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인생 전성기의 삶/(욥 29:1-7)

미션(cmc) 2012. 7. 30. 16:51

인생 전성기의 삶

(욥 29:1-7)
『[1] 욥이 풍자하여 이르되 [2] 나는 지난 세월과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던 때가 다시 오기를 원하노라 [3] 그 때에는 그의 등불이 내 머리에 비치었고/ 내가 그의 빛을 힘입어 암흑에서도 걸어다녔느니라/ [4] 내가 원기 왕성하던 날과 같이 지내기를 원하노라/ 그 때에는 하나님이 내 장막에 기름을 발라 주셨도다 [5] 그 때에는 전능자가 아직도 나와 함께 계셨으며 /나의 젊은이들이 나를 둘러 있었으며 [6] /젖으로 내 발자취를 씻으며 /바위가 나를 위하여 기름 시내를 쏟아냈으며 [7] 그 때에는 내가 나가서 성문에 이르기도 하며 내 자리를 거리에 마련하기도 하였느니라/

빈손으로 태어난 인생이 한평생 수고의 땀을 흘리지 않으면 생존조차 어려운 세상에서 풍성한 물질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축복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와 같은 복을 받았을 지라도 그것이 자신의 수고의 결과로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임을 깨닫고
1)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려야 하며,
2) 그것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도 그와 같은 복을 주심으로 인생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면 지금 나는 어떻게 살고 있으며, 또한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삶인가? 를 돌이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설령 인생의 전성기가 아닌 절망기와 같다면 하나님께서 언젠가 내게도 인생의 전성기를 주시기를 구하고, 그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면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사람들에게도 칭찬과 존경을 받는 삶인지를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서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1. 욥이 받은 축복

욥이 지금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빈털터리가 되어 절망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지난날에는 세상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은 풍요로운 삶을 살았었습니다.
그의 살았던 모습은 건실하고 올곧았으며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어서 악한 일을 멀리하였습니다.
그는 슬하에 딸 셋과 아들 일곱을 두었고, 그가 소유하고 있던 가축 떼도 양이 7천 마리, 낙타가 3천 마리, 소가 500쌍, 암나귀가 500마리나 되었으며 엄청나게 많은 종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동방에서 제일가는 부자였어습니다. 그야마로 인생의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랬었던 욥이 지금 모든 부귀권세와 자녀들을 다 잃어버리고 빈 털털이가 되었을 때, 지난날을 회상하는 모습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욥이 지난 날 얼마나 많은 부귀영화를 누렸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욥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얼마나 바람직한 삶을 살았는가? 것을 더 관심있게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점에 있어서 욥은 지난 어느 누구보다 부자였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어느 누구보다 바람직한 삶을 살았음을 하나님이 친히 자랑하시고 인정하실 정도로 진실했던 사람입니다.
[욥 1:8]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세상에서 아무리 부귀와 영화를 누릴지라도 하나님을 바로 믿지 않고, 도덕적으로 바람직한 삶을 살지 못할 때 그 사람의 부귀와 영화는 오히려 그 사람을 망하게 하는 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욥은 그와 달리 누구보다 하나님을 잘 믿으면서도 육신적으로도 전성기를 누리는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흔히 사람들이 하나님을 잘 믿으려면 육신적으로 잘 살수 없다는 편향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적으로 잘 살려고 하면 신앙을 포기해야만 한다는 이원론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옳은 줄로 착각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 육신적으로 잘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잘못 믿고 있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의 주권이 사람에게 있지 않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누구나 다 잘살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그대로 다 되어지지 않는 것을 보면 인간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며, 잘사는 것도 하나님의 은총임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는 결코 물질은 악하고 영혼은 선하다는 이원론이 아닙니다. 물질을 지으신 이도 하나님이시고 영혼을 지으신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소유의 많고 적음만으로 그 사람의 신앙이나 도덕성을 헤아린다는 것은 정확한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잘 살고 못사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노력이 뒷받침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1) 농부들이 들판에 가서 씨를 뿌리고 거름을 줄 때 똑같은 하늘 아래서 똑같이 가물고 똑같이 장마가 지지만 집집마다 수확량이 일정하지 않고 차이가 나는 것은 농부들 간에 지혜와 열정과 노력의 차이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 농사만이 아니라 장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이 같은 시장에서 똑같은 업종의 장사를 할지라도 어느 집은 손님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가 하면, 어느 집은 할인을 해도 파리를 날릴 정도로 한산한 차이도 마찬가지입니다.
