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의 기쁨이 넘치는 교회
(행 2:46)
(행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우리는 일 년 52주 동안 매주 똑같은 예배 순서를 따라, 똑같은 성경과 찬송가, 똑같은 교회, 똑같은 목사, 똑같은 성도와 더불어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지루할 수도 있고 예배의 순서를 바꿀 필요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예배 순서를 수시로 바꾸고, 성경이나 찬송가만 아니라 신간 서적이나 신곡을 도입하고, 주일마다 교회들을 순회하며, 다양한 설교를 듣는다면 우리의 신앙이 보다 더 발전할 수 있을까요?
결코 해 아래서는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그 어떤 것도 시간이 지나게 되면 결국은 지루하게 되고 맙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종교도 바꾸어야 하고, 하나님도 바꾸어야만 합니다.
문화재를 연구하는 사람은 옛것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을 더 가치 있게 생각합니다. 감정사가 원하는 진품은 옛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며, 그럴 때 크게 기뻐하며 그것을 연구하기 위해 밤낮을 매어 달리는 것입니다.
신앙은 핸드폰의 모델처럼 끊임없이 바꾸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정금처럼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사랑을 소중하게 여기는 이유는 사랑은 정금처럼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한 사람만 사랑하는 것이 지루하다고 수시로 그 대상을 바꾸거나, 사랑하는 마음이 변한다면 참 사랑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의 기쁨은 변하지 않을 때만 참 기쁨과 행복이 있습니다. 사랑이 변하게 되면 번민과 슬픔이 따르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은 변하지 않고 영원한 것이라고 성경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고전 13: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물론 사람은 변하지 않아도 의상은 대상과 계절에 따라 변하는 것처럼, 예배의 형식도 어린이와 청소년과 장년이라는 계층과 절기에 따라 다소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은 유행처럼 변하는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요 4: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신앙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에 변할 수 없이 영원한 것입니다. 변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니 변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시 119:142) “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율법은 진리로소이다”(요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이 변하시지 않는 것처럼, 예배를 드리는 우리의 마음도 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것이 바로 항상 기쁜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 100:2)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1. 예배의 정의
‘기쁨이 넘치는 교회와 성도’라는 표어로 시작하는 2011년 새해 첫 주일입니다. (시 100:2)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라는 말씀을 성경적인 근거로 삼았습니다.
그렇다면 왜 기쁨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하며, 어떻게 해야 변함없이 기쁨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나름대로 그 존재의 이유가 있으며, 그 존재 이유를 마음껏 드러낼 때 가장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은 인간이 존재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답은 피조물인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 왜 나를 지으셨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나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은 그 이유를 성경에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신 10:21] 그는 네 찬송이시요 네 하나님이시라 네가 목도한바 이같이 크고 두려운 일을 너를 위하여 행하셨느니라 (사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여기서 ‘찬송하게’라는 말씀은 영광, 찬미, 찬양의 노래를 부르게 한다는 미완료 동사로 한두 번이 아니라 일평생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해 지으셨다는 뜻입니다.
[시 22:25] 대회 중에 나의 찬송은 주께로서 온 것이니 주를 경외하는 자 앞에서 나의 서원을 갚으리이다
여기서 ‘대회 중에서’라는 말은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서 혼자서 은밀하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모인 공중 앞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송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찬송하며 영광을 돌리는 예배는 하나님이 가장 기쁘시게 하는 일이며, 그렇게 할 때 예배자인 우리도 기쁨이 충만하게 되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믿는 우리의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나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최고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배라면 예배를 드리는 목적도 내가 은혜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락한 인간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어려울 때만 하나님을 찾고, 배부르고 등 따시고 편할 때는 하나님을 찾지 않거 예배를 드린다고 하지만 형식적인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하실지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사 43:22) 주께서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귀한 손님으로 초대하여 나를 잘 섬기려고 힘을 쓴 것처럼 떠들지 말아라.” (사 43:23) “사실 너는 나에게 양을 끌어다 번제로 바치지도 않았고 희생제물을 드려 나를 섬기지도 않았다. 나는 곡물로 제물을 바치라고 네게 짐을 지우지도 않았고 분향제물을 바치라고 너를 괴롭히지도 않았다.” (사 43:24) “너는 돈을 주고 향료를 사다가 나에게 태워 바친 적도 없으며 희생제물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하게 한 적도 없었다. 오히려 네 온갖 죄악을 나에게 짐으로 지워 주었고 네 온갖 범죄로 나를 괴롭혔다.”
