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회사진 방/수원노회 유럽탐방

유럽종교개혁지 탐방 5편(독일 비덴베르크 비텐베르크 성(城)교회)

미션(cmc) 2012. 7. 14. 17:54

 

 

 독일 데사우 RADISSON BLU DESSAU HOTEL       

데사우 [Dessau]

독일 중동부 할레 주의 북서부에 있는 도시 

  물데 강이 엘베 강과 만나는 곳에 있다. 소르브족의 거주지로 시작해 독일의 도시로 발전한 데사우는 1213년 처음으로 문헌에 언급되었다. 1603~1918년에 여러 백작과 공작을 거치다가 안할트 대공의 영지가 되었고, 그뒤 1945년까지는 안할트 주의 주도였다. 18세기에 안할트 가문은 이 도시의 남서쪽에 있는 모지크카우 구에 성을 지었는데, 이 성은 로코코 시대 박물관과 뛰어난 미술품들을 보유하고 있다. 1925~33년에는 발터 그로피우스가 운영한 바우하우스 건축학교가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심한 폭격으로 역사상 유명한 건축물들이 많이 파괴되었다. 그 가운데 란데스 극장, 시청, 장크트요한 교회(1690~1702)는 복구되었다. 1729년 철학자 모제스 멘델스존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에는 커다란 항공기 공장이 있었고, 지금은 준설기를 만드는 조선소, 국영 무기공장들과 차량, 기계, 각종 기구, 화학제품을 만드는 공장들이 있다. 베를린에서 벨치히, 라이프치히에 이르는 철도노선의 교차점으로 철도공작창이 있으며, 내륙항과 비행장도 있다.

 

비텐베르크 성(城)교회(The Castle church in Wittenberg)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이 새겨진 기념 청동문>

비텐베르크하면 역시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성교회 문에 게시한 것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사실 당시 성당의 문은 이것저것 소식이나, 정보를 공유하는 게시판의 역할을 했었고, 루터가 붙였던 95개조 반박문도 자신의 주장을 다른 게시물들처럼 작은 종이에 게시했던 것뿐이었다. 아마 본인도 이 일이 이렇게 커질지는 몰랐을 것이다. 지금 베텐베르크 성교회의 북쪽문에 가면 「95개 조항의 문」으로 지정되어있다. 루터가 반박문을 게시할 당시 나무문은 아니고 1800년대 이후 95개 조항을 조각한 청동문으로만 남아있다. 문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저 95개조 조항을 루터는 어떻게 작은 종이에 정리해서 나무문에 붙였을까?

 

1517년 10월 31일 독일의 사제이자 신학자였던 마르틴 루터(1483~1546)는 당시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 등 문제점을 지적한 '95개조 명제'를 비텐베르크 성(城) 교회 문에 붙였다. 교황청은 진노했고 신성로마제국은 물론 유럽 전역으로 '사건'은 번져갔다. 종교개혁의 시작이었다. 오는 2017년이면 루터의 종교개혁이 500주년을 맞는다.

마틴 루터의 95개조 항의문

 

