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시는 하나님
(살전 5:23-28)
23“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24“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25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26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 27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주라 28“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우리는 하나님을 눈으로 직접보거나 귀로 소리를 듣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자인 천사나 선지자나 사도들을 통해서 성경에 기록하여 주셨기 때문에 성경 말씀에 기록된 명령을 순종하는 것이 곧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의 영혼이 거듭나서 새사람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그 영혼을 담고 있는 우리의 육체는 매우 불완전하기 때문에 우리의 의지로는 온전히 이룰 수가 없다는 것을 단적을 잘 나타내 보여주는 것이 사도 바울의 절절한 고백입니다.
(롬 7:16) “나는 내 행실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내가 어기고 있는 율법이 선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롬 7:17) “그러면서도 이러는 나를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나를 이미 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게 이런 악한 일을 시키는 것은 내 속에 들어 있는 나보다 더 힘이 센 죄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사도 바울보다 더 위대하지 않다면 우리도 역시 사도 바울과 같은 갈등을 할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우리의 연약함과 이중성을 잘 아시면서 구약의 율법이나 계명보다 실천하기가 훨씬 더 어려운 명령을 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살전 5:19)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살전 5:20)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살전 5: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살전 5:22)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하나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어느 누구보다 잘 아시면서 마치 우리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처럼 명령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서 그 답을 찾는다면 우리의 행복을 위해 명령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좀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순종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1. 평강의 하나님
우리의 행복을 위해 명령하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명령하셔서 우리로 범죄케 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정반대로 죄에 빠진 우리를 구원하여 평강주시기를 원하시는 ‘평강의 하나님’이시라고 오늘 성경에 말씀하였습니다.
(살전 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여기서 ‘평강의 하나님’이라는 말(eijrhvnh)은 우리에게 ‘평화와 번영과 복지’를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물론 이곳만이 아니라 다른 성경에서도 하나님을 ‘평강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롬 15:33, 16:20, 빌 4:9, 히 13:20).
창조주 하나님께서 본래 인간에게 주신 것은 평강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을 불순종한 죄로 인해 그 평강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인간에게 평강을 회복해 주시기 위해 독생자까지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셨습니다. 이로 보건데 인간을 향한 하나님이 본심은 재앙이 아니라 평강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렘 29: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신자는 고사하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들조차 하나님의 명령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와 같은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평강의 하나님을 도리어 부담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깊은 뜻은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매한 우리가 거기까지 깨닫지 못하고 자기 주관으로 성경을 오해하기 때문에 평강이 아니라 오히려 부담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빛이 임하는 곳에 어둠이 물러가듯이 빛이 없는 곳에는 어둠만 가득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과 가정과 교회에 진정한 평화는 평강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야만 가능합니다.
(고후 13:11)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하게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임마누엘 곧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죄로 인해 평화를 잃어버린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신 독생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를 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구세주로 영접하는 자에게 평강의 하나님이 주시는 참 평화가 임하는 것입니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기 까지 하셨으면서 왜 우리에게 부담스러운 명령을 하시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그 이유는 마치 부모가 자식에게 거는 기대치가 한이 없이 높기만 한 것처럼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 된 우리에게 거시는 기대치가 그 만큼 높으시기 때문입니다.
(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2. 거룩케 하신 하나님
세상에 많은 종교가 있지만 행함을 강조하는 종교와 믿음을 강조하는 종교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무엇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 율법적인 종교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은혜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전에는 더럽기가 한량없던 세상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구별하여 불러 주심으로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아 성도라는 칭호까지 얻게 된 것이 사실입니다.
(고전 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그렇습니다. 거룩하게 해 주셔야 합니다. 흠 없게 보전해 주셔야만 합니다. 우리의 의지로는 우리의 믿음을 지켜나갈 수 없고, 하나님이 만족하실 만큼 거룩한 삶을 살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한 우리가 평강의 하나님이 세상에 보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속죄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불신자와 다르고 타 종교인들과 다른 차별화된 언행심사를 원하셨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처럼 거룩하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벧전 1: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그와 같은 샘플이 곧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따라 택하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방인들과 거룩하게 구별하게 하시기 위해 어떻게 차별화된 생각, 차별화된 말, 차별화된 행동, 차별화된 믿음 생활을 하게 하려고 주신 계명과 규례와 법도를 명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 여러 나라 백성들 가운데 아하! 저 사람은 유태인 곧 이스라엘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도록 차별화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거룩함은 외형적인 형식의 차이가 아니라 내면적인 마음의 자세가 이방인들과 확연하게 구분되어지는 차별화를 요구하셨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가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외형에 있어서는 차별화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으나 내면적인 마음의 자세는 이방나라의 백성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마음이 완악해져 이방나라와 타협하고 혼합하고 결국 이방화 되었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방 사람들의 손에 넘겨 버리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혈통적인 이스라엘이 아니라 세계 만민가운데 거룩하게 구별하여 불러내신 사람들이 모인 곳이 바로 우리가 지금 예배를 드리는 거룩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하신 하나님이 거룩한 교회와 성도들에게 마치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거룩함을 요구하십니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여기서 ‘거룩한 산 제물’이라는 말씀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거룩한 ‘죽은 형식이 아니라 산 제물’입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제물은 죽은 짐승이 아니라 살아있는 예배자인 우리가 세상 도덕과 윤리적인 수준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어 거룩하신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제물이 되는 거룩한 삶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 처럼 우리의 몸과 마음을 거룩하신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려야 하기 때문에 예배드리기 지은 죄를 회개하는 것만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3. 거룩한 성도의 삶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믿는 것이 아니라 믿어지는 것입니다. 거룩함을 받는 것입니다. 새롭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일컬음을 받은 사람일까요? 그 사람은 나를 의롭게 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거룩한 삶을 살려고 몸부림을 치는 사람입니다.
