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그토록 많은 양의 인슐인 주사가 6개월 만에 필요없게 되다
교사 박정혜 (36)
언제부터인지 몸이 항상 나른하고 쉽게 피로를 느끼곤 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아이들과 씨름하랴, 집에서는 집안 일에 아내와 어머니 역할을 하랴.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그러는 것이겠지하고 무심하게 생활해 왔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년 전의 일이었을 것이다. 자궁주변이 가렵기 사작해서 약을 먹는 등 내 나름대로 방법을 써 보았지만 그 가려움이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결국 대학 병원에 가서 종합 검진을 받아본 결과 당뇨병이라는 병명이 내려졌다. 말로만 듣던 당뇨병이 내 자신에게도 찾아왔다는 것을 그깨서야 처음 알았다.
공복시의 혈당은 350으로, 즉시 입원을 해야 한다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학교와 집안 일을 제처 두고 어쩔 수 없이 입원하였다. 하루 1400kcal의 식사를 하면서 매일 한 시간씩 급한 걸음의 산책을 강제적으로 실행하게 되었다.
그렇게 15일 동안 1400kcal의 식사와 운동 요법을 했더니 혈당치도 내려가서 퇴원을 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매일 24 단위의 인슐린을 맞아야 한다는 조건하게 이루어진 퇴원이었으므로, 어쩌면 평생을 그렇게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우울하고 답답하기만 했다.
참담한 기분으로 매일매일 근근이 생활해 오던 중 1991년 11월이었다 요료법이라는 것이 당뇨병에 특히 효과적이라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처음에는 오줌을 마시면서까지 당뇨병을 치료하고 싶지 않다는, 복에 겨운 예기를 하기는 했지만 며칠간의 고민끝에 결심을 하게 되었다. 사실 평생 동안 인슐린 주사를 맞는 것 보다는 어떤 방법으로든 치료를 시도해 보는 것이 더 나을 듯 싶었다.
그렇게 한달을 버티고 나니 나중에는 오히려 즐거운 마음으로 꾸준히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착실하게 오줌을 마시고, 1400kcal의 식사와 운동을 했더니 체중도 순조롭게 줄기 시작했으며, 인슐린의 단위도 점차 줄었다. 11월에는 24단위, 12월에는 18단위, 2월에는 4단위, 3월에는 인슐린이 필요없게 되었다.
마침내 오줌을 마신 지 4대월 만에 평생 맞아야 할지도 모르는 인슐린 주사와 깨끗하게 헤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일은 사실 현대 의학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얼마나 기쁘던지 이루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매일 아침 다섯시에 일어나 집안 일을 해놓고 학교로 출근해서 아이들과 정신없이 씨름하다 지쳐서 돌아와 다시 집안을 ..... 매일 계속되는 일 속에서 1400kcal의 식사는 너무 부족한 듯 싶었다. '오줌을 이렇게 잔뜩 마시고 있는데 괜탆겠지.'하는 오줌의 효과에 대한 과신으로 음식을 잔뜩 먹기 시작했다.
어떻게 되었는지는 이 글을 읽느 분들이 더 잘 아실 것이다. 순식간에 살이 찌기 시작하더니 몸이 나른해지고 당이 또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평생 소식을 해야 되는구나.' 하고 어쩔 수 없지만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다시 착실하게 오줌을 마시면서 식사 요법을 계속하는 도안에 점차 음식에 대한 기호가 달라졌다. 야채를 좋아하게 되고, 1400kcal의 식사도 부족하다는 느낌이 없어졌다.
지금은 변통도 아주 좋아지고, 구내염과 치주염도 완치되었다. 그리고 숙면을 취하게 된 탓인지 다섯 시간밖에 못 자도 전혀 피로를 느끼지 않고 있다. 요료법이 이렇게 효과적인데 만약 그때 시작하는 것으로 결정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심신이 모두 지칠대로 지쳐 학교도 그만두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생각만해도 아찔하다.
나는 나의 일을 누구보다도 사랑한다. 앞으로도 나는 오줌을 계속해서 마실 것이다.
2.요료법을 시작한 뒤 무릅통증도 사라지고 밤에도 숙면을 취하게 되었다
주부 박명숙(56세)
내게 류머티즘 통중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지금부터 2년 전의 일이다. 류머티즘 통증이 나타난 지 얼마 안되어 집안의 계단조차 오르내리기가 힘들어지더니 나중에는 결국 누워 지내야만 했다.
내 경우에는 무릎과 발목에 통증이 특히 심했기 때문에 언제나 다리를 담요로 감싸고 지내는 상태였다.
