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는 삶의 능력(빌1장3-6)
성경본문/빌립보서 1:3-6
1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2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3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4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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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란 작품이 있습니다. 어느 해 가을, 초라한 3층 지붕 밑 방에 폐렴을 앓는 존지란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폐렴으로 계속 고생하면서 삶의 의지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병상 건너편 집 담장의 담쟁이 넝쿨을 바라보면서 그 넝쿨의 마지막 잎이 떨어지면 자신의 생명도 끝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드디어 담쟁이 넝쿨의 마지막 한 잎새가 남았습니다. 존지는 마음의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마지막 잎새가 남은 그날 밤은 유난히 비바람이 심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존지는 마지막 잎새의가 떨어진 것을 보려고 커튼을 젖혀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지 않고 아침햇살에 더 환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도, 그리고 그 다음날도 마지막 잎새가 붙어 있었습니다.
원래 그 마지막 잎새는 이미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집 1층에 사는 무명의 노(老) 화가 베어먼 할아버지가 담장에 마지막 잎새를 그려 놓은 것이었습니다. 그 잎새가 떨어지지 않는 것을 보고 존지는 생각했습니다. “저것도 떨어지지 않는다면 내 생명도 쉽게 없어지지 않을 거야.” 결국 그 그려진 마지막 잎새가 존지를 병에서 일으킵니다.
생각의 힘은 생각을 초월합니다. 죽는다고 생각하면 살 확률이 현저히 줄고, 산다고 생각하면 죽을 확률이 현저히 줍니다. 일전에
TV 선전 중에 “땅은 작아도 생각이 크면 된다”는 광고가 있었습니다. 생각의 크기가 땅의 크기보다 중요합니다. 성공을 생각하면 실패할 확률이 크게 줄어들고, 실패를 생각하면 성공할 확률이 크게 줄어듭니다.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요? 본문 3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편지하면서 그들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고백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고백입입니까?
살면서 이 사도 바울의 고백을 많이 하십시오.
배우자에게 “여보! 당신을 생각할 때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해요!”라고 고백하고,
부모님께도 “어머님! 아버님! 저는 어머님과 아버님을 생각할 때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해요.”라고 말하고,
자녀들에게도 “얘들아! 나는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한단다.”라고 말하십시오. 그러면 더 감사한 생각이 들고, 삶이 정말 행복하게 느껴집니다.
저도 우리 성도님들을 생각할 때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사실 제가 이렇게 행복하게 목회하는 것은 우리 교회 성도들과 온라인 성도들의 사랑과 기도 때문입니다. 그렇게 서로 감사하면 삶이 얼마나 행복하게 되겠습니까? 가장 믿는 사람다운 모습은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는 모습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받은 상처는 오래 마음에 담지만 받은 은혜는 금방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성도는 상처와 원한은 금방 잊되 은혜는 오래 기억해야 합니다.