그것을 가리켜 신학적으로 성화라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성화에는 반드시 나의 의지로 이미 주께 받은 거룩함을 유지하려는 간절한 마음과 노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마치 나의 의지로 가능한 것처럼 성경에 명령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후 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물론 그렇게 노력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하게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노력하는 자를 하나님이 거룩하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와 같은 노력을 하지 않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경 여러 곳에 우리에게 명령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룩하라고 명령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거룩한 삶을 살고자 순종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어 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고 오늘 성경에 약속하고 있습니다.
(살전 5:23) “평화의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완전히 깨끗하게 하셔서 하나님께 헌신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빕니다. 또한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흠 없게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 (살전 5:24) “여러분을 불러 자녀가 되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약속한 대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와 같이 거룩함을 받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거룩함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일입니다. 그 일을 위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 두 가지가 있는데 말씀과 기도입니다.
(딤전 4: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오늘 성경에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전서를 마감하면서 평강의 하나님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궁극적으로 거룩하게 하여 주시고 온 영과 혼고 몸을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까지 흠 없게 지켜 주시겠지만, 그와 같은 축복을 받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해야 할 몇 가지를 실천해야 한다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살전 5:25)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살전 5:26)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 (살전 5:27)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주라”
여기서 ‘기도하라, 문안하라, 읽어주라’는 명령이 다 똑같이 현재진행형으로 지속적으로 해야 할 것을 뜻하는 현재 진행형 명령형입니다.
1)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부탁입니다.
2)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서로 문안하며 사랑하는 삶을 살라는 부탁입니다.
3) 오늘과 같은 성경책이 없던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편지를 돌려가며 읽으라는 부탁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미 구원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의 거룩함을 위한 노력은 필요 없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빌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빌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그렇게 순종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충만히 임하고 하나님으로 부터 성령의 능력을 공급받아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성령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딤전 1: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설령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그 모든 것들을 깨닫게 되었다고 할지라도 평강의 하나님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하나님의 은혜를 공급 받아야만 그 말씀대로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 생활입니다. 말씀에 기도가 뒷받침 되어질 때 깨달아지게 되고 믿어지게 되고,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공급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과 기도는 마치 바늘과 실의 관계와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생명수를 공급받는 수도관과 같은 말씀과 기도가 중단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혼자만의 노력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격려하고, 기도하고, 사랑하고, 가르침을 받아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그러한 필요들을 위해서 지상에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딤후 2:22)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이 지구상에 아담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누구나 어린아이로 세상에 태어나 자라서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어른들은 어제의 어린이들이었고 오늘의 어린이는 내일의 어른이 될 것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어린이주일은 비단 오늘의 어린이에게만 해당되는 주일이 아니라 어제의 어린이였던 오늘의 어른에게도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게 하는 주일입니다.
그러나 어린아이는 저절로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어른을 통해서 양육을 받아야만 하기 때문에 어른이 어떻게 가르치는가? 의 여하에 따라 아이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마치 거울과도 같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거울은 스스로 웃지 않습니다. 내가 거울을 보고 웃어야만 거울에 비쳐진 내 얼굴도 따라서 웃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저절로 선해지고 저절로 좋은 믿음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들 앞에서 선한 삶과 좋은 믿음을 보여주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은 우리가 가르친 것을 그대로 실천하며 살 수 있는 좋은 환경이 아닙니다. 죄악 된 세상입니다. 무신론의 세상입니다.
그러한 세상을 이기고 승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그 누군가가 바로 오늘 성경의 평강의 하나님이십니다. 거룩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며 소원하며 힘쓰고 애쓰는 것을 다 지켜보시는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
다시 말해서 나와 자녀와 손자손녀의 삼대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자녀들의 미래를 이루어주셔야만 우리의 후손도 영적 이스라엘로 번성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매 순간마다 그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오늘 여기까지 살아왔다면, 우리의 자녀들에게 그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마침내 우리 자녀들도 주안에서 기도하고 꿈꾸는 것들을 마침내 이루어지게 하실 것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찾는 법인 기도를 가르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법인 성경을 가르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법인 예배를 가르치고 서로 사랑하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엡 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그렇게만 한다면 설령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에게 만족할만한 신앙의 본이나 풍성한 유산을 물려주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갈지라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자녀들을 거룩하게 하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평강을 주실 줄 믿습니다.
(살전 5:23,24)“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24“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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