병원에 찾아다니며 온갖 치료와 좋다는 약은 모두 먹어 밨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과, 한방의 침이나 뜸 등도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그렇게 병원을 내 집 드나들 듯이 찾아다니면서 아주머니 한분을 사귀게 되었다. 그 분도 류머티즘인데 나보다도 훨씬 심한 편이었다. 그런데 얼마 동안은 통 얼굴을 볼 수가 없어 궁금해 한던 중 어느 날 병원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 때 만나 본 그 분의 안색이 아주 밝고 특히 움직임이 많이 자유로워 있엇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더니 오줌을 마시고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 드 얘기를 들었을 때는 농담을 하는 줄 알고 웃으면서 다시 반문을 했더니, 요료법에 대해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나는 그때서야 처음으로 요료법을 알 게 되었다. 물론 처음 그 얘기를 듣자마자 '오줌을 마시면서까지 병을 치료해야 하다니... 나 같으면 차라니 안 하고 말겠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실제로 오줌을 마시고 건강해진 사람을 눈앞에 두고 보니 요료법에 관해 은근히 호기심이 생긴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아주머니께, "오줌을 마실 때 느낌이 어떻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처음에는 대부분이 몹시 언짢아 하지만 며칠쯤 지나면 아무거리낌 없이 마실 수 있게 돼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라고 하면서 내게 꼭 한번 해보라고 권하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며칠 동안 갈등만 되풀이하고 있는데 그 아주머니는 거의 날마다 전화를 해서 시작했느냐고 물었다. 결국 단단히 결심을 한 다음 그 아주머니가 가르쳐 준 대로 아침 오줌을 받아 냉장고에 넣어 차게 한 다음 먼저 반 잔 정도 마셔 보았다. 코를 잡고 순직간에 꿀꺽, 금새 역겨움을 느꼈다. 이것은 아마 오줌은 불결한 것이라는 선입견이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그런 순간들을 잘 참고 기적처럼 15일을 버텼다. 그 동안 집안 일을 해주고 있던 파출부가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에 가는 것을 보고, "어머, 이제는 가볍게 일어나시네요."하며 놀라 소리치는 게 아닌가. 이 말을 듣고 보니 정말 전에는 일어날 때마다 무릎이 아파 겨우 일어났는데, 이번에는 그런 통증이 훨씬 수월해졌다.
그 여세를 몰아 열심히 마셨더니 통증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마신 지 1개월쯤 후에는 무었보다도 집안의 계단을 무릅 통중 없지만 편한 운동화를 신고 집에서 시장까지는 빠른 걸음으로도 거뜬히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전에는 손가락 끝이 아파서 부엌일도 잘 할 수 없었는데 지금은 엄마로서 그리고 아내로서의 역할도 어느 정도 가능하게 되었다.
요료법을 시작한 이래로 병원에서 준 진통제 등은 일체 먹고 있지 않았으니까 이 모든 것이 요료법의 뛰어난 효과 때문이라는 사실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내 가족들 그리고 주위 분들이 나의 모습을 보고 얼마나 기뻐하는지, 요즘넨 정말 하루하루가 축복된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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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본 : 내과전문의 "나까오 료이치", 책「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1) 일본에서 오줌건강법의 선풍을 일으킨 사람은 나까오 내과의원 원장으로 있는 "나까오 료이치"(1912년 생) 선생입니다.
선생이 오줌요법을 치료 목적으로 적용해본 최초의 사례는, 1933년 의사로서 병원 연수를 마친 후 1937년 여름부터 농촌지역에서 내과 개업의로 진료하던 중 그해 어느 날 임질에 걸려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마약중독까지 된 30세 정도의 청년에게 시험삼아 옛부터 전해오는 자기오줌요법을 권유해, 청년이 불과 1주일 정도만에 완치되는 경이적인 경험을 한 것이 처음으로서, 이것이 그가 징집되기 전까지 경험한, 처음이자 마지막인 유일한 오줌요법 치료 사례가 되었습니다.
그는 일제가 일으킨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3.9월 군의관으로 소집되어 미얀마(현 미얀마) 전선에 파견돼, 거듭되는 패전으로 식량도 보급약품도 끊겨버린 절체절명의 한계상황에서, 1944년 유일무이한 수단으로 7년 전 경험해본 오줌요법을 적용해, 세균에 감염된 부상병과 성병 등에 걸려 죽어 가는 병사들을 수없이 살려냈습니다.
