신의 속내를 나한테도 잘 드러내지 않는다. 딱 한 번 결장한 후 실망감을 표시한 게 지난해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었다. 때로는 지성이도 에브라처럼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어떨까 싶다.

늘 붙어 다니는 에브라(左)와 박지성. 훈련 때라고 예외는 아니다. 21일(한국시간) 캐링턴 훈련장에서 함께 몸을 푸는 두 선수. [맨체스터 AP=연합뉴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우승 다짐

지난해 말 우리 가족은 예전 에브라가 살았던 집으로 이사했다. 방이 7개나 되는 3층 빌라다. 에브라가 새로 이사한 집도 우리 집으로부터 걸어서 3∼4분 거리다. 훈련장에 갈 때면 서로 전화해 지성이가 에브라네로 가든가, 아니면 에브라가 우리 집에 와서 한 차를 타고 이동한다. 훈련이 끝나면 가끔씩 한국식당이나 초밥집에 가곤 한다.

에브라의 맨유 사랑은 지극하다. 에브라는 인테르밀란(이탈리아)에서 상당히 좋은 조건을 제시했는데도 맨유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인테르밀란에 보내려는 모나코 구단 방침에 반발해 ‘훈련 불참’이라는 강수를 두기도 했단다. 지성이와 축구게임을 할 때도 에브라가 맨유 외의 팀을 선택한 걸 보지 못했다.

28일(한국시간) FC 바르셀로나(스페인)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앞둔 에브라가 얼마 전 지성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친구! 지난해에는 나 혼자 뛰었잖아. 이번에는 함께 일을 저질러 보자. 골 넣으면 나하고 같이 골 뒤풀이하는 것 잊지 말고.” 지성이의 정말 좋은 친구 에브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