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감옥이 가둘 수 없는 참 자유인(엡 3:7-11)

미션(cmc) 2009. 7. 12. 19:45

감옥이 가둘 수 없는 참 자유인


(엡 3:7-11)

『[7]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10]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11]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모든 사람들이 죽음 다음으로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곳이 있다면 어디일까요? 물론 감옥일 것입니다.
 감옥이 어떤 곳이기 사람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것일까요? 한 마디로 감옥은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고, 먹는 것과 입는 것과 잠자리가 불편 한 곳입니다. 선고된 형기를 마칠 때까지 벗어날 수 없는 곳으로 어떤 사람은 감옥에서 일평생을 보내거나 사형을 당하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 로마 지하 감옥에서 교회와 성도들을 그리워하면서 신앙의 편지를 보냈는데 오늘 성경은 그 중에 하나 에베소 교회와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로 흔히 옥중서신이라고 합니다.
(엡 3:1)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말하거니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옥중서신을 통해서 자신이 당하는 감옥 생활의 고통을 호소하는 내용을 티끌만큼도 기록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자기가 세운 지 교회들을 걱정하고 염려하고 위로 하면서 도리어 기뻐하고 감사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골 3: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이는 바울이 비록 육신적으로는 감옥에 갇혀 있을지라도 그가 전한 복음이나 복음을 전하는 바울의 평안한 마음과 신앙 양심은 그 무엇으로도 감옥에 가둘 수 없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도 어떻게 그렇게 자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고난을 이겨낸 비결이 무엇인지 그 비밀을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 깨달아 우리도 바울처럼  어떤 어려움 중에서도 내면의 참자유와 평화와 기쁨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1. 하나님의 경륜과 그리스도의 비밀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일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나름대로 일정한 원리와 법칙에 따라 역사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가리켜 흔히 자연 법칙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자연법칙을 알게 되면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 없어도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전능하신 분이며 하나님이 어떻게 만물을 다스리는가를 깨닫게 되는데 그것을 가리켜 자연계시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다스리는 원리를 하나님의 섭리라고 하며, 하나님의 섭리는 자연 법칙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세계에도 일정한 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타락한 인류를 구원해 나가시는가 하는 영적인 원리를 인간들에게 특별히 나타내 보여주신 것이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적인 원리를 알아야 성경을 읽거나 들어도 깨달아지게 되는 것이며 그것을 가리켜 오늘 성경에는 하나님의 비밀 또는 하나님의 경륜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엡 3:2)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여기서 경륜(經綸)이라는 말씀이 어려운 말인데 사전적 의미로는 일을 조직적으로 계획하고 천하를 다스리는 것이라는 의미이고, 성경 원어의 의미는 집이란 말과 관리한다는 두 말이 합해진 것으로 어떻게 집을 관리해 가는가 하는 원리를 뜻으로 타락한 인류를 하나님이 어떻게 구원하시는가 하는 원리를 가리켜 하나님의 경륜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나간 역사의, 위인들을 살펴보면 그들의 생애에 집필한 책을 후대의 사람들이 다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면 하물며 유한한 인간이 어떻게 영원하신 하나님의 경륜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복음을 위해 감옥에 갇힌 바울에게 그동안 감추셨던 비밀인 구원의 계획을 계시하여 주신 것을 바울 서신이라고 하고, 미래의 영원하신 세계에 대해 사도 요한에게 계시하여 주신 것을 요한계시록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누구나 다 이해하고 믿어질 수 있는 싸구려가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물론 그와 같이 영원하신 하나님의 경륜을 아무나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특별한 사람들을 선택하셔서 계시하여 주신 것을 기록한 사람들이 구약 시대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신약 시대는 사도들을 통해서 계시하여 주셨습니다.
(엡 3:5)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
 여기서 ‘거룩한 ’이라는 말씀은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하나님의 영적인 본질로 오로지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신 성품으로 하나님과 관계된 것을 구별할 때 거룩이라는 말이 성경에 자주 사용되고 있습니다.
 거룩한 향(출 30:37), 거룩한 기름(출 30:37), 성전과 그 구성요소(시 65:4 레 6:16 등), 제사장(레 21:6, 8), 레위인(대하 35:3), 절기, 안식일(출 16:23 사 58:14), 예배하기 위해 모인 회중, 이스라엘 백성, 천사들, 성도들(출 15:11 19:6; 신 7:6 시 16:3 34:9; 89:5,
 거룩한 사도들은 예수님의 제자와 신약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이며, 선지자들은 구약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입니다.
 문제는 29권의 신약 성경 중에 자그만치 12권이나 되는 성경을 한 사람이 기록하였는데 그 사람이 바로 오늘 성경을 기록한 사도 바울이라는 점입니다.

