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고난 중에 욥의 맹세/(욥 27:1-6)

미션(cmc) 2012. 7. 10. 22:53

고난 중에 욥의 맹세
(욥 27:1-6)

(욥 27:1) “욥이 또 풍자하여 이르되” (욥 27:2) “나의 정당함을 물리치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욥 27:3) “(나의 호흡이 아직 내 속에 완전히 있고 하나님의 숨결이 아직도 내 코에 있느니라)” (욥 27:4) “결코 내 입술이 불의를 말하지 아니하며 내 혀가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리라” (욥 27:5) “나는 결코 너희를 옳다 하지 아니하겠고 내가 죽기 전에는 나의 온전함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욥 27:6) “내가 내 공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내 마음이 나의 생애를 비웃지 아니하리라”

예 화
미국 대표적인 암 전문 병원 MD앤더슨 암센터의 종신교수인 김의신 박사는 1991년과 94년 두 차례에 걸쳐 ‘미국 최고의 의사(The Best Doctors in America)’에 뽑히기도 했습니다. 연간 MD앤더슨을 찾는 한국인 암환자는 약 600명이나 되는데 암을 대하는 자세가 한국인과 미국인은 아주 다르다는 것입니다.
“한국인 암환자들이 의사에게 “선생님, 제가 얼마나 살 수 있습니까?” 라는 질문해오면 그것을 의사가 어떻게 아는가? 하나님만 아신다“라고 말하면, “여기가 세계 최고의 병원인데 어떻게 그것도 모르느냐?”고 따진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암에 걸린 한국인 의사조차 그런 것을 많이 물어 본다는 것입니다.
무려 31년간 숱한 암환자를 대하면서 미국인 환자나 가족은 우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미국은 기본적으로 삶과 죽음은 하나님이 결정한다고 믿기 때문이고, 질병은 전적으로 의사에게 맡기고 자신은 마음과 몸을 어떻게 추수를 것인가에 집중한다는 것입니다.
기자가 마지막으로 김의신 박사에게 암에 걸린 사람은 어떤 마음을 먹어야 하나? 라고 질문을 하였을 때 대답하기를
“나는 크리스천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눈으로 설명을 하면 암에 걸려는 것은 무엇인가 시련을 줘서 나를 단련시키고자 함이다”
라는 마음을 먹어야 마음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암에 걸린 덕분에 내가 소중한 뭔가를 새롭게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치유의 에너지가 작동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암 걸린게 억울해 죽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오히려 암이 더 악화하기 쉽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암을 두려하는 이유는 치료받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럽게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생살이가 반드시 암만 고통스러운 것은 아닐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물질적인 문제로, 어떤 사람은 인간관계의 문제로 암 못지않은 고통을 겪으며 죽지 못해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고통이 있고 없고, 크고 작고의 차이가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마음의 자세는 분명히 달라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오늘 우리는 고통에 직면하게 될 때 어떤 마음의 자세가 필요한지 오늘 말씀의 주인공 욥에게서 배우고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1. 욥을 괴롭게 하신 하나님
세상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불신자들이 하나님을 모독하고 신자들을 조롱하는 것에 크게 문제를 삼을 필요가 없지만, 누구보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잘 믿는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사람이 불 신앙적인 발언을 하거나 하나님께 원망의 기도를 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욥은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하나님이 보시기에 신실한 믿음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성경에 보면 그와 같은 욥이 노골적으로 하나님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욥 27:2) “나의 정당함을 물리치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 이유는 욥이 지금까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마치 자기를 불의한 자처럼 극심한 고난에 몰아넣으시는 이유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이 마치 하나님이 자신의 의를 빼앗아 가시는 것처럼 생각된다는 솔직한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얼핏 듣기로는 욥이 믿음이 약해져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사실 욥의 고백처럼 하나님께 자신의 심정을 솔직하게 아뢰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욥의 고백처럼 하나님께서 욥을 괴롭게 하시는 사실이 아닙니까?
