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의 속사도들
속사도들(the Apostolic Fathers)은 12제자 이후 1세기부터 2세기까지 활동한 신앙의 위인들이다. 이들은 신약성경과 2세기 후반에 활발하게 사역한 변증가들 사이에 교량 역할을 함으로서 사도들의 신앙을 계승하는 일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이다. 속사도들의 작품들을 통하여 신생교회들의 삶과 사상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또한 교회의 내적인 분열, 유대교와 이교도 사상에서 겪는 갈등 등에 의해서 야기된 문제점들“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은 사도들의 제자들이거나 사도들을 직접 알고 지낸 이들이다.
1. 속사도들의 출현 배경
(1) 사도와 속사도의 정의
1) 사도 : 사도는 A.D. 33-66년까지 복음증거활동을 한 예수그리스도의 개인적인 제자들이다. 그들은 이후 고난과 박해로 인해 사도 요한을 제외한 대부분의 제자들은 순교되었다.(예를 들어 62년 예수님의 형제 안드레가 65년에는 베드로와 바울이 순교)
2) 속사도 : 사도들과 직접접촉이 있었던 자들로 사도시대 이후 최초의 기독교 저술가들을 지칭한다. 엄격한 의미에서 사도는 아니지만 사도들의 가르침을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후세에 전한 사람들로 교회는 이들을 ‘준사도’ 또는 ‘사도교부’라고 칭했다.
(2) 속사도들의 출현 배경
1) 복음전파 : 로마제국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지중해 동부지역으로 전파되었고 특히 안디옥 교회를 중심으로 서부 소아시아, 빌립보, 데살로니가, 고린도 등 여러 지역에 지 교회를 세웠다. 이후 교회의 기초적인 예배 형식과 조직이 구성되면서 교회를 섬기는 전문 사역자들이 필요해지고 직분을 맡은 자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2) 유대인의 폭동 : 2차례의 폭동(A.D. 66-74, 132-135)으로 예루살렘은 완전히 파괴되고 유대교와 기독교의 분리가 시작되었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으나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거역했고 그가 보낸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죽게 만들었으므로 그 결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심판하고 유대인과 이방인 중에서 예수를 믿는 자들을 새로운 이스라엘로 선택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아들이셨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것으로 여겼다. 이에 반해 바리새인들은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이방인이라 간주했다.
3) 교회와 국가문제 : 로마정부가 교회들에게 오직 주님에게만 바칠 수 있는 충성은 황제에게만 할 것을 요구하였지만 이를 거부한 기독교인들은 결국 반역죄를 적용하여 사형과 같은 중벌의 처벌을 당하게 되었다. 이러한 혼란의 시기 속에서 속사도들은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총동원하여 끝까지 신앙을 지키고자 노력하였다.
(3) 속사도들의 역사적 작품들
1672년 프랑스 학자 장 코텔리에(Jean B.Cotelier)가 출간한 책으로 ‘바나바의 편지’, ‘헤르마스의 목자’, ‘클레멘트의 두 편지’, ‘이그나티우스의 7편지’, ‘폴리갑의 편지’, ‘폴리갑의 순교이야기’등 7작품을 수록하고 있으며, 1765년 안드레아스 갈란디(Andreas Gallandi)가 편찬한 ‘고대교부집’의 ‘디오그네투스에의 편지’, ‘파피아스의 단편’, ‘콰드라투스의 단편’ 3작품. 또한 1873년 바이레니우스(Bryennios)가 발견한 클레멘트, 바나바, 그리고 이그나시우스의 서신들의 복사본을 담고 있는 1506년 사본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설명하는 ‘디다케’(The Didache)교훈집이 첨가되었다. 이것들은 사도시대 이후 2세기 전반까지의 신약성경 형성 시대와 변증가들의 시대 중간에 위치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2. 로마의 클레민트(Clement)
로마교회는 바울과 베드로 이후에 초대감독으로 리누스(Linus), 2대 감독으로 아넨클레투스(Anencletus), 3대 감독으로 클레멘트(Clement)가 있었다. 유세비우스는 “클레멘트는 복된 사도들을 친히 목격하였으며, 그들과 관계를 맺었던 사람이었으므로 사도들의 교리가 항상 그의 귓속을 울리고 있었으며 사도들이 전해 준 것들이 그의 눈에 선했다”라고 전하고 있다. 클레멘트가 로마교회의 감독으로 있을 때 고린도교회에 바울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아볼로파로 나뉘어 형제들 사이에 큰 분쟁이 일어났는데 로마교회는 고린도교회에 서신을 보내 그들이 화평하게 지내고 사도들로부터 받은 믿음과 교리를 되살리기를 원했었는데 로마교회에 불행한 사건들이 계속 발생함에 따라 여유를 갖지 못하다가 96년에 편지를 써서 보냈는데 이 편지가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서신(The Letter of the Church of Rome of Corinth)”이다. 이 서신은 교회에서 권위있는 서신으로 받아들여져서 주일에 고린도교회에서 읽혀졌다.