3) 장사만이 아니라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은 학교에서 똑같은 선생님에게 똑같은 교과서로 공부를 하는데 누구는 잘하고 누구는 못하고의 차이는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5)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한 하나님을 믿으며, 똑같은 성경을 가지고 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데 누구는 성령 충만하고 누구는 뜨뜻미지근한 차이는 무엇 때문일까요?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아야 할 뿐 아니라, 그 은혜와 축복을 잘 받아 누릴 수 재능과 더불어 최선의 노력이 뒤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신 8: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2. 욥의 받은 복의 원천
욥은 지난날 인생의 전성기를 회고하며 자신에게 그런 날이 다시 돌아오기를 소망하였습니다.
(욥 29:1) “욥이 풍자하여 이르되” (욥 29:2) “나는 지난 세월과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던 때가 다시 오기를 원하노라”
여기서 ‘풍자하여’라는 말(lv;m)은 듣는 자나 읽는 자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상황에 관해 판단을 잘 내리도록 하려는 목적으로 하는 ‘속담이나 격언이나 비유’를 가리켜 하는 말입니다.
또한 ‘보호하시던’이라는 말(rm'v;)은 ‘지키다, 준수하다, 보존하다, 감시하다, 주의하다’ 라는 뜻의 미완료형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욥을 보호하시던 때는 욥이 어떻게 살던 때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1) 하나님의 등불이 머리에 비치던 때
(욥 29:3) “그 때에는 그의 등불이 내 머리에 비치었고 내가 그의 빛을 힘입어 암흑에서도 걸어다녔느니라”
여기서 하나님의 등불이라는 말은 주로 하나님의 성소를 밝히는 등대에서 비치는 등불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삼상 3:3]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여기서 하나님의 등불은 욥에게 베푸셨던 하나님의 은혜의 빛을 가리키는 것으로 욥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때로는
1) 인생의 깊은 회의에 빠져 갈 바를 알지 못할 때 그를 인도하셨고,
2) 비탄에 빠져 깊은 슬픔 중에 젖었을 때 그를 위로하셨고,
3) 인생살이의 무거운 짐에 눌려 주저앉아 있을 때 그를 건져주셨던 때입니다.
그 때에 욥에게는 하나님이 그의 전부였고, 그 때문에 부귀권세를 가진 자들이 걸어가기 쉬운 흑암 길에 서도 길을 잃지 않고 인생길을 바로 걸어 다닐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욥은 지난 날 자기가 육체적으로 원기 왕성했던 것도 바로 그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욥 29:4] 내가 원기 왕성하던 날과 같이 지내기를 원하노라
여기서 ‘원기 왕성’이라는 말(#r 욥은 그 때를 가리켜 인생의 전성기라고 일컫는 이유는 물질적인 풍요로움이나 육체적인 건강이전에 하나님께서 욥에게 피상적으로만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라, 매우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임하신 때였습니다.
[욥 29 3:4] 그 때에는 하나님이 내 장막에 기름을 발라 주셨도다
여기서 ‘기름을 발라 주셨다’는 말은 하나님이 마치 친구에게 하시는 것처럼 ‘의논, 협의, 조언’하심으로 하나님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욥은 그 때를 가리켜 원기 왕성한 인생의 전성기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베푸시는 그와 같은 은혜와 축복은 빛은 비단 욥에게만 아니라 모든 인생에게 필요한 복입니다.
그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론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할 때 그와 같은 축복을 빌게 하셨고, 그렇게 빌면 반드시 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복이기도 합니다.
(민 6:23)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민 6: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민 6: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민 6: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민 6:27)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오늘 날에는 그와 같은 축복의 기도가 구약시대와 같이 성부 하나님의 은혜만이 아니라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내리시는 것을 뜻하는 축도로 발전을 한 것입니다.
