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히 여겨야 할 사람들
(살전 5:12-15)
(살전 5: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살전 5:13)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살전 5: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살전 5:15)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창조주 하나님이 지상에 최초로 만드신 조직은 가정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의 평화를 위해 일정한 자연법칙을 부여하신 것처럼 하나님이 만드신 가정의 행복을 위해 일정한 질서를 만들어 지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정에 부여하신 질서가 곧 자식은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은 아파트의 평수나 소유한 재산의 많고 적음 이전에서 하나님이 정하신 사랑의 질서를 따라 온 가족이 서로 사랑할 때만이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렇게 할 때만이 나님이 보시기에도 참 좋은 가정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심으로 이 지상에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시고 그 교회를 통해서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게 하기 위해 교회의 질서를 정해 주셨습니다. 그 질서가 성경에 나와 있는 교회론입니다.
하나님은 가정을 통해서 우리에게 육신적인 필요를 채워 행복하게 하시는 것처럼, 교회를 통해서 우리의 영적인 필요를 채우심으로 영적으로도 행복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창조하신 세상은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가 지켜 질 때만이 가능한 것처럼
행복한 신앙생활과 더불어 교회가 아름답게 부흥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제정해 주신 교회의 질서가 잘 지켜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1. 데살로니가 교회의 일꾼들
행복한 가정에는 집이 크고 작고를 막론하고 먼저 좋은 부모님과 사랑하는 자녀들이 있는 것처럼, 아름다운 교회는 성도들이 많고 적고를 막론하고 교회 안에 충성스런 일꾼들과 신실한 믿음의 성도들이 함께 모여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역사가 비록 짧지만 충성스런 일꾼들이 있었습니다.
(살전 5: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1) 수고하는 자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도 하나님이 세워주신 직분자들이 있었으나 성도들이 그 직분자들에 대한 바른 이해가 부족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직분자들이 바로 오늘 성경 본문에서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라는 사람들인데 여기서 ‘수고’라는 말(kopiavw)은 ‘피곤하다, 지치다, 열심히 일하다, 애쓰다’라는 동분사 현재 능동태로 교회를 돌보는 일에 피곤하도록 수고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에베소서에 그 구체적인 일에 대해서 명시하고 있습니다.
(엡 4: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2) 다스리는 자
여기서 ‘다스리며’라는 말(proi?sthmi)은 무슨 지배의 개념이 아니라 ‘인도하다, 돌보다, 관심을 갖다’라는 뜻으로 성경은 교회의 감독이나 집사가 가족을 돌보는 것을 ‘다스린다’는 말로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딤전 3:4]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찌며 [딤전 3:12]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찌니
3) 권하는 자
오늘 본문에서 ‘권하는 자’라는 말(nouqetevw)은 ‘경고하다, 충고하다, 바로 잡다, 고치다’라는 뜻으로 마치 부모가 자녀의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주려고 애를 쓰는 것처럼 잘못된 길을 가는 사람의 행동을 바르게 교정해주는 일을 뜻하는 말입니다.
[고전 4:14]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물론 그와 같은 직분자들은 마치 인도 사회의 계급처럼 태어날 때부터 구별된 사람들이 아니라 바울 사도를 만나기 전에는 다 무신론자 내지 타 종교를 신봉하던 불신자들이었습니다.
그러했던 사람들이 사도 바울의 복음 전도를 통해서 개종을 하고 예수님을 영접한 후 믿음이 점점 자라서 교회 안에서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을 돌보고 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위해서 ‘수고하고,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로 세움을 받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일차 전도여행 때에도 각처에 교회를 세우고 또 장로들을 세웠었다면, 어느 교회보다 가능성이 많은 데살로니가 교회도 어떤 모양으로든지 장로를 세우게 하였을 것입니다.
(행 14: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
예루살렘 교회가 흉년을 만나 성도들이 어려움을 겪게 되었을 때 사도 바울은 마게도냐 지역 교회들을 순회하며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한 헌금을 하게 하였습니다.
물론 그와 같은 일은 바울 혼자서의 힘만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여러 협력자들이 필요하였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그 일에 바울 사도를 도와 협력한 각 지역의 대표자들의 이름을 언급한 가운데 데살로니가 교회 사람이 둘이나 포함이 되어 있었습니다.