일례로, 임질에 걸린 병사들에게 임질균이 가득한 스스로의 오줌을 받아 마시도록 조치함으로써 죽어 가는 목숨들을 극적으로 구해냈던 것입니다. 이러한 조치는 태국으로 이동되었을 때도 마찬가지로서, 병사들은 물론 원주민들로부터도 군의관으로서 신뢰를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고통스런 절망적인 한계상황에서 죽어 가는 병사들은, 살려는 욕망에서 그가 군의관으로서 권하는 오줌요법을 전혀 주저함이 즉시 실행에 옮김으로써, 수많은 병사들이 급속도로 치유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하여, 병사들에게 오줌요법을 실험이라도 한 것처럼 오해받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이 사실을 군사기밀로 하여 상부에 보고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패전 후 귀국해 1947년 내과의원을 재개업 하고부터는 우수한 항생제 등 뛰어난 약과 치료법이 속속 보급됨으로써 40년간은 오줌요법을 사용해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1965년에는 일본의학협회를 창립하였으며, 현재 이사로 있습니다.
(2) 그러다가, 1987년 들어 그가 오줌요법을 40년 만에 다시 경험하게 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모교인 이와데 의전 졸업 동창회에 참석하려던 친구 하마요오 의사(80세)로부터 대상포진(Herpes)으로 인한 심한 앞가슴 신경통 때문에 동창회에 불참할 수밖에 없다는 전화를 받고서, 전쟁기간 중의 경험을 떠올려 친구에게 오줌요법을 적극적으로 권해보았습니다.
그 친구가 후일 동창회석상에서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즉시 내 오줌을 마셨는데, 다음날부터 통증이 조금씩 사라지고, 1주일 뒤에는 통풍까지도 좋아져, 마침내 치유됨으로써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동창회에 참석하게 되었다"고 공개함으로써, 오줌요법의 경이로움을 다시 경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1987년 가을, 그는 10년간 류마티스를 앓아 마음대로 일어서지도 못하던 75세 노인에게 오줌요법을 권하자, 환자가 즉시 아무런 저항 없이 자기 오줌을 마시기 시작해 불과 두달 후에 스스로 걷게 되고, 그로부터 또 1개월 뒤에는 세탁도 할 수 있게 된 놀라운 사례를 경험하였습니다.
이어서, 그는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손발 마디뼈가 변형되는 고통을 겪고 있던 간호사 출신의 65세 되는 친지 여성에게 오줌요법을 권해, 즉시 의약품 일체를 중단하고 아침마다 200㎖ 한 컵 정도의 오줌을 마셔, 3개월 후 점차 통증이 줄고, 여읜 부분에 살이 붙기 시작하여 건강한 얼굴로 변하였으며, 1년이 지나는 동안 중도에 전신에 발진이 생기기도 했으나 2개월 후에는 씻은 듯이 없어졌으며, 혈액검사·화학검사 결과 병이 뚜렷이 호전되었음을 나타냈습니다.
그는 이러한 사실들을 다른 의사들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 "일본의사신문"에「헤르페스와 통풍에 특효가 있는 요료법」(1988.12.19),「자기 요에 의한 치료효과, 류마티스에 대하여」(1989.3.12) 제목으로 보고하였으며, 동시에 "야마나시켄 의사회보"에도 게재하였습니다.
이후에도 그는 이러한 기적적인 사실을 의학전문지에 보고하였지만, 오줌을 오물시하는 선입견 탓인지 다른 특효약에 대한 반응처럼 큰 반응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당연히 의학적인 연구대상이 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것을 먼저 일반 대중잡지 "장쾌"(壯快 : 1988. 4월호)에 처음 소개했을 때는, 수많은 난치병 환자들이 호응하여 실행하게 되었으며, 18개월 사이에 2,000명 이상의 자발적인 보고를 통해 오줌요법이 한 가지 병만이 아니라 각종 병과 그 합병증에도 특효를 나타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그는 1989.3월「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을 출판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는 현재 한국MCL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정희 여사에 의해 번역되어 1990.10.30. 초판(도서출판 명문각)이 나옴으로써, 이로 인해 국내에 오줌건강법이 널리 보급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MCL연구소를 설립하여 오줌건강법을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그는 한국MCL연구회 초청으로 내한, 1993.10.23. 서울 성동구민회관에서 공개 강연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3) 이러한 그도 정작 자신의 건강과 지병( 환절기에 오른쪽 어깨 통증, 팔을 위로 올릴 수 없음, 오른쪽 팔로는 제대로 던지지 못함. 책상에 앉아 글을 쓰려면 목에 경련, 오른쪽 어깨와 허리에 통증) 치유를 위해 직접 스스로의 오줌을 마시게 된 것은, 언젠가 캐나다 토론토에서 어떤 인도인으로부터 데사이 수상의 오줌건강법을 전해 듣고 나서부터라고 합니다.