클레멘트는 70인경을 비롯하여 성경에 상당히 조예가 깊었다. 특히 바울의 서신 중에 “고린도전서”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클레멘트가 고린도교회에 보낸 서신에는 A.D.64년의 네로황제의 박해는 이미 과거였다고 기록하며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고대교회’라고 불렀다.
1) 이 서신에는
a. 장로와 감독을 구별하지 않고 상호 동의어로 사용하였다. 장로와 감독이 뚜렷이 구별된 직분이 아니었다.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권위가 하나님께로부터 기원되었기 때문에 존중해야 한다고 하였다. == 사도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복음을 받았고,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으며, 따라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부터 그리고 사도들은 그리스도로부터 난 것이다.
b. 헬라적인 요소와 스토아적인 요소가 있다.
헬라적인 요소 == 클레멘트는 하나님을 만물의 절대적인 지배자라고 보면서도 창조와 관련해서는 플라톤주의에서와 같이 하나님을 데미우르게(demiurge)로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과 이 세상과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서 중기 플라톤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직접적인 창조자가 아니라 창조를 대신할 자 데미우르게를 하나님이 만들어 그를 통해서 세상이 지어졌다고 하였다. 이 데미우르게가 “위대한 예술가로서 선재적인 물질을 취해서 자신보다 위에 있는 이데아를 모방해 형체를 부여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스토아적인 요소 == 하나님을 만물의 지배자로 묘사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만물의 지배자라는 표현은 스토아 철학에서 흔히 사용하는 명칭이다. 섭리론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는 스토아 철학에서는 절대자를 만물의 지배자로 보는 것이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레멘트는 철저하게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관을 갖고 있다. “한 하나님, 한 성령님, 한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풍성한 은혜를 부어주시기를 기원한다”고 하였다.
3) 클레멘트의 칭의론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이신득의(以信得義)’신앙에 근거하여 예수그리스도가 구원의 길임을 강조하였다.
== "그의 뜻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우리 스스로나 또는 우리의 지혜로나, 우리의 통찰로나, 우리의 종교적인 헌신으로나, 또는 충심으로 행하였다고 보여지는 거룩한 행위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모든 사람을 의롭게 하시는 그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4) 클레멘트에게 믿음은 순종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다.
5) 클레멘트는 그리스도에 대한 뚜렷한 신앙고백을 갖고 있다. ==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는 모든 천사보다 탁월하실 뿐만 아니라 그의 이름도 모든 천사들의 이름보다 더욱 우월하시다.”
