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우리를 구원하신 까닭(엡 2:1-5)

미션(cmc) 2009. 6. 30. 08:09

우리를 구원하신 까닭


(엡 2:1-5)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한국에서 처음 합법적으로 존엄사를 허용한 첫 케이스인 김 할머니(77세) 이야기입니다.
 무려 16 개월 동안 인공호흡기로 연명을 한 김 할머니는 그 때문에 치아가 부러지고 입술이 붓고 많은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이제는 편안하게 하늘나라로 가시라고 지난 23일 오전 9시50께 가족 11명과 의료진 5명, 변호사 및 1심 선고를 맡았던 부장판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임종 예배를 드리며 '어머님의 은혜'를 부르며 흐느꼈습니다. 예배가 끝난 오전 10시21분께 의대 교수가 "이제 호흡기를 떼어 내겠습니다"고 말하고 인공호흡기를 떼어냈습니다. 가족들은 오열했고 김 할머니는 이를 듣기라도 한 듯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는데 입원 이후 가족들이 처음 본 눈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아직까지 생존해 계실 뿐 아니라 27일 어제는 산소포화도가 95%, 체온이 36.7도, 맥박도 98회, 호흡수도 분당 18회로 점차 호전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산소 호흡기를 뗄 때 김 할머니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렸다고 하였는데 그 때 할머니가 다 알아 들으셨다면 ‘뭐 내가 살아있는데 호스를 빼고 나를 하늘나라로 보내? 살아있는 사람을 두고 천국에 잘 가라고 찬송을 부르고 설교를 하는 목사가 정말 미웠을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이는 인간의 생사가 의사나 변호사나 판사나 목사가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주권에 있음을 깨우치기 위해 하나님이 아직도 불러 가시지 않으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북한의 김정일과 같은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젊은 피를 수혈 받고 몸에 좋다 것은 세계 각국에서 다 구해다 먹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늙고 병드는 것은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아직 70살이 되지 못했는데 병에 걸려 권력을 세습할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짐승과 달리 육체만이 아닌 영혼을 가진 존재로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1) 어떤 사람은 육신은 살았으나 영혼이 죽은 사람으로 그 육신도 살았다고 하지만  실상은 죽음을 향해 매일 매일 더 가까이 나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2) 어떤 사람은 그 영혼과 육신이 아울러 산 사람입니다. 물론 육신이 나이를 먹고 죽을 것이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다시 살아 영생을 얻을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나는 그 둘 중에 누구인지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 자신을 돌이켜 보아야 하겠습니다.

 

