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신 궁극적인 목적
(엡 4:1-6)
(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사람이 보기에는 아주 작고 보잘 것 없는 겨자씨지만 그것을 땅에 심어 키우면 나물보다 커서 나무만큼 자라고, 검고 작고 단단한 씨지만 땅에 심어 키우면 둥글고 크고 맛있는 큰 수박이 주렁주렁 달립니다.
바람에 날릴 정도로 가볍고 볼품없는 작은 씨지만 땅에 심겨 싹이 나서 수십 년, 수백 년을 자라면 왕궁의 기둥과 서까래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시작은 미약하지만 나중은 창대하게 하시는 창조의 법칙’입니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이 있다면 죽은 씨를 땅에 심고 물을 주고 싹이 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럴 경우 씨는 더 빨리 썩어 버립니다. 그것도 창조의 법칙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주 하나님은 죽은 씨와 다름이 없는 허물과 죄로 죽은 인생을 살리시고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하나님의 일꾼으로 삼으셔서, 하나님이 계획하신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 이 보다 더 큰 기적과 더 큰 은혜는 없을 것입니다.
알고 보면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아 목사, 장로, 집사, 성도가 된 것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큰 은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에베소서는 본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하나님이 어떻게 구원하셨으며 어떤 복을 주셨으며, 복을 주신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가르쳐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가 믿음이 매우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본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으로
1)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시고,
2)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보혈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게 하시고,
3) 성령으로 도장을 찍어 하나님의 자녀로 확증하여 주시고
4) 예수님의 이름으로 언제든지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시고,
5) 하나님의 가족이 되게 하시고,
6)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뿌리를 박게 하시고,
7) 주님이 피 흘려 값 주고 사신 교회로 인도하여 일꾼이 되게 하신 것들이
모두 다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인 것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입은 사람을 가리켜 포괄적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타락한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께서 불러 주시지 않으면 스스로의 의지로 하나님을 찾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믿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롬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렇다면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필이면 나 같은 사람을 부르신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그 이유를 오늘 성경 본문을 통해서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깨닫게 되면 이제부터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사명을 깨닫게 되고, 설령 돈을 받지 않고 헌금을 드려도, 대접을 받지 못하고 고난을 받아도 아깝다거나 후회스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헌신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에베소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전반부(1-3장)에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깨닫고 그것을 잘 믿어야 하는 바람직한 믿음에 대해서 가르쳐 주며, 후반부(4-6장)에서는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바람직한 삶이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를 깊이 묵상하고 순종하여 실천하게 되면 좋은 믿음과 더불어 좋은 삶을 사는 영육 간에 건강한 믿음을 소유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에베소서 후반부를 시작하는 오늘 성경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실천하는 건강한 믿음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 부르심을 받은 자의 성품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바울 사도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사람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지 않고 구원을 얻거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지 않고 하나님의 일꾼이 된 사람이 없습니다.
(롬 1: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고전 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딤후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르심은 복중에 복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엡 4:1-3) (1)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여기서 ‘부르심’이라는 말씀은 어떤 사람에게 이름을 부여하고 그 이름을 부르거나, 잔치에 초대하거나, 법정에 소환을 하는 것을 뜻하는 말로 신학적으로는 흔히 ‘소명’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시면서 제일 먼저 원하시는 것은 내면적인 성품의 변화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예배를 드리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선한 일을 하기 전에 제일 먼저 성품이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는 아름다운 성품으로 변화되기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에서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이 충돌하고 갈등한 근본 원인은 예수님은 내면적인 성품을 중요시하신 반면에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는 외형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리새인들의 가장 큰 문제인 외식입니다.
(눅 6:45)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오늘 성경에서도 동일한 맥락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내적인 성품에 변화가 있어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엡 4: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부패한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명예심에 사로잡혀 항상 남보다 자기가 높아지려는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겸손한 성품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빌 2: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당시 에베소 지역과 같은 이방 사람들은 겸손을 매우 경시하였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의 내적인 성품 가운데 첫 번째 덕목을 겸손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바울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변화된 것 중에 제일 첫 번째가 교만이었습니다. 교만이 하늘까지 치솟았던 사람이 겸손한 사람으로 변화된 것을 그의 이름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사울이라는 이름은 크다는 뜻이었다면, 그리스도를 만나 새로 지은 바울이라는 이름은 작다는 뜻입니다.
