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회사진 방/수원노회 유럽탐방

유럽종교개혁지 탐방 4편(체코 프라하성)

미션(cmc) 2012. 7. 14. 12:46

 

Clarion Congress Hotel 투숙

 프라하 성 (체코어:프라슈스키 흐라트 Pražský hrad)은 체코의 수도인 프라하블타바 강의 서쪽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성으로 프라하의 초기 역사부터 존재해 왔으며 프라하의 상징이자 체코의 상징이다. 체코의 왕들과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들이 이곳에서 통치를 했으며 현재는 체코 공화국의 대통령 관저가 이곳에 자리잡고 있다. 프라하 성은 기네스북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큰 옛성이다 [1]. 길이는 약 570 미터, 폭은 약 130 미터에 달한다.

 

대주교궁전
1562년 페르디난트 1세는 후스전쟁 이후 카톨릭 초대 대주교에게 이 화려한 궁전을 구입하여 선물한다.
제2차 종교전쟁인 백산전투에서 승리한 캐톨릭이 프라하 시와 체코 땅 전역을 지배하며 또 캐톨릭의 건재를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오른쪽은 슈바르젠베르크 궁전으로,
멀리서 보면 이 르네상스식 궁전의 표면은 돌출한 피라미드모양의 석조물로 장식되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평평한 벽면에 무늬를 새긴 ‘즈그라피토’ 임을 알 수 있다.
이 궁전은 ‘로브코위츠’ 가를 위하여 건축가 ‘아고스티노 갈리’가 1576년에 지은 것으로 보헤미아 양식이라기보다는 피렌체 양식에 가깝다.
이후 여러 사람의 주인을 거쳐 1719년 합스브르크 제국의 대표적인 귀족인 ‘슈바르젠베르그’ 가의 손으로 넘어간다.
1945년부터 군대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슬라브시대 초기부터 1918년사이에 일어난 각종 전쟁에서 사용되었던 무기, 갑옷, 군복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가장 특징적인 것은 15세기 후스파가 고안하여 사용하였던 독창적인 무기들이 전시되어있음.

 

 

체코국기가 계양된 건물이 바로 대통령의 집무실이 소재한 프라하성

프라하성의 정문은 "마티아스 문"(1614년, 바로크양식)이라고 하며 1614년 신성 로마제국 황제이자 헝가리왕국의 왕이던 합스부르크의 마티아스가 보헤미아의 왕이 되어 대관식차 왔을 때 세움. 정문 위의 조각상 들은 “싸우는 거인들”로서 수호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특히 외래객들에게 기가 질리게 만드는 목적으로 세워짐

 

 

(체코의 초대 대통령 바츨라프 하벨 동상)
프라하성 입구에 서있는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며 체코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체코의 초대 대통령 바츨라프 하벨 ( Vaclav Havel )의 동상 

프라하성에서 바라본 프라하 시내

 

 

프라하성의 근위병 교대식

 

 

 

성 비트 교회 

성 비투스 성당(St Vitus Cathedral)

총길이 124m, 폭 60m, 천장 높이 33m, 탑높이 100m의 프라하에서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건축물중 하나로 현재 대통령궁으로 쓰이고 있는 프라하성곽안에 위치해 있다. 교회의 건축이 시작된 것은 600여년전인 1344년이나 증개축이 계속되어 체코 역사와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929년이다.

또 성당이 완성되었을 때는 초기 비투스 성당의 최초 설립자이자 보헤미아의 수호성인인 웬체슬라스 왕자 사망 1,000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성당의 서쪽입구 청동문에 이 교회의 역사에 대해 묘사되어 있고, 오랜 세월에 걸쳐 건축되어서인지 건물은 중세의 고딕양식을 바탕으로 여러 양식이 혼합되어 있으며 점차적으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것을 볼 수 있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내부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천부적 재능의 체코 예술가들에 의해 완성되었다.

세부정보

 

 

 

 

 

황금소로 (Zlatá Ulicka)

중세에 연금술사들이 거주했던 프라하 성 안에 있는 좁은 골목으로, 색색의 알록달록한 작은 집들이 마치 동화 세계 속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성안에 이런 집들이 지어지기 시작한 것은 1500년경으로, 당시에는 성을 지키는 수비대원들을 위한 주택 단지로 이용되었다고 하나 17세기 무렵부터 금세공인들과 연금술사들이 머물면서 '황금 소로'라는 별칭이 붙게 되었다. 현재 이 귀여운 집들은 대부분 관광기념품을 파는 가게로 이용되고 있다. 총 16채의 집이 길 양편으로 늘어서 있으며, 그 중 파란색 집인 22번지는 체코의 대문호 프란츠 카프카가 작업실로 사용하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그는 프라하 성을 배경으로 자신의 대표작인 <성(城)>을 집필했다고 한다. 황금소로 끝자락에는 달리보르 탑(Daliborka)이 있는데, 정교한 축성법에 의해 15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탑의 아래층은 감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탑의 이름은 이곳의 첫 수감자였던 젊은 기사 달리보르(Dalibor)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국립 박물관의 정면에서 광장쪽으로 쭉 뻗은 대로에 위치한 바츨라프의 거대한 기마상은 1912년에 세워졌다. 이 청동 조각상은 요제프 미슬베크(Josef Myslbek)의 작품이다. 동상의 받침대에는 체크의 수호성인상들이 있다. 성 바츨라프는 10세기 경의 인물로 국난이 닥쳐왔을 때 중부 보헤미아의 그라니크 동굴에서 깊이 잠에 빠진 기사들을 깨워 그들을 이끌고 적군을 격퇴시켰다는 전설의 주인공이다. 체크 민족의 수호성인으로 신성시되고 있다. 동상 옆에 있는 기념비는 전 공산주의 정권의 희생자들을 애도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바츨라프 광장