6) 클레멘트는 교회는 그리스도와 같이 선재했다고 하였다.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가 선재하셨다면 당연히 교회도 선재하였다. 교회는 현재에 속한 것이 아니라 시작부터 존재했고, 그 교회의 일원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교회를 유기체적인 관계로 이해하였다. 강한 자와 약한 자, 부자와 가난한 자가 교회 안에 존재할 수밖에 없지만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공유해야 할 사랑의 윤리적인 차원이 있다고 하였다. 강한 자는 약한 자를 돌봐야 하고, 약한 자는 강한 자를 존경해야 한다. 부자는 가난한 자에게 쓸 것을 공급하고 가난한 자는 부자가 자신들에게 쓸 것을 공급하여 주는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고 하였다.
7) 클레멘트의 내세론에서는 육체와 영을 합일적인 관계로 이해했다. == 어느 누구도 육체는 심판을 받지 않으며, 부활하지도 않는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이 육체를 입고서가 아니라면 여러분들이 다시 빛을 획득하게 될 것인지 생각해 보라. 그러므로 육체를 하나님의 성전으로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육체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으며, 육체로 여러분들이 나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8) 사상 : 그의 서신을 통해 알 수 있는 그의 사상으로는
a) 분열을 타파하고 교회의 질서를 중시하였으며
b) 참다운 회개와 자신을 지키는 삶의 경건을 촉구하고
c) 믿음은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하나님께서 의롭다 칭하는 이신칭의를 주장하고
d) 교회의 질서를 위한 사랑과 겸손과 순종을 명령하였다.
클레멘트는 선행과 덕행에 관련된 실천적 가르침에 역점을 두고 있으며, 교회의 분열을 비판하고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붙잡을 것을 강조하였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직분에 있어 질서 있는 계승이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3. 안디옥 교회의 이그나티우스(Ireraeus) 감독
클레멘트와 동시대 인물로서 시리아 안디옥교회의 제 3대 감독으로 열려졌다. 전승에 의하면 마18;4절의 한 아이 곧 예수님께서 팔에 안으시고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 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고 하셨던 그 아이가 바로 이그나티우스였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안디옥은 베드로, 바울, 여러 성도들이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던 최초의 이방인 교회이다.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린 곳이고, “기독교”라는 말을 최초로 사용한 사람이 이그나티우스이다.
1) 이그나티우스는 로마제국의 제2차 박해할 때 트랴야누스 황제 때에 체포되었다. 이그나티우스의 체포 이유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사회적인 정황과 순교당한 것으로 보아서 신앙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그나티우스는 10명의 군인들(“표범들”이라 표현되었다)에게 체포되어 구금당해서 로마로 호송 당했다. 로마로 가는 도중에
서머나에서 에베소교회에게, 마그네시아인들에게, 트로이인들에게, 로마인들에게 보내는 서신을 기록하였고,
트로아에서 빌라델피아인들에게, 서머나인들에게, 폴리갑 감독에게 보내는 서신을 썼다.
2) 이그나티우스는 하나님의 아들이 실제로 성육신하지 않고 외견상 그렇게 보였을 뿐이라고 하는 가현설자들과 싸우면서 교회를 하나 되게 하는 데 있어서 감독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고 그 하나됨의 구체적인 실현을 위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감독에게 절대 복종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그나티우스는 감독 없이는 교회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감독에게 속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못했으며, 감독의 동의가 없이는 세례와 성찬을 집행할 수 없다고 하였다.
3) 교회의 하나됨의 원리를 단일 감독제를 주장하면서 ‘카톨리코스(보편적인)’라는 말을 사용하여 ‘카톨릭 교회’라는 말을 최초로 사용하였다.
감독은 베드로를 잇는다는 “사도적 계승”의 토대 위에 세운 것이 아니라 감독이 하나님의 위치에서 모든 것을 관장한다고 생각하는 신비적 신학에 입각하여 주장한 것이다.
하나님나라의 지상 모형이라는 사실에서
감독 = 하나님
장로들 = 사도들
집사들 = 그리스도를 대표한다고 하였다.이것은 플라톤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또 성만찬의 원리에서 찾았다. 성찬은 기독교의 일치의 상징이고, 성찬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연합되며 그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성찬을 “유카리스트”라고 불렀다.
