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부르짖으라/(렘 33:2-8)

미션(cmc) 2011. 10. 1. 07:48

부르짖으라
(렘 33:2-8)

(렘 33:2)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렘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렘 33: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무리가 이 성읍의 가옥과 유다 왕궁을 헐어서 갈대아인의 참호와 칼을 대항하여” (렘 33:5) “싸우려 하였으나 내가 나의 노여움과 분함으로 그들을 죽이고 그들의 시체로 이 성을 채우게 하였나니 이는 그들의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얼굴을 가리어 이 성을 돌아보지 아니하였음이라” (렘 33:6)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렘 33:7)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렘 33:8)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이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는 지난날의 역사가 많이 기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역사책이 아님은 그 역사를 통해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언하는 하나님의 도구와 방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가리켜 예언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계 22:10)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읽고 묵상하게 되면 과거에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셨고, 또한 미래에 어떻게 역사하실 것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한결 같으신 분이기 때문에 지난날에 역사하신 것처럼 오늘도, 내일도 동일하게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동사의 시제가 단 한번으로 끝나는 과거 시제인가? 현제에도 계속되고 있는 현재능동형인가? 아니면 미래에 이루어질 예언인가? 하는 것을 면밀하게 살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성경은 어떤 형의 말씀일까요?
물론 지난날의 과거사이든지 현재 당면한 문제이든지 아니면 미래에 일어날 일이든지를 막론하고 모두가 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주권 하에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의지로는 좌우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 하나님은 미래에 일어나게 될 예언조차도 그냥 가만히 앉아서 그 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씀하지 않고 그 날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이라고 할지라도 기도함으로 인해 그 계획이 확실하게 이루어지고, 이미 하나님이 작정하신 일이라고 할지라도 부르짖어 기도하면 그것을 돌이켜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1. 정의로우신 하나님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생각과 속성을 성경 말씀과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 계시하여 주셨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거룩하고 선하신 하나님은 불의를 미워하시고 선을 사랑하시며 죄악을 용납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그 죄를 심판하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심을 이스라엘과 유다의 역사를 통해서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정통성과 예루살렘 성전을 자랑하는 남쪽 유다 백성들이 시간이 흘러가면서 그들을 출애굽시키시고 가나안을 점령하게 하시고 이스라엘을 건국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이방 풍습을 좇아 우상을 숭배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북쪽 이스라엘은 앗수르 제국에게 멸망을 당하고 남쪽 유다는 BC 588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침략을 받아 예루살렘 성이 포위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때가 유다 왕 시드기야의 통치 10년이며, 느부갓네살의 통치 18년이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비롯하여 여러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차례 경고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예레미야를 대변인으로 삼아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미리 경고하여 주셨습니다.
(렘 25:1)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넷째 해 곧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 원년에 유다의 모든 백성에 관한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렘 25:9) “보라 내가 북쪽 모든 종족과 내 종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다가 이 땅과 그 주민과 사방 모든 나라를 쳐서 진멸하여 그들을 놀램과 비웃음 거리가 되게 하며 땅으로 영원한 폐허가 되게 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같은 경고를 하신 까닭은 왕과 백성들이 그 경고를 듣고 돌이켜 회개하기를 기대하셨던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하기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렘 21:2)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우리를 치니 청컨대 너는 우리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라 여호와께서 혹시 그의 모든 기적으로 우리를 도와 행하시면 그가 우리를 떠나리라 하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지자의 경고를 무시하고 끝까지 곁길로 갔기 때문에 마침내 그 예언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왕하 25:1) “시드기야 제구년 열째 달 십일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그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그 성에 대하여 진을 치고 주위에 토성을 쌓으매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바벨론 왕은 예루살렘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렘 32:28)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이 성을 갈대아인의 손과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손에 넘길 것인즉 그가 차지할 것이라”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왕과 백성들이 포로가 되어 줄줄이 묶이어 바벨론으로 끌려갈 것이라는 예언은 참으로 두렵과 절망적인 예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은 현실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희박한 공갈이나 협박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이미 지나간 과거처럼 확고 불변한 사실이 될 수 있는 예언이었습니다.
그것은 지난날의 죄악에 대한 공의로운 하나님의 심판이지만 만일 그것이 현실이 되어지면 매우 참혹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하 36:6)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와서 그를 치고 그를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잡아가고” (대하 36:7) “느부갓네살이 또 여호와의 전 기구들을 바벨론으로 가져다가 바벨론에 있는 자기 신당에 두었더라”
물론 여호와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사랑과 긍휼이 많으신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것은 구두 경고에 불과할 뿐이지 사실로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영원토록 공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유다 백성들을 바벨론의 포로가 되게 하시고 심지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필요한 거룩한 도구들까지 다 빼앗아가 가버리고 예루살렘은 이방 총독의 지배와 착취를 받게 되었습니다.
