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공하에 오전12시30분(-7시간시차)도착
버스에서 김밥 도시락을 먹으면서 타보르로 향했다.
버스로 가는길에 하늘의 구름이 넘 아름답다.
타보르(Tabor)
프라하에서 남쪽으로 80㎞ 떨어져 있으며 루지니체 강의 만곡부에 있다. 1420년 얀 지슈카를 비롯한 보헤미아 출신 종교 개혁가 얀 후스의 추종자들에 의해 세워졌으며 후스 운동의 보다 과격한 당원들의 근거지가 되었다. 타보르파(派)로 알려진 이들은 민족정신을 고취하고 체크어를 보존하고자 했다. 후스파 혁명운동 박물관(1878)이 있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가파른 산등성이에 있는 구 시가지의 남쪽과 서쪽으로는 강이 흐르고 있으며, 북쪽에는 한때 이 지역의 세례장소로 쓰였던 요르단 양어장이 있다. 도시는 성채로 둘러싸여 있는데 성채의 대부분이 손상되지 않은 채 남아 있으며, 1420년 세워진 베히네 문(門)도 보존되어 있다. 구 시가지의 중심부를 이루는 지슈카 광장으로부터 길들이 뻗어나가는데 이 길들은 적의 침략에 대비해 좁고 구불구불하게 설계되었다. 타보르는 17세기에 30년전쟁의 참화를 겪은 후부터 쇠퇴했다. 지금은 도로 및 철도의 연계지이며, 모직·담배·진주 가공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부근에 고령토 생산지가 있다
타보르 시내를 들어가는 성문
1415년, 프라하에서 종교개혁자 얀 후스가 화형을 당한 후 후스의 추종자들(후스파)은 계속해서 카톨릭에 반대한 개혁을 주장했고, 그들은 이 곳 타보르(Tabor)에 완전한 민주적 자치공동체를 세워나갔다. 그리고, 1419년 일어난 후스전쟁 때, 타보르는 후스파의 성지라고 불리며 최후의 거점이 되었다. 카톨릭은 십자군을 동원, 그들을 공격했지만 ‘얀 지슈카’라는 대장군이 지휘하는 타보르 군에 번번이 패배했다.
광장의 서쪽으로 여행 안내소가 있고 그 왼쪽으로 박물관(구 시청사)이 있다. 바로 타보르 후스파 박물관(Husitske Muzeum v Tabore)이다.
가난한 귀족 출신이었던 얀 지슈카(Jan Žižka z Trocnova a Kalicha 1360~1424)는 체코의 장군이었고,
후스파의 지도자였다.
지슈카는 뛰어난 전술적, 전략적 묘안과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다. 전술에 있어서 극도의 실용주의자였고, 혁신적이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휘하에 무수한 숫자의 농부들과 소작농들이 있는 것을 알았지만 그들을 무리하게 칼과 갑옷으로 무장한 전통적인 병사로 바꾸려하지 않았다. 그는 많은 농기구를 무기로 변환시켰고, 농업용 마차를 수레진(Wagenburg)라 불린 재치 있는 전술에 이용했으며, 마차를 작은 대포와 총으로 무장해서 사용했는데, 마치 500년 후에 나타날 탱크를 떠올리는 대단한 묘안이었다. 또한 지형지물을 이용하는데도 달인이었다. 그는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하였고, 1421년 남은 한 눈마저 잃었지만 그 후 몇 년동안 계속해서 타보르의 군대를 지휘하였다. 결국 전염병으로 인해서 1424년 사망하지만 그는 역사상 드문 불패의 장군 중 하나였다. 그래서 체코 사람들에게는 우리나라의 이순신 이상으로 존경받고 있는 것 같다.
타보르 후스파는 점차 과격해 졌는데, 이 과격한 개혁파들은 그들 스스로를 종말의 때에 하나님의 교회의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싸우는 정치적이고 신앙적인 공동체로 이해했다. 그리고 신앙은 삶에서의 구체적 표현과 실제적 행동이 뒷받침되는 것으로 보았다. 중세 말기의 천년왕국운동으로 꼽히는 지쉬카 장군과 타보르 공동체의 이러한 정신은 이후 체코의 교회개혁운동과 모라비안 공동체로 계승되었다.
*얀 후스: 보헤미아 종교개혁자•신학자이며, 후시네츠 출생하였다. 프라하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졸업 뒤 모교 교수로 활동하였고, 1402∼1403년 학장, 1409년 총장을 지냈다. 또한 카를교 근처에 위치한 베들레헴 교회의 주임사제(主責司祭)를 겸했다.
