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살전 4:1-6)
“1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끝으로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2 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4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5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 6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언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라
창조주 하나님은 지으신 만물에 다 일정한 법칙을 부여하여 그것이 유지되게 하셨으며 그 질서가 지켜지는 것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예 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는 말처럼 지난 15일 러시아 우랄 산맥 인근 지역에 운석우가 쏟아지면서 1500여 명의 주민들이 다쳤고, 약 4700채의 건물이 피해를 봤다. 재산피해 복구에 10억 루블(약 360억 원)이 들 것으로 추정된다.
운석이 지구로 떨어졌을 때 엄청난 파괴력을 갖는 이유는 총알보다 10배 이상 빠른 속도로 지구로 달려드는 운석이 대기권과 충돌하면서. 이로 인해 초저주파가 발생해 대규모 에너지를 방출하면서 마치 핵폭탄과 같은 파괴력을 갖기 때문이다. 만일 “지름 100m 정도의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했을 때는 히로시마 원폭의 5300배인 파괴력을 가져 바다에 떨어진다면 엄청난 쓰나미가 발생하고, 육지에 떨어진다면 반경 수백㎞가 파괴되는 등 재앙을 맞게 될 것이다고 말한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은 밤하늘에 은가루처럼 뿌려진 별들에게 다 일정한 궤도를 주셨기 때문에 그런 재앙이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사진작가들이 밤을 새워 별의 궤적을 찍은 것을 보면 수많은 별들이 둥근 원의 궤적을 그리며 돌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만일 어느 별 하나가 그와 같은 궤도를 벗어날 때 창조의 질서가 붕괴될 때 공상영화와 같은 지구 멸망이라는 대재앙도 가능하게 될 수 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의 질서 중에 가장 소중한 것이 바로 가정의 질서로 그 질서가 잘 지켜질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인간도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와 같은 가정의 질서가 지켜지지 않을 때 하나님은 우주의 질서도 어지럽게 하여 이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으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1. 하나님의 창조 질서
창조주 하나님은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라는 질서를 만드시고 그 궤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게 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가정을 만드실 때 일부일처라는 질서를 정해놓으셨습니다.
인간들이 그 질서를 지킬 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하셨습니다.
성적인 음란문제는 인간의 타락과 더불어 인류의 역사에 그림자처럼 항상 뒤따른 전형적인 죄악입니다.
하나님이 최초로 세우신 가정은 아담이 독처하는 것을 좋지 않게 보시고 아담의 갈빗대를 취하여 돕는 배필 하와를 만들어 짝 지워 일심동체가 되게 하여 주신 것이 최초의 가정이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 땅을 정복하라는 축복은 아담 한 사람만으로는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담이 독처하는 것을 좋지 않게 보시고 아담의 갈빗대를 취하여 돕는 배필 하와를 만들어 짝 지워 일심동체가 되게 하여 그 가정을 통해서 창조의 목적을 이루고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창 2: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창 2: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창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 2: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만일 아담에게 여러 명의 아내가 필요했다면 더 많은 아내를 만들어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부일체라는 가정 질서를 세워주셨으며 인간이 그 질서를 따를 때 가장 행복하게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조상 아담이 그 질서를 어기고 불순종을 죄를 범하므로 그의 아들 가인이 가정의 질서를 깨뜨리고 일부다처주의에 빠지고 점차 그 후손들이 하나님의 질서를 어기고 일부다처의 삶을 살면서 살인사건이 꼬리를 물게 되었습니다.
(창 4:23)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그와 같은 가정 질서의 붕괴는 가속화되어 하나님이 택하신 셋의 후손들에게까지 오염이 되면서 결국은 노아 홍수심판이라는 멸망을 자초하게 된 것입니다.
(창 6: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창 6: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여기서 사람의 딸들이 바로 일부다처주의가 보편화된 가인의 후손들을 가리키며,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하는 셋의 후손들이 가인의 후손들의 타락한 성문화를 무분별하게 받아드리다가 결국은 노아 홍수 심판을 자초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인간의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 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교훈으로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순응하는 것만이 행복한 삶의 지름길임을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홍수 심판이 끝난 후 노아가 온 가족을 이끌고 방주에서 나아와 제일 먼저 한 일은 여호와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번제의 제물을 드린 일이었습니다.
(창 8:20)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그와 같이 하나님께 제물을 불 태워 드리는 제사는 하나님의 질서를 거역하고 범죄한 인간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속죄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민 29:6) “그 달의 번제와 그 소제와 상번제와 그 소제와 그 전제 외에 그 규례를 따라 향기로운 냄새로 화제를 여호와께 드릴 것이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벨탑 사건 이후 온 세상에는 여호와 하나님께 제단을 쌓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고 모두 다 인간이 만든 우상 앞에 제사하는 불신앙의 사람들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2. 이스라엘의 범죄와 타락
하나님은 그와 같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새로운 구원의 질서를 세워주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제단을 쌓는 삶이었습니다.
