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교회 부흥의 성장판(成長板)/(엡 4:13-16)

미션(cmc) 2009. 8. 27. 09:48

교회 부흥의 성장판(成長板)
(엡 4:13-16)

(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엡 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 4: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최대 관심사 중에 하나는 공부를 잘하는 것만이 아니라 키와 몸무게는 물론 정신력까지 나이에 걸맞게 자라는 것입니다. 만일 나이보다 뒤쳐질 때 부모는 큰 근심과 걱정을 하게 됩니다.
 어린아이는 태어날 때 사지백체의 뼈 끝 부분인 부드러운 연골이 세포분열을 거듭하면서 뼈가 두꺼워지고 길어지는데 그것을 성장판이라고 합니다.
 어린아이는 생후 2개월이 되면 뼈의 연골이 중앙부로부터 단단해지는 골화가 일어난다고 합니다. 모든 뼈의 끝부분인 성장판이 길이와 부피가 아울러 성장하면서 아이가 점차 자라게 되는데 사춘기가 지나 이년 정도면 성장판이 닫히게 되는데 남자는 25-28세, 여자는 23-24살까지 대략 10 cm  안팎으로 완만한 성장을 하다가 멈춘다고 합니다. 그처럼 성장판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몸만이 아니라 교회를 주님의 몸이라고 말씀한 것처럼 교회도 생명을 가진 유기체로 점점 자라게 하셨는데, 과연 주님의 몸된 교회를 부흥하고 성장하게 하는 성장판은 무엇인지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서 깨달아 우리 모두 교회를 부흥시키는 성장판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 교회와 성도의 관계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를 하나님이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허물과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시고, 성령으로 우리를 불러 하나님의 자녀로 인을 쳐 주신 이유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를 믿는 우리가 교회를 다니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시고,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시고, 사명을 주시고, 직분을 선물로 주셔서 교회를 섬기게 하신 것은 믿음이 온전치 못한 사람을 봉사하고 섬기게 하시고 그로 말미암아 주님의 몸된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엡 4: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부흥하고 성장하는 교회의 공통점은 끊임이 없이 새로운 일꾼들이 키워지고, 세워지고, 보내지는 교회임을 교회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제자를 택하시고 부르시고 훈련시키셔서 마침내 세상으로 파송하신 것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이 제자를 키워 그들을 통해서 교회를 세우게 하시고 교회를 통해서 만민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여 온 세상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존재이유요, 교회만이 가지는 특별한 사명인 것입니다. 교회가 기필코 부흥하고 성장해야 하는 이유도 자기 교회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바로 이 때문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건물은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건물은 한 번 세워진 후에 지속적으로 관리를 하지 않으면 퇴색되고 낡아집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생명을 가진 유기체라는 말은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성령을 마음에 모신 성도들이 곧 교회입니다.
(고전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이는 어느 특정인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들이 다 성령의 전이요, 교회의 실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부흥은 건물을 크게 짓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성도들의 신앙이 부흥하는 것이 교회가 부흥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서도 그와 같은 원리를 따라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인 성도들의 영적 성장이 곧 교회의 부흥이기 때문에 교회 부흥의 성장판은 곧 우리 성도들이라는 말입니다.