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회개하라고 하셨다. 이 뜻은 신자의 생활 전체가 회개적으로 될 것을 의미한 것이다.
2. 이 말씀의 뜻은 신부가 집행하는 죄자복과 죄사면에 관한 속죄 성례의 뜻과 전연 다른 것이다.
3. 그러나 회개는 다만 심적 참회에 끝이는 것이 아니라 모든 내정을 죽이는 외부의 고행이 또한 있어야 한다.
4. 참된 심적 참회는 자기를 미워하는 것이니 이것은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지속할 것이다.
5. 교황은 자기와 자기교회가 만든 법을 범한 죄 외에는 아무의 죄도 사면할 의지도 없고 권한도 없다.
6. 교황은 아무의 죄도 사면할 권한이 없고 다만 하나님께서 사면하심을 공포하거나 보증할 따름이다. 자기 자신이 사면해야 할 경우에는 할 수 있으나 그것도 당자가 원치 않으면 그 사람의 죄는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7. 하나님께서 누구의 죄든지 사면하시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반드시 하나님의 대표인 신부의 지도를 받게 하신다.
8. 교회의 해죄법은 생존자에게만 통용하고 사망자에게는 통용치 말 것이다.
9. 그러므로 교황은 성신의 지도하심을 따라서 발령하되 사망자에 관한 조항은
늘 제외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0. 신부가 사망자의 연옥고를 교회의 사죄로 면케 한다는 것은 그릇된 것이요 교양부족에서 나온 것이다.
11. 교회벌을 연옥벌로 변한다는 말은 감독들이 잘 때 가라지를 뿌림과 같다.
12. 전에는 교회벌 선고를 사면 후에 하지 않고 전에 해서 참된 통회를 하게 한 것이다.
13. 죽는 사람은 그 죽음으로서 모든 이 세상에서 받을 벌을 다 받았으며 교회 벌칙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14. 죽는 사람이 신앙과 자신에 부정이 있으면 큰 공포를 느끼게 되고 그 부정이 심하면 그 공포도 더욱 심해진다.
15. 다른 것은 말고 이 공포만으로도 연옥의 고통에 해당한 것이다. 이 공포는 절망의 공포다.
16. 지옥, 연옥, 천당이 각각 다른 것과 같이 마음의 절망과 평안도 또한 다르다.
17. 연옥에 있는 영들에게 있어서는 자선이 증가되어야 공포가 감소될 것은 사실이다.
18. 연옥에 있는 영들이 적선범위나 자선 증가권외에 있다는 것은 이지나 성서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이다.
19. 연옥에 있는 영들이 다 우리가 생각하는 바와 같이 자기네들이 누릴 복락을 확신하는지 증명할 수 없다. (연옥은 사람이 그 곳에서 얼마 동안 속죄고생을 하면 천당으로 올라가는 곳이라 함)
20. 그럼으로 교황이 사람의 모든 지은 죄를 사유한다 하는 것은 자기가 정한 죄에만 국한된 것이다.
21. 그럼으로 누구든지 전도하기를 교황의 사면부가 사람을 그 받을 모든 형벌에서 석방구원 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틀린 것이다.
22. 교황이 연옥에 간 영들의 죄를 사면할 수 없다. 이는 그 영들이 이 세상에 살아 있을 때 교회 법대로 속죄행위를 했어야 할 것이었다.
23. 만일 어떤 사람의 모든 죄를 사유할 수 있다면 그런 죄사유함 받을 사람은 가장 완전한 사람이라야 할 것이요 또 그런 사람은 소수의 사람일 것이다.
24.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러한 혼란한 허울 좋은 약속으로 기만적 사죄를 받을 것이다.
25. 연옥에 대한 교황의 권세는 저의 교구내 모든 감독들도 가질 수 있고 자기적 영구내 모든 목사가 가질 수 있는 것이다.
26. 교황이 영들의 죄를 사유함에 있어서 자기 직권으로 하지 않고 공중의 기도에 의하여 하는 것은 바로 하는 것이다. (연옥에서는 교황직권도 소용없다)
27. 저의들의 (사죄부 파는 자들)은 전도하기를 돈이 헌금궤에 쩔렁하고 떨어질 때마다 영혼이 연옥에서 날아서 나온다 한다.
28. 돈이 그렇게 쩔렁하고 떨어질 때 탐욕과 모리가 늘어날 것이다.
29. 연옥에 있는 영들이 다 구속받기를 원하는지 않는지 누가 알 것이냐 성 셀비니누스와 파샐의 이야기에 의하면 그럴 것이다.
30. 각자가 자기 자신의 회개에 대한 진실성을 알 수 없거든 어찌 자기가 완전히 사죄함을 받았는지 알 수 있으랴
31. 참으로 회개하는 사람은 드물다. 또 참으로 회개를 하고 사죄부를 사는 사람도 드물다.
32. 누구든지 면죄장을 받고 자기가 구원받았다고 확신하면 저와 저의 선생은 다같이 영원히 멸망될 것이다. 33. 교황의 사죄가 곧 하나님의 지극히 귀한 선물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우리는 삼갈 것이다.
34. 이러한 사죄의 의사는 사람이 만들어 논 제도에 의한 속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35. 사람이 만일 사죄부를 사 가지고 영을 연옥에서 구출하는지 혹은 인죄장을 사면 저에게는 회개가 필요가 없다고 하는 전도는 기독교 교리가 아니다.
36. 어떤 그리스도인이든지 양심의 가책을 받고 참회개하면 저는 면죄장이 없어도 전체 구원의 특전을 얻어서 고통과 정죄함을 면할 수 있다.