4) 이그나티우스는 마태복음, 요한복음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바울의 서신 특히 고린도전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바울의 신앙을 흠모하였는데 “바울은 거룩하심을 입고 좋은 평판을 얻었으며 크게 은총을 받은 인물이었다. 내가 하나님께 이를 때에 그의 발자취 가운데서 발견되기를 원하노라”고 하였고, 자신을 사도들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바울과 베드로가 한 것처럼 내가 여러분에게 명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사도였으나 나는 한 죄수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자신을 낮추었다.
5) 이그나티우스는 이단들과 싸웠는데
a) 유대주의화이다. == 회심한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요구하였고, 유대주의 전통을 지키며 안식일을 준수하도록 하였다.
b) 가현설주의자(Docetism)들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아들이 단지 인간처럼 보였을 뿐이라고 하였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역사성을 부인하였다. 예수그리스도의 고난을 단지 고난당하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라고 하였다.
6) 이그나티우스에게 기독교의 구원은 총체적인 구원이며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마귀의 정복이다. “그렇게 해서 모든 마력은 와해되고 모든 사악한 속박은 사라졌다”고 하였다.
7) 이그나티우스는 순교를 매우 예찬하였다. 순교를 통해서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이르기를 열렬히 갈망한 사람이다. 그는 “나로 하여금 맹수들의 밥이 되도록 상관하지 말고 놓아두라. 맹수들을 통해 내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리라. 나는 하나님의 밀이다. 내가 야수들의 이빨에 갈려 그리스도의 순결한 떡으로 나타나리라.”라고 하였다.
순교는 진정한 제자,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유일한 길이라 하였다.
그가 서머나에 보낸 서신에는 “나는 순교가 얼마나 큰 유익을 주는지 알고 있노라. 이제야 나는 제자로서의 첫걸음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스도를 얻을 수만 있다면 눈에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그 어느 것도 나의 야망을 자극하지 못한다. 내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얻게만 된다면 화형이나 십자가나 사나운 짐승의 공격이나 또는 내 뼈를 찢고 사지를 부러뜨리며 온 몸에 멍이 들도록 매를 맞는 등 그 어떤 마귀의 괴롭힘도 참고 견디겠노라” 라고 하였다.
트랴야누스 황제가 사형언도를 내리자 그는 “오 주여 나는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께서는 나를 이와 같이 영화롭게 하는 것을 허락해 주셨나이다.”라고 마지막 감사기도를 드리고, 45,000명의 관중에 가득 찬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 맹수들에게 갈기갈기 찢기면서 70세의 나이에 순교를 당했다.
8) 사상 : 이레니우스의 편지들은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기독교 문서로 손꼽힌다. 이 편지들은 저자가 그리스도에게 열정적으로 헌신된 사람이고 순교를 열망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교회에 다가오고 있는 논쟁들에 대한 특별한 통찰력과 함께 그는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의 실재를, 그리고 감독의 직분을 기독교에서 통일에 대한 최선의 소망으로 강조했다.
4. 서머나 교회의 폴리갑(Polycarp : A.D.80-165) 감독
폴리갑은 사도요한의 가르침을 직접 받았던 직설적이고 정열적인 사람이며, 아우렐리우스 황제 때에 순교 당했다.
80년에 태어나서 165년에 순교할 때까지 86년 동안 충성스럽게 주님을 섬긴 사람이다. 폴리갑은 사도들과 사도 후 시대를 연결하는 교량 역할을 하였다. 사도요한의 가르침을 후대에게 전하면서 이그나티우스의 서신들을 모으고 보전하였다. 이그나티우스가 순교할 때의 모습은 폴리갑에게 많은 도전과 용기를 심어주었다. 이그나티우스가 로마로 압송될 때 영접하면서 수갑에 입맞춤을 하면서 경의를 표하기도 하였다.