 백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의 육신 중에 가장 중요한 시절이 장가가고 시집가고 출세하고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 시절 성장판이 건강하여 잘 자라주는 것이며 만일 그렇지 못할 때 장애자가 되어 자신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만들게 됩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의 부흥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인들이 많이 모이는 것도,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도 다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회 부흥의 성장판인 성도들 개개인의 믿음이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이 곧 주님의 몸된 교회의 부흥이라는 점은 아무리 강조를 할지라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엡 4: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여기서 성도를 ‘온전하게 한다’는 말이 곧 미성숙한 성도들의 신앙을 잘 갖추도록 섬김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세워지게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체인 성도들의 믿음이 성장해야 몸된 교회도  성장하며, 그와 더불어 지체된 성도들의 믿음도 성장하게 되는 상호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생각하기를 자신이 교회를 부흥시키는 성장판이라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교회가 자신의 믿음을 자라게 해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믿음이 자라지 않는 것이 자신이 아니라 교회의 책임인 것처럼 오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코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지상 교회는 성도들이 모인 공동체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공동체를 구성하는 성도들의 개개인의 믿음이 교회의 건강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성도들은 교회를 구성하는 영적인 세포이며 성장판이기 때문에 성도들의 믿음이 건강하지 못하면 교회의 성장과 부흥도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우리의 죄를 대신 속죄하시기 위해 죄없는 몸으로 태어나신 것 외에는 보통 아기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태어나 점진적으로 성장하셨음을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눅 2:52)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여기서 ‘자라가며’라는 말(prokovptw)은 일순간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의미하는 미완료 동사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시면서 지상에 몸된 교회를 세우신 기독교의 출발은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수 많은 이교도에 비해 뒤늦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폭발적으로 부흥하고 성장하게 하시지 않고 어린아기의 성장처럼 주님의 몸된 교회도 점진적으로 성장하게 하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지상 교회는 성도들이 모인 공동체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공동체를 구성하는 성도들의 개개인의 믿음이 교회의 건강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성도들은 교회를 구성하는 영적인 세포이며 성장판이기 때문에 성도들의 믿음이 건강하지 못하면 교회의 성장과 부흥도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인의 신앙 성장 목표
 사람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성인으로 태어나지 않고 어린아이로 태어나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로 본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기 때문에 그 처음 상태는 영적인 어린아이 상태였습니다.
 어린아이를 보십시오. 하루 종일 24 시간 자리에 누웠던 어린아기가 자라면 네발로 엎드려 기어 다니고,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비틀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발걸음을 옮기게 되고, 점점 자라서 걷고 뛰면서 소년이 청년으로 점차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린아이의 성장 목표는 자라서 어른이 되는 것이라면 허물과 죄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영적인 어린아이와 같은 우리의 영적 성장 목표는 어디까지이며 성경에서 누가 영적 성장의 모델입니까?
 오늘 성경 말씀은 교회 안에 두 종류의 신자가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는 영적인 어린아이요 또 하나는 장성한 그리스도인입니다.

 1) 영적인 어린아이
 (엡 4: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어린 아이’라는 말은 한 살에서 열 살 미만의 어린아이를 가리키는 말로 젖먹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린아이는 연약하고 서투르고 미숙하고 스스로의 지혜로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때가 아니기 때문에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끌려가기 쉬운 연령대입니다.
 물론 오늘 성경 본문의 어린아이는 육신적인 어린이를 뜻하는 말이 아니라 영적으로  분별력이 없는 미숙한 상태로 거짓 선지자나 이단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이 흔들리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아무리 성경을 잘 알고 기도를 열심히 하고 교회를 오래 다녔기 때문에 스스로는 잘 믿는 줄 알고, 분별력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영적인 어린아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영적 상태는 미성숙한 어린아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게 하는 이단에 휩쓸리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어린아이에게는 성장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모인 교회는 부흥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교회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분열시키는 장애물이 됩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 다른 사람을 따라다니는 어린아이 같은 짓을 하거나 거짓이 진실처럼 보이는 것에 속아서 자신의 믿음을 바꾸는 짓을 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언제나 진리를 따라 진실하게 말하고 행동하고 생활하여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더욱더 닮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지휘에 따라 온몸이 서로 완전히 어울려서 각 지체는 각기 다른 지체를 도와야 합니다. 그러면 온몸이 건강하게 성장하여 사랑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2) 성숙한 그리스도인
 성경에서 흔히 믿음 장이라고 일컫는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의 이름이 거명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히 11:4) “믿음으로 아벨은 (히 11:5) “믿음으로 에녹은 (히 11:7) “믿음으로 노아는 (히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히 11:21) “믿음으로 야곱은 (히 11:22) “믿음으로 요셉은 (히 11:24) “믿음으로 모세는 (히 11: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히 11:39)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그 중에 한 사람 정도만큼 나의 믿음이 좋다면 얼마나 감사할까? 하는 생각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다가 때로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요셉이, 모세가, 에스더가, 다니엘이, 베드로나 바울 사도가 우리의 신앙 성장의 모델이 될 때가 있습니다.
 물론 그 중에 어느 누구를 모델로 삼을 지라도 실상 오늘의 내가 그러한 믿음을 소유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 본문은 그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 성장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그 목표는 그리스도 예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예수님의 어린 시절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완전하시고 충만한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이 우리 신앙 성장의 목표라는 것입니다.