그는 책에서 이러한 경위 설명에 앞서 오줌요법시 나타나는 호전반응을 설명하면서, 지난 7년 남짓한 사이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 오줌을 한 컵씩 마시고 있다고 밝힌 것으로 미루어보아, 그가 오줌마시기를 처음으로 시작하게 된 것은 대개 1981년말∼82년초 경으로 짐작됩니다.
그가 오줌을 마신 지 2주일 정도 지나자 극심한 허리 통증이 1개월간 계속되다가 돌연 증상이 사라진 후로는 20여 년간 아팠던 허리통증이 말끔히 없어졌으며, 다른 부위도 이러한 호전반응 과정을 거쳐 모든 지병이 완치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60여 년에 걸친 의료 경험에서 볼 때 오줌요법을 능가하는 치료법을 아직 경험하지 못하였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특히 1995.3.12. 야마나시현 의사회관에서 열린 "제21회 야마나시 총합 의학회"에서 "오줌요법 효과의 Mechanism에 관한 고찰" 제하의 발표문을 통해,『오줌은 약물로서의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병인(病因)의 정보원(情報源)으로 생각되며, 체내 변화를 감지하는 역할을 한다』는 매우 주목할만한 내용을 발표하였습니다.
즉, 오줌 자체는 질병을 치유하는 약리적 효과를 나타낼 만큼 많은 양의 물질을 포함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새로운 메커니즘"에 의하여 질병에 대한 치유효과를 추론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오줌의 성분이 약으로서의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몸의 건강 상태와 관련된 어떤 정보가 오줌 속에 존재한다. 자기 오줌은 자신의 혈액 속을 돌아 나왔기 때문에 몸의 모든 정보가 들어있고 자연스럽게 면역기능을 갖는다. 즉, 오줌도 병에 걸린 몸속에서 병균과 대항해 싸우는 동안 자연치유력을 얻게 된다. 자신의 오줌을 마시면 자기의 인후(咽喉: 목구멍)에 있는 병변을 감지하는‘리셉터(수용체 : B-spot)"에 의해 인식되어 뇌에 전달되면, 뇌는 즉각적으로 병변(증상)에 대응하는 치료물질 생성을 명령하게 되고 이것이 면역기능을 활성화시켜 신체의 자연 치유력이 강화되면서 질병을 치유하게 되는, 병을 자동진단·자동복원하는 기능이 있다. 그러므로, 병에 걸렸다 하더라도 자기 자신의 오줌을 마시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와 관련, 1987년 미국에서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의 혈액에서 에이즈 바이러스를 파괴하는 "킬러 세포"가 발견됐는데, 이에 대해 의사들은 건강한 사람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는 이 세포는 에이즈에 대항하는 항체가 자연스럽게 몸 안에서 생겨난 것으로 우리 몸이 갖는 자연치유력을 증명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오줌에 저장된 체내정보가 인후를 통과함으로써 그 병변(病變)을 분석하고 자연치유력을 활성화시켜 병변의 회복을 촉진하는 것으로 생각되어진다고 언급하면서, 그 사실의 근거로 다음 자료들을 제시하였습니다.
·오줌을 카테터(Katheter)로 한 달 동안 위에 주입하였으나, 효과가 없었다.(?)
·방광, 신장, 수뇨관 부위에 암이 발생한다는 사실은 체내의 오줌에 포함된 항암효과를 인정하기 어렵지만, 오줌을 경구투여(마신다)함으로써 암세포의 억제와 소멸효과는 인정된다.
(*일본의 한 오줌요법 연구단체는 "똑같은 경구투여를 하더라도 입으로 직접 마시지 않고 호스나 튜브를 통해 식도에 직접 투입하면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습니다.)
·오줌으로 가글링 하는 것만으로도 마시는 것과 동등한 효과가 있다.(?)
·오줌을 마시고 나서 곧 바로 물로 입안을 헹구면 효과가 없다.(?)
·1,000만 단위 인터페론의 주사 대신에 그것의 1/10만에 해당하는 100단위의 인터페론을 경구 투여하는 방법으로도 동등한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일본 하야시바라 생물화학연구소-미국 아마리로 셀 컬츄어社 가민즈 박사 공동발표)
이상과 같은 여러 사실에 의하여 인후의 부분에 체내의 병변을 감지하는 센서(Sensor, 감지기능 전담부위)가 존재한다고 추측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주장에 따르면, 오줌요법 시행시 반드시 지켜야 할 첫 번째 원칙으로서 술과 담배를 반드시 금해야만 합니다. 술·담배에 대해서 그것이 건강의 적이라는 상식 수준 이상으로 절대 금기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담배의 경우는 오줌요법을 실행하기 2주일 전부터 금연을 해야만 한다고 까지 강조합니다.