폴리갑은 로마에서 말시온과 영지주의가들인 발렌티누스 추종자들을 정통주의로 회심시키는 도구로 쓰임 받았다. 유세비우스는 많은 이단자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였다라고 하였다.
폴리갑은 이단자 말시온을 만났을 때 말시온이 “우리를 인정하세요”라고 하자
“나는 인정합니다. 당신이 사탄의 맏아들인 것을”이라고 했다.
폴리갑은 이단들에 대하여 직선적이고,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단호하였다.
폴리갑은 공관복음과 사도행전을 잘 알고 있었다. 바울서신과 히브리서, 목회서신, 베드로전서, 야고보서, 요한서신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폴리갑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칭의론을 주장하였다.
폴리갑은 말씀과 신앙을 실천하는 실천적인 신앙인이었다.
폴리갑의 사상 : 그는 신앙의 주체는 예수그리스도이며, 그리스도인의 실천적 신앙을 강조하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순교적 신앙을 유지하기를 강조했다. 그는 로마 황제 숭배를 거부하고 끝까지 하나님께 충성했다. 그의 삶을 통해 고결한 영성을 발견할 수 있다.
5. 기타 속사도들
(1) 바나바서신
교리적 부분과 실천적인 부분으로 나뉜다.
교리적인 부분은 우화적 해석이 특징이다. 구약의 이해와 관련하여 구약 전체를 비유적으로 해석하였고, 실천적인 부분은 두길 문서가 핵심이다.
정결한 짐승과 정결치 못한 짐승을 우화적으로 비교하였는데 되새김 하거나 굽이 갈라진 짐승이 왜 정결한 지에 대하여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되새김(묵상)하고 이 세상에 살지만 내세(갈리진 굽의 다른 한쪽)를 바라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라 하였다. 돼지고기를 금하면서 스승을 배반하는 사람을 돼지 같은 사람이라고 하였다.
바나바서신은 신구약을 연속적으로 해석하려는 모습이 있는데 이것이 모형론적 해석(typological interpretation)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가령 구약성경은 예수그리스도를 지칭한다고 하였다. 이삭을 희생으로 드린 것, 양을 광야로 보낸 것, 모세가 그의 팔을 십자가 모양으로 펼쳐든 것, 광야에서 놋뱀을 높이 든 것 등등 같은 것들이 예수그리스도와 구원사역에 관한 상징, 유형이라 하였다.
바나바 서신은 그리스도는 선재하였으며 창조에 관여하셨고, 유대인들을 정죄하시기 위해서 오셨다고 하였다. 그리스도는 구약에서 조상들에게 맺은 약속을 성취하시기 위해 성육신하신 것이며 사망의 정복, 부활, 장래의 심판은 그리스도의 주된 성육신의 목적이라 하였다. 심판은 멀지 않은 장래에 역사의 한 곳에서 실현될 것이라 하였다.
(2) 헐마스의 목자론
생애 : 초기에 기독교 노예였던 헤르마스는 그를 해방시켜주었던 여인에게 팔렸지만 이후 부유한 상인이 되었다. 박해 속에서 그는 모든 재산을 잃어버렸고 자신의 자녀들에게도 비난을 받았다.
사상 : 그가 저술 한 것으로 보이는 ‘헤르마스의 목자’에서 그는 세례이후에 범한 죄의 용서 문제와 세례를 받도록 유도하는 회개, 세례시에 과거의 모든 죄는 용서받는다는 사실이 기록되어있다.
또한 신적 위격의 복수성, 신을 통한 인간의 창조, 원죄와 세례의 필수 불가결성, 인간의 자유, 우리가 간구해야 할 은총의 필수성, 계명의 준수 및 선한 행실의 반복을 통한 완전성으로의 노력, 부의 위험성, 부활과 영원한 보상에 관한 내용 등. 그의 저술은 교리적이며 도덕적으로도 좋은 가르침을 담고 있다.
