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 상/하나님이 그들과 만났을때

하나님의 백성을 도움으로써 복을 얻다 ▶(51)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 왕 ]

미션(cmc) 2009. 11. 23. 09:03

[ 하나님이 그들과 만났을 때▶(51)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 왕 ]  

   
아하수에로 왕(재위 BC486-465)은 다리오1세(재위 BC 521-486)의 아들이다. 다리오1세는 반정에 성공한 귀족들이 옹립한 왕이었다. 성격이 원만하고 온건하여 선례를 좇아 무난하게 통치했지만 아하수에로 왕은 달랐다. 정복전쟁을 일으켜 성공함으로써 권신과 귀족들을 억누르고 백성 위에 군림하고자 하였다. 즉위하자마자 그리스 정벌에 나섰으나 두 차례 모두 실패하였다. 헤로도토스의 ‘그리스전사’는 이때를 기록한다. “수많은 전함을 이끌고 쳐들어 온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Xerxes)는 전선까지 미모의 여성을 대동할 정도로 여성편력이 심한 자이다”라고 왕의 특징을 한 마디로 요약하고 있다.


원정 실패가 내부 분열로 이어지지 않도록 그는 귀족과 백성들을 달랬다. 무려 반 년 동안이나 전국 127개 도의 귀족과 방백들을 초청하여 그들을 위무하였으며, 마지막 일주일 동안은 도성 수산의 인민들과 함께 자리했다. 대미를 장식하는 이 날 아하수에로 왕은 바사와 메대의 일곱 방백들에게 자신의 신부 모습을 공개하고자 하였다. 이는 그들을 가장 친한 친구로 여긴다는 표시였다. 하지만 왕후 와스디는 이를 거절했다. 결혼잔치도 아니고, 신랑 친구도 아닌 사람들 앞에 얼굴을 보이는 일은 선례도 없을뿐더러 자신의 순결에 흠집을 내는 일이라 여겼다. 하지만 아하수에로 왕은 권문세가 출신인 왕후가 친정의 위세를 믿고 국왕의 청을 거절함으로써 페르시아의 기둥인 일곱 방백 앞에서 왕의 위신을 추락시킨 행동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아하수에로 왕은 일곱 방백과 공모하여 와스디를 폐위시키고 말았다. 도도한 권문세가 출신 왕비를 폐위시킨 아하수에로 왕은 이제 집안 배경을 보지 않고 왕비를 간택하기로 이때 작심했을 것이다.


4년 후 아하수에로 왕은 즉위 7년째 왕비를 한 사람 더 얻었는데 이때 간택된 처녀가 유대 출신 에스더였다. 아하수에로 왕은 에스더를 사랑했으므로 그 사촌 오라비 모르드개까지 신임하여 대궐의 출입을 통제하는 관리로 등용했다. 모르드개는 왕의 암살을 도모한 두 내시의 음모를 밝혀냈다. 수년 후 이 사실을 궁정일기에서 재삼 발견한 아하수에로 왕은 자신의 생명의 은인인 모르드개를 가까이하게 된다. 그런데 아말렉 출신인 하만이 그 사이 새로 재상이 되었다. 그는 모르드개와 반목하자 반 유대주의 세력을 규합, 전국적으로 유대인을 모두 없앨 음모를 꾸몄다. 하만은 왕에게 자기 족속의 율법을 국법보다 앞세우는 사특한 무리가 있으니 이를 진멸하도록 전권을 요청했다. 아하수에로 왕은 국고를 확충하겠다는 하만의 감언에 내막을 조사하지도 않고 수락한 것이다.


아하수에로 왕 12년(BC 474)에야 왕은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상소를 받고서야 그 진실을 파악하였다. 아하수에로 왕은 제국을 건설한 국조 고레스 왕과 아버지 다리오 왕의 정책, 곧 예루살렘 성전 재건과 유대인들의 하나님 숭배 허용정책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하만을 제거하고 친 유대인 정책을 유지하였다. 하나님은 이런 아하수에로 왕에게 제국의 평안과 든든한 후계체제를 허락하셨고, 아닥사스다1세가(재위 BC 465-424)의 승계는 무리 없이 진행됐다. 아닥사스다 왕도 유대인 제사장 에스라와 유대인 관리 느헤미야를 측근에 두었으며 또 한 차례의 유대인 귀환을 허용하는 등 선왕의 정책을 답습했다.

손진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