(대하 36:10) “그 해에 느부갓네살 왕이 사람을 보내어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잡아가고 여호와의 전의 귀한 그릇들도 함께 가져가고 그의 숙부 시드기야를 세워 유다와 예루살렘 왕으로 삼았더라”
그러나 무더운 여름 뒤에 서늘한 가을을 준비하시고, 매서운 겨울 뒤에 따사한 봄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은 그와 같이 절망적인 예언만을 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매우 고무적이고 소망이 넘치는 예언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성경 본문의 말씀으로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는 막장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회복이 되는 날이 오게 될 것을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형벌만을 내리는 무서운 하나님이 아니라 회개하기만 하면 다시 회복시키시는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심을 오늘 성경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2.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혀 소망이 없는 상태에게 이르게 될 것을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바른 말을 하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핍박하는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돌이켜 회개하지 않고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추구하면 할 수 록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렘 33: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무리가 이 성읍의 가옥과 유다 왕궁을 헐어서 갈대아인의 참호와 칼을 대항하여” (렘 33:5) “싸우려 하였으나 내가 나의 노여움과 분함으로 그들을 죽이고 그들의 시체로 이 성을 채우게 하였나니 이는 그들의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얼굴을 가리어 이 성을 돌아보지 아니하였음이라”
물론 그 상태는 매우 비참하고 처절한 상황이 되겠지만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은 소망적인 세 가지 약속을 하셨습니다.

1) 치료하시는 하나님
(렘 33:6)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여기서 ‘치료하며’라는 말(hk:Wra)은 ‘건강, 치료, 회복, 복구’라는 뜻으로 원래는 상처 부위에 돋아나는 새 살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또한 ‘고쳐’라는 말(aPer]m)은 '고침, 치료, 치유, 구제‘를 뜻하는 말이고, ’낫게 하고‘라는 말(ap;r)은 ’고치다, 치료하다, 건강하게 하다‘라는 뜻의 와우 계속법으로 한두 번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그렇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은 범죄로 인해 심한 상처를 입게 되지만, 그들을 연단시켜 새로이 회복시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마치 피부에 새 살이 돋듯이 치유함을 받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 결과 이전에 고통과는 아주 대조가 되는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나타내 보여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2)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렘 33:7)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여기서 이스라엘의 회복은 포로에서 자유와 해방을 주시겠다는 말이 아니라 포로 상태에서 돌아오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세울 것이며’라는 말은 와우 계속법 완료 형으로 완전히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북쪽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을 당하고, 남쪽 유다가 바벨론에게 포로가 된다는 것은, 이역만리에 머나 먼 타국에 뿔뿔이 흩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고국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 불가능하게 생각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되처음 건국할 때처럼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3) 사죄하시는 하나님
(렘 33:8)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이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
여기서 ‘정하게 하며’라는 말(rhef)은 ‘깨끗하다, 정결하다, 순결하다, 순수하다’ 라는 뜻이고, ‘사할 것이라’는 말(jl's;)은 ‘용서하다, 사면하다’라는 말로 둘다 완료형입니다.
이는 그동안은 여호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돌이켜 회개하기를 촉구하셨으나 듣지 않다가 결국 포로가 되어 당연히 죄 값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가 되면 그들이 무슨 의를 행했기 때문이 아니라 여전히 죄악에 빠져있을지라도 긍휼과 자비가 많으신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사해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때로 징계와 심판을 내리시는 것도 마치 빨강색 신호를 무시하고 질주하던 자동차가 대형 사고를 치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전에 경고하신 것을 묵살하고 자초한 고통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유다 백성들의 죄악에 대해 공의롭게 심판하실 뿐 아니라 그와 더불어 그들을 아주 버리지 않으시고 때가 되면 그들이 자초한 고통 중에서 건져 내어 치료하시고, 회복시키시고, 사죄하시는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심을 나타내 보여주는 것입니다.

3. 일을 성취하시는 하나님
이방 나라에 포로가 될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시 회복되어지는 것이 그들의 선행이나 공로가 아니라면 과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요?
물론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신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천지를 만드신 여호와 하나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은 그 하나님을 가리켜 일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렘 33:2)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1) 여기서 ‘일을 행하시는’ 이라는 말(hc;[)은 창세기의 창조사건에 자주 나타나는 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심을 뜻하는 분사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심에 있어서 창조적 권능으로 그 일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2) 또한 그것을 ‘만들며’라는 말(rx'y:)은 ‘형성하다, 모양으로 만들다’라는 뜻으로 역시 창조주 하나님을 나타내는 말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신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창 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3) 그 다음‘성취하시는 여호와’라고 하는 말(@WK)은 ‘확고하다, 준비하다, 확립하다’라는 뜻의 분사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백성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약속하신 회복이 반드시 이루실 것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빌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는 다는 말은 하나님의 존재하심만이 아니라 이같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 것을 뜻합니다.