37. 참된 그리스도인은 살았거나 죽었거나 면죄장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교회를 통하여 주시는 모든 은사를 다 받을 수 있다.
38. 교황의 사죄도 결코 멸시할 것은 아니다. 이는 내가 이미 말한바와 같이 하나님이 사죄하심을 공포하심이 되는 까닭이다.
39. 사죄의 효력과 진정한 회죄의 필요를 여러 사람들 앞에서 강조하는 것은 박학한 신학자라도 하기 어려운 일이다.
40. 진정한 회죄는 형벌 받을 것을 환영한다. 그러나 사죄를 함부로 하면 형벌감을 완화하고 수형법을 발하게 한다.
41. 사도적 사죄는 이것을 선포하는데 조심할 것이다. 이는 사람들이 이것을 자선 사업보다 더 중요시할가 함이다.
42.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알 것은 사죄부를 사는 것이 자선사업에 비할 수 없다고 교황은 생각한다는 것이다.
43. 그리스도인이 또 알 것은 이 누구든지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어려운 사람에게 꾸어주는 것이 사죄부를 사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
44. 자선사업을 하면 할수록 사랑이 늘어가고 그 사람의 인격이 높아간다. 그러나 사죄부를 사면 저가 더 나아지는 것이 아니고 다만 형벌만 면하게 되는 것이
다.
45.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알 것은 이 누구든지 어려운 사람을 보고 도웁지 않고 거저 지나가면서 사죄부는 산다면 저는 교황의 사죄부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사는 것이다.
46.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알 것은 누구든지 큰 부자가 아닌 이상 그 있는 돈을 가지고 자기집 살림에 보태 쓸 것인지 사죄부 사는데 쓸것이 아니다.
47. 그리스도인이 알 것은 사죄부 사는 것은 자유로 할 것이요 의무적으로 할 것은 아니다.
48. 그리스도인이 알 것은 교황이 죄를 사유할 때에 기도를 요구하지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49. 그리스도인이 알 것은 교황이 사죄는 사람이 그것만을 의지하지 않아야 유익한 것이요 그것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잃으면 이는 극히 해로운 것이다.
50. 그리스도인이 알 것은 만일 교황이 목사들의 사죄부에 대한 행동을 안다면 성 베드로 성당이 불에 타 버릴지언정 저의 양들의 가죽과 살과 뼈로서 그 성당을 짓는 것은 원치 않을 것이다.
51. 그리스도인이 알 것은 만일 교황이 그 목사들이 사죄부를 가지고 모리하는 줄 알면 성 베드로 성당을 팔든지 혹은 자기의 사재로서 사죄부 산 사람들의 낸 돈을 반환할 것이다.
52. 사죄장에 교황이나 혹은 어떤 감독이 보증을 선다 하더라도 그것으로서 구원 얻을 가망은 없는 것이다.
53. 사면부를 선전하기 위하여 교회에서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말 하는 것을 금지하면 이는 그리스도께서 교황의 대적이 되는 것이다.
54. 교회설교 시간에 사죄부에 대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과 같이 길게 한다든지 혹은 더 길게 하면 이는 잘못하는 것이다.
55. 교황의 생각에 사죄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면 사죄 축하에는 종 하나만 울리고 행렬도 한번만 할 것이다. 그 반면에 있어서 복음이 매우 중요하다면 복음은 종백개로 울려 전하고 행렬을 백번하고 성례를 백번해서 전할 것이다.
56. 교황이 사죄부를 발행하는 교회의 금고는 교인들에게 전연 알리지 아니했다.
57. 그 금고에 세상 재물이 있을 수 없다. 만일 있다면 언제든지 써 버릴 것이다. 많은 신부들은 보물을 거기에 쌓아 놓기만 하고 있다.
58. 사죄부 금고에는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공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교황도 모르게 사죄부가 사람의 마음속에 은혜를 베풀고 십자가의 효력을 나타내고 죽음과 지옥을 면케 한다고 말한다.
59. 성 로렌스는 말하기를 교회의 보배는 빈곤한 교인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저는 그때 당시에 쓰는 말로 그렇게 말할 것이다.
60. 그리스도의 공로로 교회가 맡은 직권이 곧 교회의 보화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61. 지금 형사를 보면 교황의 권력만이 기결죄와 미결죄를 사유할 수 있게 되었다.
62. 교회의 보화는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의 거룩한 복음이다.
63. 그러나 그 보화가 천대를 받게 되고 첫째로 있을 것이 끝에 가 서 있다.
64. 사죄부 보화는 맨 끝에 있을 것인데 맨 첫째로 있어 환영을 받고 있다.
65. 복음의 보화는 예로부터 사람을 많이 낚는 그물이었다.