그 당시에 그리스도인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5개의 환상과 12개의 명령과 10개의 비유를 수집하였다.
5개의 환상 : 회심을 촉구하는 권면과 박해시 신앙을 굳건히 지킬 것을 권면한다.
12개의 계명 : 기독교인의 의무를 요약하여 이것을 순종함으로 영생을 얻는다고 하였다.
10개의 비유 : 환상의 가르침과 12개의 명령의 가르침을 하나로 묶어서 실천적이고 도덕적인 주제로 다루고 있다. 죄와 용서에 관한 헐마스의 실천적인 관심은 율법의 준수를 극대화한 나머지 은혜 구원을 약화시켰고, 후에 발전된 카토릭의 고해성사의 원형이 되었다.
헐마스는 유일신 하나님에 대한 뚜렷한 신앙을 갖고 있었는데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한 분이신 것과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한 그들에게 질서를 주셨으며 존재하는 모든 것을 무에서 이루셨음을 믿으라”고 강조하였다.
(3) 히에라볼리의 파피아스(Papias) 감독
생애 : 소아시아에 있는 히에라 폴리스의 감독이었던 그는 폴리갑과 동시대인으로 사도요한의 제자인 것으로 보이고 A.D.150년경에 순교 당하였다. 그는 굉장한 학식과 성경 지식을 가졌으며 주님의 생애와 말씀에 대한 모든 전승을 수집하는 것을 과제로 삼았다. <주의 가르침의 설명> 5권이 저서로 전해지고 있다.
사상 : 그는 A.D.130-150년 사이에 저작한 13개의 단편으로 된 주님의 말씀 강해를 남겼는데 이 중 10개가 유세비우스에 의해 보존되었다. 내용은 포도나무들에 각각 천 개의 싹이 나고 그 싹에 천개의 가지가 생기고 그 가지에 천 개의 순이 생기고 그 순에 천 개의 포도송이가 열리고 그 송이마다 천 개의 포도알이 달려서 그 포도로 25개의 항아리에 포도주를 채울 때 재림은 온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는 그리스도의 목격자들의 구전 전승을 문서 기록보다 선호했다는 것이며 교회사적으로 볼 때 그는 제일 먼저 천년왕국설을 가르쳤다는 것이다.
(4) 디오그네투스에게 주는 편지
이 서신은 발신자와 수신자에 대해서 알 수 없는 미상이다. 황제를 양해시키려는 변증서로 알려져 있다.
내용은 기독교 예배와 생활의 진의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신자는 비국민인 근거가 없다고 하였다. 박해는 도리어 신자들이 기뻐한다고 하였다. 사상과 내용과 문장이 힘이 있고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
(5) 디다케(The Didache) ;
12사도의 가르침(Teaching of the Twelve Apostles Didache)으로 알려졌고, 187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성내의 살렘 수도원에서 필로데오스 바이레니오스에 의해 발견된 문서이다.
3가지 중요한 것을 다루고 있다.
a)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의 차이 == 그리스도인들이 살아야 될 방식을 설정하여 생명의 길을 설명한다. 사망의 길은 하나님을 저주하는 것, 살인, 간음, 음욕, 도적질, 요술, 마술, 우상숭배, 강도짓, 거짓증거, 위선, 사기, 교만, 옹고집, 야심, 허풍 같은 것들이다.
b) 세례 예식 == 흐르는 물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 형태로 베풀어졌고, 흐르는 물이 없으면 다른 물을 사용하였고, 찬물을 사용할 수 없으며 더운 물을 사용하고 만일 이것도 저것도 없으면 깨끗한 물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 번 머리에 뿌리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세례식 이전에 2-3일 간 금식하도록 하였다.
c) 훈련지침
6. 속사도들의 활동한 의의
a) 소아시아 신학의 출현이다. 폴리갑, 요한, 이그나티우스, 파피아스 등이 소아시아 출신들이다. 이것이 이레니우스 신학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로마의 신비종교, 영지주의, 유대주의가 속사도들의 신학에 반영되기도 하였다.
b) 인물과 기록장소, 문장스타일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공통성이 있었는데
㉠ 순교에 대한 지나친 열정 == 속사도들은 순교의 길이 가장 좋은 제자의 길이라 하였다.