(롬 4: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롬 4: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오늘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오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팔짱을 끼고 우리를 쳐다만 보시고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충성스럽게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요? 오히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역행하고 하나님을 근심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 때가 더 많습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일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시며, 그 하나님은 일을 계획하시고 그 일을 만들어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오늘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렘 33:2)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레미야에게 하나님께서 부르짖으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그와 같은 응답의 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비록 인간의 행위가 선하지 못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 죄로 인해 자기 자신이 자초한 당연한 결과에 대해서 외면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불쌍히 여기시고 마치 a/s 센터 주인처럼 그것을 당신께 가져오라고 맡기라고 도우심을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렘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1) 여기서 ‘부르짖으라’는 말(ar;q)은 ‘선포하다, 초대하다’는 뜻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과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도는 나의 삶의 현주소에 하나님을 초청하고 하나님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2) 또한 ‘응답하겠고’라는 말(hn:[;)은 ‘대답하다, 응수하다, 증거하다’는 뜻으로 미완료입니다.
3) ‘알지 못하는’이라는 말([d'y:)은 ‘알다, 이해하다’라는 뜻으로 그동안 인지하고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해주시겠다는 말입니다.
4) ‘ ‘크고 비밀한 일’이라는 말(rx'B)은 ‘접근하지 못하게 하다’라는 뜻으로 울타리를 쳐서 요새화되어 접근할 수 없는 것을 뜻합니다.
5) ‘네게 보이리라’는 말(dg"n)의 기본 의미는 눈에 띄다는 뜻으로 ‘알리다, 폭로하다, 선언하다’는 등을 의미하는 미완료 동사로 미래에 그렇게 하시겠다는 말입니다. 오로지 부르짖기만 하면 그 모든 것들을 깨닫게 하여 주시고, 드러내어 보여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후일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예언하신 말씀이 그대로 다 이루어졌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가 멸망을 당하고 이방 나라에 포로가 되어 끌려갔습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자그만 치 70 여년의 세월이 흘러 갔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늘 성경에 오로지 부르짖기만 하면 하나님이 ‘치료하여 주시겠다, 회복하여 주시겠다, 사죄하여 주시겠다’는 약속을 까맣게 잊어버린 채 예루살렘과 천리만리 멀리 떨어진 이방 나라에서 노예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그들이 고국을 돌아와 나라를 재건한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그 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부르짖어 기도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화 1
BC 444년 경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가 페르샤 왕의 겨울 궁전인 수산 궁에서 아닥사사다 왕의 술 관원장 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느헤미야가 그의 아우 하나니가 유다에서 방문단을 이끌고 돌아왔을 때 예루살렘과 유다 사람들의 형편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남아 있는 유다 사람들은 고국에서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처지에 있는데다가 수모까지 당하고, 예루살렘 성벽은 무너져서 쓰레기더미가 되어 있고, 성문들도 모조리 불에 타서 없어졌다는 사실을 들려 주었습니다. 느혜미야는 그 소식을 듣고서 주저앉아 며칠 동안 슬퍼하며 금식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느 1:8)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느 1:9)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느 1:11)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인간적으로 보면 느헤미야의 그같은 기도가 무슨 힘이 되겠는가? 생각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오늘 성경에 약속하신 말씀처럼 느헤미야의 그 같은 기도를 들으시고 마침내 아닥사스다 왕을 감동시켜 느헤미야의 소원대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52 일 만에 성을 재건하게 하셨습니다.
(느 6:15) “성벽 역사가 오십이 일 만인 엘룰월 이십오일에 끝나매”(느 6:16) “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한 사람 느헤미야가 포로로 잡혀 있는 이역만리에서 산산이 흩어진 동족과 무너진 예루살렘 성의 재건을 위해 한 일이 무엇입니까? 오직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한 일이었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이었으나 하나님은 오늘 성경 말씀처럼 느헤미야에게 크고 비밀한 일을 보이시고 마침내 그것을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예 화 2
진정한 치료와 회복과 사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질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진정한 부르짖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르짖어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구원의 비밀과 영생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예비하신 영원한 천국을 맛보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동일하게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명하시고 부르짖어 구하는 자를 치료하시고 구원하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와 제자들이 여리고에 들렀다가 뒤따르는 군중과 함께 마을을 떠날 때있다. 디매오의 아들 바디매오라는 맹인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막 10:47) “지나가시는 이가 나사렛 예수라는 말을 듣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였다.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여, 저를 불쌍히 여겨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사람들이”(막 10:48) “`조용하시오' 하고 야단쳤으나 그는 더욱 큰소리로 `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다시 한 번 소리 질렀다.”(막 10:49) “예수께서 그 소리를 들으시고 걸음을 멈추시며 `그를 불러오라'고 하셨다. 사람들이 그 맹인에게 가서 `당신은 운이 좋소. 이리로 오시오. 그분이 당신을 부르시고 있소' 하고 일러주자”(막 10:50) “맹인은 그의 낡은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께로 왔다.”(막 10:51) “예수께서 `내가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시자 맹인이 `선생님, 눈을 뜨게 해주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막 10:52)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좋다. 눈을 떠라.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다.' 그러자 맹인은 그 자리에서 보게 되어 예수를 따라 나섰다.”