66. 사죄부의 보화는 사람의 재산을 따먹는 것이 되었다.
67. 신부들이 사죄부가 가장 큰 은혜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것은 순전한 모
리행위이다.
68. 그러나 사죄부는 하나님의 은혜와 십자가 독신에 절대로 비할 수 없다.
69. 감독들과 신부들은 사도의 사면특사를 경건되게 영접할 것이다.
70. 그러나 저희가 주의할 것은 이 특사들이 교황의 말을 전하는 대신 자기네들의 욕망을 말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다.
71. 누구든지 사도의 사죄에 대한 진리를 반대하면 저주를 받을 것 이다.
72. 그러나 누구든지 사죄부를 선전하는 자의 방종하게 나아감을 반대하는 사람은 복을 받을 지어다.
73. 사죄부 매매에 기만적 수단을 써서 그 사죄를 방해하는 것을 교황이 엄금하는 것은 잘하는 일이다.
74. 누구든지 사죄의 미명하에 거룩한 자선의 진리를 기만수단을 씀으로 인하여 중생하면 이는 교황이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75. 교황의 사죄권으로 성모에게 범죄함과 같은 용납불가능한 것까지 사면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이는 참으로 발광적 생각이다.
76. 우리가 확신하는 것은 교황의 사죄는 죄중에 제일 경한 죽지 않을 죄도 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77. 성 베드로 자신도 교황 이상의 은전을 베풀 수 없다는 것은 성 베드로에게 대한 큰 모독이다.
78. 우리가 확신하는 것은 현 교황이나 혹은 다른 어느 교황이든지 그보다 더 큰 은혜를 베풀 수 있으니 곧 복음의 능력이요 병고치는 은사이다. (고전 12:9 ∼)
79. 교황의 팔에 다른 휘장들과 같이 있는 십자가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같은 능력을 가졌다는 것은 주님을 모독하는 것이다.
80. 이러한 언론이 신도들 가운데 들어가게 하는 감독, 신부, 신학자들은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이다.
81. 사죄에 대한 방종적 설교에 평교인으로부터 예민한 질문이 튀여 나오는데 아무리 유식한 학자라도 교황의 위신을 꺽이지 않게 하고 대답하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82. 예를 들어 말하면 아래와 같은 질문을 어떻게 답변한 것인가 “만일 교황이 지극히 거룩한 자선주의를 가지고 영들의 가장 큰 요구를 들어준다면 왜 연옥 전체를 공존케 못하나 이는 이치에 당연한 대의 명분이다. 성당 짓는데 돈이 절대 필요하다는 순수한 사유에 교황이 무수한 영들을 구출할 수 있다고 하면 위에 말한 대의명분을 넉넉히 실행할 수 있지 않은가?
83. 영들이 연옥에서 구출되어 오면 왜 그런 영들을 위하여 장례미사기일 추도미사를 드릴 것인가 그런 미사를 위하여 기부한 돈은 그런 미사가 소용없으니 돌려보내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84. 하나님을 공경치 않고 하나님의 원수된 사람이라도 돈만 내면 연옥에 있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영을 구출하는 은혜를 베풀진대 왜 돈을 받지 않고 순전히 은혜로 그런 영을 구출치 않는가 이것이 하나님과 교황의 무신 신식은전 인가
85. 회죄개과한 교역자들 중 이미 별세한지가 오래고 또 그들의 죄가 사유된 줄 아는데 그네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그네들을 위하여 사죄부를 돈주고 사서 그네들을 구출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86. 오늘의 교황은 부자중 거부인데 왜 자기의 돈을 드려서 성당을 짓지 않고 가난한 신자들의 돈을 거두어서 지으려나
87. 참으로 회개하고 온전히 (하나님 앞에서) 사죄 받을 있는 사람을 어찌 교황이 또 사죄를 한다는가
88. 만일 교황이 하루 한번뿐 아니라 백번씩 이라도 진실한 신자들에게 사죄의 은전을 베풀진대 교회에 얼마나 큰 유익이 될까
89. 교황의 목적이 영 구출하는 것이요. 돈을 받는 것이 아닐진대 전일에 내린 사죄장이 왜 무효가 되나 그것이 사죄부와 같이 동일하게 죄를 면할 수 있을 것인데
90. 평교인들이 이러한 질문을 하는데 이론적으로 증명치 못하고 완력으로만 나아간다면 교회는 그 원수들의 비방거리가 될 것이요 그리스도인으로 불결하게 할 것이다.
91. 만일 사죄에 대하여 교황의 본의와 정신을 가지고 설교한다면 이런 모든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오 있지를 않을 것이다.
92. 그리스도인들에게 “평안할지어다 평안할지어다 하고도 평안이 없는 것”을 말하는 선지자들을 다 물리칠 것이다.
93. 그리스도인들에게 “십자가라 십자가라 하고 십자가가 없는 것을 말하는 선지자는 화를 받을 지어다.
94. 그리스도인들은 저희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만을 고통과 죽음과 지옥을 통과해서라도 따를 것이다.
95. 그러으로 많은 고난을 꺾고 천국에 들어갈 생각을 하며 안전하게 갈 생각을 말아라

