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5:1)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눅 5:2)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눅 5: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눅 5: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눅 5: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눅 5: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지만 때로 헛수고가 되어 다 물거품이 되고 마는 안타까운 모습을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농부가 풍년이라고 좋아했는데 태풍이 휩쓸고 지나가서 가을에 거둘 것이 없고, 힘을 다해 가축을 키웠는데 구제역이 퍼져서 다 생매장을 해야하고, 김장철이 되었지만 과잉 생산으로 인건비도 못 건지기 때문에 갈아엎기도 합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자그만 구멍가게를 하면서 한두 푼 아끼고 모아 한푼이라도 이자를 더 받겠다고 저축을 했는데 부실로 인해 영업정지 명령이 떨어져서 돈을 찾지 못하게 되어 서민들을 울부짖게 하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경우를 가리켜 흔히 헛수고라고 말합니다. 오늘 성경은 그와 같이 헛수고를 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흔히 무슨 일이든지 열심히 하면 성공하는 날이 온다고 말하지만 세상에서 헛수고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그 일에 오랜 경험을 가진 사람도 실패를 하는 것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흔히 무슨 일이든지 그에 대한 경험이나 지식이나 정보가 부족한 경우에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헛수고가 될 위험성이 높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 말씀에 나오는 사람들은 세상에 어느 누구보다 그 일에 경험과 지식이 많은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헛수고를 한 경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헛수고를 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는지 오늘 성경에서 답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1. 게네사렛 호숫가의 어부들
예수님이 태어나신 이스라엘 땅 북쪽에 모양이 하프와 비슷하다고 해서 그 이름을 키네렛 또는 테베리아, 갈릴리 라고 일컫는 큰 담수호가 있습니다.
북쪽 헐몬산에서 눈이 녹은 물이 고인 모여 주위가 52km, 수심이 최저 42km가 되고 어류가 풍부하여 환경 보호구로 흔히 갈릴리 바다라고 일컫지만 바다가 아니고 거대한 호수로 예수님과 더불어 복음서에 여러 차례 기록되어 있습니다.
게네사렛 호수 주변에는 고기를 잡는 사람과 고기를 사려는 사람과 구경하는 사람들로 항상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오늘 성경은 예수님이 처음으로 그곳에 가셔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듣기 위해서 예수님에게 몰려드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눅 5:1)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여기서 ‘들을새’라는 말(ajkouvw)의 뜻은 '단순히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을 이해하려고 정신적으로 집중하는 모습‘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나 게네사렛 호수가에는 예수님에게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먹고 살기에 바쁜 사람들이 바쁘고 움직이며, 어떤 사람들은 배에 고기를 가득채우고 돌아와서 시끌벅적 떠들면서 고기를 내리는 사람들, 어떤 사람들은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채 빈배로 돌아와서 묵묵히 그물을 씻는 사람들, 고기를 사기 위해 흥정을 하는 사람들, 그것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모여있는 호수가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을 들으려고 당신에게 몰려드는 사람들에게만 관심을 두시지 않고 먹고, 피곤한 인생 살이에 먹고 살기에 바쁘다고 하면서 예수님에게는 전혀 눈길도 주지 않는 무관심한 사람들을 주목하셨습니다.
그 때 마침 호숫가에 배 두척이 있는데 어부들이 배에서 나와서 고기 잡이를 끝내고 그물을 씻는 것을 보셨습니다.
(눅 5:2)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여기서 ‘보시니’라는 말(ei[dw)은 그냥 무심코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다, 감지하다, 주목하다, 알아채다, 관찰하다, 경험하다, 지식을 얻다’라는 뜻으로 상대방의 입장과 처지를 헤아리면서 보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또한 ‘그물을 씻는지라’는 말은(pluvnw)은 아직도 씻는 것이 끝나지 않은 미완료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만약에 그럴 때 누군가가 다가와서 말을 부치거나 시비를 건다면 그 마음이 어떠하였을까요?
