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성령을 사모하는 사람들 /(행 1:4-5)

미션(cmc) 2012. 10. 22. 14:58

성령을 사모하는 사람들
(행 1:4-5)

(행 1: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행 1: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사람은 짐승처럼 본능에 의해 행동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성에 의해 행동을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사람이 생각을 바꾸면 행동이 달라집니다.
그러나 때로 인간의 이성이 합리적이지 못하고, 부단히 변하는 감성에 지배를 받기 때문에 사람이 마음을 바꾸면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잘못된 행동을 쉽게 고치지 못하고, 그릇된 삶을 사는 이유는 사람이 생각을 바꾸는 일도 어렵지만 마음을 바꾸는 일은 더 어렵기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변화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 모두 자신의 잘못된 생각이나 마음이나 행동을 바꿔 보려고 단 한번도 노력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처럼 수없이 되풀이 했지만 얼마 못가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자신을 미워해 본적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인간이 합리적인 이성과 아름다운 마음에서 우러나온 올바른 판단과 행동을 날마다 실천할 수만 있다면 인생살이가 얼마나 행복할까요? 그러나 과연 무엇으로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요?

1. 예수님의 마지막 당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열두 제자를 택하시고 부르시고 삼년 동안 훈련시키신 궁극적인 목적은 그들을 통해서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어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는 일을 다 이루셨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제자들은 자기들도 예수님처럼 죽임을 당할까봐 두려움에 빠져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그와 같은 제자들의 연약한 모습은 오늘 우리의 연약한 모습과 너무나 닮은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우리는 과일 하나를 사더라도 많은 과일 중에 제일 좋고 큰 것을 고르는데 비해 예수님은 우리를 택하실 때 정반대로
1) 많은 사람들 가운데 지식이나 지혜나 능력이나 성품이나 성격이 별로 좋지 않은 나 같은 죄인을 택하셨습니다.
2) 나 하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로 말미암아 나의 가족과 친구와 이웃까지 구원하시고자 택하셨습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나는 구원의 확신조차 없어 때로 흔들리고 주님을 믿어 축복을 받는 것은 기뻐하나 주님 때문에 고난 받는 것은 두려워합니다.
4) 교회를 다니고 있지만 때로 사소한 문제로 실망을 하고 낙심이 되어 교회 출석을 소홀히 하고 심지어 교회를 떠나기까지 하는 연약한 모습은 영락없는 제자들의 모습을 똑 닮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보다 더 큰 문제는 어차피 늙고 죽어갈 육체가 연약해지는 것은 조금도 용납하지 않고 두려워하면서도 영적인 가치로는 육체와 비교할 수 없는 고귀한 영혼이 나태와 무기력과 퇴보해지는 것에 대해서는 무관심내지 무감각해지는 것조차 예수님의 제자들과 닮은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의 실망스런 그 같은 모습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으시고 본래 제자들을 통해서 하시고자 계획하셨던 대로 끝까지 진행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 사랑은 오래 참으시는 사랑이고, 변함이 없으신 사랑이라면, 오늘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도 오래 참으시는 변함없으신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스스로 마음을 돌이켜 주님의 뜻을 이룰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시기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내가 변화되는 것이라면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제자들 스스로의 힘으로는 변화되어질 수 없음을 주님이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망각하고,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를 까맣게 잊어버린 채 세상을 두려워하는 마음의 염려 때문에 근심과 두려움에 빠져 삶의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근심과 두려움 속에서 방황하는 삶을 사는 제자들이 일일이 찾아가셔서 예루살렘으로 불러 모으셨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을 친히 찾아가셔서 만나주시고 그들에게 성경을 풀어 깨닫게 하시고 마음을 뜨겁게 하여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신 일입니다.
(눅 24:33)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눅 24: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여기서 ‘모여 있어’라는 말(ajqroivzw)은 ‘ 여럿이 모이다, 회집하다’라는 뜻의 수동태(hjqroismevnou")로 이는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타의에 의한 것으로 주님이 불어 모으셨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해서 함께 모인 제자들에게 마지막 당부의 말씀을 하신 것이 오늘 성경 본문입니다.
(행 1: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이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렇게 수고하셔서 뿔뿔이 흩어진 제자들을 예루살렘에 불러 모으신 것이 중대한 이유가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명령을 하시기 위함이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하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과연 그 약속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기에 예수님이 부활승천하시기 직전 마치 유언처럼 제자들에게 당부하시는 것일까요?