(엡 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여기서 그에게까지 라는 말은 우리의 믿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야 한다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자라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범사에 완전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 신앙 성장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지 않을 경우 자칫하면 우리가 영적인 어린아이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엡 4: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어떻게 생각하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라는 말이 그리스도인의 신앙 수준을 그만큼 높였다는 것에 대해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 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라는 의구심입니다. 어떻게 전적으로 타락했던 내가  겨우 예수를 믿는다고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하시고 충만한 상태에 이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은 당연한 것입니다.
 위대한 등산가의 목표는 뒷동산이 아니라 히말라야 최고봉인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성장의 목표를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삼고 그 예수님의 언행심사를 날마다 듣고 배워 닮아가는 삶을 사는 중에 세월이 지나게 되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힘으로 가능하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지향해야 할 신앙 목표를 분명히 하라는 말씀이고, 그것을 이룰 수 있도록 도우시는 이도 하나님이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흔히 우리를 크리스천이라고 부르는 것은 문자 그대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이라는 뜻입니다.
(롬 8:29)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또한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 아들이 많은 형제 가운데 맏아들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그 아들의 '형상'이 바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모델로 삼으셨던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이며, 오늘 성경에 우리들의 신앙 성장 목표인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 인 것입니다.
 이는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는 다는 말은 교회만 출석하는 것이 아니라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상실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사람들이 주님의 몸된 교회에 모여 서로 연합할 때 교회도 자연스럽게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교회 부흥의 영적 세포와 성장판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을 신앙성장의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3. 성장의 비결 세 가지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말씀들을 크게 둘로 나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 무엇을 하라’는 말씀과 ‘무엇 무엇은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자식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부모는 그 자식에게 해가 되는 것이나 자식이 할 수 없는 불가능한 것을 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면 하물며 부모보다 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시고, 독생자의 피로 구원하신 성도들에게 해가 되거나, 할 수 없는 무리한 것을 요구를 하실  이가 없을 것입니다.
 만일 오늘 성경 본문에서 우리
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거나, 그리스도에게 까지 자라라는 말씀을 우리가 실천 불가능한 일이라면 하나님이 왜 무리하게 그것을 요구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잣대는 나의 생각이나 가능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가능성을 더 신뢰하는 마음을 가지고 성경을 이해하려는 자세가 요구됩니다.
 우리가 그러한 마음으로 성경 말씀을 읽노라면 하나님께서 다른 한 편에 불가능해 보이는 그 말씀을 우리가 이룰 수 있도록 대안과 길을 마련해 놓으셨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라고만 명령하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음을 오늘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1)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라
 (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많은 종교들이 있으며, 어느 종교이든지 간에 믿음을 중요한 요소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좋다는 말이 다 똑같은 의미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종교가 나름대로 그 종교가 어떤 종교인가를 가르치는 경전과 그 종교인들만이 가지고 있는 나름대로의 종교 의식이 있습니다.
 그 중에 대부분의 종교는 형식을 중요하게 여기고 그 형식에 충실한 사람을 가리켜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 말씀이 가르치는 우리 기독교의 믿음은 종교 의식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에 대해서 바로 아는 일에 어느 특정인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다 하나가 되어 온전한 신앙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멀리서 보았을 때 교회에 대해서 의문을 갖고 있었던 것 중에 하나는  왜 동일하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믿으며 동일한 성경을 믿으면서도 교파가 다른 이유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각 교파마다 신학이 다른 것이며 신학이 다르게 되면 교파가 하나가 될 수 없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각 사람마다 교회를 출석하게 된 동기와 예수를 믿게 된 동기가 제 각기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생활을 하는 동안에 동일한 성경 말씀을 읽고 듣고 가르침을 받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배움으로써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될 때 교회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2)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실천하라
 (엡 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어린아이가 자라는 증거는 본능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가르침을 통해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더 나아가서 행동이 달라지는 것을 통해서 아이의 성장 여부를 진단할 수 있습니다.
 어린아기의 성장은 하루 종일 누워만 있던 아이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엎치고, 기고, 일어서고, 걸음마를 하고, 걷고, 달음질하는 변화를 통해서 확연하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영적인 어린아이 상태가 아니라 점차 자라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렀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성경적으로 이론적으로 지식적으로 많이 알고 있다는 것과 더 나아가서 성경 말씀대로 삶이 점차 사랑 안에서 진실을 말하고 행동하는 변화를 통해서 입증되어 집니다.