인간이 범죄하고 타락하게 된 근본 원인은 배가 고파서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으로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처럼 높아지기 위해서였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본래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의 모습으로 마구간에서 태어나시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까지 우리에게 본보여 주신 것은 겸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예수님의 성품을 닮고 배우고 본받는 것입니다.
(마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이 제일 먼저 갖추어야 할 것은 그리스도를 위해 무슨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도 바울처럼 예수님에게 겸손한 마음으로 본받고 배워 우리의 내면적인 성품으로 변화될 때 비로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처럼 그 내적인 성품이 곧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과 서로 용납할 수 있는 마음을 다 포함하는 넉넉한 성품의 사람으로 변화되어지는 것입니다.
2. 부르심을 받은 자의 삶
오늘 성경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일은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엡 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여기서 ‘힘써 지키라’는 말씀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열심을 내어 유의하고 관찰과 시험하고 기다리고 조심하고 경계하고 지키고 따르라는 현재 진행형 동분사입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먼저 내면적인 성품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지를 본보여 주신 모델일 뿐 아니라, 또한 무슨 일에 힘써야 할 것인지 본보여 주신 외형적인 사역의 모델이기도 합니다.
물론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좋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좋은 본을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에 어느 선생이나 도덕군자도 흉내 낼 수 없는 큰일을 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사역에서 십자가는 사역의 근본이요 핵심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궁극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심을 받은 인간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을 뿐 아니라 인간들 간에도 원수를 맺으며 서로 경쟁하고 갈등하고 불화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인간들을 화해시키고 사랑으로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롬 5: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엡 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예수님은 당신 혼자서만 화목하게 하는 일을 하기를 원치 않으시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겸손하고 온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본받는 자들을 통해서 예수님처럼 화목하게 하는 일을 하고자 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어떤 직책이나 직분을 받았다면 그 궁극적인 목적은 일을 잘하고 못하고 많이 하고 적게 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통해서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고 사람들끼리 서로 화목하게 하는 일을 주선하라고 주신 직분이라는 것입니다.
(고후 5:18, 19)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물론 이론적으로는 그럴듯하고 또한 필요한 일이지만 어떻게 하는 것이, 어떻게 해야만 화목하게 하는 피스메이커가 될 수 있을까요? 그에 대한 구체적인 답이 바로 오늘 성경 말씀인 것입니다.
(엡 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것처럼 먼저 내면적인 성품에 변화가 성령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 마음 속에 일어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엡 4: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이는 결코 실천 불가능한 말장난이 아니라 매우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것임에 대해서 누군가 이렇게 해석을 하였습니다.
1) 온유는 영혼의 가장 훌륭한 기질로서 다른 사람들을 성내지 않게 만들며 또한 온유한 사람 자신도 쉽게 성내지 아니한다.
2) 오래 참음이란 자신이 받은 해를 보복하려고 함 없이 인내로 견디는 것을 말한다. 3)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라. 가장 훌륭한 그리스도인은 서로 서로를 가장 훌륭한 사람으로 여기며 다른 사람을 고무시켜 줄지언정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 가운데서 스스로 용납하기 어려운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만일 다른 사람 가운데서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운 것을 발견했을지라도 그것을 지나치게 생각하지 말고 마치 자신의 약점과 허물을 관대하게 용납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을 용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것들 없이는 일치란 도저히 있을 수 없다. 그 첫 단계가 겸손으로 교만은 화평을 깨뜨리며 온갖 해를 가져온다면 겸손과 온유는 화평과 일치를 가져다준다. 더욱 더 낮아진 마음이 될수록 더욱 더 하나 된 마음이 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의 가정의 벽걸이에, 교회 지붕 꼭대기와 강대상에, 성도들의 목걸이에 예수님의 겸손과 화해와 일치의 상징인 십자가 형상은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면적으로 파고 들어가면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도 가정에도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교회와 총회와 사회와 국가 안에서도 겸손은 찾아 볼 수 없고 그 대신 교만과 이기심과 시기와 비방과 갈등과 분쟁만이 가득합니다.
