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과 썰물(욥 1:13-22)
(욥 1:13) 하루는 욥의 자녀들이 그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실 때에 (욥 1:14) 사환이 욥에게 와서 아뢰되 소는 밭을 갈고 나귀는 그 곁에서 풀을 먹는데 (욥 1:15) 스바 사람이 갑자기 이르러 그것들을 빼앗고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욥 1:16)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떨어져서 양과 종들을 살라 버렸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욥 1:17)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갈대아 사람이 세 무리를 지어 갑자기 낙타에게 달려들어 그것을 빼앗으며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욥 1:18)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주인의 자녀들이 그들의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는데 (욥 1:19) 거친 들에서 큰 바람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청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한지라 (욥 1:20)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욥 1: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욥 1:22)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세상에서 과연 누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 하는 것을 가리는 기준은 교회를 다니느냐? 안 다니느냐? 라는 형식적인 차원이 아닙니다.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한 평생 무난하게 살아가는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고 감사하며, 찬송하며 살아가는가? 아니면 출세하고 성공한 것이 자신의 힘이라고 생각하며 교만한 자세로 살아가는가? 여부를 통해서 누가 진실한 신자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예 화
70 평생을 무신론자로 자처하며 살아오던 이어령 선생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고나자 만나는 사람들이 ‘당신 예수쟁이 됐다면서’ 비웃고 욕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화도 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모습이 과거에 자신의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남을 찌르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사막의 전갈과 같은 슬픈 운명 말입니다. 겉으로는 강한 싸움꾼인척 하지만 옆에서 누군가 한마디 훈수를 하고 조금만 역성을 들어주면 금시 어린애처럼 울음을 터뜨리는 약한 무신론자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살다가 보면 때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정말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분이라면, 무신론자들이 그와 같이 하나님을 욕하고, 교회를 비난하고, 선교사들을 옥에 가두고, 무참히 살해하는 것을 다 아시면서 왜 침묵만 하시는 것일까? 라는 의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 같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지 못하면 우리가 심각한 어려움에 처하게 될 때 하나님이 오래 도록 침묵하시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시지 않는다고 생각이 되면 낙심하고, 좌절하고, 신앙을 포기하고, 타종교로 전향하고, 심지어 이단에 넘어가서 배교자가 될 위험성이 누구에게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서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중에 처하였는데도 왜 침묵하시는 것인지 그 이유를 찾아야 하겠습니다.
1. 이해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제나 오늘이나, 이곳이나 저곳이나 언제 어디를 가든지 크고 작은 죄악과 고통들이 산재하여 있고 그 배후 조종자가 악한 사탄이라는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사탄에 대해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며, 거짓말 하는 자이며, 공중 권세를 잡은 자라고 할 정도로 그 힘이 막강한 영적 존재라’고 성경이 가르칠 정도입니다.
(엡 2: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사탄에게 노예가 되어 절망적인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지난 주 우리는 욥기 강해를 시작하였습니다. 욥은 동방 우스 땅에서 온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 떠난 자로 동방에서 제일 훌륭한 자라고 하나님께 인정하실 정도로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욥이 그렇게 된 것은 결코 욥이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욥을 지켜 주시고, 축복해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사탄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욥 1:10)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사탄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을 무엇보다 기분 나쁘게 생각하고 시기하여 망하기를 바라는 사악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것을 그냥 보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사탄은 욥을 자랑하시는 하나님께 제안하기로 하나님께서 손을 펴서 욥의 소유물을 치신다면 틀림없이 욥은 하나님을 향해 욕을 할 것이라고 제안을 하였습니다.
(욥 1:11)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사탄이 왜 그러한 제안을 하였을까요? 사탄이 세상을 두루두루 다녀보니 하나님을 믿는 다고 하지만 고난이 찾아오면 대부분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을 목격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공중권세를 잡은 사탄이 즉시 시행에 옮기지 않고 왜 하나님께 허락을 요청하였을까요?
이는 아무리 강력한 권세를 가진 사탄이지만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욥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권세가 강하지만 욥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머리칼 하나도 상하게 할 수 없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눅 21:17)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눅 21:18)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 (눅 21:19)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결코 사탄의 세력을 두려워하거나, 겁먹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영적으로 자책골을 먹었으니 우리의 구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로 역전골을 넣어 대승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승리자의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사탄과의 영적 전투에서 번번이 승리하셨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을 이기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고, 그 도우심을 받아야 하고, 전적으로 의지해야만 합니다.