㉡ 신앙의 표준으로서 성경이 사용되고 있었다.
㉢ 정통의 형성 == 속사도에 오면서 정통주의는 조금씩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전통성의 표준은 사도들로부터 내려온 전통과 성경이다.
㉣ 속사도들의 작품들에 대한 비판
ⓐ 성경에서 벗어난 전통들이 형성되기 시작한 오류가 있다.
선행에 대한 지나친 강조, 세례에 대한 잘못된 사상이 있다. 일부는 율법준수와 선행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 세례 후에 범하는 죄 용서문제 == 헐마스의 가르침에 보면 구원의 사역은 두 가지로 부분할 수 있는데 그리스도께서 세례 전에 행한 죄를 제거하기 위해서 이루신 것과 세례 후에 우리가 해야 할 것이다. 제 4계명에 보면 세례 받은 후에 죄를 지으면 한 번 회개할 수 있으나 두 번 회개한 후에 또 다시 죄를 지으면 용서받기 힘들다고 하였다.
“저 거룩하고 위대한 부르심 이후에 마귀의 유혹에 빠져서 또 다시 죄를 지으면 한 번의 회개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만일 계속해서 죄를 짓고 회개한다면 그런 사람은 아무런 쓸모가 없고 살았다고 할 수 없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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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사 도 들 | ||||
이 름 |
연 대 |
목회지 |
저술 |
주요 사실 |
로마의 클레멘트 |
30-100년경 |
로마 |
● 클레멘트 1서 |
●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제4대 교황으로 추대함 ● 성경에는 빌립보서 4:3에 언급된 것으로 추정함 ● 도미티아누스황제 박해시 순교함 ● 그의 서신은 사도의 계승원칙을 강조함 |
이그나티우스 |
117년 사망 |
시리아 안디옥 |
● 에베소 서신 ● 마그네시아 서신 ● 트랄레스 서신 ● 로마 서신 ● 빌라델비아 서신 ● 서머나 서신 ● 폴리갑 서신 |
● 그의 서신은 로마에 순교하러 가는 도중에 기록되었으며 그는 순교를 당연한 기쁨의 운명으로 받아들임 ● 주교와 장로직의 구분을 최초 역설함 ● 이단사상인 영지주의를 배격함 ● 트라야누스황제의 박해로 순교함 |
헤르마스 |
1세기 말엽 ~ 2세기 초엽 |
로마 |
● 목자서(牧者書) |
● 클레멘트와 동시대 인물임 ● 환상과 비유에 관한 많은 저술이 있음 ● 아마도 유대인이었으며 노예 출신의 신분을 지닌 것으로 추정함 |
알렉산드리아의 바나바 |
1세기 말엽 ~ 2세기 초엽 |
알렉산드리아 |
● 바나바서 |
● 알렉산드리아의 법률학자임 ● 필로의 알레고리 방법에 능통함 |
파피아스 |
60-130년경 |
히에라볼리 |
● 우리 주의 말씀 강해서 |
● 사도 요한과 깊은 친교를 나눈 자임 ● 종말론에서 전천년설을 주장함 ● 마가복음은 베드로의 어록 집에 기초하여 저술되었으며 마태복음은 원래 아랍어로 기록되었다고 주장함 |
폴리갑 |
69년경-160년 |
서머나 |
● 빌립보 서신 |
● 사도 요한과 깊은 교제를 나눈 자임 ● 이그나티우스의 서신들을 편집하고 보존함 ● 영지주의자 말시온을 '사단의 맏아들'로 규정함 ● 안토니누스 피우스 치하에 순교당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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