(고후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축도를 받을 때 그 축복의 선언이 아론의 축도 보다 더 좋은 축도라는 믿음으로 축도를 받을 때 하나님께서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고 약속하신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2)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셨던 때
욥이 지난날을 회상하며 그리워 한 때는 외형적으로 잘 나가던 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보다 더 긴밀했던 때를 가리킵니다.
[욥 29:5] 그 때에는 전능자가 아직도 나와 함께 계셨으며 /나의 젊은이들이 나를 둘러 있었으며
여기서 ‘전능자’라는 말(yD'v)은 하나님이 얼마나 능력이 많으신가를 뜻하는 하나님의 칭호로 성경 여러 곳에 나타나 있는 말입니다.
그 대표적인 말씀이 믿음의 조상 아브람이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순종하여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으로 가서 자그만 치 24년의 세월이 흘러 백세가 가까워서 이제는 아브람과 그의 아내 사래가 도저히 아들을 낳기가 불가능한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을 때에 하신 말씀입니다.
[창 17:1] 아브람의 구십 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하나님은 바로 그 해에 사래에게 이삭을 잉태하게 하셔서 아브람이 백세되던 해에 이삭을 출생하게 하심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입증하셨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바로 그와 같은 전능자이심을 믿었고 그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받은 여러 가지 축복에 대해서 간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부자는 돈이 함께 하는 사람이고, 학자는 지식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라면, 전능자이신 하나님이 욥과 함께 하셨을 때 욥은 어떤 복을 받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욥 29:5] 그 때에는 전능자가 아직도 나와 함께 계셨으며 나의 젊은이들이 나를 둘러 있었으며
여기서 ‘아직도 나와 함께’라는 말은 ‘연속, 계속, 여전히’라는 뜻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이 욥과 계속 함께 계셨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능자하가 함께 하셨다는 외적인 증거가 어떻게 나타났는가? 하는 것입니다.
1) 욥의 주변에는 젊은 자식들이 삥 둘러싸고 있었고,
2) 소와 염소 떼는 젖이 많아 우유로 발을 씻을 정도로 흔했고,
3) 자갈투성이의 올리브 나무 열매는 무성하여 기름을 많이 짯으며,
4) 마을 성문 앞 광장에는 마을 어른들이 욥과 자리를 함께 하였고,
5) 젊은이들과 노인들도 욥을 보면 어려워하며 자리를 비켰고,
7) 마을 지도자들도 욥 앞에서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이는 욥이 당시에 얼마나 존귀한 위치에 있었는가를 잘 대변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욥을 가리켜 성경은 욥을 ‘가장 훌륭한 자’라고 인정한 바가 있습니다.
(욥 1:3) “그의 소유물은 양이 칠천 마리요 낙타가 삼천 마리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 마리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라”
그래서 욥은 그와 같은 때를 회상하며 다시한번 그러한 인생의 전성기가 다시 한 번 돌아오기를 소원하였던 것입니다.
『[욥 29:2] 나는 지난 세월과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던 때가 다시 오기를 원하노라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불신자나 타 종교인들과 달리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복은 부귀권세가 아니라 임마누엘의 복 즉 하나님이 나와 나의 가정과 사업과 직장과 교회와 민족과 전능자 하나님이 임마누엘 하시는 것이 모든 문제의 해답이며 또한 최상의 복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3. 축복받은 욥의 삶
욥이 그와 같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리며 인생의 전성기를 살아갈 때 주변 사람들은 욥을 축복하며 칭송을 아끼지 아니하였다는 것입니다.
[욥 29:11] 귀가 들은즉 나를 축복하고/ 눈이 본즉 나를 증언하였나니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욥이 그와 같이 엄청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부자가 되고 사회적 저명인사가 되었기 때문일까요?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욥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는 자답게 사람들에게 존경 받을 만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1)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빈민과 고아와 과부들을 도왔습니다.
[12] 이는 부르짖는 빈민과 도와 줄 자 없는 고아를 내가 건졌음이라
2) 도움이 필요한 장애자들에게 진심으로 도움을 주었습니다.