(요일 5:18)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이는 오늘 우리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지만 때로 건강이나 물질이나 가정이나 사업적으로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것도 사탄의 짓이지만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의 포괄적인 의미는 막연한 이야기가 아니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그 배후에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여질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믿지 않는 사람과 별반 차이가 없이 각종 질병과 사고와 물질적인 고난과 죽음의 고비를 경험하는 것을 얼마든지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 가장 극도의 고난을 경험한 믿음의 사람을 꼽는다면 오늘 말씀의 주인공 욥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사탄에게 욥을 시험해도 좋다는 결재를 하셨기 때문입니다. 욥은 하나님이 인정하실 정도로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었으나 가혹하리만치 혹독한 고난을 경험하게 되는 것은 욥에게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탄의 청원을 허락하셨기 때문에 사탄이 욥을 공격할 수 있었습니다.
(욥 1:1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물론 그렇게 되면 사탄은 욥의 재산을 다 빼앗아 갈 것이라는 것을 하나님이 누구보다 잘 아시면서 사탄에게 그 권세를 위임하셨다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일 것입니다.
2. 이해 할 수 없는 사탄의 시험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할 수 있으면 편하고 행복하기를 원하고, 반대로 고난은 누구나 다 싫어하고 두려워합니다. 물론 오늘 우리도 예외가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아무런 고난도 없이 한 평생을 편안하게만 살아가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육체적으로, 어떤 사람은 정신적으로, 어떤 사람은 가정적으로, 어떤 사람은 직장과 사업상에 원치 않는 고난을 겪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견뎌나가는 이유는 그 고난이 부분적이거나 한시적이기 때문에 다른 것을 통해서 그 것을 해결하고 위로해가기 때문입니다.
이를 테면 건강을 잃었으나 사랑하는 자식들이 위안이 되어주고, 자식은 잃었으나 건강이 뒷받침이 되어주고, 건강을 잃었으나 재산이 남아 있어 그것으로 치료를 받으며 견뎌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고난당할 즈음에 피할 길과 이길 힘을 주시며 사람이 감당 못할 시험을 허락하지 않으신다고 성경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고전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그러나 욥이 당하는 고난은 그것과는 질과 종류가 달랐습니다. 종합적인 고난이었고, 총체적인 고난이었고, 인간으로서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최대의 고난이었고,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회복하기가 쉽지 않은 절망적인 고난이었고, 정신을 차릴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밀어 닥치는 연속적인 고난이었습니다.
1) 한 순간에 전 재산을 모두 다 잃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동안 욥이 소유했던 어마어마한 재산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허락을 받은 사탄은 제일 먼저 욥의 재산을 몽땅 다 빼앗아갔습니다.
(욥 1:14) 사환이 욥에게 와서 아뢰되 소는 밭을 갈고 나귀는 그 곁에서 풀을 먹는데 (욥 1:15) 스바 사람이 갑자기 이르러 그것들을 빼앗고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물론 가축을 도적맞거나 약탈당하는 일은 유목민들 사회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예사스러운 일이지만, 욥이 경험한 일은 예사스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한 순간에 그 많은 목축들을 스바 사람들이 와서 다 빼앗아 갔기 때문입니다.
(욥 1:17)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갈대아 사람이 세 무리를 지어 갑자기 낙타에게 달려들어 그것을 빼앗으며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이제 욥은 조금 전까지는 너무 많아서 걱정이었으나, 앞으로는 너무 없어서 근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사업의 실패나 범죄로 인한 징계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사탄의 시기심 때문에 그렇게 되고 만 것입니다.
이를 볼 때 사탄은 무자비하고 몰인정한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가 망하되 재기불능의 상태로 망하기를 바라는 악한 존재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과거 IMF 때처럼 한순간에 대기업이 부도가 나서 빚 부자로 전락해 버리고 만 것 이상입니다.
그동안 욥은 하나님이 자랑하실 정도로 오로지 믿음으로 순전하고 정직한 삶을 살았을 뿐인데도 사단은 오히려 그것을 시기하여 한 순간에 전 재산을 홍수처럼 다 휩쓸어간 것입니다.
2) 한순간에 전 자녀를 다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사탄은 욥에게서 재산만 빼앗아 간 것이 아니라 재물보다 더 소중한 자녀들까지 몽땅 빼앗아 갔습니다.
(욥 1:18)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주인의 자녀들이 그들의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는데 (욥 1:19) 거친 들에서 큰 바람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청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한지라
사람들이 재물에 대한 애착을 갖고 집착하는 이유는 재물 그 자체보다도 자녀들의 학비나 결혼이나 유산 상속을 준비하기 위함일 때가 많습니다.
