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그리스도인
(빌 4:20-23)
(20)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2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에게 각각 문안하라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22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별히 가이사 집 사람 중 몇이니라 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우리는 지난 주간 ‘주여 내 인생에 은혜를 주옵소서’라는 주제 하에 특별 새벽기도회와 심령 부흥회를 마쳤습니다.
물론 참여한 성도들이 이구동성으로 은혜를 많이 받았다는 인사를 나누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받은 은혜가 어떤 것이냐?고 구체적으로 답을 하라고 하면 막상 이런 은혜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고통을 겪던 고질병이 고침을 받았다거나 집회 기간에 무슨 좋은 일이 일어났다거나 다른 사람들이 듣고서 공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은혜를 제시할 수 있는 것들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구해서 아무런 은혜도 받지 못한 것이냐? 고 반문한다면 ‘아니라고 은혜를 받기는 받았는데 다만 물량적이고 가시적인 은혜가 아니기 때문에 말로 잘 표현을 못하겠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받은 은혜는 어떤 은혜일까요? 설령 은혜를 받았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왜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이며, 은혜를 받은 사람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요?
1. 깨달음의 은혜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베풀어 주신 복과 은혜는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다함이 없는 지속적이고 풍성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그에 대해서 감사하지 않고 오히려 욕심을 부리다가 범죄 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좋은 것들을 다 잃어버림으로 만사에 만족함이 없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나님의 은혜는 받고서도 깨닫지 못하게 되면 결국은 다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을 교훈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처럼 불신앙의 죄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게 되면 감사를 잃어버리게 되고, 감사를 잃어버리게 되면 매사에 상대적인 열등감이나 패배주의와 불신앙에 사로잡힌 채 기쁨과 감사를 잃어버린 채 불행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를 통해 깨닫지 못하는 인생은 마치 주인을 알고 있는 가축만도 못하다고 탄식하셨습니다.
(사 1: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여기서 ‘깨닫지’라는 말(@yB)은 오감을 통해서 '식별하다, 분별하다, 지각하다, 깨닫다, 이해하다'라는 마음으로는 영적인 이해와 분별과 통찰력을 가지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깨달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는 중에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교통하심이 항상 절실하게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러한 깨달음의 은혜를 받게 되면 비로소 하나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며, 내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연약한 존재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기 원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비로소 감사하게 되고,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깨닫게 되면서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하게 되는 변화가 점진적으로 자신의 내면에서부터 일어나게 됨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저는 새벽 기도회를 마치고 운동으로 하러 가면서 서서히 밝아 오는 여명을 보며, 아하!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변화도 마치 밝아오는 여명처럼 점진적으로 일어나게 하시는구나! 라고 혼자서 감탄 한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을 여러 가지로 비유를 하셨는데 그 이유는 어리석은 사람들로 하여금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였습니다.
(막 4:12)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예수님의 비유 중에 가장 유명한 ‘씨 뿌리는 농부의 비유’를 보면 똑 같이 천국 말씀을 들으면서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가기 때문이고, 그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는 백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맺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마 13: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마 13:23)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 중에 가장 큰 은혜는 깨달아지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면 반드시 개인과 가정과 교회에 마치 결실하는 것처럼 점진적인 변화가 일어나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달아지는 은혜가 가장 좋은 은혜입니다.
역설적으로 하나님이 내리시는 형벌 중에 가장 무서운 은혜는 암에 걸리거나 불의의 사고로 죽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읽고 듣고 은혜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깨달아지지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 6: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사 44:18)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함은 그들의 눈이 가려서 보지 못하며 그들의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함이니라”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말씀은 ‘마음이 둔하게’라는 말(@m'v), ‘귀가 막히게’라는 말(db'K), ‘눈이 감기게’라는 말([['v) 은 모두 다 영적인 비만과 무감각함을 뜻하는 말로 말씀을 들어도 그러한 사람은 변화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 깨닫게 되면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는’ 회복과 치유의 복을 받는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장로님이 이번 부흥회에 말씀을 듣는 중에 마음이 뜨끔 뜨끔하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는 간증을 들으면서 진심으로 감사하였습니다.
그래서 시편 중에 가장 긴 시119편의 기자는 하나님께 금이나 권세를 구하지 않고 깨달아지는 은혜를 구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 깨달아지는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시 119:27) “나에게 주의 법도들의 길을 깨닫게 하여 주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기이한 일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 (시 119:34)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여 주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 (시 119:125) “나는 주의 종이오니 나를 깨닫게 하사 주의 증거들을 알게 하소서” (시 119:144) “주의 증거들은 영원히 의로우시니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사 살게 하소서” (시 119:169) “여호와여 나의 부르짖음이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깨닫게 하소서”
2. 계속 채워주시는 은혜
우리 중에 하나님께 아무리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 있다고 할지라도 살아가는 동안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 없을 만큼 모든 은혜를 다 받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인생이 오늘로 끝이 난 것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해서 살아가는 동안 영육 간에 필요한 것들이 많게 됩니다. 그 가운데는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할 때가 더 많을 것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베풀어 준 사랑에 답례를 하면서 보낸 편지의 마지막 부분의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생명을 걸고 최선을 다하는 바울 사도를 위로하고 돕기 위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선교헌금과 위로의 사절 에바브로 디도를 보낸 것에 대한 답례의 편지로 마지막을 축복으로 끝맺음을 하고 있습니다.