 

 2. 그리스도의 비밀과 이방인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류를 어떻게 구원하실 것인가 하는 하나님의 경륜을 세상 열방가운데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여 계시하여 주신 것이 구약 성경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을 선민이라고 하는 것이며,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님이 어떻게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하는지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알 수 있게 하셨습니다.
  아라비아 숫자 1 은 순서적으로 첫 번이기도 하고 오로지 하나를 뜻하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이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시는 순서의 첫 번 째 라는 사실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들만 유일하게 택하셨다고 오해를 하는데서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륜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근본적으로 다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마치 수출품 중에 견본처럼 사용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전 인류를 구원하시는 구세주가 탄생하게 하시고 그 구세주로 말미암안 전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이 계획하신 구원의 비밀이요 하나님의 경륜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구세주로 세상에 오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였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이 자기 민족을 택하신 것은 하나님이 유일하게 이스라엘 민족만을 구원하시기 위한 것이라고 오해하고 그 때부터 이방인들을 천시하고 미워하고 배척하였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 바울의 본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과거에 바울은 예수를 전하는 사람들을 잡아죽이고 옥에 가두는 일을 사명으로 알고 선봉에 서서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은 혹시 예수를 믿을 수 있는지 몰라도 바울과 같은 핍박자는 도저히 예수를 믿을 수없을 것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그러한 바울이 사도가 된다고 하는 것은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을 만큼 문제가 많았던 사람이었음을 그 자신이 무슨 자랑꺼리처럼 성경 여러 곳에 간증하고 있습니다.
  [딤전 1: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여기서 '비방자'라는 말은 기독교를 중상모략하고 모독하는 일에 선봉을 섰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박해자'는 말은 말 그대로 교회를 탄압하고 교인들을 못살게 굴었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폭행자’라는 말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무자비하고 난폭하고 오만했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감히 하나님의 경륜인 구원의 비밀에 대한 계시를 기록하는 사도가 되었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 같은 구원의 비밀을 바리새인들에게 계시하시지 않고 그렇게 기독교에 대해서 적대적이었던 바울에게 계시하여 주셨을까요?
 그것은 바리새인들이 우월감과 독선에 빠져 이방인들을 개취급하고 복음을 전하지 않기 때문에 바울과 같은 사람을 변화시켜 기독교를 핍박하던 열심히 복음을 증거 하여 바울이 기록하고 바울이 전한 복음을 통해서 이방인들도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어 천국의 기업을 상속받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엡 3:6)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 비밀을 이방 사람들에게 전하게 하시려고 바울을 이방 사도로 택하시고 부르셔서 하나님의 경륜인 복음을 기록하게 하시고, 그것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 비밀이 유대인들에게는 가려졌기 때문에 바울을 핍박하고 복음을 거부하였지만 이방인들에게는 열려졌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거부한 복음을 이방인들인 우리가 읽고 들어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을 함께 유업을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엡 3:4)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물론 신구약 성경 66권이 모두 다 하나님의 경륜이요 구원의 비밀을 계시하여 주신 말씀들입니다. 그러나 구약은 신약을 계시하기 위한 거푸집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구약만으로는 구원의 비밀을 잘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신약을 읽어야 합니다. 신약의 복음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며 무슨 말씀을 하셨고 무엇을 행하셨는가 하는 것을 사실적으로 기록한 말씀으로 예수 행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알려면 복음서를 읽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예수님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하는 것을 이해하려면 바울을 통해서 계시하여 주신 바울서신을 읽어야만 명료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울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증거 하는 이방인의 사도로 택하시고 이방인들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구원의 계시를 기록하게 하시고 이방인인 우리가 그 계시를 읽을 때 구원의 비밀이 깨달아지게 하셨습니다.

 