인간이 어떤 죄를 지었든지 그 죄를 대신하는 제물을 하나님께 불살라 드림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본래 하나님을 반역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가정에서 75년간 살았던 죄인이었으나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받았을 때
1)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우상 숭배하는 고향친척 아비 집을 떠나
2)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에 이르러 제일 먼저 한 것이 하나님께 제단을 쌓는 일이었습니다.
(창 12: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그와 같은 아브라함의 제단은 그의 후손 이삭과 야곱과 열두 지파를 통해서 계속이 이어져 이스라엘 민족의 근간이 되어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창조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시려고 우상숭배가 가득한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게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천지와 만물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만을 섬겼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간 가나안 땅에는 오랜 동안 바알과 아세라는 신들을 섬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직업은 유목민이었지만 가나안 사람들은 농업을 하였기 때문에 무엇보다 비가 절실하였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이 농사를 잘하기 위해서는 풍요와 생산을 주장하는 신인 바알을 숭배해야만 농사를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겼습니다.
그것은 바알 신전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집단적인 성관계하여 바알 신을 자극해야만 하늘에서 비를 내린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바알 신전에 종교 창녀는 물론 심지어 동성애자 남창들까지 존재하였기 때문에 바알 종교는 음란한 종교의 대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아 하나님은 거룩하신 신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는 그와 같이 음란한 종교를 본받을까 염려하신 일이었습니다.
(출 34:15) “너는 삼가 그 땅의 주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지니 이는 그들이 모든 신을 음란하게 섬기며 그들의 신들에게 제물을 드리고 너를 청하면 네가 그 제물을 먹을까 함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 나라를 세운 후 시간이 흘러가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점차 여호와 하나님께 제단을 쌓는 것이 점차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형식적인 제사로 변질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와 같은 제사보다는 순종을 더 기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삼상 15: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음란한 이방나라의 우상 숭배를 본받기 시작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등을 돌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전환기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지혜와 부귀와 온갖 영화의 축복을 전무후무하게 받은 솔로몬 왕이었습니다.
솔로몬 왕이 하나님의 영적인 질서를 거역하고 우상 숭배에 빠지면서 이스라엘나라는 남북으로 분단되고 주변강대국의 침략을 받아 결국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하나님이 택하신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하나님이 버리신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버리고 세속화 되었을 때 마치 맛을 잃은 소금을 길에 버려 발에 밟히게 하는 것처럼 이스라엘 나라는 이방 나라에 짓밟히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거룩하게 구별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강대국들의 식민지 생활을 하면서 비참한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3. 새로운 구원의 질서
하나님은 그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아주 버리지 않으시고 약속하셨던 메시아를 보내시어 새로운 구원의 질서를 이루셨으니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신 일입니다. 그 나라가 바로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을 불러 모아 새로운 나라를 세우시면서 마치 아브라함의 자손이 이방나라 백성들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며, 하나님만 경외하기를 요구하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며 하나님만을 예배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지상에 형식적인 제단 대신에 예수님이 피 흘려 값 주고 사신 교회를 세우셨으며, 그 교회 안에서 신령과 진정의 예배가 드려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들과 달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세상에 나가서 우상 숭배하는 사람들과 차별화된 거룩한 삶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바울이 선교할 당시 로마제국의 특징 중에 하나는 헬라 신전 문화의 영향을 그대로 이어 받아서 성적으로 방종과 타락이 극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신전에 각종 제사는 반드시 음란한 행사가 동반되었고 당시 신전은 음란과 부패의 소굴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를 기록한 장소는 고린도는 음란한 우상숭배의 본거지였으며, 마게도냐의 수도요 제일 큰 도시인 데살로니가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데살로니가인들은 주변의 성적 타락과 이교도의 부도덕하고 음란한 의식에 빈번히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헬라 사상의 영향 아래 있는 마게도니아 전역은 육체의 행위가 인간의 영혼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헬라의 이원론적 철학 사상이 무절제하고도 부도덕한 쾌락주의를 끌어들였으며 이로 인해 사회의 기초가 되는 가정이 점점 파괴되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데살로니가에서 태어나 오래 동안 살아오다가 사도 바울을 통해서 중간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신자들 가운데 일부는 그와 같은 구습을 버리지 못하고 별다른 죄의식이 없이 음란한 죄를 범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더욱 사도 바울은 음란을 버리고 거룩함을 좇으라고 강력하게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4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5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
여기서 ‘거룩함이라’는 말(aJgiasmov")은 음란한 옛 생활을 버리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음란한 세상 문화 가운데서 살던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불러내신 것은 그와 달리 거룩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것이 바로 일부다처의 이방인들과 달리 하나님이 만드신 가정 질서를 따라 일부일처의 삶을 사는 것이 바로 거룩한 삶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그렇게 살지 않고 하나님이 정하신 한계를 벗어나서 세상의 이방인들처럼 색욕을 따라 음란한 삶을 살다고 치정에 얽혀서 형제를 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6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언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라
여기서 ‘분수를 넘어서’라는 말(uJperbaivnw)은 ‘한계를 넘어간다. 범한다, 무시한다’라는 뜻이고, 형제를 ‘해하지’라는 말(pleonektevw)은 ‘형제를 이용하다, 사취하다, 기만하다’라는 뜻으로 형제를 사랑해야 할 하나님의 자녀들이 도리어 형제에게 해를 끼치는 백해무익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신원하여’라는 말(e[kdiko")은 ‘복수하는 자. 처벌하는 자’라는 뜻으로 음란한 삶을 살면서 형제에게 해를 끼치는 삶을 살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복수하시고, 처벌하시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고 그렇게 믿고 사는 것이 결코 광신이나 맹신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내가 깨끗하게 살고 내가 복을 받는 길입니다.