(행 20:4)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그렇다면 오늘 성경 본문에 데살로니가 교회안에서 수고하고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이 바로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같은 충성스런 일꾼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살전 5: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그렇습니다. 지상 교회는 어느 교회를 막론하고 불완전한 인간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잘될 가능성이 없는 집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부흥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좋은 교회가 되었다면 두말 할 것도 없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교회가 다 하나님의 교회요 하나님이 다 사랑하시는데 왜 어떤 교회는 아름답게 성장하고 부흥을 하는데 어느 교회는 세상의 지탄을 받는 교회가 되어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바로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차이가 아니라 그 교회 안에 데살로니가 교회안에 충성스런 일꾼처럼 좋은 일꾼들이 얼마나 많은가? 여하에 따라 좌우되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된 교회는 건물이 큰 것도, 교인들의 수가 많은 것도 아니라 좋은 일꾼들이 얼마나 많은가? 라는 것이니다.
2.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
지금까지 우리가 살핀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있는 모범적인 교회였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데살로니가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시고 데살로니가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지만 데살로니가 교회 역시 불완전한 인간들이 모인 교회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지상교회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이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도 있었음을 오늘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 가운데 교회 안에서 수고하고 다스리며 권하는 직분자들에 대해서 상당한 오해가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교회 안에 평화가 깨치고 성도들 간에 불화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살전 5:13)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여기서 ‘화목하라’라는 말(eijrhneuvw)은 ‘평화를 유지하다’라는 뜻으로 현재형으로 화목이 깨친 상태를 뜻하는 것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이 반드시 이행해야 할 몇 가지 사항들을 오늘 성경에 명령하고 있습니다.
1) 교회 일꾼들에 대한 이해와 존경심이 회복되어야 한다.
(살전 5: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여기서 ‘구하노니’라는 말(ejrwtavw)은 ‘요청하다, 요구하다’의 현재 능동태로 지금 현재 구하는 것이고, 그 다음 ‘너희가 알고’라는 말(ei[dw)은 ‘지각하다, 인지하다, 체험하다’라는 뜻으로 들어서 아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여 아는 것입니다.
교회의 진정한 평화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회를 이끌어가고 지도자와 교회를 위해서 수고하는 일꾼들을 성도들이 얼마나 수고를 많이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먼저 이해하는 일이 급선무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것을 잘 모를 때는 함부로 비난하게 되지만 그 수고를 알게 되면 존경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살전 5:13)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여기서 ‘역사’라는 말(e[rgon)은 직분자들이 교회 안에서 무슨 일을 얼마나 많이 하고 있는 지를 바로 알라는 것입니다. 이는 일꾼들이 교회 안에서 무슨 일을 위해 얼마나 수고하는지 바르게 알고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가장’ 이라는 말(uJperekperissou)은 ‘엄청나게, 대단히’ 라는 뜻이고, ‘귀히 여기고’라는 말(hJgevomai)은 ‘생각하다, 상상하다, 간주하다’라는 뜻으로 교회 안에서 수고하는 직분자들에 대해서 무엇보다 먼저 긍정적인 생각을 할 뿐 아니라 직분이 아니라 그 직분에 충성하는 신실한 일꾼들을 존경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딤전 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2) 자기보다 연약한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서 직분자들의 책임과 사명이 ‘ 교인들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안에서 다스리며, 권하는 것’ 이라면, 이들을 지켜보는 성도들의 책임과 사명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물론 성도들은 직분자들의 수고를 인정해 주고 칭찬하고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과 더불어 직분자들 못지않게 힘써야 또 하나의 책임과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살전 5: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여기서 ‘권면한다’는 말(parakalevw)은 그동안 자주 사용되어 온 말로 무엇 무엇을 ‘훈계하다, 격려하다, 간구하다’는 말입니다. 또 ‘게으른 자’라는 말은 ‘무질서한 대열에 벗어난’ 이라는 뜻입니다. 뿐만이라 ‘권계하며’라는 말은 ‘충고하며’라는 뜻입니다.
