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더 큰 은혜에 대한 감사
(엡 2:14-18)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되기 전에는 단일 민족으로 한 동포요 또한 같은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반세기 전 서로 이데 오르기의 차이 때문에 남북은 원수처럼 서로 대적하고 심지어 6. 25 사변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이제는 철천지원수가 되어 서로 대립하고 있는 것이 우리 민족의 서글픈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인간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우연이나 저절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께서 당신의 모양과 형상을 따라 직접 지으신 피조물이라고 하였습니다. 후에는 하나님이 너무나 만족하고 기뻐하셨음에 대해서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창 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시고 난 다음 무척 기뻐하시고 좋아하셨으며 인간에게 세상 모든 만물을 값없이 거저 주시고 만물의 영장이 되게 하셨습니다.
(창 1: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그러한 인간이 하필이면 하나님과 적대적인 원수가 되었을까요? 오늘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그러한 인간에게 어떤 은혜와 축복을 주셨는지를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1. 하나님과 원수 됨
인간 만일 인간관계가 화목하지 못하면 가족들 간에도 행복하지 못하게 되고, 사회 속에서 좌충우돌하게 되고, 교회 안에서도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불행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인간관계가 불편해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다면 인간이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과 불편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불신앙하고 적대적인 관계에 있으면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간, 하나님을 불신하고 우상을 숭배하고, 심지어 노골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무엇이라고 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롬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인간은 우연이나 저절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께서 당신의 모양과 형상을 따라 직접 지으신 피조물이라고 하였습니다. 후에는 하나님이 너무나 만족하고 기뻐하셨음에 대해서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창 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시고 난 다음 무척 기뻐하시고 좋아하셨으며 인간에게 세상 모든 만물을 값없이 거저 주시고 만물의 영장이 되게 하셨습니다.
(창 1: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그러한 인간이 하필이면 하나님과 적대적인 원수가 되었을까요? 오늘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그러한 인간에게 어떤 은혜와 축복을 주셨는지를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인간이 지금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다고 오늘 성경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엡 2:14,16]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여기서 ‘원수’라는 말은 단순히 싫어하고 인사나 말을 하지 않는 어색한 사이가 아니라 서로 증오하고 미워하는 적대적인 관계를 뜻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는 정의로우신 분입니다. 사단은 정반대로 선을 싫어하고 죄를 좋아합니다. 하나님과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사단은 하나님과 원수 관계인 것입니다.
인간을 타락하게 만든 사단이 하나님과 원수 관계였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고 뱀의 말을 믿고 따르는 사단의 종이 된 것은 결과적으로 하나님과도 원수관계가 되고 만 것입니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인간의 불신과 불순종의 죄는 정반대로 사단이 조 오히려 하나님과 높은 담이 생기고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없게 되었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 결과 인간은 행복을 위해 발버둥을 치지만 인간이 원하는 행복대신에 불행스러운 역사만이 되풀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은 거리를 멀리하고, 대화를 끊고 상대를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리고는 돌아서서 그 사람을 비방합니다. 미워하는 사람이 잘 되면 배 아파하지만, 미워하는 사람이 잘못되면 고소해하고 좋아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친히 창조하시고 복을 주시되 때를 따라 필요한 것과 좋은 것을 값없이 주시는데도 인간이 감사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을 불신하고 배은망덕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인간을 버리거나 내치시지 않고 도리어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하기 위해 오랫동안 계획하시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행동에 옮기셨습니다.
2. 예수 십자가의 능력
구약 시대는 제사 제도이고, 신약시대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어 주신 일을 통해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 죄 사함을 받는 제사
인간이 범한 허물과 죄는 정의로우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게 만들었고 죄의 대한 대가인 죽음을 요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짐승이 인간이 지은 죄를 대신하여 피 흘려 죽어 불사름으로 죄 사함과 구원을 얻게 하는 속죄의 제사 제도를 제정해 주셨습니다.
(레 4:26) 『그 모든 기름은 화목제 제물의 기름 같이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같이 제사장이 그 범한 죄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
이와 같은 제사 제도는 장차 인류의 구세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을 것을 미리 알려주기 위한 예표였습니다.
예수님은 마치 죄 없는 어린양처럼 죄 없는 분으로 세상에 오셨고, 제단에 불사른 제물처럼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심으로 그를 믿는 자들의 죄를 속하여 주는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2) 율법을 폐하심
허물과 죄로 죽은 인간이 깨닫지 못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깨닫지 못하는 것과 또 하나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인간에게 깨우치기 위해서 주신 것이 구약의 말씀이고 그 내용이 계명과 율례와 법도입니다.
인간은 그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이 전능하신 창조주이며 인간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그 죄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고 죽게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왕하 17:34) 『그들이 오늘까지 이전 풍속대로 행하여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이라 이름을 주신 야곱의 자손에게 명령하신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준행하지 아니하는도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그 동안 하나님과 원수를 만드는 원인인 죄 사함을 받았기 때문에 인간을 정죄하던 계명과 율법이 더 이상 인간을 정죄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율법이 폐하게 된 것입니다.
[엡 2: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이는 마치 빚을 얻기 위해 차용증서를 써 주었지만 빚을 갚고 난 다음에는 그 차용증서는 휴지가 되고 마는 것처럼 십자가로 구원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율법은 더 이상 정죄의 수단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3) 십자가로 소멸하심
십자가로 말미암아 죄가 사하여 졌기 때문에 하나님과 더 이상 원수가 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는 마치 대제사장이 제물의 피를 제단에 뿌림으로 하나님의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 구원함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엡 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여기서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라는 말 가운데 ’원수된 것‘이라는 말씀은 인간을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는 원수인 죄를 가리키는 것이며, ’소멸‘이라는 말은 ’죽이다‘ 라는 뜻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에 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그 동안 인간을 괴롭혀왔던 원수를 십자가로 죽이셨다는 말입니다.
