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의 외가 동네
Am Bachhaus Restanrant에서 점심식사
프랑크프르트 시청옆의 바울 교회 옆에는 아이슈비츠에서 학살당한
유대인들을 기리는 추모 동상의 모습을 볼수 있었다..
전후 독일은 후손들에 의해 선인들이 저지른 악행에 대해 스스로 잘못됨을 인정하고 전쟁 배상금을 물어
내고 얼마전 독일 총리의 또한번의 공식 사과가 있던 것을 매스컴을 통해서 본 기억이 있다..
물론 역사적인 배경으로 전쟁후 전범자들이 대부분 자살,사형 또는 재판에 회부되어
그에 함당한 처벌이 행하여져 전범자들의 손을 떠난 후손들에 의해평가 된다는데서 커다란 이유를 찿을 수 있다...
바울 교회
아이제나흐 광장 옆 루터가 설교하였던 George교회는 연중 무휴 관람할 수 있습니다. 이 교회는 루터가 1521년에는 보름스의 제정 국회 청문회 증인으로 소환되어 가는 길과 돌아오는 길에 죠지 교회 (Georgenkirche)에서 설교를 합니다. 그리고 위장 납치되어 은둔하고 있는 바르트부르크 성에서 그는 신약성경을 헬라어 원전에서 독일어로 번역하는 역작을 남기게 됩니다.루터가 청소년기를 지낸 곳
독일의 중부 알프스라 할 수 있는 튀링겐 숲속에 자리잡고 있는 아니제나흐 시, 루터와는 그의 생애를 통하여 다섯번의 체류를 통하여 깊은 인연을 갖게되는데, 이는 루터 어머니의 고향이라서 친척들이 많이 있음에 연유한다고 볼 수있다. 루터가 15세이던 1498년부터 1501년까지 교구학교인 St George School을 다니며, 루터의 학교생활은 근면 건실하여 선생들로 부터는 물론 학우들로 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학생이었습니다. 특히, 음악에 조예가 깊어 작곡은 비평 뿐만 아니라 스스로 작곡을 할 정도의 수준이었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종종 이 도시를 회상하며 ‘오 나의 사랑스런 도시여!’ 하곤 했습니다. 1521년에는 보름스의 제국 국회 청문회 증인으로 소환되어 가는 길과 돌아오는 길에 죠지 교회 (Georgenkirche)에서 설교를 합니다. 그리고 위장납치되어 은둔하고 있는 바르트부르크 성에서 그는 신약성경을 헬라어 원전에서 독일어로 번역하는 역작을 남기게 됩니다. 1529년에는 마르부르크에서의 종교논쟁에 참여키 위해 가는 길에, 그리고 노년인 1540년 지방감독이었던 J. Menius의 집에 3주간 머무르며 교제를 나누기도 합니다. 이러한 루터 기념관들은 잘 관리되고 있으며, 그중에도 루터의 청소년 시절을 보냈던 Luther House는 독일의 전통 가옥으로서 문화재로 보전이 되고 있으며, 또한 유물 및 기념품들이 안에 전시되어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Lutherstube(공부방)에서는 루터의 학창시절을 볼수있고, 2층으로 올라가면 개신교 목사관의 역사를 볼 수있습니다. 카알 광장(Karlplatz)에는 루터 생전의 모습 실제 크기로 성경을 손에 들고있는 동상을 볼수 있으며, 동상의 받침대에는 루터가 아이제나흐에 체류한 기간들이 부조 되어있습니다.구 시청사 뢰머 (Romer)
뾰족지붕을 한 아름다운 3개의 건물이며, 중앙의 건물을 뢰머라고 부른다. 뢰머의 2층에는 신성 로마제국 신 황제의 축하연회가 베풀어졌던 황제의 넓은 방 카르저차르가 있다. 벽에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 52명의 실물 크기의 초상화가 있다.