 1.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
 현대인들의 최대 관심사는 흔히 돈이라고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건강일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즐겨 인용하는 말 가운데“돈을 잃는 것은 작은 것이고, 명예를 잃는 것은 큰 것이다. 그러나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은 죽음을 전제로 하고 태어났기 때문에 아무리 보약을 먹고 헬스를 할지라도 때가 되면 늙고 병들어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인간이 불과 백년도 못살고 고작 칠팔십을 살다가 결국은 병들어 죽는 것일까요?
 세계에 수많은 생명의학자들이 노화의 원인을 밝히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정확한 원인을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병마다 다 그 원인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게 되면 의사는 정확한 진찰을 하기 전에는 약이나 주사를 주지 않는 것을 경험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진을 하게 되면 아무리 약을 써도 병이 낫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인간이 다 걸린 죽음이라는 병도 분명한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정확한 원인과 치료를 아시는 분은 오직 인간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뿐입니다.
 인간은 본래 늙고 병들어 죽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인간에게 죽음이 온 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경고하신 말씀을 거역하는 죄를 범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마치 아직도 살날이 많은 젊은 청년이 사형을 당하는 것처럼, 영생을 할 수 있는 인간에게 죽음이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그 결과 남녀노소, 빈부귀천, 유 무식을 막론하고 모든 인간은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평생 죽음의 공포를 안고 살다가 결국은 다 죽게 되는 것이 모든 인간의 실체입니다.
(엡 2: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여기서 ‘죽었던’이라는 말은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시체가 된 현재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체는 살았다고 하지만 그 영혼은 이미 죽은 상태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의 영혼은 죽은 사람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서 무감각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을 할 수가 없고, 짐승이나 다름없이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이 인생의 전부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선과 의에 대해서 죽는 반면에 죄와 악에서 대해서는 살아서 능동적으로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욕하고 폭행하고 죽이기까지 하면서 남의 것을 빼앗고 괴롭히고 손해를 입히고 고통을 주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인간이 그렇게 사악한 존재가 된 근본 이유는 인간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악의 근원인 사단을 의지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엡 2: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그 결과 인간으로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어린이 유괴, 여성 납치, 토막 살인을 비롯해서 끔찍한 일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음주운전으로 태권도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초등학생을 치고서는 살려달라고 울부짖는데도 공기총으로 4 군데나 쏘아 죽여서 계곡에 던져 버린 일이 최근에 있었습니다. 과연 자식을 낳아 키우는 인간이라면 그럴 수가 있을까?
 참으로 이상한 것은 그러한 흉악범들의 공통점은 그의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평소에 얌전한 사람이었다고 말하며, 또한 본인 자신도 그 때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변명을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공중의 권세를 잡고 세상의 악을 지배하고 있는 사단의 영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인간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태어날 때부터 무신론자로 태어나기 때문에 세상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모르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한 인간을 가리켜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이라고 오늘 성경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엡 2: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화가 날 때가 없습니까? 남을 미워할 때가 없습니까? 욕심을 부릴 때가 없습니까?
 만일 나의 감정이 그리스도 밖에 있게 되면 통제 불능의 상태에서 어떤 사고를 범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임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 교도소를 방문하게 되면 그곳에 빈부귀천 유무식 남녀노소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죄를 범하고 수감되어있지만 개인적으로 대하면 착하게 보이는 사람이 어떻게 교도소에 들어와 있나? 잘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있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사람
 세상에 어느 누구도 나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지 않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선한 누군가가 내 감정과 의지를 죽을 때까지 붙들어 주지 않으면 내가 어떤 순간에 실수를 범하고 사고를 칠지 장담할 수 없는 인간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지금 내가 죄 없는 사람처럼, 자유롭게, 행복하게 살고 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선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 하나님은 악은 미워하고 선을 좋아하시는 정의로우신 분입니다. 그러면서도 자기 통제가 되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죄를 범하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 죄를 씻어 주시고 구원해 주시고 그 사람을 회개시켜 선한 사람으로 변화시키시는 능력을 가지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죄를 미워하고 이기려면 그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하고 이미 지은 죄를 사함 받고 새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도 그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태어날 때부터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외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모습으로 인간들이 살고 있는 세상에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은 하나부터 열 가지 천 가지 만 가지가 다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를 살리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죄는 반드시 고통과 죽음의 대가를 지불해야만 속죄가 되기 때문에 예수님이 나를 대신하여 매를 맞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그로인해 우리의 죄가 다 갚아졌기 때문에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정죄를 받지 않고, 형벌을 받지 않고, 구원함을 받는 길을 만들어 놓으신 것이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입니다.
(엡 2:3~5)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그럼으로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오직 한 가지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을 믿고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시고 예수님의 마음을 닮고 생각을 닮고 언어를 닮고 삶을 본받는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닮는 것이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는 것은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습니다. ‘오직 한분 예수 그리스도를 내가 믿습니다!’ 라고 고백을 하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얻는 복을 값없이 거저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약속하신 대로 단순히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롬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여기서 ‘마음으로 믿어’라는 말은 묻고 따지지 말고 어린아이가 부모를 믿는 것처럼 단순하게 신뢰하고 의지하고 위탁하고 순종하기로 지금 마음에 굳게 다짐하는 것입니다.
 또 ‘입으로 시인하여’라는 말은 내가 예수님을 믿겠다는 것을 사람 앞에서 부끄러워하지 말고 고백하고 약속하고 시인하고 선포하고 찬미하기로 지금 마음에 굳게 다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이것 외에 다른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무엇을 해야만 한다는 조건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을 얻고, 영생을 얻고, 기도의 응답을 받고,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지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갈 3:2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엡 2:8)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갈 3:9)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이것을 가리켜 예수 안에 있는 삶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신 것처럼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예수 안에서 이루어지는 삶이며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놀라운 축복들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롬 8:1)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 8:39)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엡 3:6)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물론 예수님이 무슨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 있다는 말이 잘 실감이 가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다는 말은 다른 말로 나의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을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만 하면 그 사람은 예수님의 언행심사를 자연히 닮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정의로운 삶과 사랑의 삶을 닮게 될 것입니다. 설령 예수님처럼 살다가 손해를 보고 핍박을 당하게 된다면 예수님의 위로와 상급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해 살다가 지쳐 쓰러지면 예수님이 붙잡아 주시고 위로와 용기를 부어 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예수님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것이 바로 교회로 출석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찬양하고 기도하는 삶입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지금 내가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있고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려고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지만 나는 아직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위로하시고 축복하신다는 것을 체험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옛날처럼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사실은 교회를 다니는 것이 부담스럽고 부자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다른 예수를 믿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몸은 교회에 나와 있지만 마음은 예수님을 멀리 떠나있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일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그렇다면 몸은 물론 방황하는 내 마음을 내 몸처럼 주님께로 이끌고 나와야 합니다. 주님 안에 이사를 와야 하고 주님 병원에 입원을 해야 합니다.