물론 이사야 시대의 타락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탄식입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께서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이 돈을 벌기에 바쁘다고 주일 성수하지 않고, 놀러 다니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은 부담스럽게 생각한다면 하나님이 과연 무엇이라고 말씀하실까요?
육신을 위해서는 카드빚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십일조나 감사나 기타 헌금을 드리는 일에는 인색한 우리를 주님이 다 아신다면 하나님이 과연 무엇이라고 말씀하실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을 속죄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고 징벌을 받아야 마땅한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사 43:25) “과연 나는 너희에게 아무런 의무도 없으나 내가 자진하여 네 모든 죄악을 덮어 주고 네 허물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겠다.”
하나님이 정말 나를 지으신 창조주이시며,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을 믿는다면, 주님이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는 주일에 나는 어떤 마음의 자세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할까요?
2. 예배자의 마음 자세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와 목적은 아마도 보다 더 행복한 삶을 위해서일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사람이 예수를 믿고 예배를 드린다면 그 사람은 예배를 통해서 더욱 큰 은혜와 축복을 받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이 지배적일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사람에게도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고 복을 주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이방 신을 믿는 불신자들에게도 육신의 복을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예배를 드리는 이유조차 자기만족을 위한 이기적인 목적이라면, 그 사람은 일 년 내내 동일한 순서로 반복되는 예배를 통해서 마음이 흡족할 정도의 은혜와 복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 열심이 있었으나 오래가지 않아서 교회 생활이 지루해지고, 자연이 예배를 소홀히 하게 되고, 자주 주일을 범하게 되면서 마치 살얼음판에서 발이 빠진 사람처럼 점점 더 세상으로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 원인은 신앙과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목적을 둔 것이 아니라, 자기를 기쁘게 하는데 목적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인간들끼리 즐기는 축제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는 영원한 진리입니다.
진정한 기쁨을 누리기를 원하는 성도는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을 가장 시급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를 테면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다 가정에서 태어나 가정에서 자라고 또 가정을 대물림하게 됩니다.
아무리 재산이나 지식이 많고 지위가 높다고 할지라도 가정생활이 원만하지 못하면 결코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가정을 통해서 우리에게 행복을 공급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은 인간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면 육신은 물론 영적으로도 행복할 수 없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은 행복의 물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시 4:7)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목이 마른 사람은 물 근원인 우물에 가야만 하는 것처럼, 행복한 삶을 원하는 사람은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이루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예배를 통해서 영적으로 만나주시고, 당신 자신을 계시하여 주시고,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를 깨닫게 하여 주십니다.
그렇다면 어떤 예배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이며 그렇게 드리는 예배가 내게 어떤 유익이 있을까요?
1) 예배의 주체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되셔야만 합니다.
예배는 내가 마음을 먹고 결정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택하시고, 부르시고 구속하셨기 때문에 나 같은 죄인이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건강도, 시간도, 환경도 조절해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된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요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2) 예배의 내용은 한 마디로 하나님께 대한 감사입니다.
예배는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며, 성령님이 기뻐하시는 최상의 일이기에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는 예배를 드리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기도를 하든지 찬송을 부르든지 헌금을 바치든지 무엇을 하든지 오로지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겠다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시 33:1)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바로다
예배는 창조주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내게 주신 은혜가 무엇이며, 또 앞으로 어떤 은혜를 주실 것인가에 대해 계시해 주시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그 은혜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와 찬송과 예물을 드려 야 하는 것입니다.
(시 33:20)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그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 (시 33:21) 우리 마음이 그를 즐거워함이여 우리가 그의 성호를 의지하였기 때문이로다
3) 예배는 즉흥적이 아니라 잘 준비된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구약 시대 안식일에 대해서 단순히 푹 쉬라고 하시지 않고 기억하여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출 20: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이는 안식일과 평일이 현저하게 구별되어야 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평일처럼 일하고 평일처럼 놀아서는 안되고 안식일에는 오로지 하나님만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날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안식을 기억하고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셨으나 율법을 범하므로 말미암아 안식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인생에게 진정한 안식을 주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진정한 안식을 주신 날이 바로 오늘의 주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일을 기억하고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주일을 평일과 구별하고 몸과 마음과 시간과 예물을 정성껏 준비하여 지킬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3. 예배자의 축복
목이 마른 사람은 물 근원인 우물에 가야만 하는 것처럼, 행복한 삶을 원하는 사람은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이루어야만 합니다.
