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 상/하나님이 그들과 만났을때

민족의 생명을 위한 결단…부림절의 주인공으로 /49 에스더]

미션(cmc) 2009. 10. 31. 20:53

[하나님이 그들과 만났을 때 49 에스더]

에스더는 사촌 오라비 모르드개의 권고를 듣고 삼일 밤낮을 동족과 함께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한 뒤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출입이 금지된 대전으로, 그것도 집무 중의 왕에게 나아갔다.

   
BC 930년경 이스라엘 제국이 남북으로 쪼개졌을 때 남조 유다에는 세 지파가 남았다. 다윗 왕조를 낳은 유다 지파 및 그들과 운명을 같이하는 베냐민 지파(왕상 11:36, 12:21), 그리고 북조 여로보암 왕의 금송아지 우상숭배정책을 피하여 월남(越南)한 레위 지파였다(출 32:4, 26-29, 왕상 12:28-32). 그런데 유다 왕국이 망하고 바벨론 포로가 된 세 지파가 BC 538년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갔을 때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그들의 지도자였으므로 자연히 유다 지파와 레위 지파가 주축을 이룬다(스 3:2,8). 그렇다면 페르샤 땅에 남은 베냐민 지파와 기타 유대인들을 이끈 지도자는 누구였을까? 이에 대한 의문을 다소 해소해주는 기록이 에스더서이다.


에스더는 유다 식 본명이 하닷사이다(에 2:7). 도금양(桃金孃)을 의미하는 하닷사라는 이름 뜻 그대로 그녀는 금빛 복숭아 같이 빛나고 아름다운 처녀였다. 그래서 BC 486년에 즉위한 아하수에로 왕이 좋은 해로 손꼽히는 통치 7년에 맞이한 새 왕비가 바로 하닷사인 에스더였다(에 2:16-18). 이때부터 망국의 백성 유대 인들은 베냐민 출신 왕비 에스더를 중심으로 단결할 수 있었다. 여기에 일조한 것이 에스더의 가문이다. 일찍이 조실부모한 에스더가 그녀의 후견인인 사촌 오라비 모르드개 집에서 자라났는데(에 2:7) 그 가문이 바로 베냐민 출신 사울 왕을 낳은 아비 기스의 직계 후손이었다(에 2:5). 페르샤에 남은 유대 인들의 대부분이 베냐민 지파인데 그들의 지파에서 그것도 옛 베냐민 왕조의 후손 가문에서 페르샤 왕비가 탄생했으므로 자연히 에스더는 페르샤 이름 그대로 유대 인들의 스타가 된 것이다.


에스더는 가문과 왕비의 직위만으로 유대 인들의 정신적 지도자가 된 것이 아니었다. 베냐민 족속과는 조상 때부터 원수인 아말렉 족속 아각 왕의(출 17:16, 삼상 15:1-9) 직계 후손인 하만이(에 3:1) 신임 재상이 되자 그는 마치 히틀러처럼 베냐민 왕가의 후손인 모르드개와 페르샤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유대 인들을 멸절할 계획을 은밀히 추진했다(에 3:6-15). 이를 사전에 알게 된 에스더는 사촌 오라비 모르드개의 권고를 듣고 사흘 밤낮을 동족과 금식하며 기도했으며(에 4:16),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출입이 금지된 대전으로 그것도 집무 중의 왕에게 나아갔다(에 5:2). 에스더는 자신과 민족의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에 7:3)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바라본 것이다. 하나님 앞에선 에스더, 생명을 하나님께 맡기고 죽음을 무릅쓰고 대전으로 들어가는 에스더의 모습이 바로 지도자의 모습이었다.


에스더의 진술로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된 아하수에로 왕은 자신을 속인 하만 재상을 처형하고 전국의 유대 인들에게 자위권(自衛權)을 행사할 수 있도록 조서를 내렸다. 그 결과 하만이 제비뽑아 결정한 거사일이(에 3:7, 13) 오히려 반(反)유대주의자들의 멸망일이 되고 말았다(에 9:1-10). 이때부터 유대 인들은 12월 14일과 15일을 부림절로 지킨다(에 9:26-28). 그 의미는 유대 인이 대적의 손에서 벗어나 평안함을 얻었으며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었다는 것이다(에 9:21).
하나님이 이방의 역사까지 주장하시면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부림절이기에 이 날의 잔치 모습은 하나님 나라의 승리와 즐거움을 표현한다. 이 날의 주인공이 바로 에스더이다(에 9:32). 그리고 에스더처럼 세상 지위나 명예에 안주하지 아니하고 동족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매달리는 자들이 오늘도 부림절의 주인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