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하나님의 관심사(욥 1:6-12)

미션(cmc) 2010. 9. 25. 09:52

하나님의 관심사(욥 1:6-12)

(욥 1:6)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온지라 (욥 1:7)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 (욥 1:8)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욥 1:9)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욥 1:10)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욥 1:11)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욥 1:1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사람은 태어날 때 거의 다 비슷한 조건으로 태어나지만 점점 살아가면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사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 인정을 받는 비범한 삶을 사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 냉대와 멸시를 받으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신체적인 외모나 주변 환경 때문이 아니고 그 사람의 관심사가 무엇이며 그것을 위해 어떻게 노력하며 살아가는가의 차이 때문에 생긴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것이 바로 가치관의 차이인 것입니다.
현대인들의 최대의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물론 사람마다 자녀, 건강, 사업 등 제각기 관심사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오늘 나의 관심사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알려면 내가 평소에 가장 신경을 많이 쓰고 민감해 하는 부분이 무엇이며, 그것을 위해 시간과 돈과 노력을 아까워하지 않고 투자하는 것이 바로 나의 관심사입니다.
물론 그 같은 노력도 필요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것은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관심사인 건강이나, 자녀들의 미래나, 경영하는 사업과 직장이 잘되고 못되는 근본 원인이 다 하나님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자녀들을 어떻게 키우며, 하나님이 주신 재물을 어떻게 관리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항상 깊은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알고 보면 그것이 결과적으로 나와 가족의 건강과 재산을 잘 유지해 나갈 수 있는 최선의 비결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비단 우리들만이 아니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도 관심사가 있으시다면 과연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때로 기뻐하시고, 근심하시는 관심사가 과연 무엇인지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서 깨달아야하겠습니다.

1. 욥의 관심사
욥은 우리와 다름없는 감정을 가진 사람으로 아브라함의 서자인 이스마엘 후손들이 살고 있는 유브라데 강 유역에 위치한 아라비아 동편의 삼림이 우거진 우수 땅에 살았던 실제의 인물입니다.
(욥 1:1)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욥이라는 이름의 뜻은 괴롭힘을 받는, 고통을 당하는 이라는 의미이지만 욥의 생활은 이름과는 전혀 다른 풍요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욥 1:2) 그에게 아들 일곱과 딸 셋이 태어나니라 (욥 1:3) 그의 소유물은 양이 칠천 마리요 낙타가 삼천 마리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 마리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라
예전이나 지금이나 풍요의 상징인 자녀들과 재물이 풍부한 가정이었으며, 그것을 한 마디로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라’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가장’ 이라는 말은 모두 전체에서 라는 뜻입니다.
또한 ‘훌륭한 자’라는 말은 위대하다, 크다는 뜻으로 당대에 욥이 동방에서 최고로 존경받는 인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의 많은 재물관은 욥과 동시대의 인물인 아브라함의 재물관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의 표징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왕상 3:13)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만일 우리가 욥과 같은 처지라면 나의 관심사는 당연히 십남매 자녀들의 교육과 엄청난 자산 관리가 최대의 과제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 아닙니까? 비록 욥과 비교가 되지 않지만 오로지 자식을 훌륭하게 키우고, 재산을 증식하는 일을 최대의 관심사로 삼다보니 어느 사이에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신앙 양심을 잃어버리고, 친척과 친구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욥은 우리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욥은 그렇게 많은 자녀들을 키우고 재산을 관리하면서도 그에 인격과 신앙은 남달리 매우 모범적이었음을 성경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욥 1:1)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그렇게 많은 재산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성경의 평가는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온전하고’ 라는 말은 완벽하다는 뜻으로 건전하고 착실하고 순진하고 도덕적으로 순결한 삶을 살았음을 뜻합니다. ‘정직하고’라는 말은 곧고 올바르다는 뜻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의로운 삶을 살았음을 뜻합니다.
그 비결은 욥이 우리와 달리 특별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다음에 나오는 말씀에서 답을 찾을 수 있는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라는 말씀과 같이 성결한 신앙의 힘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악에서 떠난 자’라는 의미는 ‘악에서 돌이키다, 악을 제거하다, 악을 끝내다’ 라는 말과 같이 욥은 악한 세상에 살았지만 그 악과 타협하거나 악에 친하거나 악에 무릎을 꿇지 않고 돌이켰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친구를 잃게 될 수 있고, 등을 돌릴 수도 있고, 물질적으로 손해를 볼 수 도 있습니다. 그래서 나쁜 줄 알면서도 욥과 같은 결단을 하지 못하고 질질 끌려가는 것이 아닙니까?
과연 욥은 어떻게 그러한 결단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이 바로 항상 여호와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면전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누구보다, 무엇보다 더욱 사랑하고 두려워하는 경외심이 있었기 때문에 악에서 떠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잠 16:6)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욥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 땅에서 신앙인의 최대 관심사가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잘 나타내 보여 주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욥의 신앙생활을 돌이켜 보면 현재 눈에 보이는 자녀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재산이 증식되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살아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욥은 하나님 앞에서 보다 더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그것을 지키기는 일에 최대의 관심을 두고 살았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녀들이 무슨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속죄를 바라는 마음으로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사랑하는 자녀들이 풍요로움에 빠져 부지중에라도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배은망덕한 삶을 살았을까봐 걱정하고, 염려하는 마음에서 욥은 십남매 자녀들을 위해 잔치 끝이면 항상 하나님께 가정 제단을 쌓았습니다.
(욥 1:5) “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여기서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는 말의 동사가 미완료 시제인 것을 보면 마치 우리가 가정 예배를 드릴 때 못 마땅하게 생각하는 자녀들을 달래서 예배를 드리는 것처럼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어쩌다 한 두 번이 아니라 항상 그렇게 하였다는 것은 욥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지키려고 애를 썼는가를 잘 나타내 보여주는 것으로 욥의 관심사가 자녀들의 건강이나 재산 증식이 아니라 자녀들의 신앙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어떻게 믿으며, 여호와를 믿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며,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께 어떤 복을 받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축복의 증인인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 땅에서 망하는 것이 아니라 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항상 부족함이 없는 복을 받는 시편 기자의 가르침입니다.
(시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시 1: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2. 여호아 하나님의 관심사