아무리 재산이나 지식이 많고 지위가 높다고 할지라도 가정생활이 원만하지 못하면 결코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가정을 통해서 우리에게 행복을 공급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은 인간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면 육신은 물론 영적으로도 행복할 수 없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은 행복의 물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시 4:7)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만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과 나와 긴밀한 관계가 회복될 때 진정한 기쁨을 맛볼 수 있게 됩니다.
구약 시대는 아무리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라고 할지라도 율법과 계명에 비춰볼 때 다 죄인이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형벌과 저주와 죽음이 마땅한 존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다 속죄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와 같은 축복을 받지 못하면 아무리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산다고 할지라도 결코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오늘 날에는 구약 시대와 같은 제사를 드리지는 않지만 그와 같은 화목의 원리는 변함이 없으며, 다만 대신 제물이 되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하고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를 드리는 영적인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게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지상에 교회가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교회는 성경공부를 목적으로 하거나, 상호 교제를 목적으로 하기 위해서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이는 신앙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출석하는 성도들에게 최우선 순위는 올바른 예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인 것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그러한 예배를 드린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은혜를 주시며 응답하시는지에 대해서 표본을 보여주신 말씀입니다.
(행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여기에서 우리는 초대교회의 순결하고 열정적인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1)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일과가 되었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여 많은 시간을 함께 지냈습니다.
2)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의 말씀을 경청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말씀에 집중을 하였음을 뜻합니다.
3) 그들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일에만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니라 성도들끼리 서로 서로 사랑하였습니다. 진정한 예배는 거룩한 공회만이 아니라 성도들이 서로 교통하는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4) 그들은 서로 한마음으로 모였으며 서로 불화하지 않았고 거룩한 사랑만이 있었습니다. 그야 말로 예배의 기쁨이 넘치는 교회였으며, 가정에 돌아가서는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나눴습니다(46절).
5) 그들은 성령이 임재한 후에도 그들은 그전처럼 계속 기도하였습니다.
6) 그들은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계속 열심히 참가하였습니다.
7) 그들은 비록 가난하였지만 핍박을 받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기쁨의 샘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선기금을 모으기 위해 그들의 재산과 소요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형제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로마 식민지 치하에서 그리스도인만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감화를 받았다면 오늘 우리가 받아야 할 은혜와 축복도 그것입니다.
(행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행 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고 예배를 빠뜨리지 않으면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십계명을 준수하고 안식을 기억하고 거룩하게 지켰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 제사를 되풀이 하면서 점점 제사가 형식화되면서 하나님이 도리어 그 제사를 거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는 형식이전에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내면적인 올바른 믿음의 자세였습니다.
(사 1: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사 1: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그러므로 기쁨이 넘치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주일의 소중함과 더불어 주일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를 바로 깨달아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림으로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사 56:2)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의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하지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와 같이 하는 사람, 이와 같이 굳게 잡는 사람은 복이 있느니라”
미주 일리노이 대학교 커뮤니케이션 연구소 소장인 퀀틴 슐츠((Quentin J.Schulze)라는 사람의 말로 결론을 맺고자 합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수도원적인 방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대 교회는 오래된 예배의 관행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수도원 형제들은 매일 시간에 맞춰 드리는 예배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가 성부께 바치는 무한한 사랑의 행위에 동참하기 위해 시편을 암송하고, 찬송을 부르고, 성경에 나와 있는 신령한 말씀을 선포하거나 목소리를 높여 기도를 하였다. 찬양과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존재는 깊숙이 참여하게 되며, 우리의 마음은 큰 기쁨으로 고무된다. 또한 음악은 오래 동안 전해져 온 풍성함으로 우리의 예배를 향상시켜 준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인간들은 믿음으로 반응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정신과 마음과 뜻 속으로 더욱 깊이 들어가며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에 의해 성부에게도 인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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