(빌 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여기서 ‘모든 쓸 것’이라는 말(creiva)은 ‘필요, 결핍, 부족’이라는 뜻으로 빈손으로 태어난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필요한 것들이 한두 가지 아닌데, 예수를 믿는다고 예외가 아니라 오히려 영적이 필요가 더 많아지게 됩니다.
그러한 필요를 누구보다 절실하게 경험하고 있는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의 필요를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을 자신이 해결해 줄 수 없는 처지에서 하나님께서 빌립보 교회 성도의 필요를 ‘채우시리라’고 한 말(plhrovw)은 ‘가득하게 하다, 넘치게 하다, 충만하다, 약속을 성취하다’라는 뜻으로 여러 성경에서 사용되었습니다.
[행 13: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빌 1: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요일 1: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
우리가 때로 길을 가다가 보면 음식점에서 손님을 끌기 위해 ‘무한리필입니다’라고 써 붙인 광고를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 말은 한번 돈을 내고 나면 배가 불러 더 이상 먹을 수 없을 정도로 계속 채워주겠다는 뜻이 아닙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필요한 은혜가 무한리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채워주실 영육간의 은혜가 바로 무한 리필인 것입니다.
우리가 금번 부흥회를 통해서 아무리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성경의 극히 한 부분들일 뿐이고 하나님의 은혜의 빙산의 일부에 불과한 것뿐이기 때문에 더 하나님의 더 깊은 은혜와 더 큰 사랑과 더 넓은 섭리를 이해하려면 깨달아지는 은혜를 지속적으로 공급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엡 3: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것 뿐 인가요? 영적으로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은혜를 받았다고 마귀는 우리를 겁내고 있을까요? 더 이상 마귀의 시험과 유혹에서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고 우리의 믿음은 절대로 흔들림이 없다고 큰 소리를 칠 수 있을 정도로 영적으로 완전합니까?
육신적으로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누구를 막론하고 가정과 직장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라는 요람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 요람을 누가 흔들면 그 요람 안에 있는 우리도 흔들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은 평안합니까? 나라의 경제와 정치는 안정되어 있나요? 앞으로 세계 경제는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남북의 대결 구도는 언제나 끝이 날 것 같습니까?
인간의 탐욕으로 말미암아 파괴되어가는 공기와 물과 대지로 말미암아 오염된 식물을 그래도 먹어야만 삽니다.
마치 현대의학을 비웃듯이 신종 바이러스의 출몰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암과 성인병과 싸움을 벌리고 있습니다.
경제는 성장했다고 하는데 왠일인지 경기는 계속 침체되어 서민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사업하는 이들은 갈수록 기업환경의 악화로 사업의 채산성이 맞질 않기 때문에 사업을 포기했거나 포기하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세상에 가정이 평안하고 사회가 평안하고 국가와 민족이 평안하고 교회가 평한 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무한 리필 되어져야만 합니다.
물론 지금까지 그같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지만 앞으로 그와 같은 은혜가 더더욱 필요한 세상에서 오늘 성경은 무한리필을 약속하고 있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빌 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여기서 ‘채우시리라’는 말씀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가 아니라 우리가 걱정하고 염려하는 미래에 주실 은혜를 약속하는 미래 능동태입니다.
3. 은혜 받은 자의 삶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은 값없이 거저 주신다는 뜻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싸구려가 결코 아닙니다.
1) 가장 큰 은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심으로 우리가 과거에 지은 모든 죄를 속죄함 받았고,
2) 영적으로 우둔하여 그 같은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성령과 말씀으로 깨달아지는 은혜를 허락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해 주시고,
3) 현재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동안 그 믿음이 약하여지거나 없어지지 않도록 모든 필요를 충족시켜 주시고,
4) 장차 죽음이 오게 될지라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게 들어가도록 확정(確定)시켜 주신 모든 것들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그와 같은 은혜를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영원토록 베풀어 주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 마치 좋은 밭에 뿌려진 씨처럼 풍성한 열매 맺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가장 아름답게 창조하시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가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거신 기대가 바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비록 시작은 한 사람 아담이었지만 그 후손들은 하늘에 별과 같이 바닷가에 모래알같이 번성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그와 같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는 은혜를 주시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요 15: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의 삶의 우선순위는 첫 번째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라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답을 찾은 사람입니다.