만약에 재산을 물려 줄 자녀가 없는데도 재산에 대해서 집착을 한다면 주변사람들에게 너무 이기적이라고 비난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은 검소하게 살면서 자녀들을 위해 악착같이 돈을 벌려고 한다면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부모들이 갖는 당연한 자식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얼마나 악랄하고 무자비한 존재인지 욥의 자녀들이 아버지의 명에 순종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잘 드리며, 맏아들 집에서 음식을 나누며 화목하게 지내고 있을 때 순식간에 집이 무너지게 하여 단 한 명의 남기지 않고 다 죽게 하였습니다.
정말 사탄은 욥을 철저하게 빈 털털이로 만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어설프게 해서는 않 되고 욥을 철저하게 망하게 해야만 하나님을 원망할 것이라는 계산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어느 누가 욥과 같이 되었다면 주변 사람들은 욥이 하나님께 무슨 잘못을 저질러서 저주를 내린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욥이 그렇게 된 것은 정반대로 하나님을 너무 잘 믿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1) 그렇다면 욥이 장성한 십남매 자녀들마저 한 순간에 다 죽어버렸다면 무슨 낙으로 세상을 살겠습니까? 아마도 절망하고 낙담이 되어 미쳐 버리고 말지 않겠습니까? 2) 거기에다 전 재산을 모두 다 잃었다면 욥은 무슨 낙으로 살겠습니까? 아마도 자기도 자식들을 따라가겠다고 자살을 결심하지 않겠습니까?
3) 아니면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이럴 수가 있느냐고 사탄의 계산처럼 하나님을 원망하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불평이라도 한 마디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그 셋 중에서 욥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 까요?
사탄은 욥이 그렇게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은 하나님이 욥을 그 만큼 축복하셨기 때문에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욥의 신앙은 조건반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하나님께서 그 축복들을 거두시면 욥이 하나님을 믿을 이유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을 욕할 것이라고 장담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에 다른 사람은 그럴 수 있을지 몰라도 욥만은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신뢰하셨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욥을 믿지 못하셨다면 사탄에게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만일 욥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욕한다면 사탄의 생각이 하나님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사탄에게 허락하신 것은 그 만큼 욥을 신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욥은 일순간에 전 재산과 십남매 자녀들을 몽땅 다 잃어버린 후에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1)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욥 1:20)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여기서 욥이 일어나서 제일 먼저 ‘겉옷을 찢고 머리 털을 밀고’ 라는 말씀은 극도의 슬픔과 더불어 하나님 앞에 죄를 회개하는 모습으로 구약 성경에 자주 등장합니다.
[욜 2: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여호와께로 돌아올찌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또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라는 말씀은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께 절하며 경배하는 모습을 뜻합니다.
[느 8:6] 에스라가 광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느니라
우리는 어느 때 하나님을 경배합니까? 우리는 왜 하나님을 경배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러나 욥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더 이상 세상을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졌을 때에도 땅에 엎드려 하나님을 예배하였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욥 1: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 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여기서 ‘나왔사온즉’은 태어나는 것을 뜻하는 말이고, ‘돌아가 올리지라’는 죽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욥은 인생이 영원 전부터 세상에 존재했거나, 영원토록 세상에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상태로 태어나서 똑같은 모습으로 죽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욥이 잃어버린 많은 재산과 십남매 자녀들의 주인은 본래 자신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욥이 부른 찬송은 단 두 소절이었습니다. 자기에게 주신 하나님을 찬송하고, 또 자기에게서 거두신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욥은 빈손으로 태어났던 자기에게 하나님이 잠시 맡겨주신 것도 감사한 일이고, 그것을 다시 되찾아 가시는 것도 감사한 일이기 때문에 그 하나님께 찬송을 돌린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내게 주신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은 누구나 다 잘합니다. 우리가 종종 찬송을 부르는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닙니까?
그러나 욥과 비교가 될 수 없을 정도로 지극히 적은 일부분만을 하나님이 거두어 가셔도 찬송은 중단되지 않습니까?
3)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사탄의 경험으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욥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몸에 중병이 들고, 재산의 일부만 손해를 보아도, 여러 자식 중에 하나만 사고를 당해도 “정말 하나님이 계시면 그러실 수 있느냐? 내가 하나님께 무엇을 잘 못했기에 이렇게 큰 시험을 주시는가? 라고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만일 하나님이 그렇게 몰인정하신 분이라면 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 기독교를 버리고 타종교로 개종 하겠다” 라고 등 돌리는 사람들이 허다합니다.