그런데 예수님이 하필이면 다른 사람도 많은데 그 두 사람에게 다가가셔서 다짜고짜 시몬이라는 사람의 배에 오르시면서 그 배를 육지에서 조금 떼어달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호숫가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 배를 빌려 육지에서 조금 거리를 두고 거기에서 말씀하시면 소리가 물에 반사되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잘 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몬은 예수님이 요구를 거절하지 않고 순순히 응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배위에앉으셔서 육지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눅 5: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헬라어로 가르친다는 말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여기서 ‘가르치시더니’라는 말(didavskw)은 하나님의 말씀을 일방적으로 선포하고 전도하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가르침을 받기 위해 자발적으로 몰려든 것입니다( ejpikei'sqai).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고기를 잡던 그물을 씻는 일에 몰두하여 예수님의 가르침에 전혀 무관심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사는 자발적으로 몰려드는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그와 같이 먹고사는 것에 바빠서 예수님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그물만을 씻고 있는 시몬에게 있으셨던 것입니다.
물론 호숫가에는 다른 배들도 많이 있었지만 그래서 아직 그물을 씻는 일을 채 끝내지 못한 시몬에게 중단시키시고, 그의 배에 일방적으로 올라가셔서 육지에서 조금 떼라고 하신 것은 말씀하실 때 소리가 물에 반사되어 많은 사람에게 잘 들리게 하고, 더 나아가서 예수님을 모시고 육지에서 조금 떨어지게 노를 젓고 있는 시몬이 예수님의 말씀을 곁에서 잘 듣게 하려는 깊은 뜻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의 게네사렛 호숫가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물고기를 잡아 팔고 사는 사람들처럼 현대인들의 삶은 생존을 위해 나름대로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으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소식을 많은 사람들이 전해 듣고 믿는 사람들이 바로 오늘 날 교회를 다니는 크리스천들입니다.
교인들은 주로 교회에 모여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배우며, 하나님께 찬송을 부르며, 기도를 드리며, 받은 은혜를 감사하는 예물을 드리며, 예배하는 일을 세상에 어떤 일보다 가장 중요한 일이기에 교회에 모이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처음서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교회를 다니기 전에 이미 다른 종교를 믿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은 교회와는 무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고, 예수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채 오로지 먹고 살기에 급급하여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며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설령 누가 교회를 가자, 예수를 믿어보자 말을 하지만 귓전에 흘렸고, 한두 번은 몰라도 평생 믿던 종교를 바꾸고 일평생 교회를 다닌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해 본적이 없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혹시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예수를 믿거나 교회를 다닐 사람이 아니라고 스스고 다짐하며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노도 풍랑과 싸워 돈이라는 고기를 잡아 만선을 하려는 욕심에만 급급한 삶을 살던 오늘 성경에 시몬과 같은 삶을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하나님을 믿고 열심히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먹고 살기에 급급하여 한눈을 팔지 않고 오로지 앞만 보고 살던 우리를 못본 체 하지 않으셨습니다. 네 멋대로 살라고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도 전에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 같은 사람은 예수쟁이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다짐했던 사람들이었으나 본래 사람들이 손에 장을 지진다고 큰 소리 치지만 정작 장을 지지는 사람은 보지 못한 것처럼 과거에 우리도 큰소리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우리를 예수님이 우리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며 부르셨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을 보내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내게 오라’고 여러 차례 부르셨습니다.
처음에는 권유에 못 이겨 한두 번 다니다가 보니 교회에서 전해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고, 성경을 배우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어느 사이에 그리고는 어느 사이에 내 마음에 자리를 잡으셨습니다. 내 가정과 직장이라는 인생의 배에 오르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같은 사람이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교인이 되고 예수쟁이가 된 것입니다.
2.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라
예수님이 시몬의 배위에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마치시고 갑자기 시몬에게 깊은 물에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입니다.
(눅 5: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여기서 ‘말씀을 마치시고’라는 말은 아직도 할 말씀이 더 있는데 중간에서 끝냈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여러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시는 일보다 더 시급하다고 생각하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치 예수님이 깊은 물에 모여 있는 고기들을 눈으로 보시기라도 한 것처럼 지금 당장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면 고기를 잡을 수 있으니 어서 가서 그렇게 하라는 명령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부가 아니라 나사렛에서 목수 일을 하신 분이었기 때문에 언제 어디에다 그물을 내리면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다는 경험과 지식과 정보는 시몬이 더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시몬에게 그렇게 명령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시몬의 말을 들어보면 이미 간밤에 밤이 새도록 그물을 내려보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채 헛수고만 하고 돌아와서 그물을 씻고 있다가 배를 빌려 달라시는 예수님의 말에 마지못해 배를 빌려 주었는데 날이 다 밝아 고기 잡힐 시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직업이 무엇입니까? 몇 년이나 그 일을 하셨습니까? 평생을 해왔다면 그 바닥에서는 나보다 더 잘 알고 더 아는 사람이 없는데 어느 날 점쟁이도 아닌 목사가 찾아와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데 그것이 내 경험이나 지식으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을 한다면 들으시겠습니까? 그러나 시몬은 그와 같은 예수님의 명령을 무조건 순종하였습니다. 간밤에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허탕만을 쳤지만 이제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겠다고 말입니다.