당시 보헤미아에 전파됐던 J. 위클리프의 교설(敎設)을 받아들이고 교회의 세속화를 비난하였다. 1412년 교황 요하네스 23세가 나폴리왕 토벌을 위해 속죄부를 판매하자 이를 비난하였고 민중도 격렬히 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에 교황은 그를 파문하고 프라하시까지도 파문했다. 1414년 콘스탄츠종교회의에 소환되어 1415년 7월 6일에 이단 선고를 받고 화형에 처해졌다. 그는 위클리프의 설을 따라 성서를 기본으로 예정구령설을 취했으며 교회의 토지소유와 세속화를 비난하였다. 그의 교설은 독일인과 교회의 압박으로부터 고통받는 체코인의 민족의식과 결합하여 개혁운동을 일으키게 했다.
체코는 7월 6일을 ‘얀 후스 기념일’이라고 하여 국경일로 기념하고 있다. 구시가지 광장에 얀 후스 동상이 서 있는데, 그날 광장에 모여 예배를 드리며 개혁교단이 축제의 분위기를 즐긴다.
*지지코프 광장의 서쪽에 있는 박물관은 초기 르네상스 양식을 이용한 아름다운 건축물로 1521년에 완성되었다. 건물 내부는 후스 운동 박물관으로서 일반에게 공개되어 후스파의 활동 및 후스 전쟁에 관련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또한 거리에는 지하도가 그물처럼 펼쳐져 있는데 파악된 길이만 해도 약 12km에 이른다. 장소에 따라서는 2~3층으로 되어 깊이가 8~15m에 이르는 지하도도 있다고 한다. 원래는 와인이나 맥주 양조장으로 이용되던 곳이었으나 식량 저장에도 이용되고 하였다. 구시가지의 건물이나 거리 곳곳에 지하도의 출입구가 있으나 현재 후스 운동 박물관의 입구 옆에서 성 에리제베트교회 정면으로 나오는 코스가 공개되어 있다. 사고를 막기 위해 정원을 한정하며 가이드가 안내를 한다.
<수백년전에 이미 등장한 탱크? 무기를 설치한 수레>
박물관의 전시물은 대부분 지슈카와 후스전쟁에 대한 것들이다.
탱크의 역할을 했던 농업용 수레를 개조한 수레진이라는 전법이나 총이나 소형대포를 어떻게 운영했는지도 볼 수 있다.
후스 파 사람들의 유물과 설명하는 자료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그들은 공동체 생활을 하며 가진 모든 것을 모아 초대교회 사람들처럼 살았다. 적군의 공격을 받을 때는 달구지로 진을 쌓아 효과적으로 방어했다고 한다.
종교개혁은 단순히 입으로 선포되는 말이나 일방적인 순교로만 이루어 졌던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은 전쟁도 사용하셨다. '후스전쟁'이 그랬고 루터이후 '30년 전쟁'이 그랬다.
그러나 이 전쟁들이 단순히 종교의 자유와 올바른 신앙의 복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요소들도 다분히 있었다. 종교를 명분으로 한 전쟁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처참하게 죽고 고통을 당하게 되었는지 보게 된다. 모든 전쟁이 종교의 이름으로 정당화 될 수는 없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투쟁할 수는 있지만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우리들의 이익을 위한 전쟁은 있을 수 없다.
후스파 박물관은 종교개혁의 다른 측면을 생각하게 한다.
타보르는 어떤 도시였는가에 대해 모형과 삽화들로 설명되어 있다.
후스전쟁에 어떤 무기와 전술이 사용되었는지 많은 모형들과 더불어 이해하기 쉽게 잘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에 있는 전쟁을 묘사한 모형들. 당시에 수레를 어떻게 전술에 사용했는지 알 수 있다.>
<옛 타보르 도시 모습: 완전한 요새의 모습을 하고 있다.>
출토된 유물들
후스 광장에서 김동욱가이드의 설명을 경철하는 일행
<지슈카 광장>
광장 가운데 두 개의 동상이 있다. 하나는 타보르가 배출한 척안의 장군 ‘얀 지슈카’의 늠름한 석상이고 또 하나는 당시 지슈카 장군이 지휘하던 타보르 군인의 귀여운 석상이다. 타보르 군인상 아래는 분수로 꾸며져 있다. 지슈카 장군의 석상은 한쪽 눈을 안대로 가리고 남은 한쪽 눈으로 타보르를 매서운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그리고 여느 나라 대장군들이 그렇듯이 한 손에는 큰 칼을 들고 있다. 타보르에서 보는 그림이나 동상들, 하다 못해 작은 기념품에 이르기까지 한쪽 눈에 안대를 하고 있는 사람은 백이면 백, 모두 지슈카라고 보면 된다고 한다. 지슈카라는 이름도 사실 척안(隻眼)을 의미한다. 지슈카가 어린 시절 싸움하다가 잃은 한쪽 눈은 평생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것이다. 또 다른 석상인 타보르 군인 또한 당시 타보르의 군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란다. 이와 비슷한 석상이나 그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타보르 상>
가난한 귀족 출신이었던 얀 지슈카(Jan Žižka z Trocnova a Kalicha 1360~1424)는 체코의 장군이었고, 후스파의 지도자였다.
24시간을 표시하는 특이한 시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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