< 생각의 방향을 잘 잡으십시오 >
항상 생각의 방향을 잘 잡으십시오. 잘못된 방향으로 생각하면 감사할 일은 없고 원망할 일만 생깁니다. 원망이 많은 것은 환경이나 성품이 나쁜 것보다 생각의 방향을 잘못 잡았기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생각을 감사하는 방향으로 조금만 바꾸면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한 분이 우산 없이 비를 맞고 가다가 조용히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이렇게 비가 와도 빗물이 눈으로 흐르지 않도록 눈썹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금 가다 생각해보니까 또 감사할 일이 생겨서 그는 또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하나님! 콧구멍을 밑으로 뚫어주셔서 비가 와도 숨 쉴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할 때마다 감사거리를 발견하고 감사하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삶에는 밝은 부분도 있고, 어두운 부분도 있습니다. 그때 밝은 부분을 보기로 작정하고 감사를 선택할 수도 있고, 어두운 부분을 보기로 작정하고 불평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감사는 선택입니다. 왜 삶이 피곤하고 힘들게 느껴집니까? 감사를 잃어버리고 서로 시기하고 원망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한 교회에 다니는 두 교인이 서로를 너무 미워하니까 천사장이 안타깝게 여기고 서로를 축복하며 살도록 그들에게 제안했습니다. 그래서 서로를 축복하며 기도하면 그 기도대로 응답하고, 옆 사람에게는 기도한 것의 두 배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옆 사람 때문에 두 배를 받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 천사장의 제의를 듣고 한 사람이 100억을 달라고 하려는데 옆 사람이 200억 받는 것이 너무 배가 아팠습니다. 그래서 금방 기도제목을 바꿔 기도했습니다. “천사님! 저에게 100원만 주세요!” 그러자 옆 사람은 겨우 200원을 받았습니다. 그는 200원을 들고 너무 화가 났습니다. 모처럼 천사장의 중재로 미움을 털어버리려고 했는데 옆 사람이 더 미워졌습니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천사님! 저의 한쪽 눈을 뽑아주세요.” 그 기도는 옆 사람의 두 눈을 빼달라는 말입니다. 그런 식으로 살면 삶이 얼마나 힘들어집니까?
사람에게는 누구나 시기하는 본능이 있기에 감사를 굳게 작정해야 합니다. 이해하기로 작정하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오해(5해)가 있어도 생각을 세 번 고쳐먹으면(3을 빼면)
이해(2해)할 수 있고,
이해(2해)를 두 번만 하면
감사(감4)하고, 사랑(4랑)할 수 있다.”
생각을 조금만 고쳐먹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한 미국 성도가 기차를 타고 가면서 눈을 감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옆자리에서 쿵 소리가 들렸습니다.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까 덩치가 큰 흑인 여자가 아이들 5명을 데리고 자기 옆자리에 앉았습니다. 갑자기 숨이 막힐 것 같습니다. 바로 그때, 그의 입에서 감사가 나왔습니다. “하나님! 제 옆에 앉은 이 여자가 제 아내가 아니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생각을 바꾸면 어느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감사하기 시작하면 그 감사가 어려운 상황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위대한 능력이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무엇보다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구하십시오. 고통을 축복으로 바꾸고,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는 결정적인 태도가 바로 감사입니다. 행복은 많이 가진 사람의 것이 아니라 많이 감사하며 누리는 사람의 것입니다.
< 감사하는 삶에 필요한 것 >
가장 훌륭한 성도는 누구일까요? 기도하고 헌신하는 사람도 훌륭한 성도이지만 무엇보다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철이 들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철드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바로 감사입니다. 구원의 기준은 십자가의 복음이지만, 철이 드는 기준은 감사하는 태도입니다. 그처럼 범사에 감사하는 태도를 가지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1. 겸손해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한 가지의 특징은 겸손입니다. 우리는 원래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처럼 “나는 원래 사형수였는데 지금 이렇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떤 것도 은혜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고난조차 은혜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생각하고 자기를 작게 생각하는 사람이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부부간에도 자기를 작게 여기면 상대방이 크게 보이고 감사가 나옵니다. 아내는 거울 볼 때마다 점차 커지는 자신의 몸집을 보며 남편에 대한 감사가 깊어집니다.
“이런 나를 찾아 밤마다 집에 와주는 남편이 고맙다.” 남편도 자기를 작게 여기면 아내에 대한 감사가 나옵니다.
“나 같은 못된 남편을 보고도 계속 살아주는 아내가 고맙다. 내가 여자라면 나는 절대로 나 같은 사람과 못 살 거야.” 그런 식으로 생각하니까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반면에 자기를 높게 보면 생각할 때마다 불평뿐입니다.
“내가 어쩌다 저런 사람을 만나서 이런 고생을 하나? 정말 큰 실수다.” 그렇게 자기를 높게 보니까 항상 손해 본 것 같습니다. 그런 자신에 대한 거품평가를 없애야 삶에 IMF가 없게 됩니다. 실속도 없이 자기를 높이면 감사가 없어지고 그때부터 삶이 불행해지지만 자신을 바르게 평가하면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어려운 일만은 아닙니다.