오늘 성경에서도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마무리 하면서 마지막으로 당부한 말씀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빌 4:20)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여기서 ‘세세 무궁하도록’이라는 말()은 ‘무한히 긴 시대, 영원’을 뜻하는 말을 두 번 겹쳐서 하는 말로 과거에만 아니라, 현재에만 아니라, 미래 영원토록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시 115:1)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돌리소서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삶이 하나님께 영원토록 영광을 받으시는 삶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입니다.
가) 예배
우리가 지상에서 하는 여러 가지 일 가운데 하늘나라에 가서까지 중단할 수 없는 일은 바로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예배입니다.
(계 21:24)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계 5:12)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나) 전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도하고 선교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송하고 기도하게 하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고 하였습니다.
(롬 15:9)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빌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물론 이 말씀은 새로운 것도 아니고 모르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너무나 잘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원론적인 것이기 때문에 무관심하기 쉽고 그렇다고 많이 강조하면 할수록 짜증이 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시해 버린 채 나만 고상하게 예수를 믿으면 다가 아닌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택하신 이유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요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 중에 최고의 은혜가 열매를 맺는 삶을 사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피할 생각을 하지 말고 그 답을 찾아 도전하고 실천하여 열매를 풍성하게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2) 이웃에게 문안하는 삶
하나님은 우리의 영원하신 아버지이십니다. 육신의 아버지는 자기 자식에게 불가능한 것을 명령하지 않습니다. 육신의 아버지는 자신을 위해 자기 자식을 희생시키지 않습니다. 할 수 있으면 자발적으로 할 수 있도록 권고하고 길을 만들고 도움을 주려고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어 십자가의 피로 우리를 값 주고 사신 참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정말 할 수 없는 것을 하나 마나 한 것을 자꾸만 하라고 강요하시겠습니까?
그렇게 순종하면 칭찬하고 상급을 주시기 위함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순존하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대안과 방법을 준비해 놓고 계시는 참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 대안이 바로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가족이나 친지나 이웃이라는 관계 속에 살게 하셔서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구원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많이 붙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그들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며, 그들에게 선을 행함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사명이 바로 빛과 소금으로 사는 삶입니다.
1)선행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선행을 실천하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고 하였습니다.
(빌 1: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벧전 2: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2) 문안
이웃에게 선을 베푸는 첫 단계는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문안하는 일입니다. 인간은 짐승과 달리 만나면 인사를 할 줄 압니다.
성경 여러 곳에 하나님은 예배만 잘 드리고 기도만 많이 하면 천국 간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서로 문안하는 삶을 살라고 하였습니다.
(히 13:24)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과 및 모든 성도들에게 문안하라 이달리야에서 온 자들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벧전 5:13)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요삼 1:15, 개정)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여러 친구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너는 친구들의 이름을 들어 문안하라
여기서 ‘문안’이라는 말(ajspavzoma)의 기본 의미는 ‘포옹하다’이며 “어떤 사람을 좋아하다, 환영하다, 존경하다, 동의하다, 경의를 표하다”라는 뜻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서도 사도 바울은 여러 사람들에게 문안을 하는 가운데 심지어 로마의 황제 가이사의 집 사람들이 생전 본적이 없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문안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빌 4:2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에게 각각 문안하라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22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별히 가이사 집 사람 중 몇이니라
그러므로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의 공통점, 전도를 잘하는 사람의 비밀 병기는 인사를 잘하여 상대방의 마음을 열고 호감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금번 부흥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나로 하여금 열매를 많이 맺어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시는 것임을 깨달은 사람는 주변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무엇보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과 사랑을 가지고 서로 인사하는 일부터 잘 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친히 본보여 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제자 훈련은 전도라고 하지만 그 전도를 알고 보면 영적인 문안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첫 번째 전도 실습을 내보내시면서 부탁하신 일은 사람들에게 가서 평강을 나누고 선포하라고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사도라고 부르는 것이며 오늘의 교회와 성도들은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사도적인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마 10:12)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마 10:13)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예수님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평강을 주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평강의 가장 큰 걸림돌인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평강을 휩쓸어가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첫 번째 하신 문안은 평강을 빌어주신 일이었습니다.
(요 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 20: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이 일평생 해야 할 두 가지 중요한 일은,
첫째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는 것이고, 둘째 이웃과 좋은 관계를 맺고 서로 사랑하며 문안을 나누는 것입니다.
금번 특새와 부흥회를 통해서 정말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새롭게 깨달았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영광을 받으시는 일을 몸소 실천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처럼 나로 말미암아 믿음의 열매 의의 열매 사랑의 열매 성령의 열매인 전도의 열매를 많이 맺는 축복의 종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 모두 태신자를 작정하고 그 태신자를 위해 기도하고, 태신자에게 찾아가서 문안하고, 복음을 전하고, 주님게로 인도할 때에 하나님이 더욱 기뻐하시며 그에 필요한 모든 은혜를 더하여 주실 것입니다.
(빌 4: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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