사단이 욥을 고소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욥이 고난을 잘 극복해 나갈 것이라고 신뢰하셨기 때문에 사단에게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하셨기 때문에 욥을 고난을 당하고 있는 것은 결과적으로 욥의 말처럼 하나님이 욥을 괴롭게 하신 것이 사실입니다.
욥은 견디기 어려운 고난을 당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 반항아처럼 불평 아닌 불평을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믿음을 포기하거나 변절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을 입증해 주는 말씀이 (욥 27:1) “욥이 또 풍자하여 이르되” 라는 말씀에서 ‘풍자’라는 말(lv;m)의 뜻은 ‘속담, 격언, 비유’라는 뜻으로 듣는 사람에게 자신의 처지를 쉽게 판단하게 하기 위해 비유로 하는 말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욥은 자기의 친구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힘들게 견디고 있는지를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마치 하나님이 자신의 의를 빼앗으시고, 자신의 영혼을 괴롭게 하시는 것처럼 자신의 처지를 비유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점점 더 어려움 속에 처하게 하신다면 우리도 오늘 성경에 욥 이상으로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 하나님이 우리를 욥처럼 그냥 내버려두시는 것처럼 생각될 때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이유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을 바로 알게 된다면 오히려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아비가 자식을 긍휼히 여기는 것처럼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기도 하지만 때로는 아비가 자식을 연단하는 것처럼 사랑하시는 백성과 자녀들을 연단하실 때가 있습니다.
(벧전 1: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만일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그 고난 중에 버려두심은 나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나를 연단하시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성경에 말씀처럼 범사에 감사하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 사단이 이기지 못하는 사람, 세상이 감당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시 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2. 욥의 다짐과 각오
지혜로운 사람은 돈을 벌기 전에 왜 자신이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이며, 돈을 벌게 되면, 그 돈을 어떻게 가치 있게 쓸 것인가?를 생각하고 그 돈으로 자기가 꿈꾸었던 일을 합니다.
반대로 미련한 사람은 돈에 대한 욕심만으로 열심히 돈을 벌지만 막상 돈을 벌고 나면 그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돈을 모으기에 급급하다가 막상 다 잃어버린 다음에는 돈이 있을 때 좀더 가치 있는 일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뒤늦은 후회를 합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욥은 외부적으로 고난이 몰려오고 친구들조차 위로는커녕 비난과 정죄를 퍼부을 때 욥이 얼마나 맞받아치고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을 향해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욥은 이상하리만큼 더 냉담해지고 신앙적으로 강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욥을 죽이시려고 고난을 주셨다면 욥은 벌써 죽었어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자신을 돌이켜 볼 때 자신 속에 호흡이 완전한 것은 하나님께서 아직까지 자신의 호흡을 가능케 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욥 27:3) “(나의 호흡이 아직 내 속에 완전히 있고 하나님의 숨결이 아직도 내 코에 있느니라)
욥은 무엇보다 자신이 아직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는 이유가 무엇이며, 자기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1) 입술로 불의를 말하지 않겠다.
(욥 27:4) “결코 내 입술이 불의를 말하지 아니하며 내 혀가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리라”
아마도 욥이 이같은 결심을 하게 된 것은 그의 친구들의 영향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생각됩니다.
욥의 친구들이 온갖 말로 욥을 설득하여 자백을 받아 내려고 하는 과정을 통해서 욥도 친구들과 똑같이 불의를 말하고 거짓말을 해서 상대방을 이기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러한 친구들을 보면서 자기 나름대로 결심을 하기를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라는 결심을 한 것입니다.

2) 죽기 전까지 온전함을 버리지 않겠다.
(욥 27:5) “나는 결코 너희를 옳다 하지 아니하겠고 내가 죽기 전에는 나의 온전함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여기서 ‘온전’은 영적 순결을 뜻하고, ‘버리지 아니 할 것이라’는 말(rWs)은 “빗나가다, 돌이키다, 벗어나다, 떠나다, 제거하다, 끝내다‘는 뜻의 미완료형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의한 일이나 거짓말에 있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말려들어 몸통은 아니지만 깃털 노릇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것이 영적 순결을 더럽히는 삶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욥은 결심하기를 비록 친구들이지만 그들의 말에 동의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누가 뭐래도 죽기 전까지는 자신의 영적 순결을 지키겠다는 각오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도 욥과 같은 경험을 하였기 때문에 세 가지 결심을 하면서 자신의 영적 순결을 지키는 복된 삶을 다짐한 것입니다.
