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부족함이 없는 삶/(시 23:1-6)

미션(cmc) 2011. 10. 22. 08:41

부족함이 없는 삶
(시 23:1-6)

(시 23:1) “[다윗의 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 23: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 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 23: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사람은 혼자 태어났기 때문에 외로움을 타는지 세상을 홀로 살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어려서는 부모와 더불어, 자라서는 친구와, 성인이 되어서는 부부가 되어 일평생을 살다가 때가 되면 홀로 세상을 떠나야 하는 존재입니다.
아무리 긴 여행도 마음 맞는 사람과 동행을 하면 지루하지 않고 즐거운 여행이 되지만, 아무리 짧은 여행도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과 동행하게 되면 오히려 기분이 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인생살이를 가리켜 여행하는 나그네로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 11:13) “지금 내가 열거한 이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다 얻은 뒤 죽은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단지 그 약속이 자기 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을 기쁨으로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세상이 참 고향이 아니고 다만 자신들은 잠시 이 땅에 나그네로 와 있는 데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나그네 인생의 행복은 얼마나 길고 짧고, 멀고 가고, 많고 적고, 낮고 높고가 문제가 아니라, 누구와 동행하는가에 따라 부족함을 모르는 행복한 삶이든지 아니면 불만투성이의 불행한 삶을 살기도 합니다.
그러한 인생의 갈림길에서 ‘나는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자동차는 늘 기름을 필요로 합니다. 아무리 가득할 만자, 탱크 땡 자를 써서 만 땅을 채웠다고 할지라도 안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름은 한 번만 채우면 다 되는 것이 아니라 달려가는 동안 다시 채우지 않으면 아무리 고급차라도 중도에서 멎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계속해서 충전이 필요하며 그러한 필요들이 충족될 때 비로소 오늘 시편 기자처럼 ‘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라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시 23:1) “[다윗의 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오늘 성경을 기록한 시편 기자는 우리들과 달리 부귀권세가 많고 높아서 부족함이 없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서도 ‘나는 부족함이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성경의 시편 기자는 어디에 가서 누구에게 무엇으로 채웠기에 ‘나는 부족함이 없다’는 고백할 수 있었는지 배우게 되면 시편기자처럼 우리도 ‘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행복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시편 23편의 저자는 제목에 있는 것처럼 다윗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전에 들에서 양을 치는 목동이었습니다. 목동이 무슨 부귀권세가 있어서 부족함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인생은 살아가면서 듣고 배우고 경험하면서 철이 들게 되고, 사물의 이치가 깨달아지고 믿음이 자라게 됩니다.
시편 기자도 베들레헴 들판에서 양을 치면서 인생의 이치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깨닫게 되면서 ‘나는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하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땅에는 4월부터 10월까지 비가 오지 않습니다. 이 시기가 농사철이기 때문에 비가 오지 않는 것은 농부들의 마음을 졸이게 합니다.
그래서 농부들은 부득이 양떼를 이끌고 마실 물과 먹을 풀이 있는 곳을 찾아 헤메이게 됩니다. 지혜롭고 부지런한 목자는 어디에 가면 풀과 물이 있는지를 알기 때문에 양떼들의 맨 앞에 서서 손에는 지팡이와 막대기를 들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면서 걷게 되면 양떼들은 그 목동의 뒤를 졸졸 따르게 됩니다.
양떼들은 어디에 풀과 물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지만 목동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앞서가는 목동을 묵묵히 따라가노라면 마침내 풀과 물이 있는 오아시스를 만나게 됩니다.
양을 치는 목자는 때로 굶주린 맹수가 숨어 있다가 뒤에 처지는 양들을 공격하거나 밤에는 양을 습격하기도 하기 때문에 목자의 손에는 항상 지팡이와 몽둥이가 들려져 있습니다.
목자의 인도를 받는 양은 안심하며 풀을 뜯을 수 있고, 설령 풀이 없는 들판을 지날지라도 묵묵히 목자를 따라 가노라면 마침내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에 이르러 배부르게 먹고 마실 수 있게 됩니다.
