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룻기서의 기자는 마지막을 족보로 마무리한다. 유다의 아들인 베레스부터 시작해서 (민26:20) 다윗까지 보여주는 것이다. 이 족보에 의하면 결국 룻기서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다윗 가족의 모습, 즉 그의 탄생 배경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족보의 마지막을 다윗에 초점을 맞춤으로 끝낸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이 족보에 등장하는 인물의 숫자가 단지 열 명이라는 것이다. 너무 적은 것이다. 예를 들어서 1~5대는 애굽에서의 430년 동안의 인물들이고, 그 이후의 6~10대의 5명은 출애굽부터 다윗까지의 인물들이다. 기간에 비해서 사람의 숫자가 너무 적은 것이다. 그렇다면 왜 룻기의 저자는 이렇게 했을까? 모르고 빠뜨린 것일까? 아니다. 우리는 성경 기록의 원칙을 알고 있다. 하나님의 역사에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빼는 것이다. 중요하지 않은 시간도 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룻기서의 마지막 족보에 잊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할 것은 이 족보는 세상의 족보가 아니라, 성경의 족보라는 사실이다. 다윗의 족보이고, 예수님의 족보인 것이다. 세상의 족보가 아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바로 내가 속한 영적 가족의 족보인 것이다. 그런데 이 족보에도 잊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의 족보에 등장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가족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족보에 등장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족인데도 잊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무서운 사실이다. 내가 바로 그 잊혀진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인데도 빠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잊혀지고, 어떤 사람이 기록이 될까? 그 힌트가 마태복음 1장 3~6절의 족보에 나온다. 즉 룻기서의 족보와 마태복음의 족보가 똑같은데, 두 여인이 등장하는 것이 다른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족보에 기록되는 원리를 이 두 여인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다. 바로 믿음이다. 순종이다. 하나님의 법대로 사는 것이다. 이 두 여인은 이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기억해야 한다.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기준이라는 것이다. 세상에서 한 사람은 창녀였고, 한 사람은 초라한 이방여인이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고, 오히려 멸시를 받는 두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 두 사람은 예수님의 족보에 위대한 자취를 남겼다. 왜냐하면 믿음을 드렸고, 하나님의 법대로 순종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의 족보에서 잊혀진 사람인가, 기록된 사람인가? 한 가지를 확인하면 된다. 룻처럼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룻기서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신 것이다. |
'설 교 > 룻기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덕진 목사의 룻기 강해(16)] 고난에서 영광으로 (0) | 2011.05.12 |
---|---|
[이덕진 목사의 룻기 강해(14)] 나의 영역, 하나님의 영역 (0) | 2011.05.12 |
[이덕진 목사의 룻기 강해(13)] 관점이 다릅니다 (0) | 2011.05.12 |
[이덕진 목사의 룻기 강해(12)] 도리어 섬기는 하나님 (0) | 2011.05.12 |
[이덕진 목사의 룻기 강해(11)] 왜 여섯 번 주었을까? (0) | 2011.05.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