예수님이 가장 싫어하신 바리새인들의 문제점이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기대하는 외식적인 신앙이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 두 번은 좋은 마음을 먹고 결단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작심 삼일(作心三日)이 되기 쉽고,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칭찬과 격려를 기대하고 외식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욥은 우리가 살펴 본 것처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같은 정통 신앙의 반열에 속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스마엘의 후예입니다. 우스 땅은 예루살렘처럼 하나님의 제단이 있고 성전이 있거나 우리들처럼 교회가 있는 곳이 아니라 우상이 만연한 이방 땅이었습니다.
후일에 친구들에게 집단적으로 청문을 당한 것을 미루어 보면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의 행위가 항상 그러하였다고 하는 것은 욥은 누구에게 보이고 무슨 복을 받기 위해서 그렇게 신앙 생활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거나 보아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진짜 신앙은 바로 그러한 때에 욥처럼 입증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주목하여 보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욥을 주목하고 계셨습니다. 욥에 대해서 좋은 점수를 주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마치 전교 수석을 한 자식을 이웃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안달을 하는 부모처럼 욥을 자랑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마침 성경에서 자주 보기 어려운 천상회의가 열렸습니다. 그 회의에는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탄도 참석을 한 회의였습니다.
(욥 1:6)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온지라”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누구를 가리키는가? 하는 것은 노아 홍수 심판때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딸이라고 한 창세기 6장의 기사를 살펴볼 때 천사들이나 셋의 자녀들이나 앞서간 성도들을 가리키는 말일 수 있습니다.
그와 반대로 사탄도 천상회의에 참석을 하였다고 했는데 사탄의 뜻은 대적자, 고소자라는 뜻으로 이미 인류의 조상 아담을 타락하게 만들었고, 예수님을 여러 번 시험하였고, 공중권세를 쥐고 땅 위에 성도들을 시험하는 악한 세력입니다.
그와 같은 사탄은 특별히 세상을 두루 다니면서 하나님의 자녀들의 신앙과 삶을 일일이 체크하였다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고자질하기를 좋아하는 존재였습니다.
(욥 1:7)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
예 화
청주지검의 김모 검사는 10년간 한 달에 한 번꼴로 118차례나 죄 없는 주변 사람들을 허위 고소해온 70대 황 모씨를 무고 혐의로 구속하였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수사기관에 118건의 고소를 제기하는 등 상습적인 무고 고소로 아무 잘못이 없는 수많은 주변사람들에게 고통을 줬고, 자신의 뜻과 달리 증언하는 사람들을 위증으로 다시 고소해 괴롭히는 등 죄질이 불량하다"며 "고령이지만 악질적인 무고벽(癖) 때문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합니다.
황씨는 지난해 10월 '하차하기 전에 버스를 출발시켜 허리를 다쳤으니 처벌해 달라'는 내용의 허위 고소장을 제출하는 등 이미 무고죄로만 네 차례에 걸쳐 5년8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았고, 현재도 무고죄로 벌금형을 받고, 항소중이라고 합니다.
황씨는 118차례에 이르는 고소장 중 대부분이 혐의 없음이나 각하처리된 것으로 검찰조사결과 드러나서 심지어 검찰이나 법원 직원들까지도 황씨를 보면 이유 없이 피하는 정도라고 합니다.