그러므로 사탄은 욥의 전 재산과 십남매 자녀들을 모두 손을 대기만 하면 틀림없이 하나님을 원망할 것이라고 기대가 부풀어 있었던 것입니다. 설령 큰 소리가 아니라도 다만 마음속으로나마 섭섭함을 갖고 하나님께 불평만 해도 사탄은 성공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사탄의 기대를 저버린 대신에 하나님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욥 1:22)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여기서 ‘범죄하지’라는 말은 빗나간다, 잘못행한다 는 뜻을 가진 말로 죄에 대한 기본적인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잘못되고 빗나가는 것일까요? 십계명을 어기는 것만이 범죄가 아니라 그 다음에 나오는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을 못 마땅히 여기고 불미스러운 마음으로 원망 불평을 늘어놓는 것이 바로 범죄라는 것입니다.
사탄이 하나님께 욥을 시험하도록 청원한 궁극적인 목적은 욥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개종을 하고 우상을 숭배하기로 전향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누구나 욥의 처지가 되면 하나님을 원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오히려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한 것입니다.
그와 같은 욥은 참으로 우리의 상식과 경험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믿음이 아닙니까? 그 믿음은 오직 하나 언제 어디서나 여호와 하나님을 변함없이 경외하는 순수한 믿음,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믿음, 하나님이 자랑하시고 싶어 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서 하나님 외에 영원하신 분,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게 되고, 슬픔이나 기쁨이나 풍요나 가난도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때가 되면 마치 달과 지구와의 인력차이로 생기는 밀물과 썰물과도 같이 교차되는 것입니다.
예 화
지구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달의 영향이 가장 크며 태양이 다음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썰물은 바닷물이 일정한 시간이 되면 빠지는 것이고, 밀물은 정반대로 일정한 시간이 되면 물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구와 달, 태양이 서로 끌어당겨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보름과 그믐에는 태양, 지구, 달이 직선상에 위치하게 되어 태양의 인력과 달의 인력이 합쳐지면서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가장 크게되며 이를 "사리"라 합니다. 한편, 태양, 지구, 달이 직각으로 배열되는 상현과 하현에는 인력이 상쇄되어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작아지는데 이때를 "조금"이라고 합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때를 보내고 있습니까? 그것이 밀물처럼 풍성한 때이든지 아니면 썰물처럼 다 쓸어가 버린 때이든지 둘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그러나 밀물이든지 썰물이든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다 뜻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욥만이 아니라 우리도 세상을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으며 또 세상을 떠날 때에도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영원히 세상에 살 것처럼 욕심을 부리고 범죄하고 하나님을 근심하게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의을 배신하는 삶을 접고, 이제는 욥처럼 변함없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딤전 6:17)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곡식이나 과일을 보면 어느 정도 자라서 커지고 나면 더 이상 크지 않고 그 때부터 모진 비바람과 뜨거운 가뭄을 겪으면서 그것이 영글어가는 것을 봅니다. 그러한 담금질의 과정을 겪지 않으면 명검이 될 수 없고 특상품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십시오. 우리가 어느 때에 부모의 사랑을 깊이 느끼게 되고, 돈이나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 속 깊이 깨닫게 되었나요?
아이러니 하게도 욥처럼 그것들을 잃어버리거나 궁핍해진 고난의 과정을 통과하는 동안 철이 들고, 신앙이 성숙해지지 않았습니까?
밀물처럼 풍요로워지는 것이 좋지만 형통한 때에 신앙과 인격이 아름다워지는 사람을 찾아보는 것은 극히 어렵지 않습니까? 거의 대부분 모든 죄가 형통한 때에 시작되고, 게으름과 교만도 형통한 때에 잡초처럼 번성하지 않습니까?
(딤전 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한 사람의 신앙과 인격은 썰물처럼 다 쓸어가 버린 고난과 고통의 시간 속에서 더 지혜로워지고, 성숙해지고, 겸손해 지고, 순수해지는 것을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하이델베르그 소요리 문답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지금도 섭리하심으로 만물을 보호하신다는 것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역경에 처해 참고 번영할 때 감사하며 앞으로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떼어 놓을 수 없다고 여기고서 신실하신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으므로 하나님의 뜻이 계시지 않으면 피조물들은 움직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답을 우리의 신앙과 삶의 현장에서 밀물처럼 풍요로울 때나 썰물처럼 빈곤할 때나 변함없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고 감사하는 경외함으로 입증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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