오늘 성경은 그 이유가 무엇이며 그 대안이 무엇인지를 아울러 깨우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는 바리새인처럼 이론만을 내세우는 형식적인 믿음을 가지지 말고 오늘 성경이 가르치는 것처럼 먼저 내면적인 성품과 삶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삶을 본받는 변화가 일어나야 하며 하나님이 그것을 위해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셨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물론 그것이 우리의 의지로 될 수 없음을 주님이 아시고 평안의 매는 줄인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만일 성령을 받은 사람이요, 성령 충만한 사람이라면 무엇보다 힘써야 할 것은 가정과 교회와 이웃과 민족이 하나가 되게 하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힘만 드는 피곤한 일이 아니라 순종하고 실천하는 자에게 과거에 미처 경험해 보지 못한 행복과 기쁨을 맛보게 하는 복된 일인 것입니다.
3. 부르심을 받은 자의 선물
부모가 자식에게 무엇을 요구할 때는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이고, 할 수 있도록 해주면서 요구합니다. 스승이 제자에게 내주는 숙제는 풀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풀 수 있는 문제를 숙제로 내줍니다.
하물며 사랑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들에게 무엇인가를 명령하고 요구하시는 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이요, 할 수 있게 하시는 것이라는 긍정적인 믿음으로 순종을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 것인가에 대해서 삼년 동안 가르침과 본을 보이신 후에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물론 땅위에는 예수님이 남겨 두신 제자들과 더불어 그들이 해야 할 산적한 과제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람을 구원하는 일이요, 교회를 세우는 일이요, 그 교회를 부흥시키는 일이요, 교회를 통해서 믿지 않는 사람들을 불러내어 구원하시는 일이요,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는 일입니다.
물론 사람들이 볼 때는 예수님도 마무리를 못하신 일을 어떻게 무능력한 제자들이 해낼 수 있을까?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일만 남겨두고 가신 것이 아니라 그 일을 잘 처리하여 칭찬과 상급과 보람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선물을 주고 가셨다고 오늘 성경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엡 4:7-8) (7)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8)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여기서 각 사람이란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이 우리 모두를 뜻하는 말씀이고, 그리스도의 선물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좋은 은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좋은 관계 사이에서 기쁜 마음으로 선물을 주고받습니다.
주님이 부활 승천하시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우리에게 주신 선물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시면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선물을 약속하셨을 뿐 아니라 오늘 성경 말씀에도 성령을 선물을 보내어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오순절 성령을 체험한 후에 성령의 역사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외친 말이 성령의 선물이었습니다.
(행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조차 성령의 선물이 마치 아브라함의 자손인 유대인들에게만 국한 되는 줄 알았습니다.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초대받아 갔을 때 그의 설교를 들은 고넬료의 온 가족이 성령을 받는 것을 보고 내심으로 놀라면서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행 11:17)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베드로만이 아니라 이방인 고넬료에게도 성령을 선물로 주신 주님이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왜 안주시겠습니까? 이미 주셨으나 세상 것들에 가려서 그것을 귀히 여기지 않고 선물로 여기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2) 교회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우리가 식당에서 밥을 사먹을 수 있고, 여관에서 잠을 잘 수 있고, 세탁소에서 옷을 빨 수 있다고 가정이 필요 없다고 말할 사람이 있습니까?
그처럼 가정에서도 성경을 읽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도 짬을 내어 성경을 읽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구역에서 모여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교회가 필요 없다고 말할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의 육신이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서 성인이 된 것처럼, 피곤한 직장 생활에서 퇴근하여 가정에 돌아가 휴식과 재 충천하는 것처럼, 가족들 간에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도 교회가 있어야만 믿음이 자라고 성도의 교제가 있고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신앙의 모태와도 같은 것입니다. 주님이 지상에 그 같은 교회를 성령 강림을 통해 세워주신 것은 무엇보다 가장 큰 선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출석하는 성도들에게 지속적으로 은혜를 공급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교회에 나와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새 힘을 공급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주님이 성령님과 더불어 주신 큰 선물입니다.
3) 직분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교회는 생명이 없는 건물이 아니라 생명을 가진 유기체로 시간이 지나면 점진적으로 자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교회를 통해서 온 세상에 복음이 확산되어지게 하는 것이며 그것을 가리켜 교회의 부흥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주님의 몸된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교회 안에 여러 직분자를 세우셨는데 그 직분이 바로 주님의 선물이라고 성경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엡 3:7)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오늘 성경이 기록될 당시 주님이 교회 안에서 선물로 주신 직분들이 오늘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엡 4: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주님이 교회에 선물로 주신 직분은 크게 두 종류의 나눌 수 있는데 당시는 필요했으나 지금은 필요가 없는 특별한 직분과 또 하나는 여전히 지금도 교회 안에서 반드시 필요한 직분입니다.