 그 이유는 성경은 우리의 신앙 목표인 그리스도 예수께서 무엇을 가르치셨는가와 더불어 어떻게 사셨는가? 하는 삶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를 바로 알게 되면 그리스도의 가르침인 진리와 그리스도의 삶인 사랑을 본받게 되면서 점차 우리의 삶에도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성경에서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이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영적인 성숙인 것입니다.

 3) 서로 연합하고 은사대로 일하라
(엡 4: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우리가 믿는 기독교와 타종교의 차별성은 우리가 주를 위해서 무엇을 하기 전에 먼저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해주셨다는 것과 그래야만 우리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주님의 몸이라고 성경이 가르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마치 몸에 있어서 사지백체 마디마디가 서로 연결되어 머리의 신경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처럼 교회도 지체인 성도들간에 서로 연합하되 머리되신 예수님에게 은혜를 받아야만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고 성숙한 지체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은 남을 잘 가르치거나, 설교를 잘할 수 있거나, 찬양을 잘 부를 수 있거나 다른 사람을 인도하여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게 하거나, 목자처럼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고 돌보며 위로하는 특별한 은사를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머리되신 주님에게 그와 같은 은혜를 받음으로 예수를 믿게 되고 구원을 얻게 되었다면 이제 지체된 우리는 서로 연합하여 돕고 섬기고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은사와 책임을 성실하게 이행할 때 본인 자신의 믿음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되고 그가 속한 교회도 온전히 자라게 되는 성장판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개체가 아니라 몸과 같은 연합체이기 때문에 몸에 붙으면 살 뿐 아니라 아름답게 성장하지만 몸에 떨어지게 되면 본인의 믿음이 아무리 좋다고 할지라도 마치 줄기에서 베임을 당한 장미 넝쿨처럼 가지고 꽃도 곧 시들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작은 한 알의 겨자씨처럼 교회의 시작이 매우 미미하였음에도 오늘에 와서는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로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게 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더불어 눈에 보이는 성도들이 교회 부흥의 성장판이 되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간절히 소원하는 교회의 부흥은 하늘에서 저절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 부흥의 성장판인 성도들의 신앙 성장과 비례함을 오늘 성경을 통해서 확인하면서 오늘 나 자신부터 교회 부흥의 성장판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육신의 몸을 자라게 하는 것이 성장판이라면, 주님의 몸된 교회를 건강하게 자라게 하는 성장판은 성도들입니다. 그러므로 지체인 성도들의 믿음이 성장해야 몸된 교회도  성장하며, 그와 더불어 지체된 성도들의 믿음도 성장하게 되는 상호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자신이 교회를 부흥시키는 성장판이라는 생각보다는, 교회가 자신의 믿음을 자라게 해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믿음이 자라지 않는 것이 교회의 책임인 것처럼 오해하기가 쉽습니다.
 결코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지상 교회는 성도들이 모인 공동체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공동체를 구성하는 성도들의 개개인의 믿음이 교회의 건강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성도들은 교회를 구성하는 영적인 세포이며 성장판이기 때문에 성도들의 믿음이 건강하지 못하면 교회의 성장과 부흥도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주님의 몸된 교회 부흥의 성장판입니다. 내가 자라기위해서 무엇보다 먼저 그리스도를 배우고, 그리스도를 닮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살기를 지속적으로 힘쓸 때 어느 사이에 나의 믿음만이 아니라 내가 몸담고 있는 몸된 교회가 자라고, 나도 세움을 받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들에게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주신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우리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위해서 더 열심히 일할 수 있게 하여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힘있고 성숙하게 하는 교회 부흥의 성장판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성장의 축복이 오늘 말씀을 읽고 듣고 배우는 모든 성도들에게 함께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마침내 우리 모두가 자신의 구원뿐 아니라 구주이신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믿음으로 하나가 되어 주 안에서 완전히 성숙한 인간이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완전히 충만한 상태에까지 이르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간절히 소원하는 교회의 부흥은 하늘에서 저절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 부흥의 성장판인 성도들의 신앙 성장과 비례함을 오늘 성경을 통해서 확인하면서 오늘 나 자신부터 교회 부흥의 성장판이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