2.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들
사람이 무슨 일을 할 때 그 일로 말미암아 돈을 벌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는 것처럼 내게 유익이 되는 일이 있는가 하면, 정반대로 그 일로 말미암아 불이익을 당하고 심지어 생명의 위협을 당하기도 하는 일이 있습니다.
물론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에게 유익이 되는 전자의 일을 하려고 하지, 후자와 같이 불이익을 받게 될지도 모르는 일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늘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명령을 제자들이 순종하는 일은 제자들에게 얼마나 유익이 되는 일일까요?
얼핏 생각하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또한 별로 어렵지 않

은 일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일에 성공한 종교지도자들이나 당국자들은 그로 말미암은 시민들의 반대나 후환이 두려워서라도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까지 일망타진하려고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삼년동안 자신들을 가르치신 예수님을 버려두고 예루살렘을 떠나 뿔뿔이 흩어진 이유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일일이 예루살렘으로 불러 모으시고 다시 그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시는 말씀은 결코 귀담아 두고 싶지 않은 부정적인 말씀이었습니다.
더구나 아버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그들이 얼마나 기다리면 되는지 확실한 기약도 없습니다. 대개 그런 경우 성질 급한 사람은 끝까지 견디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지기 쉽습니다. 한곳에 모여 기다리면 핍박자들의 표적인 되지만 흩어져서 숨어 기다리는 것이 보다 더 안전할 수도 있다는 유혹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 세례는 어떤 것일까요? 도대체 그것이 얼마나 가치가 있기에 목숨을 담보로 하고 기다릴 만큼 가치가 있는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기다리면 출세하고 성공하고 가난을 면하게 되는 날이 오기라도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다리라고 하신 이유가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행 1: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물론 구약 시대에도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 현존하셨지만 성자 하나님은 실체를 감추시고, 성령 하나님은 왕이나 선지자나 제사장과 같은 특정인에게 임재 하셔서 제한된 범위에서 한시적인 역사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느 특정한 날 곧 세상 역사의 끝이 임박해진 말세가 되면 그와 같은 성령의 역사는 특정인이 아니라 범세계적으로 모든 인류의 제한을 넘어서 세상 만인에게 성령을 부어주실 것이라는 예언을 하였습니다.
(욜 2: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욜 2: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지금까지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매우 제한적이었으나 그 때가 오면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예언을 하였습니다.
(욜 2: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그렇다면 그와 같이 만민에게 성령을 부어주시는 때가 어느 때인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오실 것을 예언하면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영접할 준비인 회개를 베풀었던 마지막 선지자로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오심으로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였습니다.
(마 3: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그러나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에는 성령의 역사가 예수님 중심으로 일어났을 뿐이지 요엘 선지가 예언한 것처럼 만민에게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친 것입니다. 만약에 요엘 선지가 예언한 것처럼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재하였었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요엘 선지자가 예언한 성령이 아직 임하지 아니한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예루살렘에 다시 불러 모으시고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신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이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제자들을 감시하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보는데서 부활 승천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돌아와서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행 1:12)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여기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니’라는 말(uJpostrevfw)은 ‘예루살렘으로 방향을 바꾸다, 돌아서다, 변화시키다’라는 뜻의 능동태로 자발적인 의지로 그렇게 한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만약에 제자들이 마음에 원하지 않았다면 얼마든지 예루살렘을 떠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에 자발적으로 순종하였음을 뜻합니다.
또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제자들은 주님이 기다리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깨닫고 다른 일을 하거나, 빈둥거리면서 기다린 것이 아니라, 오로지 기도에 전념하면서 기다렸습니다.
(행 1:13)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행 1: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여기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는 제자들의 모습에서 독특한 몇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면서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더불어’라는 말은 눈에 보이는 몸이 함께 모였다는 뜻이라면 ‘마음을 같이 하여’라는 말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내적 결합을 뜻하는 말로 개인적인 감정들에게 근거한 것이 아니라 개인보다 더 큰 원인에 근거한 만장일치로 내면적인 결합을 뜻합니다.
이는 여러 사람들이 모인 곳이 시끄럽고 분쟁하고 의견이 일치가 잘되지 않는 근본 원인이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지를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둘째는 오로지 기도에 힘쓰면서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경 원문에는 오로지 라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에 힘쓰더라‘는 말(proskarterevw)이 어떤 일에 ’열중하다, 부지런히 종사하다, 굳게 계속하다, 참다, 견디다, 버티다, 고집하다, 계속 -안에 머물러 있다‘는 의미의 동분사 현재 능동태로 계속적으로 그렇게 하였음을 뜻합니다.