1) 먼저 특수한 직분으로 사도와 선지자입니다.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이적과 교훈을 목격해 왔던 자들로 그들은 복음을 널리 전파하기 위해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로 주로 신약을 기록하였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구약 성경을 선포하고 기록하는 일을 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신구약 성경 66권이 정경으로 확정된 후에는 더 이상의 선지자와 사도들이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2) 보편적인 직분인 복음 전도자와 목사와 교사입니다. 복음 전도자란 사도들이 임명한 사람들로 전도 여행에 있어서 사도들의 사역을 도와주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선교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외에도 목사와 교사가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이 두 명칭이 각기 다른 사람이 아니라 동일한 직분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사도와 선지자들에 의해 기록된 성경을 목사들이 가르치는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점차 세월이 지나고 복음이 확산되고 교회들이 세워지면서 교회 안에 목사 장로 집사 권사라는 직분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일을 통해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부흥시키게 하기 위함입니다.
(엡 4: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여기서 ‘성도’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을 뜻하며 ‘온전하게 하여’라는 말은 무엇을 위해 준비하고 갖추고 회복시킨다는 뜻이고, ‘봉사의 일’이란 남을 섬기는 일로 본래의 의미는 식사 시중을 드는 웨이터라는 뜻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주님이 피 흘려 값 주고 사신 몸된 교회가 세워지고 부흥하게 되고 확산되어 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온전히 시행하여 크게 부흥한 대표적인 교회가 바로 초대 예루살렘 교회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 가서는 가정교회 식구들이 모여 떡을 떼는 공동 식사와 친교가 지속되어가면서 교회는 폭발적인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행 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행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행 20:7)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교회 안에 하나님께 선물을 받은 직분자들이 그리고 성도들이 개인 구원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이웃을 섬기고 봉사하는 일을 통해서 결과적으로 주님이 피 흘려 값 주고 사신 몸된 교회가 건강하고 튼튼하게 세워졌습니다. 그 교회들을 통해서 땅 끝까지 복음이 증거 되고 확산되어지게 하려고 주님이 성령을 보내시고 교회를 세우시고 직분자들을 세우셨다는 말씀을 깊이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예화
저는 지난 주간에 주뜨란 소그룹 회원들과 뜻을 같이 하는 성도들이 지난 주간에 채 열명도 되지 않는 소외된 농촌 교회에 가서 축호 전도 팀을 만들고 봉사 전도팀을 만들어 밭에 가서 김을 매고 도배를 해주고, 미용 봉사팀이 수고를 하고, 교정팀을 통해서 수십년 동안 걷지 못했던 환자가 자기 발로 일어나 걷는 기적 같은 역사가 일어났으며 마지막 날에는 마을 이장을 비롯하여 심지어 불교 회장을 포함하여 유사 이래로 그렇게 모인 적이 없을 정도로 90 여명의 주민들이 모여 전도 집회를 가졌다는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이름들이 하늘에 기록되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눅 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우리 교회만이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라 시골 농촌 교회도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만 부흥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시골 농촌 교회도 부흥하게 하는 것이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사명 중에 하나임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교회가 꿈꾸는 평신도를 리더가 되게 하는 전형적인 소그룹 셀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허물과 죄로 죽은 나를 구원하신 것만도 감사한데 직분까지 선물로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몸된 교회와 성도들을 통해서 계획하신 일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하시기 위해 나름대로 각 사람에게 직분과 직책을 부여하실 때 간혹 어떤 사람들은 세상일이나 직분처럼 높고 낮음이나 우열을 따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에는 우열이나 고하가 있을 수 없고 다 소중한 것입니다. 마치 몸의 지체처럼 받은 은사와 역할이 다르지만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서로존중하고 협력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빌 2:3)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직분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소홀이 여기거나 거추장스럽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직분은 세상에서 실력이나 재산이나 지위가 있다고 주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은혜와 축복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고 직분을 받아 주님의 몸된 교회 안에서 섬김과 봉사로 교회를 부흥시킨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주님 앞에서 상을 받게 되기 때문에 직분이 선물 중에 선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게 주신 직분을 통해 주님의 몸된 교회를 부흥시키기 위해 무엇보다 내적으로는 겸손한 성품으로 무장하고, 외형적으로는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일에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직분을 소중히 여기고 남을 섬기고 봉사함으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더욱 건강하게 부흥시키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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