양이 부족함이 없는 이유는 풀과 물을 쌓아두고 살기 때문이 아니라 비록 뜨거운 햇볕과 목마른 광야와 험악한 골짜기를 통과할지라도 앞서 인도하는 목자를 신뢰하기 때문에 ‘나는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염려를 목자가 알아서 다 해결해 주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 다윗은 그처럼 양을 치면서 인생의 행복의 비결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 답이 바로 천지와 만물을 만드시고 그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내 인생의 목자로 신뢰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는 (시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라고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여호와’는 히브리어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이 나의 인생의 목자이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라는 고백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와 다윗이 왕족이 아니고 사울 왕과 아무런 상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나라의 두 번째 왕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물론 왕이 되었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왕이 된 후에도 목동시절과 변함없이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고, 따라가면서 여호아가 얼마나 좋으신 하나님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 9:9)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요 환난 때의 요새이시로다” (시 11:5)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폭력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시 11:7)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시 25:8)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의 도로 죄인들을 교훈하시리로다”
시편 기자는 그와 같은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반석으로, 요새로, 피할 바위로, 방패로, 구원의 뿔로, 산성으로 모시고 살아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시 18: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그 결과 칠흑같이 앞이 보이지 않는 세상을 살아왔는데 하나님이 빛이 되셔서 앞길이 환하게 되었습니다.
설령 환난이나 기근이나 질병이나 원수 앞에 서게 될 때에도 아무런 두려움이 없게 되었습니다.
어려움에서 도움을 얻고, 죄악 중에서 사죄함을 받고, 마음에는 한없는 기쁨이 넘치고, 힘과 용기가 생기며, 입술에는 찬송이 터져 나오게 되었습니다.
(시 27:1) “[다윗의 시]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시 28:7)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
그 하나님은 다윗에게만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다윗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동일한 은혜로 구원하시고, 살피시고, 도우시는 변함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시 33:18) “여호와는 그를 경외하는 자 곧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시 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힘이 없고 가난한 자를 무시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의 소리를 들으시고 멸시하지 않으시는 참 좋으신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 69:33) “여호와는 궁핍한 자의 소리를 들으시며 자기로 말미암아 갇힌 자를 멸시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러므로 너 나를 막론하고 시편 기자처럼 우리도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나의 피난처로, 나의 편으로 삼고 살아가야만 두려움이 없고, 시편 기자처럼 ’나는 부족함이 없다’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시 118:6)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인간은 동물과 달리 육체적인 감각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행복을 느끼는,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아무리 육체적으로 부귀권세를 누려도, 마음에 만족과 평화가 없는 것입니다.
반대로 육신적으로 모자라고 부족할지라도 마음에 만족이 있으면 그것을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이성적이며 영적인 존재로 오늘 성경의 시편 기자처럼 ‘나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고, 내 편으로 삼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요, 우리의 선한 목자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눈으로 읽고, 귀로 듣고, 마음에 새기고, 삶에 적용하여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여호와를 나의 목자로 모시고 사는 삶입니다.
(막 6: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요 10: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그렇게 할 때 영원하신 목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이 끝나 죽음이 올지라도 변함없이 우리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건너 영원한 하늘나라에 까지 인도해주심을 믿을 때 죽음 앞에서도 나는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을 하게 됩니다.
(계 7: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예화
우리의 인생살이는 마치 로봇 트나 비행기나 탱크와 같은 장난감을 좋아하는 초등학생이 아빠에게 떼를 써서 문구점에 가서 플라스틱으로 된 조립식 장난감을 사가지고 집에 와서 조립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질이 급한 아이는 상자를 확 찢어서 다짜고짜 조립을 시작합니다. 그것을 보고 있던 아빠는 '애야 설명서를 보면서 순서에 따라서 조립을 해야지‘라고 말하면 아이가 말하기를 ’아빠 난 설명서를 보지 않고도 잘 할 수 있어요‘라고 귀담아 듣지 않고 열심히 조립을 해보지만 나중에 가서는 망치고야 맙니다.
그 때 아빠가 무엇이라고 말할까요? ‘그것 봐라 내가 무엇이라고 하드냐? 설명서에 그려져 있는 순서대로 차근차근 조립을 하라고 했지?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처음서 부투 아빠랑 설명서를 보면서 같이 조립을 해보지 않겠니?’라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지혜로운 아이는 ‘아빠 미안해요. 진작 아빠 말대로 할 것을 제가 고집을 부려서 망쳐 버렸네요!“
아빠는 무엇이라고 할까요? ’괜찮아 이제라도 늦지 않았어!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 보자꾸나” 하면서 아이를 도와줄 때 불안했던 아이의 마음에 평안이 깃들고 마침내 멋진 로봇트가 만들어 지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그 로봇트는 누가 만들었습니까? 아이일까요? 아빠일까요?. 물론 아이입니다. 처음에는 실패했지만 아빠와 더불어 만들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삼고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바로 그와 같은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 수단과 방법으로 안 해본 것이 없이 내 멋대로 살았으나 그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면, 이제 부터라도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선한 목자 예수님을 내 마음에 주인으로 모시고 그의 인도하심을 따라 다시 시작하면 머지않아 반드시 ‘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는 행복자가 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너무 많고, 죄를 많이 짓고, 기독교에 대해 아는 것이 없고, 너무 가난해서 누구를 도울 수도 없고, 성질조차 까다롭다구요?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못합니다. 환자가 의사를 배고픈자가 식당을 학생이 학교를 무서워할 필요가 없고 더더욱 필요한 것처럼 그러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더더욱 좋은 목자가 되어 주십니다.