[15] 나는 맹인의 눈도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의 발도 되고
3) 약자를 등치는 자들을 후려갈기고 억울하게 당하는 자들을 도왔습니다.
[17] 불의한 자의 턱뼈를 부수고 노획한 물건을 그 잇새에서 빼내었느니라

욥은 인생의 전성기를 그렇게 살면서도 평생을 그렇게 남을 도우면서 살아가기를 늘 소망하였습니다. 수많은 모래알처럼 그렇게 오래 오래 살기를 바라고 죽더라도 집에서 편안하게 숨을 거두기를 바라며 살았습니다.
[욥 29:18] 내가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내 보금자리에서 숨을 거두며 나의 날은 모래알 같이 많으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러한 삶을 사는 욥을 칭찬하였습니다. 그와 같은 욥이 하는 말은 마치 이슬방울처럼 사람들의 가슴에 촉촉이 스며들었고, 마치 농사꾼이 봄비를 기다리듯이 욥을 환영하고 좋아했다고 하였습니다.
[욥 29:23] 그들은 비를 기다리듯 나를 기다렸으며 봄비를 맞이하듯 입을 벌렸느니라
오늘 성경에서 욥이 오늘 성경에서 지난날을 회상하고 그런 날을 그리워한 것은 결코 인생 전성기에 누렸던 부귀와 영화가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의 빛이었으며,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이었습니다.
[욥 29:2] 나는 지난 세월과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던 때가 다시 오기를 원하노라
단테는 ‘인생이 불행하게 되었을 때 행복했던 날을 회상하는 것 이상으로 더 큰 비애는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물론 욥도 한 때는 인생의 전성기를 누렸던 사람이었으나 그 많던 재산도, 그 좋았던 건강도, 그 자자했던 명성도 다 사라져 버리고, 마치 산송장처럼 흉측한 모습으로 변해버린 자신을 돌아보면서 처절한 슬픔과 탄식과 더불어 너무나 고통스러운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하나님에게 원망 섞인 탄식을 쏟아 내던 때도 있었습니다.
(욥 3:3) “내가 난 날이 멸망하였더라면, 사내 아이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더라면,” (욥 3:4) “그 날이 캄캄하였더라면, 하나님이 위에서 돌아보지 않으셨더라면, 빛도 그 날을 비추지 않았더라면,” (욥 3:5) “어둠과 죽음의 그늘이 그 날을 자기의 것이라 주장하였더라면, 구름이 그 위에 덮였더라면, 흑암이 그 날을 덮었더라면,”
만일 욥이 그것조차 없었다면 그는 결코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욥의 내면에는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비록 지금 자신의 처지가 비참하고 처참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그러한 인생의 전성기가 다시 오기를 사모하였습니다.
욥이 바란 것은 부귀와 영화가 아니라 하나님이 등불이 되어 자기를 비추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해주시는 날이 오기를 사모하였던 것입니다.
마치 그 믿음은 마치 오뚜기 인형의 중심 추와 같아서 때로 넘어질 때도 있지만 아주 엎드러지지 않고 다시 일어서게 하는 믿음이었습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어느 누구에게나 한번은 인생의 전성기를 허락하신다면 이미 나에게 그와 같은 인생의 전성기를 주셨거나, 아니면 앞으로 주신다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삶인지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 배워야 합니다.
인생의 진정한 번성기는 얼마 부유하고 얼마나 건강하고 얼마나 저명인사가 되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하나님의 등불이 나를 비추고, 얼마나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가? 하는 영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1) 욥의 자신의 전성기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2) 욥은 인생의 전성기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욥은 고난 중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살이는 욥처럼 언제든지 변할 수 있습니다. 축복의 상황이 저주의 상황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저주의 상황이 축복의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문에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신앙이 바뀌어서는 안 됩니다. 고난 중에 과거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던 아름다운 시절을 회상하며 소망을 잃지 않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욥은 나중에 가서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성경에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무려 71 번이나 있습니다. 설령 욥처럼 고난 중에 있을지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범사에 감사하며 믿음으로 살아간다면 그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의 등불이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영적인 전성기의 복을 받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사 41:14)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