셋째는 하나님이 응답하실 때까지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다리라고 하셨지만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시한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그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끝까지 다같이 함께 모여 기도하면서 참고 기다리다가 보니 오순절이 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최소한 열흘을 기도하면서 기다린 것입니다.
(행 2: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이 같은 제자들의 모습은 예수님의 명령을 무조건 순종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을 믿음으로 순종하였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 당시에도 이루시지 않았던 요엘 선지자를 통해 약속하신 성령을 마침내 이처럼 믿음으로 순종하며 기다리는 제자들에게 전례가 없는 놀라운 방법으로 임하였습니다.
(행 2: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특별히 베드로에게만 임한 것이 아니라 기도에 힘쓰며 남녀노소, 빈부귀천 가리 지 않고 (욜 2: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예언한 것처럼 각 사람에게 부어주듯이 충만하게 임하였습니다.
(행 2: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행 2: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이 같은 성령을 체험한 베드로는 자기 들이 체험한 성령이 곧 요엘 선지자를 통해 마지막 날에 이루어질 성령의 강림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담대히 이 사실을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었습니다.
(행 2: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행 2: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행 2:18)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행 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그 같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제자들은 세상에서 가장 힘들다는 마음에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변하여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내면적인 변화는 그들의 언어와 삶에 동시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같은 제자들의 변화는 다른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동일한 변화를 일으키게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께서 행 1: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대로 성령 받은 제자들에게 놀라운 능력이 임했고 제자들은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는 증인으로 변화되었습니다.
(행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행 2: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행 2: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이전에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아우성을 쳤던 수 많은 사람들이 가슴을 치며 회개하고 예수를 믿겠다고 결심을 하고 세례를 받음으로 120명으로 시작했던 예루살렘 교회는 신도수가 자그만 치 삼천명이나 급증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다 성령의 역사 때문이었습니다.
(행 2: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3. 성령으로 말미암은 새 생명의 역사
창조주 하나님은 흑암과 혼돈과 공허한 세상을 각가지 생명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심어 아름답게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명은 어떤 것을 막론하고 시간이 지나면 자라서 풍성한 열매를 맺도록 하신 것이 창조의 신비입니다.
영적인 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믿음은 생명이 없는 신학이나 교리가 아니라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고 영접하므로 새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생명의 원천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불신하고 그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도리어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였기 때문에,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허물과 죄악으로 이미 죽은 자이기 때문에 스스로의 힘으로 선을 행하거나, 하나님을 찾거나, 믿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께서 본래 생명이 없던 세상에 생명을 창조하시고 빛이 없는 어둠의 세상에 빛을 창조하신 것처럼 죄로 인해 어둡고 생명이 없는 인간의 마음에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함으로 새 생명의 역사, 재창조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셨기 때문에 오늘 우리들이 그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새 생명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새 생명의 믿음은 반드시 시간이 지나면서 점진적으로 성장하고 번식하여 생명을 충만하게 만들어 가는 것이 생명의 법칙입니다.
영적인 새 생명의 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생명력있는 믿음을 소유한 사람이 허물과 죄로 이미 생명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그들로 하여금 마음에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는 것은 곧 영원한 생명의 씨를 이양하는 새 생명의 역사인 것입니다.
세상에서 생명보다 더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생명의 씨를 뿌리고 그것을 자라게 하고 번성하게 하는 일보다 더 중요하고 보람된 일은 없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생명들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기를 기대하셨습니다.
그래서 결혼이 중요한 것이고, 해산의 고통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사람들이 새 생명을 잉태하기를 사모하고, 자식을 키우고 가르치며 수고하는 일을 도리어 보람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새 생명의 은혜를 받지만 그 믿음이 자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하며,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순종하며 기도로 기다린 것처럼 오늘 우리도 믿음으로 기도하며 성령의 충만함을 사모해야 합니다.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므로 내안에 새 생명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면 그것이 다가 아니라 주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그 믿음이 자라되 그리스도 예수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이르기까지 자라기를 주님이 원하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를 위해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신 말씀이 바로 오늘 성경 말씀처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화분에 꽃나무를 심어 꽃을 피우고, 어린 강아지를 키워 애완견이 되게 하는 일도 쉽지 않다면, 어린 아기를 키워 장성한 어른이 되게 하는 일이 어찌 그리 쉽겠습니까?