이를 쉽게 번역한 성경을 소개하면 (살전 5:14) “그리고 제멋대로 사는 사람들을 훈계하고 마음이 약한 사람들을 격려하며 힘이 없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모든 사람들을 인내로 대하십시오.” 라고 하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교회의 문제점은 사랑의 문제입니다. 설령 사랑이 있다고 하지만 그 사랑을 가까운 사람과만 나누는 것이 문제입니다.
진짜 사랑은 친숙하지 않은 소외된 사람들을 내가 먼저 찾아가 손을 내밀고 격려해주는 것이 성숙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3) 항상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
(살전 5:15)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사람은 악을 악으로 갚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기에 누군가에게 화풀이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우리는 이웃을 용서할 수 없는 경우를 많이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든 악으로 악을 갚는 일은 성도들에게 금지되어 있습니다.
(롬 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그 이유는 악을 용납하라는 말씀이 아니고 선악에 대한 갚음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으므로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믿는 성도들은 악을 악으로 갚을 것이 아니라 악을 심판하시는 이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알고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그 대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예수님처럼 원수를 사랑하는 일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언제나 좋은 마음으로 대하고 선행을 실천하는 것으로 도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 안에서 화평이 깨어지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을 때에 그곳에는 분쟁이 일어나고 질서가 깨지고 맙니다.
세상 법에서도 죄지은 자를 피해자가 그 죄에 대해 심판하지 아니하고 법에 의해 재판관이 심판하듯이 그리스도인의 법은 복음이요 심판관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이 악을 추구하여도 선으로 대할 때 교회의 평화는 회복되어지고 악이 패하는 참 승리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953년 4월 19일 18명의 피난민으로 시작된 수원제일교회가 어연 간 60회 생일을 엊그제 맞이하였습니다.
이를 기념하는 여러 가지 행사 가운데 우리 교회 역사 이래 가장 많은 직분자들을 세우고, 또한 정년이 되어 많은 분들이 은퇴를 하는 행사를 가졌습니다.
성경에 많은 교회들이 등장하는 것은 지상 교회의 모형으로 여러 가지 교훈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모델로 삼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데살로니가 교회는 교회의 부흥이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어진 것이 아니라 모든 교회가 다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있지만 그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교회의 일꾼들과 교인들의 자세여하에 따라 교회의 부흥과 성장이 좌우되어진다는 것입니다.
1) 그 교회 안에 몸이 피곤하도록 주를 위해서 헌신하는 일꾼들이 얼마나 되는가에 따라 교회의 부흥과 성장이 좌우된다고 하였습니다.
교회의 크고 작고를 막론하고 그 교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꾼들이 얼마나 교회를 사랑하고 성도들을 사랑하며, 얼마나 수고를 많이 하는가?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2) 아무리 교회 안에서 수고하는 일꾼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다수의 성도들의 그 일꾼들의 수고를 알아주지 않고 칭찬과 격려에 인색하고 오히려 비난과 험담을 한다면 아무리 충성스런 일꾼도 그 교회를 떠나고 맙니다. 그러므로 충성스런 일꾼들에 대한 바른 이해와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말고 귀히 여기라고 하였습니다.
3) 교회 안에는 직분을 가진 일꾼보다 직분이 없는 평신도들이 더 많습니다. 그러므로 일꾼들만 수고하고 충성하면 다 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도 자기 책임을 다해야 하는데 그것은 위로는 일꾼들을 격려하고 아래로는 힘이 없고 연약한 자들을 붙들어 주고 격려하며 귀히 여김으로 그들의 신앙이 점점 자라나게 하는 일을 해야만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한 세대는 가고 또 다른 세대가 올 때 그렇게 사랑을 실천한 평신도들이 충성스런 일꾼들을 본받아 다음 세대를 이어갈 좋은 일꾼이 되어지는 전통과 맥이 계속해서 계승되는 교회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비결은 우리 성도들이 세워진 일꾼들을 귀히 여기고 격려하는 일이고, 우리 성도들은 다음 세대의 좋은 일꾼이 되도록 서로 서로 귀하게 여기고 사랑을 실천함으로 화목한 교회를 만들어 가는 좋은 성도들이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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