최고의 자녀교육도 바로 겸손에 있습니다. 어떤 아빠는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얘들아! 아빠가 이제까지 가장 성공한 일은 바로 너희 엄마를 만난 거야.”
그런 가정에 어떻게 불행이 찾아옵니까?
반면에 어떤 남편은 날마다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얘들아! 너 결혼 잘해야 돼! 앞으로 너의 엄마 같은 사람 만나면 절대 안 돼!”
그러면 어떻게 그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됩니까? 자기를 낮추고 상대가 고마운 줄 알아야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2. 책임감이 있어야 합니다
성숙한 사람은 항상 권리보다 책임을 더 많이 생각합니다. 그래서 직장에서 일하고 당연히 받아야 할 봉급을 받아도 “나는 받을만해!”라고 생각하지 않고 “이렇게 받아서 감사한다!”고 생각하면서 받고, 최선을 다해 더 일하고 더 섬기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그렇게 생각하니까 삶의 모든 순간이 오직 감사뿐입니다. 성도는 공기조차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고 공기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영성이 무엇입니까?
철든 믿음을 가지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사물을 보면 그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게 되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사람을 보면 그 사람에게 예쁜 구석이 있음을 발견하고 감탄하게 됩니다. “아! 저 사람에게 저렇게 좋은 면이 있었다니!” 그처럼 무엇이든지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고 감사하면 불행이 틈타지 못하지만 더 받지 못했다고 불평하면 눈앞에 다가온 축복도 놓치게 됩니다.
미국 보스턴에 두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둘의 가는 길이 전혀 달랐습니다. 형은 열심히 매사에 헌신하는 삶을 살면서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동생은 매사에 이기적으로 살다가 결국 친구를 죽여서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동생의 사형선고 소식을 듣고 형은 주지사를 찾아가 끈질기게 사면 요청을 했습니다. 마침내 몇 년 만에 사면장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면회를 가서 동생에게 물었습니다. “존! 앞으로 감옥에서 나가면 어떻게 살겠니?” 그때 동생이 말했습니다. “왜 그런 질문을 해! 내가 나가면 나를 잡아넣은 사람들에게 반드시 복수할 거야.” 그 말을 듣고 형은 동생이 더 큰 죄를 지을 것 같아 그 사면장을 찢어버렸다고 합니다.
원망은 눈앞에 다가온 축복을 버리는 것입니다. 결국 감사는 축복을 예비하는 최고의 길이고, 원망은 망하는 최고의 길입니다. 하나님은 불행의 원인을 남에게 돌리며 원망하는 무책임한 사람을 결코 축복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남을 원망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도 원망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선하게 살겠다고 다짐하고, 원망할 것이 있어도 그 속에서 감사하는 책임적인 사람은 하나님이 반드시 축복해주십니다.
3. 헌신해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대개 헌신으로 나타납니다. 사도 바울이 왜 생각할 때마다 빌립보 교인들에게 감사했습니까? 그들이 바울의 선교사역에 최선을 다해 헌신하고 후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수시로 바울에게 선교 헌금을 보냈고,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혔을 때는 헌금과 동시에 에바브로디도 집사를 보내 옥중 수발을 들게 했습니다. 그들은 말과 기도로만 헌신하지 않고, 자기 것을 드려 헌신했습니다. 어떻게 그 헌신을 잊습니까?
헌신은 사람의 마음도 움직이고, 하나님의 마음도 움직입니다. 이제 신앙생활의 틀을 ‘받는 삶’이 아니라 ‘드리는 삶’에 두십시오. 드리면 남에게도 유익이 되지만 무엇보다 자신에게 유익이 됩니다.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헌신하면 무엇보다 믿음이 커집니다. 능력은 사용해야 커지듯이 믿음도 헌신의 모험을 해야 커집니다.