물론 사탄은 그 이상입니다. 우리 각 사람의 신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을 하나님 앞에 고자질하여 정죄 받도록 고소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사탄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시지만 욥을 자랑하신 이유는 그 만큼 욥에 대해서 자신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욥 1:8)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하나님은 욥을 바라보시고 세상에 그런 사람은 없다고 말씀하실 만큼 성품이나 행실이 탁월한 사람을 그에게서 보셨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실수를 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여호와는 중심을 보십니다. (삼상 16:7)
여기서 하나님의 관심사를 잘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세상에 많은 사람들 가운데 욥에게 있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욥을 주의하여 보신 것은 욥의 재산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그의 모범적인 신앙과 삶을 주목하여 보셨음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욥은 세상에 어느 누구보다 온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음을 지켜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그러한 욥을 가리켜 주저함이 없이 ‘내 종 욥’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종이라는 말은 ‘노예’라는 뜻입니다.
물론 천박하게 들릴지 모르나 하나님의 뜻에 절대 순종하는 사람을 가리킨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다윗은 자신을 가리켜 여호와의 종이라고 부르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였습니다. 심지어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오실 메시야를 가리켜 여호와의 종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관심사는 욥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을 주목하여 보시고 자랑하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사탄의 관심사는 무엇일까요? 사탄 역시 하나님을 잘 믿고, 복 받고, 잘 사는 사람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관심사와 무엇이 다를까요? 사탄은 하나님이 칭찬하시는 욥에 대해서 무슨 단점을 찾지 못하였으면서도, 욥의 장점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고 도리어 흠을 잡으려고 하나님 앞에서 수작을 부렸습니다.
(욥 1:9)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이는 욥이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욥을 축복하시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을 잘 믿는 척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욥에게 복을 거두신다면 욥은 하나님을 욕하고 원망하고 믿지 않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욥 1:10)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1) 하나님은 욥을 칭찬하셨으나, 사탄은 욥의 비난하였습니다.
2) 하나님은 욥을 축복하셨으나, 사탄은 욥을 시기하였습니다.
3) 하나님은 욥을 가정과 재산을 둘러 지키셨지만, 사탄은 욥이 몽땅 망하기를 바랐습니다.
사단은 하나님이 욥에게 모든 좋은 것을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모함하면서 만일 하나님이 욥을 보호하여 주시지 않으면 하나님을 비난할 것이라고 모함을 하였습니다.
(욥 1:11)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이처럼 하나님의 관심사는 하나님을 잘 믿고 복을 받아 잘 사는 사람을 주목하시고 자랑하시는 것이라면, 사탄은 사람의 약점을 잡아 시험에 빠지게 하고, 병들게 하고 망하게 하는 것이 최대의 관심사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나의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의 장점을 보고 배우고 칭찬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단점을 찾아 떠벌리고 비난하는 것입니까? 혹시 우리 속에 사탄과 같은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가 있지 않습니까? 알고 보면 우리 속에도 사탄과 같은 기질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남을 칭찬하고 도우려고 하기 보다는 남을 시기하고 비난하고 험담하기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성령이 기뻐하시지 않고 탄식하시는 일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의 최대의 관심사와 나를 향하신 주님의 최대의 관심사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현대인의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나의 자녀들이 성공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가 다른 사람보다 잘 먹고 잘사는 복을 누릴까? " 입니다.
물론 그것이 죄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문제는 그러한 나의 관심사는 하나님의 관심사와 거리가 먼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욥을 통해서 우리의 관심사가 무엇이어야 할 것인가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은 욥에게는 십남매의 자녀와 사랑하는 아내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욥은 그 가족들이 육신적으로 잘 먹고 잘살게 하는데 만 목적을 두고 살지 않았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왜 내게 십남매의 자녀를 주셨으며 과연 그들을 어떻게 키우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욥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의 신앙을 한시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욥의 관심사였습니다.
2) 하나님은 욥에게 동방에서 제일가는 거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욥은 그 재산을 관리하고 증식시키는 일에만 몰두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때문에 더욱 탐욕스러워지고 부정직해지고 방탕한 삶을 살기 쉬우나, 욥은 하나님 앞에서 더욱 순전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일에 한시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욥의 관심사였습니다.
3) 하나님은 욥에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믿음을 주셨습니다. 욥은 좋은 책을 읽고, 명사의 강의를 듣고, 깊은 명상과 수련을 통해서 진리를 깨달은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잘 지켜 악을 미워하고 죄의 욕구를 억제하는 적극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도 욥처럼 우리의 관심사가 하나님이 주신 자녀나 물질보다는, 그 모든 것을 내게 주신 여호와 하나님을 보다 기쁘시게 하는 것이 최대의 관심사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우리도 욥처럼 매사에 순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악에서 떠나는 바람직한 삶을 살게 하는 비결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당신을 경외하는 자에게 택할 길을 가르치시며, 은혜를 베푸시는 변함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고자 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건강과 우리의 재물을 철옹성같이 지켜 주실 것입니다.
(시 34:7)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하나님께서 에워싸시는 울타리는 너무 견고하고 완전하여서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없이는 사탄의 어떤 계획이나 능력도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비록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바르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하나님이 근심하실지라도, 욥처럼 매사에 순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람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되어, 하나님의 주목을 받으며, 지속적인 보호를 받으며, 자랑꺼리가 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