얀 팔라흐(Jan Palach)라는 학생이 1969년 이 곳에서 분신 자살을 했다. 1989년에는 경찰의 잔혹 행위에 항거하는 집회가 이루어졌으며, 이 집회는 벨벳혁명(Velvet Revolution)으로 이어져서 마침내 공산주의 체제의 전복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바츨라프 광장은 넓이가 750m x 60m 정도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광장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좀 부적절한 것 같다. 원래는 말 시장이었던 자리인데 지금은 서구 문화의 영향으로 호텔과 레스토랑, 클럽, 상점들이 즐비한 거리로 변했다.

 

 

 

 모차르트 하우스 (Mozarthaus)

1783년 모차르트가 <린츠> 교향곡을 작곡한 곳. 16세기 후반에 세워진 3층의 르네상스

건물로, 입구와 건물 정면은 바로크 시대에 다시 지어진 것이다. 건물 중앙에는 17세기

에 만들어진 아름다운 아케이드와 정원이 있고, 입구 안쪽 홀에는 딤멜(Dimmel)이

1957년에 제작한 프레스코화가 있다.

마카르트 광장에 있는 분홍색의 건물은 모차르트가 1773~1780년에 살았던 곳이다. 전쟁 중에 피해를 입어 현재 남아 있는 곳은 탄츠마이스터 홀뿐이며, 1981년 모차르테움 재단에 의해 증·개축되었다. 실내악 콘서트가 개최되며, 여름에는 박물관으로 개방되고 있다

 

안나크로미 (Ceský Krumlov[1], 1940년 7월 18일 출생)는 화가이며 조각가이다. (체코 공화국) 보헤미아에서 출생, 오스트리아에서 성장, 프랑스에서 생활하고 이탈리아에서 사업하고 있다. 그녀는 전형적인 유럽인들속에서 떠올리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안나크로미의 가족은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 보헤미아로 이사하였다. 그녀의 가족은 그가 예술학교에 다닐만큼 충분한 돈이 없었다, 그후 그녀가 결혼하고 파리로 이사한 후에야 그것이 가능하였다. 그녀는 École des Beaux-Arts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자기가 상상했던 초현실주의 세계에 대한 명성을 획득하였다. 

성 미쿨라슈 성당(Sv. Mikuláš kostel)

건축가 집안으로 유명한 디엔짼호퍼 Dientzenhofer의 킬리안 이그나즈 Kilian lgnaz가 1732~1735년

바로크 양식으로 지은 성당으로 실내장식은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의 작품 활동은 주로 아버지와 합작으로 이루어졌으며 많은 작품들이 그의 사후에 완성되었다.

성 미쿨라슈는 성 니콜라스의 체코식 이름인데 Parizska 거리쪽에 있는 성당 벽에는

그의 모습이 세겨져 있다.

구시청사천문시계 - Astronomical Clock

카를 다리에서 화약탑 까지의 블타바 강 오른쪽 지구인 '구시가광장'에 있는 구시청사는 전형적인 고딕양식의 건물로, 건물벽에 붙어 있는 천문시계가 유명하다. 1437년에 제작된 이 천문시계는천동설에 기초한 두개의 원이 나란히 돌아간다.

매시각마다 한번도 틀림없이 정확하게 시간을 알리는 이 시계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언제나 끊이지 않고 몰리는데, 두개의 원반위에 있는 천사의 조각상 양 옆으로 창문이 열리고, 죽음의 신이 울리는 종소리와 함께 그리스도의 12제자가 창 안쪽으로 천천히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마지막으로 시계의 위쪽에 있는 닭이 운다.

이 시계의 제작자에 대해서는 시계 제작의 거장이었던 미쿨라슈가 만들었다는 것과 15세기경 프라하의 천문학자이자 수학교수였던 하누슈가 만들었다는 두가지 설이 있다. 하누슈가 만들었다는 설에 대해서는 또 슬픈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그의 손재주를 시샘한 누군가가 그의 한쪽눈을 멀게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계를 지키다 쓸쓸히 병에 걸려 죽었다는 것이다.

그의 죽음과 함께 한때 이 시계도 움직임을 멈췄는데, 이후 몇번의 수리와 1948년에 설치된 전동장치에 의해 지금까지 그 아름답고 신기한 장면을 연출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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