헌신이 없으면 점점 무력해지지만 헌신의 모험을 하면 점점 능력 있게 됩니다. 헌신은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면 엄청난 축복의 열매가 돌아오게 됩니다. 특히 어려울 때는 더욱 헌신하려고 하십시오. 어려울 때는 본능적으로 불평이 생기기 쉽습니다. 그때 서로 격려하며 도와주며 헌신하면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교회에서도 서로 헌신하며 감사할 때 교회의 분위기도 좋아지고 교인도 행복해집니다.
헌신하면 누구보다 아름다운 걸작 인생이 됩니다. 마지막 잎새에 나오는 베어먼 할아버지는 존지를 살리려고 추운 밤에 담쟁이 넝쿨의 마지막 잎새를 힘써 그렸습니다. 그러다가 자신에게 폐렴이 생겨 결국 존지가 회복되던 날 그 할아버지가 대신 죽습니다. 그 베어먼 할아버지는 평생 걸작품하나 남기지 못한 무명 화가였지만 그의 ‘마지막 잎새’는 어느 작품보다 훌륭한 작품이었고, 그 할아버지의 삶 자체가 최고의 작품입니다.
이 세상에 헌신처럼 복된 것은 없습니다. 어떤 분은 가장 헌신하면서도 그 헌신을 내세우지 않고 항상 겸손함을 잃지 않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삶입니까? 지난 2주 동안 리사 선교사님과 리버다 선교사님을 위해 우리 교인들과 온라인 새벽기도 성도들이 많이 기도해주었습니다. 간혹 물질적인 헌신을 해준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전혀 얼굴을 모르는 분들입니다. 그분들은 말씀에 은혜를 받는다고 헌신하는데, 우리는 반대로 그분들의 헌신을 받으면서 은혜를 받습니다.
비록 얼굴은 모르지만 얼마나 아름다운 하모니입니까? 어떤 분은 자신은 월세로 살면서도 어려운 선교사님을 앞장서서 도와줍니다. 그처럼 힘든 상황에서도 헌신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은혜를 알고 감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결국 성공과 축복과 행복의 레이스에서 최종 승자가 됩니다.
4. 꾸준해야 합니다
본문 5절 말씀을 보십시오. “첫 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빌립보 교인들은 사랑과 헌신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사랑과 헌신이 꾸준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로부터 처음 은혜를 받던 날부터 그 편지를 쓸 때까지 그 사랑과 후원의 손길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목회하면서 가장 감동이 되는 분들이 있습니다. 바로 헌신과 사랑이 변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화끈한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화끈한 것보다는 꾸준한 것이 더 좋습니다. 어떤 분은 날씨가 굳고, 고통이 있어도 변함없이 예배의 자리를 지키고, 휴가철이 되고 부부싸움을 해서 마음이 힘들어도 변함없이 예배의 자리를 지킵니다. 그런 꾸준한 모습 속에 이미 모든 축복과 은혜가 담겨 있습니다.
에스겔서 46장 9절 말씀을 보면 성전에 들어가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는 북문으로 들어오면 남문으로 나가고, 남문으로 들어오면 북문으로 나가도록 했습니다. 즉 자기 오던 길로 돌아가면 안 되고, 옆으로 새도 안 되고, 오직 앞으로 나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분야든 앞으로 나아가야 발전하듯이 끝까지 하나님만 바라보고 꾸준히 전진하는 믿음의 경주자가 결국 성공과 행복과 축복의 주인공이 됩니다.
특히 교제하는 삶이 꾸준해야 합니다.
본문 5절 말씀을 보면 바울은 ‘복음 안에서의 꾸준한 교제’를 착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독불장군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독불장군은 금방 지치고 낙심하게 됩니다. 엘리야도 하늘의 불까지 일으켰지만 자기 혼자라고 생각하니까 금방 낙심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말했습니다. “엘리아야! 너는 혼자가 아니다. 내가 남겨둔 칠천 명이 있다(왕상 19:18).”
