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로 인생을 충만케 하라(눅17장11-19)
<추수감사주일설교>
성경본문/ 누가복음 17:11-19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2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14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
다음 주는 민족의 절기인 추석입니다.
일년 농사를 지어 첫 곡식을 수확하여 하나님과 이웃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절기입니다.
속담에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교회 김전도사가 속담같이 하는 말입니다.
맞는 것 같은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머리가 아무리 좋아도 욕심을 자제하지 못하면, 손발뿐이 아니라 온몸이 고생을 합니다.
그리고 평생 헛수고만 하다가, 결국 아주 불행하게 되어 인생을 비극으로 마치게 됩니다.
인류 최초의 사람들인 아담과 하와에게는 모든 것이 구비되어 있었습니다.
입을 걱정은 아예 할 필요가 없었고, 먹 거리도 사방 천지에 쌓여 있었습니다.
손만 들면 따먹을 수 있는 최상급 과일들이 지천이었습니다.
잠 잘 곳도 물론 염려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어디든지 누우면 안방이고, 일어나 앉으면 응접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번 이 장면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베풀어주신 그 모든 것들을 감사한 마음으로 누리지 못하고, 감히 하나님의 자리까지 넘보다가 그만 낙원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머리가 나빠서 손발이 고생하는 경우도 있지만, 머리가 너무 좋아 욕심을 부리다가 인생을 망친 사람도 참으로 많습니다.
사람이 살아 가는데에는 어느 정도의 욕심은 삶을 의미있게 하지만 욕심은 날카로운 칼날과 같아 조금만 과해도 갖가지 재앙과 불행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특히, 감사하는 마음은 별로 없이, 계속 욕심만 부리며 살게 될 경우, 불행하게 됩니다.
구원받지 못하여 죄와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불쌍한 죄인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병 환자 열 사람'에 관한 이야기는, 바쁘게 머리 굴리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 중이었습니다.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을 때에, 나병 환자 열 사람이 멀리 서서 예수님을 향해 외쳤습니다.
"예수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자신들의 병을 고쳐 달라는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은 즉시 "제사장에게 가서 너희가 나았다는 것을 보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환자들은 성전의 제사장을 찾아 제사장에게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매우 신기하게도 그들이 제사장에게 가는 도중에, 병이 모두 나았습니다.
나병환자들의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문제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나병환자들에게 있어서, 정작 고침 받아야 할 부분은 육신적인 질병이 아니었습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마음의 병이었다는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고침 받은 사람은 몇 명 이었습니까?
열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몇명이나 예수님과 관계를 바로 맺었습니까?
예수님께 돌아와서 감사의 예(禮)를 올린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한 사람에게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고,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눅17:1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는 육신은 멀쩡해서 힘은 넘쳐 흐르지만, 정신과 영혼은 병든 자가 대단히 많습니다.
육신만 온전하다고 해서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가르치시고 있습니다.
오직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사람다운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도 무서운 말씀입니까?
은혜를 입고서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육신적인 문둥병보다 더 무서운 병에 걸려 있는 환자라는 것을 예수님이 지적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사람이라면, 그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께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그분께 찬양하며 예배할 수 있어야, 인간의 기본적인 예의이며 사람다운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ㄱ.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셨고
ㄴ.우리의 모든 것이 그분의 것이며
ㄷ.우리는 하나님이 기르시는 양떼들이기 때문이라고, 시 100편 1-3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ㄱ.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성전에 들어가며
ㄴ.감사한 마음으로 찬양과 찬송을 부르고
ㄷ.감사한 마음으로 그 이름을 경배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도 살전 5: 18에서 "어떤 처지에 있든지,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우리에게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델교회를 꿈꾸는 < >성도 여러분의 하루 하루 생활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을 늘 보살펴 주시는 하나님께, 진정 감사와 감격한 마음으로 예배하고 있습니까?
특히, 죄 중에서 우리를 건져내어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신, 그 구원의 은총에 대하여 얼마나 고마워하고 감격하며 살고 있습니까?
눅 17장의 말씀을 보면, 열 명의 나병 환자 모두 다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한 명만이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열 명이 모두 나았다는 말은,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한 명만 주님께 감사드렸듯이 그만큼 사람들이 감사할 줄 모른다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돌아와 감사의 예를 드리는 일이, 무엇이 그리 힘들다고 마다 했을까요?
병 낫기를 소원하며 몸부림쳤던 것에 비하면, 그 노력이란 '새 발의 피'에 불과했을 텐데 말입니다.
참 이상한 일이지 않습니까?
바로 이것이 사람들이 갖는 일반적이고 평범해진 심적 상태입니다.
그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영적 삶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육적인 일에 치우쳐 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몸도 건강해야 하고, 어느 정도 지적 수준도 있어야 하죠.
그리고 이왕이면 물질적인 여유가 있으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하나님의 모습을 가진 영적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며 하나님을 찾고, 그분께 감사와 찬양을 돌릴 수 있다는 점이,
바로 동물에게는 없는 인간만이 가지는 특성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창조주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는 까닭에, 이 세상에는 많은 비극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떤 비극들입니까?