뢰머광장
고대 로마 시대에 기원을 둔 시 발상지. 광장의 중심에 상인 도시의 상징으로 정의의 여신 동상이 있으며 최근에 재건된 아름다운 목조 건물이 있다. 또한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선거, 대관식 등이 거행되었던 대성당을 비롯하여 구시청사, 니콜라이 교회 등이 나란히 서있다. 여름에는 라인강의 여름 축제가 열리는 축제의 광장이 되고, 겨울에는 크리스마스 전4주 동안 크리스마스 시장이 열린다.
하얀 벽면에 목재 프레임이 대각선으로 들어간 고풍스러운 건축물로 둘러싸인 뢰머광장은 독일 다른 도시들의 중심지에 있는 마크트플라쯔에 해당한다. 동화책에 나올 법한 오래되 보이는 이 목조건물들 전부가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평소에는 여행자에게 개방하지 않다가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만 문을 여는 구시청사 2층의 황제의 방 카이저를 볼 수 있다면 행운아인 셈이다. 16세게 중순 경 신성로마제국 황제 대관식이 거행된 역사적인 곳으로 역대 황제 52명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독일에서는 그 도시의 대성당을 간단히 돔(Dom)이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카이저 돔이라고 한다.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대관식이 치러졌기 때문에 황제의 성당이라는 의미이다.
뢰머광장에서 리콜라스 교회를 지나 조금만 더 걸어가면 마인 강의 푸른 물줄기가 나타난다. 뉘른베르크와 뷔르츠부르크를 지나 프랑크푸르트에 이른 마인 강은 마인츠에 이르러 라인 강과 만나 본, 쾰른, 뒤셀도르프를 거쳐 네덜란드 땅을 지나 북해로 흘러간다.
마인 강을 건널때는 필히 아이저너 다리를 이용할 것. 현대적인 디자인의 철제 프레임으로 만들어진 이 다리는 차는 다닐 수 없는 보행자 전용이라 여유 있다. 강 주변을 둘러보며 걷는 재미가 있다.
정의의 여신상
프랑크푸르트의 중심에는 뢰머광장이 있고, 프랑크푸르트를 여행하는 많은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 제일 먼저 찾는 곳이 바로 뢰머광장 이다. 이 광장을 중심으로 프랑크푸르트를 대표할 만한 명소들이 줄지어 있기 때문인데... 광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정의의 여신상이 세워진 분수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정의의 여신상은 정의의 기준을 형상화한 저울과 엄정한 심판을 상징하는 칼을 각각 양손에 쥐고 있다. 이 밖에도 2차 세계대전 이후 손상된 모습을 원형 그대로 복원한 뢰머(구 시청사)와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중세 목조건물 등이 조화를 이루며 가장 독일스러운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광장 뒤편으로 역대 황제들이 대관식을 치렀다는 높은 첨탑의 대성당이 자리하고 있고, 광장 사이 길로 나가면 마인 강이 나온다. 프랑크푸르트를 흔히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Frankfurt am Main)`이라고 부르는데, `마인 강변의 프랑크푸르트`라는 뜻이다.
프랑크푸르트 대성당 (Dom)
95m의 높은 탑이 하늘을 찌를 듯이 위풍당당히 서 있는 고딕 양식의 대성당이다.
뢰머에서 광장을 끼고 동쪽에 있으며, 1562~1792년까지 역대 황제들의 대관식이 거행되었던곳이라 해서 ‘카이저 돔’이라고도 부른다. 852년 카롤링 왕조 시대에 건축된 이래 13, 15세기에두 번의 개축이 있었다. 보물창고(Domschatz)에는 대관식 때 사제들이 입었던 호화로운가운들이 전시되어 있다.
'연합회사진 방 > 수원노회 유럽탐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럽종교개혁지 탐방 11편(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0) | 2012.07.18 |
---|---|
유럽종교개혁지 탐방 10편(룩셈부르크 아돌프 다리 노트르담 대성당) (0) | 2012.07.17 |
유럽종교개혁지 탐방 8편(독일 에르푸르트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0) | 2012.07.16 |
유럽종교개혁지 탐방 7편(독일 아이슬레벤 루터의 생가) (0) | 2012.07.16 |
유럽종교개혁지 탐방 6편(독일 할레Halle an der Saale) (0) | 2012.0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