혼자 있으면 감정 기복도 심해지고, 병도 쉽게 생깁니다. 그러므로 교제를 위해서는 시간도 내고, 정성도 쏟고, 전화도 하고, 물질도 쓰십시오. 잠언 18장 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구약 928쪽). “무리에게서 스스로 나뉘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 사람은 함께 교제할 줄 알아야 욕심도 이길 수 있고, 지혜도 생기고, 성격도 원만해지고, 정도 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과 어울리면 상처도 많아진다고 혼자 산에서 기도합니다. 그러면서 이단 교주가 나오게 됩니다. 때로는 교회가 썩은 것 같고, 교인들이 문제도 많은 것 같아도 같이 고뇌하고 다듬어갈 때 하나님이 기뻐하는 성숙한 믿음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때로 교인들끼리 마음에 맞지 않는 일이 생겨도 같이 있기를 힘써야 합니다. 화가 난다고 자기를 분리시키면 대부분 역사의 현장에서 사라져버립니다.
가끔 가족 중에 불만을 가지고 가족 모임이 나오지 않는 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불만을 시위하는 것이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더 외로워집니다. 그러므로 불평이 있어도 고독하게 지내면 안 됩니다. 물론 때로는 조용히 혼자 기도할 때도 있어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모이기를 힘쓰고, 삶에 시련과 고통이 있어도 꾸준히 자기 자기를 지킬 때 그런 사람이 감사의 영성을 얻고 결국 최종적으로 승리하는 인생이 됩니다.
< 감사하는 삶의 축복 >
이제 어떤 경우에도 감사를 포기하지 마십시오. 심지어는 죽음과 같은 고통 중에서도 감사하겠다고 다짐하십시오. 본문 6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루실 줄 우리가 확신하노라.”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착한 삶은 범사에 감사하는 삶입니다. 그런 착한 삶을 포기하지 안을 때 중심을 보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은 그런 착한 삶과 마음을 결코 외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꽃밭과 같고, 불평하는 마음은 가시밭과 같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생각에 따라 감사하는 샘이 될 수도 있고. 원망하는 시궁창이 될 수도 있습니다. 헬렌 켈러는 사흘만이라도 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흘이 아니라 평생을 눈뜨고 사는 것부터 시작해서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깊이 생각해 보면 얼마나 감사할 일이 많은지 모릅니다. 때로 어려운 일이 찾아와도 자세히 보면 그것이 꼭 불행만은 아닙니다.
어떤 분의 간증입니다. 그분은 최고가 되려고 열심히 일에 매달렸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도 없고, 가족도 없고, 이웃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쓰러졌습니다. 그는 생각했습니다. “이제 건강을 잃었으니 다 잃었다.” 그러나 다 잃은 줄 알았지만 그때 새롭게 찾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정’이었습니다.
병상에 있을 때 그는 가족들이 자신을 정성스럽게 돌봐주는 모습을 보고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사랑 받는다는 것이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 이제는 저들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자!” 그렇게 병 때문에 가치관이 일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바뀐다면 그 병은 사실상 축복입니다. 그처럼 깊이 생각해 보면 고난이 축복이 되는 경우도 많고, 더 나아가 삶의 모든 순간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제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인생의 성패를 결론내지 마십시오.
눈에 보이는 건강은 잃어도 더 소중한 사랑과 믿음을 얻는 경우가 많고, 때로 어떤 일에 실패하면 그것 때문에 비로소 겸손한 영성을 얻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처럼 감사의 영성을 가지고 보면 모든 상황이 축복의 통로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조금 어려워도 “하나님이 나를 축복하려고 이렇게 훈련하시는구나!”라고 생각하면 그 생각이 ‘생각을 초월한 축복과 행복’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항상 범사에 감사함으로 더욱 큰 축복을 예비하며 사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설교 : 이한규 목사(분당샛별교회)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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