하나님의 품을 떠나는 비극인 것입니다.
작년 봄에 박사과정 학생들과 과학기술원 장관출신 정근모 박사와 오찬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분은 정색을 하면서 말하기를 "정작 과학자들은 과학을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게 되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과학을 전혀 모르는 비과학자들이 '지금은 과학 문명 시대'라고 말 하며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남편의 고마움을 모르는 아내는 아내가 아니고 아내의 고마움을 모르는 남편은 이미 남편의 가치를 벗어나고 있듯이 부모님의 고마움을 모르는 자식도 참된 자식이 아니듯이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은, 인간다운 인간이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생기가 없기 때문에 이미 망가진 고물인 것입니다.
고물은 어떻게 됩니까?
엿장수가 주워 가서 뜨거운 용광로에 넣어 다 녹여 없애 버리고 마는 것이죠.
이처럼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는 사람은 불못, 지옥불에 던지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창조 목적을 상실한 인간을 처리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늘 주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는, 온전한 믿음 생활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무조건 사랑하셨으니, 우리 또한 조건 없이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려야 합니다.
예화)여러분이 잘 아시는 우화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마음씨가 착하고 부지런한 농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농부가 무를 밭에 심었더니, 농사가 잘 되어서 거의 사람 몸뚱이 만한 무를 수확했습니다. 농부는 이렇게 잘된 무를 혼자 먹기가 너무 아까웠습니다. 이 농부는, 농사가 잘된 것이 그 고을을 잘 다스려 주는 원님의 선정(善政) 탓이라 생각하고, 그 무를 잘 포장해서 원님께 갖고 갔습니다. 원님은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칭찬한 뒤에, 하인을 불러 요즘 관가에 들어 온 것 중에서 가장 귀하고 좋은 것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인은, 최근 들어 큰 황소 한 마리가 들어 온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원님은, 그 황소를 끌어다가 이 농부에게 주라고 했습니다.
마음씨 착한 농부는 무 한 개를 바치고, 그 대신에 크고 좋은 황소 한 마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 소문이 온 동리에 퍼졌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에 심보가 고약한 농부 한 사람이 생각하기를, "무 한 개를 바치고 황소 한 마리를 얻었으니, 내가 황소 한 마리를 바치면, 이번에는 땅이라도 몇 마지기 얻을 수 있겠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집에서 키우고 있는 황소를 끌고 원님에게 갔습니다.
"원님, 저는 오랫동안 집에서 황소를 길러 왔습니다만, 이렇게 크고 좋은 황소는 처음입니다. 이것이 다 원님께서 백성을 잘 다스려 주신 덕택인 줄 알고, 이 황소를 바치려고 가져왔습니다" 원님은 이 말을 듣고, 농부의 마음씨가 착하다고 칭찬한 다음에, 하인을 불러 요즈음 관가에 들어온 것 중에서 귀한 것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인이 하는 말이, '며칠 전에 들어 온 크고 잘 생긴 무가 있다'고 했습니다. 원님은 그 무를 이 농부에게 갖다 주라고 했습니다. 농부는 이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 농부는 별 수 없이 무 한 개를 들고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천국을 위해 살아가다 보니 때로는 사탄의 공격을 받게 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축복을 위해 선택된 백성임이 분명합니다.
오늘 본문에 소개된 10명의 문둥이는 누구입니까?
일평생동안 자신의 몸이 썩어 들어가는 고치지 못할 질병으로 탄식하는 사람들입니다.
물질은 많으나 삶의 참 맛을 잃고 우왕 자왕 하는 현대인들의 모습니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솔직한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모델성도로 부름받은 < >가족 여러분!
주님은 감사하는 한 문둥이처럼 여러분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기도생활을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루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달 간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 5년간 신앙생활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일평생 주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성도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끝까지 잘해야 잘하는 성도입니다.
벌써 햇과일이 탐스럽게 익은 추석이 다음 주에 시작됩니다.
농부가 이 과일이 익기까지 작년 겨울부터 거름 주고 관리하고 지금까지 땀 흘리고 노력하지 않았다면 이 추석이 어떤 상황으로 다가서게 되었을까요?
그 농부에게는 비탄과 배고픔의 추석이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심은대로 땀 흘린대로 거두게 됩니다.
승천하시는 주님은 너와 네 자녀를 위해 울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가정과 가족,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영적인 열매를 많이 심으십시다.
그래서 천사도 부러워 하는 축복의 결실을 맺으시길 축원합니다
출처: 권종현 목사
'설 교 > 절기설교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사하는 삶의 능력/(빌1장3-6) (0) | 2011.10.26 |
---|---|
은혜 받은 자의 감사/(대상29장13-17) (0) | 2011.10.26 |
감사의 필요 충분조건/(레23장33-44) (0) | 2011.10.26 |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갈 3장6-14) (0) | 2011.10.26 |
날마다 일어나야 할 신앙갱신운동/(벧전2장1-5) (0) | 2011.1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