(눅 5: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여기서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라는 말(kopiavw)은 이미 밤새도록 그물을 내렸었고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허탈감에 몸도 마음도 ‘극도로 피곤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다시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릴 시간이 아니라 집에 가서 쉬어야만 하는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하시는데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이나 몸 상태로는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예수님의 말씀대로 억지로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즉시 가서 그물을 내리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에 순종하는 긍정적인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시몬이 순종하겠다는 말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좀 더 자세히 성경을 살펴보게 되면 매우 큰 차이가 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라고 구체적으로 장소를 지정하셨습니다. ‘낚시 질이 아니라 그물을 내리라’고 방법을 명시하셨습니다. ‘고기를 잡으라’고 결과까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시몬의 대답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라고 대답을 하였지 ‘고기를 잡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몬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순종하였을 때 예수님의 말씀대로 고기를 잡되 많은 것을 잡았다고 하였습니다.
(눅 5: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여기서 ‘그렇게 하니’라는 말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순종하였다는 말입니다. 어제는 밤새도록 한 마리도 잡지 못했었는데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였더니 이제는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그물에 가득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몬은 자기처럼 헛수고를 한 이웃을 불러 그 고기를 나누는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눅 5: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이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과 정보를 의지하여 밤새도록 노력을 하였을 때는 헛수고였었지만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였을 때는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요 나를 지으신 분이기 때문에 내가 모르는 세상을 잘 아시고,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고 그와같은 복을 받으며 살아가는 우리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만일 예수를 믿지 않았으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렇게 건강한 몸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이렇게 마음에 평안이 있을 수 있을까? 이처럼 죽음조차 두렵지 않는 구원의 확신이 있었을까? 물론 그 답은 아니냐? 벌써 알콜 중독자가 되고, 부부싸움을 매일같이 하고 벌써 갈라서고, 매일 뉴스에 터지고 있는 온갖 죄악의 한 가운데 나도 빠졌을지 모르는데 예수를 믿고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너무나 감사하다”
물론 때로는 오늘도 그와 같은 기적이 일어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면 얼마든지 그 이상의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집니다.
예수 믿는 것,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은 결코 헛수고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 안에는 이전의 실패와 슬픔과 아픔을 승리와 기쁨으로 바꾸는 놀라운 기적이 여전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간 증
경북 포항에 영광호라 배와 정치망과 회집을 운영하는 김상태 안수집사님이 계십니다. 이분이 횟집을 운영하면서 정치망 그물을 바다에 쳐놓고 고기를 잡으면서 7.5톤의 배를 운영하는 선주입니다. 어느 날 새벽에 전화가 왔습니다. 바다에 그물에 걸린 고기를 잡으러 간 동생의 전화였습니다. 배가 입항하는 포구로 갔는데, 관광버스보다 조금 큰 7.5톤의 배가 거의 내려앉아서 들어왔습니다. 그 배에 방어 2500마리를 싣고 왔습니다. 한 마리에 10kg-15kg, 길이가 150cm입니다. 1차 경매를 했는데 1마리에 16만 9천원 해서 4억원이 됐답니다. 그리고 2차로 그물에 가서 2500마리를 건져왔는데 한 마리에 3만원해서 1억6천만원을 벌었습니다. 합이 오천마리의 값이 5억 6천만원 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기적이었습니다.