3. 보다 더 큰 은혜
성경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살전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안에는 두 종류의 신자들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니지만 어떤 사람은 늘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교회를 다니지만, 어떤 사람은 감사하는 마음이 전혀 없이 마지못해 교회를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 동일한 하나님을 믿고 교회를 다니면서 그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얼마나 깊이 깨닫고 있는가의 차이 때문입니다.
1) 하나님께 나아감
오늘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와 축복인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 안에서 언제 어디서든지 하나님 아버지께 당당히 나아갈 수 있는 은혜입니다.
[엡 2: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나아감’이라는 말은 그동안 하나님과 담을 쌓고 지냈던 인간이 하나님께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길이 현재적으로 항상 열려 있는 특권을 말합니다.
과거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축복을 받을 수 없었던 죄인이요, 외인이요, 나그네였습니다.
구약의 에스더서를 읽어 보면 에스더가 아하수에로 왕의 부름을 받기 전에 왕 앞에 나아가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만일 그것을 거역하면 죽을 수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에스더가 동족을 구원하기 위해 왕의 부름을 받지 못했지만 아하수에로 왕에게 나아갈 때 모르드개와 동족들에게 기도를 부탁할 때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에게 나아간 것입니다.
하물며 허물과 죄로 죽었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 죄 사함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언제든지 활짝 열려졌다는 것은 예수를 믿는 우리가 받은 여러 가지 은혜 중에 가장 큰 축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롬 5: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2) 하나님의 가족
해외여행을 하기 위해 다른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그 나라의 비자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여행을 마치고 우리나라에 들어 올 때는 비자가 필요 없습니다. 허가가 필요 없습니다, 언제든지 당당하게 들어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도 마찬가지로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비자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비자가 필요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이미 천국 시민이 되었기 때문에 언제든지 당당히 하나님을 뵈올 수 있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특권에 부여 되었습니다.
[엡 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여기서 하나님의 권속이라는 말은 부모형제들이 함께 모여 사는 가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는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들만 하나님의 권속이라는 일컬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이 없이 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천국 가족이 된 것입니다.
(롬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3) 하나님의 성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받은 큰 은혜와 축복은 그것만이 아닙니다. 더 큰 은혜와 축복이 있습니다.
[엡 2: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어린아이에게 가장 큰 불행은 부모가 떠나는 것이라면 인간의 최대 불행은 하나님이 떠나가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인간이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기를 거부하고 그 대신 사단을 왕으로 섬겼기 때문입니다.
그 때부터 인간은 더욱 불행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와 같은 인간에게 가장 큰 축복은 부자가 되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복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나 천국이나 성전이라는 말은 궁극적으로 같은 말인데 그 의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을 뜻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범죄 하기 전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이 에덴동산이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통과할 때는 성막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곳이었고 솔로몬 시대에는 성전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곳이었습니다.
(왕상 8:29)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성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시오며 주의 종이 이 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는 극치에 달해 그 성전에 우상을 모시고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는 죄악을 범하였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은 멸망을 당하고 하나님의 성전은 이방나라에 짓밟히게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러한 인간을 버리지 않으시고 영원히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임마누엘이라는 축복입니다.
(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 임마누엘이 바로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가리켜 임마누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임마누엘’로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이 임재하신 성전인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 예수님을 모신 곳이 성전입니다.
그것이 바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마음의 구주로 모시는 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가리켜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던 우리를 구원하신 궁극적인 목적이 성전을 삼기 위해서라고 오늘 성경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엡 2: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교회를 다니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시는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시 139:2)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그러므로 하나님의 가장 큰 축복은 세상 끝날까지 주님이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나와 늘 함께 하시겠다는 임마누엘의 축복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비천한 내가 예수님을 모신 성전 보혜사 성령이 임재하여 계시는 성전이 되었다는 것은 세상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크고 놀라운 은혜와 축복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사라는 말은 다른 사람에게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도움을 받았을 때 일어나는 반응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받은 것만큼 비례하게 됩니다. 많이 받았으면 크게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의 관계도 그러할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두에게 동일한 은혜를 주셨지만 그 은혜를 깨닫는 정도에 따라 감사도 비례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깨닫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라고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얼마나 크며 특별히 교회가 얼마나 소중한 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2009년 전반기 우리의 육신에 부족한 것이 많았어도 내게 이미 주신 은혜가 너무나 크고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여전히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었다는 것을 무엇보다 크게 감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교회가 소중한 이유는 그와 같은 성도들이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이요, 하나님이 거하시는 신령한 처소요,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하고 말씀을 배우는 곳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복음을 널리 세상에 전파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교회가 하나님이 떠나가시지 않고 늘 함께하시는 처소가 되도록 교회를 함께 지어가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엡 2: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이는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모든 믿는 자의 심령에 거하시므로 성도 개개인은 모두 성령이 그 안에 거하시는 성전인 것입니다.
어떤 성도는 '철근'이 되기도 하고, 어떤 성도는 '나무'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재료들은 모퉁이 돌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결합하여 온전한 성전을 이루어 갑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억지나 책임 때문이 아니라 마음 중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성도를 사랑하고 서로 협력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에 전심전력을 다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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