(시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3) 공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않겠다.
(욥 27:6) “내가 내 공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내 마음이 나의 생애를 비웃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비웃지 아니하리라’는 말(#r"j)은 ‘비난하다, 조롱하다, 모욕하다’라는 뜻의 미완료형입니다. 남이 나를 비웃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양심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겠다는 말입니다.
이는 욥은 친구들이 자기를 비난하고 불의하게 생각하는 것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친구들이 비난하는 것처럼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은 내 마음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보고 생각나는대로 느끼는대로 말하게 됩니다. 또한 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말만 듣고 마치 자기가 본 것처럼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말은 오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모함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이 아니면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보다 더 큰 문제는 드러나지 않은 사실이 더 큰 문제입니다. 자신의 양심에 가책을 받고 있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욥은 우리와 똑같은 성품을 가진 인간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을 당하면서도 어떻게 그렇게 잘 버티어 나갈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사단의 기만에 속지 않는 확고한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확신과 악인의 종말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그의 속에 굳건히 버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못된 짓 하는 것들과 악인들을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반드시 쓰러뜨리시는데 무슨 희망이 있고, 그 목숨을 데려가시는데 무슨 소망이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재앙이 내리 덮쳐 살려 달라 울부짖을 때 하나님이 그 소리 들으시기나 하랴! 그들이 수많은 자식들을 두겠지만 전쟁에서 모조리 칼에 쓰러질 것이라. 그 못된 것들이 산 데미 만큼 은을 쌓고 입을 옷은 필요 이상 엄청나게 지녔더라도 그렇게 쌓아 놓은 것, 그렇게 갖고 있는 것, 착하게 사는 사람들, 그 옷을 입을 것이라.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 그 은을 나누리라.
그가 지은 집은 거미줄같이 끊어지기 쉽고 파수꾼이 잠시 쉬려고 지어 놓은 초막과 무엇이 다를까? 잠자리에 들 때에는 수많은 재산 생각하여 마음 든든하였으나 눈을 다시 떴을 때에는 그 많던 재산 온데 간 데 없이 사라질 것이다. 갑작스런 공포가 홍수처럼 밀어닥치는 날이 올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욥 27:22) “하나님은 그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던져 버릴 것이니 그의 손에서 도망치려고 힘쓰리라” (욥 27:23) “사람들은 그를 바라보며 손뼉치고 그의 처소에서 그를 비웃으리라”

3. 오늘 우리의 다짐과 각오
오늘 성경의 욥을 생각할 때 무슨 생각이 듭니까? 오늘의 나는 어느 면으로 보아도 욥보다는 더 많고 더 낫고 더 여유로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크고 작은 고난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마음에 감사와 기쁨이 없고 불신자나 다름없는 원망과 불평이 내 마음에 주인 노릇을 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냉정하게 만일 내가 바라는 대로 만사형통하였다면 과연 내가 하나님을 믿었을까? 그 돈으로 무엇을 하였을까? 생각하게 되면 정신이 번쩍 들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불의한 사람들이 거짓말을 떡먹듯이 하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의 입술이 어떠한가를 돌이켜 보면 세상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것입니다.