(잠 16:7)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어떤 것일까요? 형식적인 제사나 예배보다는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우리가 전에는 거룩한 삶을 살지 못했던 사람들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신 까닭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것이 구약의 제사대신에 영과 진리로 드리는 삶입니다.
1) 구약 시대는 짐승을 제물로 드렸지만 지금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구약 시대 제사보다 더 귀한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짐승의 제물을 드렸지만 지금 드리는 예배는 우리의 몸을 제물로 드려야 하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거룩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인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의 몸을 거룩하게 하는 삶을 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 거룩한 삶이 바로 ‘음란’한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도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다가 그 몸으로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고전 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성경의 역사적 배경은 수천 년이 흘렀지만 오늘 우리가 사는 현실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서 과학이 발달하고 인간의 삶이 윤택하여 진다고 할지라도 변하지 않는 것은 타락한 인간의 죄 성은 전혀 선하게 변하지 않고 더더욱 악해져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1)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마치 오늘 성경의 음란한 데살로니가 지역에 세워진 데살로니가 교회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온통 세상이 음란의 도가니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2)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소돔과 고모라를 뺨칠 정도로 음란한 세상입니다. 동성애, 성전환, 낙태, 간통, 간음, 혼전 후 성관계, 동거 등 성적타락이 심각한 죄로 가정 파괴와 살인과 온갖 죄악들이 하수구처럼 흘러넘치는 세상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세상을 가리켜 악하고 음란한 세상이라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말세 심판 날이 마치 악하고 음란한 죄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유황불을 내려 불태웠던 소돔과 고모라 보다 더 악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눅 17:29,)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성에서 롯을 구원하시듯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하여 주셨기 때문에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큰 은혜입니다.
(롬 9:29)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그와 같은 세상에서 구원하여 교회로 불러 모으신 까닭은 악하고 음란한 세상에서 교회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정화조가 되고 성도들은 청정수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만일 인간의 결심이나 의지로 가능하다면 갈수록 성범죄자 처벌이 강화되는데도 불구하고 성 범죄자가 줄어들지 않고 도리어 더 포악해지는 것은 음란한 세력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가를 잘 나타내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한 성적인 유혹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가정과 성의 소중함과 성적인 유혹의 거짓됨을 명확하게 이해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성의 본능은 생명 탄생과 연관되는 만큼 소중하고 우주적인 것이며 함부로 해서는 결코 안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가정 내에서만, 책임감과 규율 아래 가져야 합니다.
상업주의자들이 타락한 육적인 사람들의 성적인 욕망을 자극시키기 쾌락적인 특성으로 만들어 본래의 의미인 사랑, 일치, 생명이라는 고귀한 의미를 변질시키는 사기극에 속아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유혹과 욕망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은 인간의 의지로는 불가능하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함을 믿고 더욱 말씀과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고 간구해야 합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한 예를 소개하겠습니다.
예 화
제 친한 친구 중에 기독교 집안이라 어렸을 적부터 열심히 교회를 다니던 친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고등학생 때까지 술, 담배, 여자 등 실컷 놀면서 살았습니다. 그렇다고 교회에 빠지진 않았고 주일날 열심히 찬양하고 예배드리고 신앙생활 열심히 하였지만 그건 주일날뿐 주일날이 아니면 또 다시 술, 담배 실컷 하면서 잘 놀러 다니고 그런 친구였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20살 때부터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난 크리스천이다 이 생각을 갖고 날마다 하루도 빠짐없이 열심히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갑자기 술, 담배 입에도 안대고 가치관도 달라지고 정말 말이 안 된다 싶을 정도로 사람이 180도 변해버린 겁니다. 이 친구는 그 이후로 술, 담배, 여자 쳐다도 안보고 신앙생활 엄청 열심히 하고 있으며 공부도 못했던 친구가 지금 열심히 공부해서 명문대 졸업하고 대기업 취직준비 중입니다. 저도 이 친구에게 전도 받아서 현재 신앙생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의 질서와 성의 질서를 잘 지켜 불신자와 다른 거룩한 삶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삶을 살아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이 일에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날마다 자신의 육체적인 욕망을 쳐 주님께 복종하게 하고 성령이 충만하여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물리치고 거룩한 성도, 거룩한 가정, 거룩한 교회가 되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또 악하고 음란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악하고 음란한 세상에서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지 말고 좀 더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1) 하나님께 제물이 되어야 할 우리의 몸을 날마다 거룩하게 구별하고,
2) 우리 가정을 거룩하게 지켜 거룩한 자녀들이 번성하게 하고,
3) 거룩한 믿음의 가정들이 모인 거룩한 교회가 되어 거룩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주인공들이 다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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