예화 3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살아계시며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개신교의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기도의 사람은 존 녹스일 것입니다.
16세기 종교 개혁자 존 녹스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당시의 영국의 여왕 메리 여왕은 카톨릭 교도이었습니다. 개신교도들을 너무나 싫어했습니다. 너무나 많은 개신교도들을 죽였기 때문에 피의 여왕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모든 개신교도들과 존 녹스를 죽일 것이라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존 녹스는 하나님 앞에 피를 토하며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개신교도들을 지켜달라고, 종교개혁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들었습니다. 메리여왕이 이유를 알지 못하는 중병에 걸려서 회복되지 못하고 죽어가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존 녹스 한명의 기도가 백만의 대군의 힘보다 더 강하다.”
그렇습니다. 한사람의 기도가 그 큰일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도가 이 민족을 회복시키고 이 땅을 다시 부흥케 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레미야에게 하나님께서 부르짖으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그와 같은 응답의 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우리도 그와 같이 부르짖어 기도하면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은 세 가지로 응답하실 것입니다.

1)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준비란 바로 기도하는 것이며,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찾을 때 하나님께서 만나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암 4:12)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 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해야 합니다.
(신 4:29)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
여기서 하나님을 ‘만나리라’라는 말(ax;m;)은 그냥 얼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찾다, 얻다, 이루다, 이르다’ 라는 말씀처럼 응답해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2) 하나님께서 치료와 평안의 복을 주실 것입니다.
(렘 33:6)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라고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치료의 광선을 발하여 주셔서 우리를 고쳐 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치료의 하나님이시며 치료자 되시는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근심하는 대신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3)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놀라운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유명한 성경 주석가 매튜 헨리는 “기도는 신앙의 유모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자라기 위해서는 유모가 주는 우유를 받아먹어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의 영혼을 자라게 하는 영적인 젖입니다. 기도하는 것만큼 믿음이 자랄 것입니다.
기도하는 동안 믿음이 자라고 믿음이 자라므로 믿음이 연약했을 때 깨닫지 못했던 성경의 진리를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되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나를 둘러싼 상황이 너무나 암담하여서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뒤로 도망칠 수도 없고, 좌우로 비켜갈 수도 없는 절망적인 고통의 때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것은 바로 여호와를 찾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은 만나 주시고 반드시 우리의 문제에 대한 답을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이전에 근심하고 염려했던 것들이 알고 보면 하나님이 내게 놀라운 은혜를 주시기 위한 기도꺼리였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마음에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와 같은 기도의 응답을 체험하게 되면 믿음에 확신이 생기게 되고, 두려움이 사라지게 되고, 감사가 넘치게 되고, 마음에 평화가 깃들게 되고, 그와 더불어 영혼이 잘 됨 같이 육신도 잘된다는 말씀처럼 건강이 회복되고 일이 풀려가게 될 것입니다.
악한 마귀는 이를 두려워하여 우리로 하여금 마음에 의구심을 갖게 하고 기도하지 못하도록 사람을 통해 환경을 통해 우리를 훼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에게 당하는 시험 중에 가장 큰 시험은 기도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시험입니다.
그래서 이 같은 시험을 극복하려면 내 속에서 불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나를 불붙는 곳으로 이끌고 가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합십하여 부르짖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 18: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불이 활활 타오르는 아궁이에 젖은 생솔가지를 집어넣어도 불이 꺼지지 않고 마치 기름종이처럼 타오르는 것을 어렸을 때 시골에서 경험하였을 것입니다.
예 화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했으나 블레셋에게 연패하고 절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무엘 선지자가 제시한 카드는 전 이스라엘을 무장시킨 것이 아니라 전 이스라엘을 미스바에 모여 합십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게 함으로 에벤에셀이라는 역전의 승리를 맛보게 하였습니다.
(삼상 7:5) 사무엘이 이르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삼상 7:11)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 (삼상 7:12)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오늘 나의 현실이 위급하고 고통스럽고 죄송스러운 상황일수록 지체하지 말고 다같이 모여 합심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어 도움을 구할 때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해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도 그 같은 복을 주시기 위해 내일 새벽부터 시작되는 특별 새벽기도회와 부흥회에 시간마다 참석하여 부르짖어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 회복과 치유와 사죄의 복을 받으시기 축원합니다.
(시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91:15절)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시 120:1)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 (눅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