사람이 무엇보다 문제는 가 아니라 내 속에서 나를 고발하는 양심, 그것을 묵살할 때 사단이 나를 수시로 위협하는 내면의 소리가 무엇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욥과 같은 다짐과 각오를 하지 못하고 예수를 수십년 믿고 교회를 다니면서도 변화가 없는 삶을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나는 구원받은 사람이라는 진정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같은 죄인을 구원하신 이유가 나의 믿음의 삶, 정의로운 삶, 사랑의 삶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라는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입술로는 죄를 미워한다고 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죄인들의 삶을 부러워하는 것은 현재 죄인들의 삶이 아무리 풍요롭고 아름다울지라도 장차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의로운 사람은 누구입니까? 인간의 드러난 행위만이 아니라 마음에 생각까지 헤아리시는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그와 같이 의로운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기 때문에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일컬음을 받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믿지 않는 사람은 물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도 흔히 범하기 쉬운 죄가 입술로 짓는 죄입니다. 그것이 바로 입술로 불의를 말하는 것이고 혀로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렇게 입을 놀리면서도 자기가 지금 죄를 짓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가장 큰 문제는 술을 핑계하면서 함부로 말을 하는 것이고, 자기를 기분 나쁘게 했다고 유무식이나 신앙의 유무를 떠나서 입만 열면 상대방을 비방하고 말을 지어서 말을 부풀려서 사실처럼 소문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만일 내가 지금 그런 상태라면 기도가 막힐 것입니다. 설교가 재미가 없을 것입니다. 교회가 싫어질 것입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교회와 교인들을 욕하는 일 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그렇게 될 수 있는 원초적인 본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시편 기자와 같이 복된 생각 복된 말 복된 행동을 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못된 짓만 일삼는 자들이 남 짓누를 궁리나 하고 있는 자리에 가지 아니하는 이는. 얼마나 복되랴! 양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을 따라 살지 아니하는 이는. 얼마나 복되랴! 남 우습게나 여기고 제 잘난 체만 하는 자들과 자리를 함께 하지 아니하는 이는 얼마나 복되랴!
뿐만 아니라 보다 더 적극적으로 내가 지금 너무나 고난이 심해서 원망과 불평이 저절로 나오게 될지라도 거기에 함몰되지 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 그 일을 성실히 하려고 힘쓰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화
30년 넘는 세월 동안 암 연구를 한 미국 대표적인 암 전문 병원 MD앤더슨 암센터의 종신교수인 김의신 박사의 말을 빌리면, 한국인은 일단 암에 걸리면 직장부터 그만둔다. 그리고 하루 종일 암과 죽음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하는데 실상 그건 환자의 상태를 더 악화시킬 뿐이다. 그래서인지 한국인 환자는 대부분 구역질을 한다.
그러나 미국 사람들은 다르다. 묵묵히 자신이 할 일을 한다.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회사에 출근을 한다. 죽기 전날까지 일을 하는 경우도 봤다. 그럼 암에 대해서 걱정하는 시간이 훨씬 줄어든다. 미국인 암환자들은 항암 치료를 받으며 구역질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입니다.
그 좋은 예가 애플의 신화를 남긴 스티브 잡스의 마지막 하루 이야기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죽기 하루 전 날 아이폰 4S 발표 날이었습니다. 스티브 당시 매우 아팠고, 상태가 위독했지만 애플에 대한 사랑과 다음 제품을 만들겠다는 열정이 그에게 에너지를 주고 그를 조금 더 오래 살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유명한 사람만 마지막의 모습이 아름다워야 할까요? 아닙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 존귀한 사람입니다.
누구에게나 단지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자신이 극복하기 어려운 고난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 믿음의 사람들의 기도는 더욱 간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빌기도 합니다.
때로는 현대 의학으로도 규명이 되지 않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반대로 고난이 더 심해지기도 합니다. 사단은 그 기회를 틈타 우리의 믿음의 뿌리를 흔들어 댑니다. 하나님은 없다고, 하나님은 너 같은 것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우리 귀에 속삭여 댑니다.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오늘 성경에 욥처럼 세 가지 각오와 다부진 결심을 하며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 마지막 죽음의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는 삶입니다.
비록 가진 것이 다 없어지고 빈털터리가 되고,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남에게 동정을 받을 처지일지라도, 불의한 자들의 부귀권세를 탐하지 말고 오늘 성경에 욥처럼
1) 입술로 불의를 말하지 않고 혀로 거짓을 말하지 않겠다고,
2) 죽기 전까지 온전함을 버리지 않고 영적 순결을 지키겠다고,
3) 공의를 굳게 잡고 자신의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기로,
다짐하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성숙한 믿음이요, 진정한 승리의 삶이요, 참된 축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