 3. 지극히 작은 자에게 주신 큰 은혜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하나님의 경륜이 구원의 비밀을 성령의 계시로 기록하는 놀라운 축복을 받은 후에 일어나 변화 중에 두 가지만 살펴 보고자 합니다.
 1) 참 자아를 발견하고 더욱 겸손해짐
 바울의 본래 이름은 이스라엘의 임금의 이름인 사울이었으며 그 뜻은 ‘매우 높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는 자신의 이름을 ‘매우 낮다’는 의미인 바울이라고 개명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름만 그렇게 고친 것이 아니라 오늘 성경 말씀을 보니 그의 마음의 자세까지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엡 3: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여기서 지극히 작다라는 말은 ‘가장 작은’이라는 비교급으로 자신을 가리켜 세상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낮추는 말입니다.
 이는 바울이 가식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자기 보다 잘 난 사람과 비교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자기가 체험한 무한하신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이 세상에 누구보다 좋은 가문과 남들이 부러워하는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학을 한 최고의 지성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자신을 낮출 수 있게 된 것은 자기가 경험한 예수 그리스도가 측량할 수 없이 높으신 분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교만은 망하는 길로 가는 지름길임을 이론적으로 다 알면서도 왜 우리 주변에서 겸손한 자를 찾아보기가 어려울까요? 그것은 바울처럼 그리스도를 만난 영적인 체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만난 영적인 체험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며 나를 위해 무엇을 하셨으며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를 성경을 읽고 듣다가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2)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고 최선을 다해 헌심함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자기와 같은 죄인중에 괴수에게 하나님의 비밀을 계시하여 주신 궁극적인 목적인 자기만을 위한 것이 유대인들이 담을 높이 쌓고 적대시하는 이방인들에게 그 복음을 전하는 증인으로 살게 하기 위함이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물론 유대인만이 아니라 이방인들까지 구원하셔서 온 세상에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기를 기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이방인들을 천시했기 때문에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의 경륜인 구원의 비밀을 이방인들에게 전파하는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셨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달았기 때문에 복음을 위해 감옥에 갇히는 것조차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엡 3: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물론 그 길은 십자가의 길이요, 고난의 길이기 때문에 쉽지 않은 길이지만 바울은 그 길을 사양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여 끝까지 달려갔습니다. 
(행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 과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험난한 길로 바울은 지나온 선교여정을 돌이켜 보며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고후 11:23-27] [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입니까? 이 말을 할 때에 내가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나는 그 사람들보다 더 뛰어난 일꾼입니다. 나는 더 많이 수고했고, 감옥에도 더 많이 갇혔으며, 셀 수 없을 정도로 매를 많이 맞았고,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습니다. [24] 또 유대인에게 서른아홉 대 맞는 태형을 다섯 번이나 당하였습니다. [25] 몽둥이로 세 차례 맞고, 돌에 맞은 적도 한 번 있었습니다. 배가 난파된 적도 세 번 있었으며, 밤낮을 망망대해에서 표류한 적도 있었습니다. [26] 자주 여행을 하는 동안, 강물의 위험과 강도들로부터 오는 위험, 내 동족들에게서 받는 위험, 이방인들에게서 받는 위험, 도시에서 당하는 위험, 황량한 광야에서 당하는 위험, 바다의 위험, 또한 거짓 신자들로부터 오는 위험을 겪었습니다. [27] 나는 수고하고 애쓰며 살았습니다. 잠 못 들어 밤을 지샌 적이 여러 번이고, 배고프고 목마르고, 굶기도 자주 하고, 추위에 떨고, 헐벗음의 고통도 받았습니다.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요?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누구보다 자유롭고 행복한 사람처럼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고후 6:9-12) 『[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바울이 비록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을지라도 감옥이 바울의 믿음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가둘 수 없음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바울과 더 가까이 하셨고 일대일 교육을 하셨고 허물과 죄로 죽은 인간이 죄와 죽음에서 영원히 자유 할 수 있는 비밀을 깨닫게 하여 주심으로 영원한 자유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중에 어느 누가 현재 자신의 삶이 아무리 불편하고 고통스럽다고 할지라도 로마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오늘 성경의 사도 바울보다 더 부자유한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는 육체적으로는 감옥에 갇혀 있지 않지만 마음은 여전히 억눌림과 부자유한 가운데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감옥 같은 삶을 살고 있지 않은지 돌이켜 보아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을 가리켜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고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경륜과 비밀을 계시하여 주시고 이방인의 사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혀 자유를 잃었을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경륜인 구원의 비밀을 계시하여 기록하게 하여 주셨습니다.
 바울이 비록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을지라도 복음은 가둘 수 없음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바울과 더 가까이 하셨고 일대일 교육을 하셨고 허물과 죄로 죽은 인간이 죄와 죽음에서 영원히 자유 할 수 있는 비밀을 깨닫게 하여 주심으로 영원한 자유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을 낭독하는 것은 이스라엘인들의 절기에 행해진 관례였습니다(출 24:7).
 신약성경에서는 '읽다 read, 큰 소리로 읽다 read aloud'라는 뜻으로 예수님은 성경을 열심히 읽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모든 지식을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생각하셨고 자주 "너희가 읽지 않았느냐"라고 책망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막 2: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한 자들이 핍절되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만일 바울 서신이 없었다면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구원의 길이 이곳으로 가야하는지 저곳으로 가야하는지 마치 등산로처럼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일 복음서만 읽는다면 마치 지도책으로 목적지를 찾는 것처럼 몇 번이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야만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 서신을 읽게 되면 마치 내비게이션으로 길을 찾는 것처럼 이방인인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는지 아무 명료하게 안내 해 줄 것입니다. 백배 천배를 하지 않아도 성경을 읽기만 하면 구원의 비밀을 깨달을 수 있다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계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는 다니지만 성경을 읽기 싫어하고 예배는 참석하지만 설교를 귀 기울여 듣지 않기 때문에 그 같은 복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을 받기를 원한다면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바울은 그와 같은 구원의 신비를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볼 수 없고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없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과 위기에서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서 그와 같은 구원의 비밀을 계시하여 기록하게 한 것입니다.
(엡 3:3)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오늘 우리가 받아야 할 은혜가 바울과 같은 은혜입니다. 현실이 고달플수록 삶이 힘들고 어려울수록 하나님의 풍요한 은혜를 경험할 때 믿음의, 부자가 되고 영원한 자유인이 될 수 있는 기회임을 깨닫고 더욱 복음의 말씀을 읽고 듣고 전하는 일에 전념하는 기회로 삼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