하물며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불신하고, 조롱하고, 핍박하는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태신자를 작정하고 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사랑을 베풀고, 복음을 전하여 그들로 하여금 예수 믿어 새 생명을 얻게 하는 일이 어찌 그리 말처럼 쉽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회는 10월 28일에 그와 같은 새 생명의 축제를 준비하고 각기 태신자를 작정하기를 많게는 이천 명, 천 명, 오백 명, 백 명 적게는 한두 명을 작정하였습니다.
막상 작정을 하였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내 믿음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우리들이 어찌 그와 같은 새 생명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의 힘으로는 엄두가 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 같은 심정이 이미 우리들에게 간증을 한 여러 전도 왕들의 최초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생명의 역사는 사람의 힘으로가 아니라 제자들을 변화시키고 그 제자들을 통해서 삼천 명을 변화시킨 성령의 능력이라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금번에 새 생명의 축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각 사람이 작정한 태신자를 주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령의 충만함과 더불어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만 한다면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변화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새 생명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께서 나 같은 것을 통해서 그와 같은 새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기를 원하시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면서 오히려 두려움과 염려가 확신과 기쁨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믿음이 자라지 않는 영적인 왜소증에 걸렸다면 누구보다 그러한 우리의 모습을 보시는 성령께서 가장 마음 아파하시고 근심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이 자랄 뿐 아니라 새 생명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바로 오늘 성경 말씀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보여준 것처럼 요엘 선지에게 약속하신 성령을 우리에게도 충만하게 부어주실 것을 믿고 지금까지는 제자들처럼 나태하고 무관심하였을지라도 오늘 이 시간부터 제자들처럼 함께 모여 마음을 같이 하고 기도에 전혀 힘쓰는 일을 우리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전에 그와 같은 은혜를 받았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다시 나태해지고 그같은 은혜를 다 쏟았다면 다시 모여 합심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행 4:24)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오 (행 4:28)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행 4:29)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행 4: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제자들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즉시 성령의 충만함으로 응답하신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도 응답하실 것입니다.
(행 4: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그래서 우리의 영적 체질이 변하고 그로 말미암아 교회가 깊은 잠에서 깨어 일어나고 온 성도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서 대내적으로는 서로 사랑하고, 대외적으로는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생명력 넘치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행 4:32)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를 위해 새 생명의 축제를 앞두고 태신자를 작정하게 하시고, 이를 위해 한 주간을 특별 새벽기도회로 오로지 기도에 힘쓰게 하시고, 그와 더불어 심령 부흥회를 통해서 열게 하신 것입니다.
‘믿음의 역사를 이루자’는 주제 하에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해 놓으시고 보호하신다.
비록 현실이 어렵고 고난이 있어도 그것을 보면서 불평하고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 넘어 더 큰 것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맥락으로 장영일 목사님을 보내어 시간마다 증거하실 것입니다.
한 시간도 빠뜨리지 말고 말씀에 귀를 기울여 성령의 충만함을 받음으로 현실을 뛰어 넘을 수 있는 큰 믿음으로 회복되어질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은혜를 공급해 주시는 성령님을 사모하며 무엇보다 기도를 방해하고 기도에 무관심하게 하고, 과소평가하게 하는 어두움의 세력을 뿌리치고, 전교구의 식구들과 성도들이 남녀노소 가리지 말고 다 함께 모여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오로지 기도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1) 제자들은 절망적인 현실에 대해 언제까지 슬퍼하지만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스승과의 헤어짐, 밀려오는 공포와 슬픔을 기도로 바꾸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실한 소망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 모두는 약속된 성령을 받을 수 있었고 이것이 나중에 세계를 움직이는 커다란 성령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2) 제자들은 오로지 기도하는 일에 합심 단합하였습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하는 데 모두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가 되어 함께 모여 한목소리, 한마음, 한 소망, 하나의 기도로 묶어 하나님께 올려 드릴 때 그것을 받으시고 불로 응답을 하시는 것입니다.

3) 제자들은 성령을 부어주실 때까지 인내의 기도를 하였습니다.
언제 응답하실지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의 기도는 지치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현실 여건에도 낙심하지 않고 계속되는 기도였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며 응답하실 때까지 기도하였습니다.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가도 변함도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가 처한 어려운 현실에서도 제자들처럼 성령을 사모하는 기도에 집중할 때 동일하게 응답하실 것입니다.

1) 우리가 당면한 어려운 현실을 능히 견디고 이겨나갈 수 있는 미래와 희망이라는 큰 은혜 부어주실 것입니다. 2) 사람이 떡으로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우리들의 육신적인 문제만 아니라 영적인 주림과 목마름까지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3) 항상 불만인 영적인 나태함과 퇴보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수 있는 권능과 새 힘을 주심으로 담대히 전도할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4) 예수를 믿은 지 수년 수십 년이 되어도 믿음이 도무지 자라지 않는 영적인 왜소증을 치료하시되 혼자 잘 믿는 정도가 아니라, 금번에 작정한 태신자들을 열매를 맺게 하심으로 나도 전도왕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하실 것입니다.
(렘 29: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렘 29: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렘 29: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