 예 화
 평소에 건강하던 사람도 때로는 몸이 아파서 병원을 찾을 때가 있습니다. 병원에 가보면 병원마다 환자들이 넘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라고 부상병처럼 붕대를 감고 다 자리에 누워있는 것이 아닙니다. 멀쩡해 보이는지만 병원에 입원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의사가 퇴원을 지시하기 전까지는 병원에 입원해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갑자기 열이 나고 갑자기 혈압이 높아지고 갑자기 통증이 오고 갑자기 졸도를 하게 될 때 입원환자는 신속하게 의사와 간호사의 치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위기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의사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멋대로 퇴원을 하고 병이 다 낫다고 큰 소리를 치며 몸을 함부로 굴리다가 갑자기 문제가 생기면 병원을 가기도 전에 생명의 위협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 나은 것처럼 보이는 환자도 의사의 지시를 따라 퇴원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까지는 퇴직을 하거나 노년을 맞이한 사람들이 공기와 경치가 좋은 한적한 시골에 별장과 같은 전원주택을 선호했었습니다. 그러나 한 일 년 살게 되면 외로워서 못살겠다고 도시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공기만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 이웃과 더불어 사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좋은 이웃과 더불어 살면 행복하고 좋지 않은 이웃과 더불어 살면 고통스러운 것도 경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좋은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행복은 어떤 집이 아니라 누구와 사는가에 따라 좌우되는 것입니다.
 요즘 복지 정책이 활성화 되면서 노인복지 요양시설 허가를 요청할 때 아무리 공기가 좋고 경치가 좋아도 도시와 너무 한적한 곳에 떨어져 있으면 허가를 유보합니다. 왜냐하면 병원과 거리가 멀다는 것입니다.
 육신보다 더 소중한 것이 영혼입니다. 인간의 누구를 막론하고 그 영혼은 이미 허물과 죄로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영적인 시체입니다. 그러한 우리를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무덤에서 살리신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과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 살리심을 받은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요 오늘 우리입니다.
 그 사람은 혼자 살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 밖에서 살면 안 됩니다. 교회와 너무 멀리 떨어져 살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들어와야 합니다. 그래야만 치료를 받고 재충전을 받고 위로를 받고 새 힘을 받고 능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축복입니다.

 

