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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스와 룻은 드디어 결혼을 한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이들에게 아들을 주신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할 것이 있다. 두 사람이 너무 쉽게 아들을 얻은 것이다(13절). 지난 번에 봤듯이 보아스는 나이가 많은 노인이었다(3:10). 또 룻도 젊은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결혼 후에 바로 아이를 낳지 못했다(1:4~5). 즉 최소한 룻이 쉽게 쉽게 아이를 낳는 여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보아스가 늦은 결혼으로 아이를 얻은 것, 그것도 사내 아이를 얻은 것은 생각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13절에서는 보아스와 룻이 너무나 쉽게 아이를 낳은 것으로 묘사한다. 그렇다면 정말 쉬워서 그런 것일까? 답은 본문에 있다. 바로 여호와께서 임신하도록 하신 것이다. 그럼 왜 여호와께서는 보아스와 룻이 그렇게 쉽게 임신하도록 도우셨을까? 우리는 지금까지 룻기를 통해서 이 두 사람이 결혼하기까지의 험한 과정을 오직 주님의 뜻을 따라 순리대로 행한 것을 봤다. 하나님의 길을 묵묵히 따른 것이다. 사람들은 늘 결과에 관심이 많다. 아니 결과만을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할 것이 있다. 결과는 하나님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단지 그 결과가 나오는 과정에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과정은 사람의 영역이고, 과정에 따른 결과는 하나님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사람이 아무리 안달복달 한다고 해서 그것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가? 아니다. 아무리 안달복달해도 결과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물론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면 최선의 결과가 나온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반드시 그런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리 최선을 다했어도, 얼마든지 결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결과는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오늘도 은혜가 필요한 것이다. 겸손이 필요한 것이다. 비록 최선을 다했어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겸손하게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의 보아스와 룻은 자신들의 할 일을 주님의 순리대로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 너머의 결과는 주께 맡겼을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의 뜻대로 최선을 다한 사람은 그 결과에 대해서 내려놓을 수 있는 지혜가 생기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본문을 통해 기억할 것은 내 초점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이다.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처럼 결과에만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야 하는 것이다. 과연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그 과정 하나 하나를 준비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오늘도 결과에만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보아스와 룻처럼 묵묵히 주님의 뜻을 따라 과정 하나 하나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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