즉, 오줌요법의 효과는 목에 있는 수용체, 즉 B-spot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담배 같은 강력한 기호식품은 바로 이 B-spot의 감지능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국오줌건강운동본부 백과총서(제10편 4.)에서 인용
(http://www.ozum.co.kr/left_board/faq.asp?tbl=faq&category=&keyword=&select=3&key=&page=6)
5.요줌을 마시고 아내의 당뇨병과 나의 암을 극복하다...
내 아내는 전에 십이지장 궤양을 앓은 적이 있으며 보통의 여자들 처럼 요통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그 밖에는 특별한 병이 없이 아주 건강했다.
그런데2년 전 봄부터 갑자기 살이 빠지기 시작해서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더니 검사 결과
당뇨병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그 후 아내는 의사로부터 식사 요법을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것은 먹어서는 안된다.몇g만 먹어야 한다는 등 제안이 어찌나 심한지 여간 신경 쓰이고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런 아내가 너무 가엽고 안스러워서.
"일일이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거야.뭐든 먹어 몸이 건강해지는게 더 나을지 몰라 그러니 많이 먹어야 돼"
라고 권했다.
이 말이 얼마나 엄청난 실수였는지 내 말을 따른 아내는 그 다음 검사에서는
혈당치가 대폭 상승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이렇게 고민 하던중.내 친척으로부터
요로법에 관한 애기를 듣게 되었다.
오줌 같은 것으로 난치병인 당뇨병이 치유될 수 있을지 그때는 믿을 수 없었지만.
자신도 요로법으로 당뇨병이 나았다며 시험 삼아 한번 해볼 것을 권유 받았다.
처음에는 아내도 몹시 고민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병원에 가봐도 주사나 약 외에는 더 이상의 치료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요로법을 시작해 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매일 아침 한컵.(약.200ml 씩)의 오줌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약 3개월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마신 뒤에 아내는 설레는 마음으로
병원을 향했다.
검사 결과 혈당치가 크게 내려가 있어서 의사도
"아주머니 식사 요법을 아주 잘 하셨군요" 라며 칭찬 했다는 것이다.
의사는 식사 요법 때문이라고 생각 했지만 나와 아내는 식사 요법 쪽은 그다지
신경쓰는 편이 아니였으며 꾸준히 마셔 온 요로법 덕택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내 애기를 해보겠다.
나도 원래는 아주 건강한 편이어서 이제껏 병원에 가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러나 몇년 전 암에 걸려 벌써 일곱 번이나 수술을 받았다.
더욱이.엑스레이_선 검사 결과 폐에도 종양과 같은 것이 발견 되었다.
의사가"암은 아니지만 이대로 방치해 두면 위험합니다" 라고 해서 곧바로 오른쪽 폐의
1/3을 잘라 내는 수술을 받았다.
그때의 폐 수술 후 나는 몸이 급격하게 쇠약해져서
전신이 항상 나른하고 다리와 허리에도 통증이 심하게 나타났다.
그런 나를 돌보던 아내가 이번에는 반대로 내게 요로법을 권했다.
사실 내가 마시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옆에서 아내를 지켜 보기에도 오줌을 마신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와 인내심이
필요한 일인 듯 했다.
결쿡은 나도 더 이상의 차도가 없어 요로법을 실시해 보겠다고 마음 먹고
시작한 것이 제작년 봄이 였다.
나는 화장실에 컵 하나를 놓아 두고 매일 아침마다 한 컵씩 받아 마셨다.
요로법을 시작한 지.1주일 지나자 생각탓이었는지 모르지만
몸이 웬지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또 한달쯤 지났을까?..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더니 의사가 말하기를
"검사 결과는 아주 좋읍니다.앞으로도 이런 상태가 계속 된다면 염려하시지 않아도
되겠어요"..했다.
나는 오줌을 마시고 있다는 애기는 하지 않고 그저 고맙다는 인사는
드리고 왔지만 다시 한번 요로법의 효과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 뒤 2년이 지난 현재 아내와나는 피로감이나 나른함 등 자각 증상은 전혀
느끼지 않고 있다.
계속적인 요로법으로 건강을 지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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