정치어망이라는 것은 넓은 바다에 그물을 쳐 놓고 그 그물 안에 들어오는 물고기를 잡는 것인데 그물 입구는 1미터라고 합니다. 그리고 주변에 많은 그물이 있어서 이 그물까지 들어올 확률이 적다고 합니다. 한 마리가 150Cm나 되니까 한 마리 들어가면 다른 고기들은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서 고기들이 줄을 서서 이 그물에 들어갔다는 말이니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원래 방어는 겨울에 잡히지 않고 주로 가을에 잡히는데 많이 잡아야 겨우 300~500마리가 기록인데 그날 다른 어장에 방어가 한 마리도 안 잡히고 김상태 집사님의 어장에만 5000 마리가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 이전에는 고기가 잡히지 않아 아주 어려운 상황으로 인부들을 고용하고 배를 움직여야 했기에 여기저기 돈을 빌렸기 때문에 4억 6000만원이나 되는 빚 때문에 부도 직전의 상황으로 주변 사람들이 “용왕제라도 지내보자. 예수쟁이이기 때문에 꺼려지면 우리가 대신 제사를 지내줄테니 비용만 대고 옆에 붙어 있기만 해라”고 부치기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쟁이가 그럴 수 없다고 예수님이 살아계시니 책임을 지실것이라고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고 굳게 결심하고 설령 망해도 용왕제는 드리지 않겠다고 끝까지 버텼다는 것입니다. 만일 27일까지 빚을 갚지 않으면 어장이 경매에 들어가는 위기 상황이었는데 기적이 일어나서 부도를 막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벌어들인 돈으로 십일조를 내고 빚을 다 갚을 수 있었고 하나님께 너무 감사해 교회에 특별헌금을 하며 기뻐했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니 빈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 달 뒤 또다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번에는 해안선을 따라 늘어서있는 어장에 길이 5m의 대형 밍크고래가 걸려 대박이 터진 것입니다.
그러나 더 큰 기적은 그의 주변 사람들이 끝까지 신앙을 지키고 기적을 체험한 김상태 집사님을 보면서 “예수쟁이가 한방에 끝냈다”고 소문이 나면서 용왕제를 지내야만 고기가 많이 잡힌다는 동네 사람들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 김상태 안수집사님은 일확천금을 얻은 것보다 그의 인생이 확 달라진 것을 감사하는 간증인이 되었습니다. 어느 해 일부러 그 회집을 찾아갔더니 저의 방송설교를 보고 있다고 반가워하면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가계에는 온통 유명한 목사님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도배를 해 놓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증거를 똑똑히 보았기 때문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세상에 가장 큰 기적은 일평생 지은 죄로 인해 나는 언젠가는 죽어야 하고 죽은 후에는 그 죄에 대한 심판을 받아 멸망을 받아야 할 내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것과 죽은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 부활을 믿음으로 내가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한 삶을 얻는 것은 5억이 아니라 십억 백억으로도 얻을 수 없는 기적입니다.
그래서 가고 오는 역사 속에서 최고의 부귀와 영화를 누렸던 솔로몬 왕은 인생을 정의하기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 2:23, 24)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사람이 여러 해를 살면 항상 즐거워할지로다 그러나 캄캄한 날들이 많으리니 그 날들을 생각할지로다 다가올 일은 다 헛되도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은 언젠가는 반드시 맞게 되는 죽음 앞에서 우리 인생의 지난날을 돌이켜 보게 되면 세상에서 하는 모든 수고가 헛수고가 아닌 것이 하나도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시 127:1) “[솔로몬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오늘 성경에서 헛수고의 밤을 보낸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명령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깊은 말씀의 세계로 들어가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우리도 주님께 나아와서 1) 말씀을 듣겠습니다. 2) 말씀을 믿겠습니다. 3)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라고 결심하지 않겠습니까? 그 까닭은 시몬처럼 예수님을 믿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 결코 헛수고가 아니라 기적을 체험하며 복을 받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1) 소망을 줍니다.
(시 119:49)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나로 소망이 있게 하였나이다'
2) 위로를 줍니다.
(시 119: 50)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3) 생명을 줍니다.
(시 119:50)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4) 치료를 해 줍니다.
(시107:20)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
5) 헛수고가 되지 않게 해줍니다.
(사 65:23)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겠고 그들이 생산한 것이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여호와의 복된 자의 자손이요 그들의 후손도 그들과 같을 것임이라”
그렇게 하시는 까닭은 우리로 하여금 또 다시 세상에 나아가서 헛수고의 삶을 사는 나의 형제와 이웃에게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시며,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헛수고가 아님을 전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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