 

 

*** 설교단 밑에 있는 루터의 묘 ***
이 사람들은, 위인들의 묘를 이렇게 교회당 내부에 만드네요.
그 왼편에는 루터의 절친이자 협력자였던 멜랑히톤의 묘도 있습니다.

 

*** 마틴 루터 부조물 ***

 

 

시내관광열차를 타고 시내를 관광

루터의 종교개혁이 500주년 기념교회

1517년 10월 31일 독일의 사제이자 신학자였던 마르틴 루터(1483~1546)는 당시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 등 문제점을 지적한 '95개조 명제'를 비텐베르크 성(城) 교회 문에 붙였다. 교황청은 진노했고 신성로마제국은 물론 유럽 전역으로 '사건'은 번져갔다. 종교개혁의 시작이었다. 오는 2017년이면 루터의 종교개혁이 500주년을 맞는다.  

 

*** 비텐베르그 중심 도로 ***

저 앞에 성모 마리아 교회가 보이네요
이 길을 루터가 걸어 다녔을 겁니다


 

 

 

 

*** 비텐베르크 시청 광장 ***
루터의 동상(우측)과 멜랑히톤의 동상(좌측)이 나란히 서있지요
보이는 건물이 시청이고, 주변에는 시장,상가,까페들이 있습니다.

 