 3.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사람
 광야를 휘젓고 다니는 맹수일지라도 생명이 끊어지면 독수리의 밥이 됩니다. 아무도 죽은 사자를 보고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서로 가죽을 벗기고 고기를 뜯어 먹으려고 합니다. 하이에나나 독수리가 달려들어 그 살을 물어뜯어도 죽은 사자는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자의 용맹함은 이빨 때문이 아니라 살아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백수(百獸)의 왕 사자일지라도 죽고 나면 날카로운 이빨이나 발톱도 아무런 힘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죽은 사자보다 산 개가 더 낫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 9:4) 모든 산 자들 중에 들어 있는 자에게는 누구나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기 때문이니라
 인간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다 동일한 조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것이 바로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상태로 살다가 육신도 영혼도 영원한 죽음에 이르는 비참한 인생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그 상태에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고 죄 사함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얻는 복된 사람이 있습니다.
 그 두 사람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그것은 누가 더 선한가, 악한가의 차이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를 신뢰하고 의지하며 살아가는지 믿음의 차이일 뿐입니다.
 그 이유는 나는 나를 구원할 수 없지만 내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해 주시고 내가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고 나를 끝까지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마치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문 앞에서 기다리는 부모가 누군가에 따라 아이들의 삶이 다른 것과 같이 나의 영적인 아버지가 하나님이냐 사단이냐에 따라 나의 삶은 천국과 지옥만큼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나의 구세주이심을 마음에 굳게 믿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나를 위해 예수님께서 나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 거룩한 피로 깨끗하게 씻음을 받은 것이 믿어집니까? 그 믿음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인 것과 나도 예수님처럼 부활과 영생을 얻게 될 것과 죽은 후에는 천국에 가게 될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어질 것입니다.
 물론 나는 그러한 축복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 주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별로 한 것이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축복을 나에게 주신 것은 티끌만큼도 나의 공로가 아니라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죽음을 전제로 살아가는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인간의 모든 능력과 재능이 봉인되어 버렸습니다. 죄의 상태는 선한 것은 무엇이든 봉인해 버리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그 모든 족쇄를 풀어 주었습니다.
 1) 그 영혼을 거듭나게 하여 살려 주셨습니다.
 2) 그 육체도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게 하셨습니다.
 3) 그리스도 안에서 그와 함께 높이고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즉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에 앉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배고픈 사람에게는 내일 먹을 갈비보다 지금 당장 라면 한 그릇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에게 미래의 천국과 영생의 축복도 좋지만, 고달픈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세상에서 받게 되는 좋은 복이 무엇인가를 알 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 응답의 축복입니다.
 빈손으로 태어난 인생은 자기의 노력으로 얻든지 아니면 부모나 이웃의 도움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이 가까이 하시고 그 기도를 반드시 응답하여 주시는 복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신 4:7)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그와 같은 은혜를 주신 것일까요?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엡 2:9, 10)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1) 오는 여러 세대에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시려 하심이니라.
(엡 2: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미래에 나 같은 죄인들도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샘플로 삼으신 것은 비천한 죄인들에게 큰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2) 구원받은 것이 자신의 공로인 것처럼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엡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어제나 오늘이나 타락한 인간은 항상 자기를 자랑하기를 좋아합니다. 만일 인간이 착한 행실로 구원을 받았다면 그것을 자랑하기에 바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구원을 받기 위해 아무것도 한 일이 없고 단지 믿음으로 구원받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3) 구원받은 자가 선을 행하여 주께 영광을 돌리게 함이라
(엡 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신 최초의 목적은 인간이 선하게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로 인해 오히려 사악해져서 하나님을 근심하게 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녀들만이라도 선하게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해 값없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인간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신 것은 구원받은 당신의 백성들을 통해 선한 일을 하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같은 복을 받기 위해 한 일이 무엇입니까? 어린아이가 부모를 의지하는 것처럼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하기만 하면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와, 보혜사 성령께서 다 맡아서 처리하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마치 부모가 자식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모든 좋은 것을 과거 현재 미래까지 아무런 대가없이 거저 다 공급해 주는 것처럼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다니는 것  하나 때문에 그 모든 것들을 값없이 공급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후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을 감사하며, 오늘처럼 주님을 예배하는 주일이면 하나님의 집이요, 예수님의 몸인 교회에 나아와서 날 구원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양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엿새 동안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이웃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삶을 살고,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말고 사랑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될 때 구원받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구원받은 성도들의 가정과 그 가정들이 모인 사회가 평안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아무런 수고 없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합시다. 예수님의 이름을 자랑합시다. 성령님이 주시는 능력과 지혜로 선한 생각, 선한 말, 선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마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그것이 나를 지으시고 나를 교회로 부르시고 나를 구원하시고 나를 존재하게 하시는 궁극적인 이유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