그렇게 인생을 다시 시작하기만 한다면, 결코 이제라도 늦지 않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 화
기독교를 매우 싫어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사울이었습니다.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기독교를 말살하기 위한 것처럼 수단과 방법을 다해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탄압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았던 사람이 선한 목자되신 예수님을 만나서 철이 들고 난후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변화되기 전과 변화되고 난 후를 이렇게 간증을 하였습니다.
(딤전 1: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그 후로 사울은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어 이름을 바울이라고 바꾸고 자기가 핍박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널리 전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물론 그의 경제생활이 이전보다 더 나아진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항상 그의 마음에 기쁨과 평안과 행복이 넘치게 되면서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나누는 행복의 사도가 되어 만인의 존경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변화된 삶의 고백을 들어 보면 마치 여호와를 나의 목자로 모신 시편 기자와 같은 넉넉한 고백을 들어 볼 수 있습니다.
(고후 6:8) “다른 사람이 우리를 존경하든 경멸하든 비난하든 칭찬하든 주님에 대한 충성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우리를 거짓말쟁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정직합니다.” (고후 6:9) “이 세상은 우리를 무시하더라도 하나님께는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으나 우리는 이렇게 살아있습니다. 부상은 당했지만 죽음은 면하였습니다.” (고후 6:10) “우리의 마음은 상처를 받았으나 주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우리는 가난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풍성한 선물을 나누어 주고 있습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것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살전 5:14)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게으른 자들을 나무라고 소심한 자들을 격려하며 허약한 자들이 있거든 돌보아주십시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인내로 대하십시오.”(살전 5:15) “아무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마십시오. 그보다는 언제나 서로 선을 베풀도록 힘쓰십시오. 또 모든 사람에게 선을 베푸십시오.” (살전 5:16) “항상 기뻐하십시오.” (살전 5:17) “언제나 기도에 힘쓰십시오.”(살전 5:18) “어떤 처지에 있든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마십시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나도 그러한 삶을 살고 싶지 않습니까? 그렇게 되기를 진심으로 원하신다면 저를 따라서 하나님께 진심으로 고백하기만 하면 됩니다.
“사랑의 하나님! 나의 목자가 되어주십시오. 저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저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기 때문에 저의 죄가 사함 받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그 예수님을 나의 목자 나의 구세주로 내 마음에 모시겠습니다. 제 모습을 이대로 다 받아주시고 저를 새롭게 변화시켜 주십시오. 오늘 시편 23편의 말씀을 듣고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믿음의 고백을 드리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이 순간 저의 죄가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선한 목자 예수님의 양이 된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이렇게 고백한 여러분에게 신실하신 하나님,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시는 예수님은 이렇게 보증을 하셨습니다.
(엡 2:8)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조차도 여러분의 자발적인 의지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인 것입니다.” (엡 2:9) “이렇게 구원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여 받은 보수가 아니므로 아무도 자신의 선행을 내세워 자랑할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을 믿음으로 마음에 받아드린 여러분에게 오늘 시편 23편의 기자와 같이 ‘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라고 늘 고백하며 살아가는 행복자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이제 마지막으로 다 같이 쉽게 번역된 시편 23편을 마음에 각인을 하기 위해 천천히 읽고 마치겠습니다.
(시 23:1) “<양을 치시는 주님-다윗의 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시 23: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서 쉬게 하십니다. 여호와는 나를 잔잔한 물가로 이끌어 쉬게 하시며” (시 23:3) “나에게 새 힘을 주십니다.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주님은 나를 의로운 길로 인도하십니다.” (시 23:4) “내가 음산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가게 된다 하더라도, 나는 겁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가 나를 든든하게 보호해 줍니다.” (시 23:5) “주님께서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식탁을 차려 주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내 머리 위에 향기로운 기름을 바르시며 내 잔이 넘치도록 가득 채워 주십니다.” (시 23:6) “여호와의 선하심과 사랑하심이 내가 죽는 날까지 나와 함께하실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제 나는 여호와의 집에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