비텐베르크대학교

루터는 신학을 더 깊이 연구하도록 선발되었다. 비텐베르크대학교 교수들 가운데 일부는 영국의 철학자·신학자인 오컴(William of Ockham)의 '현대적인' 길을 추구하는 유명론자들이었다. 오컴의 견해는 계시와 이성을 화해시키기 위해 11세기에 창설된 학파인 스콜라 철학을 지배했던 이성주의를 제거했다. 1508년 루터는 비텐베르크대학교(1502 창설)에 입학했다. 이곳에도 오컴주의가 발판을 확보하기는 했지만, 마르틴 폴리히를 비롯한 학자들이 주장하는 보편자가 존재하며 그것은 이성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실재론이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었다. 자그마한 도시 비텐베르크의 분위기는 에르푸르트와는 정반대였다. 이 대학교는 활기에 넘치고 진보적인 학교였으며, 에르푸르트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비텐베르크대학교는 슐로스키르헤(만인성자 교회로 불림)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고, 작센의 선제후였던 프리드리히 3세(1463~1525)는 이들에게 관대한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1509년 3월 루터는 이 대학교에서 성서학사(baccalaureus biblicus)학위를 받고 그 다음 단계의 학위, 곧 명제집 정통자(sententiarius) 학위를 받기 위해 에르푸르트로 되돌아갔다. 이를 위해서는 페트루스 롬바르두스가 집필한 중세의 신학교본 〈신학명제집 Sentences〉에 대한 주석을 이수해야 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Nicomachean Ethics〉 강의로 교수생활을 시작했으며, 〈명제집〉에 대한 강의로 신학자로서 경력을 쌓아갔다. 이때 그가 쓴 비망록의 일부가 남아 있는데, 여기에 담긴 신학은 별다른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않지만, 철학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신학에 침투하는 것에 대해 루터가 격렬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 

 

*** 루터 하우스, 루터와 그의 동역자들이 살았던 곳 ***
비텐부르크 성교회와는 시가지 반대쪽에 있고,
루터가 그의 친구들과 함께 수도원으로도 사용하였던 곳입니다.
지금은 루터의 유물이 전시된 박물관입니다

*** 루터 하우스 정원에 있는 카타리나의 동상 *** 
*** 루터의 부인, 카타리나 폰 보라(1499~1552년) ***
루터는 1525년 6월 13일, 16년 연하의 전직 가톨릭교회 수녀인 카타리나와 결혼.
당시 루터는 친구들과 함께, 수녀들을 수녀원에서 탈출시켜 결혼시키는 일을 했는데,
수녀원에서 탈출한 카타리나와 결혼하기로 했던 친구가 마음을 바꾸는 바람에,
대신 루터가 짝잃은(?) 카타리나와 결혼했다네요.

 

생활력 강한 카타리나는 경제문제를 책임지는 한편,
루터를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을 잘 접대하는 등,
루터가 마음껏 활동할 수 있도록, 내조를 아주 잘한 지혜롭고 강한 여자였고,
또한, 그녀의 신학 지식과 견해는 루터도 칭찬할 정도였답니다.
두 사람사이에는 6명의 자녀가 있었고, 두 딸은 일찍 사망했답니다.
 
* * * * * * * * * * * * * * *
 
비텐베르크는 루터의 종교개혁 활동의 중심지였습니다.
이곳에서 발표한 “95개조의 논제”를 비롯한 많은 논문, 설교 등은
때마침 급속히 발달한 구텐베르그 금속인쇄기술에 힘입어
유럽 각지로 신속하게 전파되었고,
이로 인해 광범위한 개혁의 지지자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 * * * * 이후의 진전 * * * * *
 
1518년 6월, 면죄부판매에 적극적이었던 도미니코회의 고발로 루터에 대한 이단심리가
            로마에서 개시됨.
1519년 6~7월, 교황측의 신학자 에크와 라이프치히에서 만나 토론함(라이프치히 논쟁)
            루터는, 교황의 지상권을 명확히 부인하고, 공의회도 잘못을 범할 가능성이 있으며,
            얀 후스의 학설에도 복음적인 것이 있다고 주장함
1520년 6월, 교황 레오 10세가 이단판결이 내려진 루터에게,
            주장을 철회하지 않으면 파문한다는 내용의 교서를 보냄
1520년 12월 10일, 루터는 대중이 보는 앞에서 이 교서를 불태움.
1521년 초   정식으로 파문 교칙 발표됨.
1521년 봄,  독실한 카톨릭신자였던 독일(신성로마제국) 황제 칼 5세는
            보름스에서 열리는 제국의회에 루터의 출석을 요구함

 

 

 

연보 궤

 

 

 

 

 

 

 

*** 루터의 겉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