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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엡 4장 1~6절
바울은 하나됨을 가져오게 하는 4가지 성품을 소개한다. 첫째, ‘겸손’이다. 고대 로마시대에 있어 겸손이란 노예들에게나 요구되는 것이었다. 경멸되던 이 단어를 아름답게 승화시킨 것은 그리스도의 종 됨을 통해서 드러났다. 바울은 겸손을 재해석 하면서 새로운 공동체에 가장 필요한 덕목으로 소개한다. 하나됨을 깨뜨리는 주요인은 다름 아닌 교만이다. 둘째, ‘온유함’이다. 부딪치지 않는 성품을 말한다. 주님은 팔복에서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다”고 하셨다. 세상은 겸손과 온유를 유약함으로 치부한다. 그러나 성경은 진정한 강한 자의 모습이라고 말씀한다. 겸손과 온유는 강한 내적 통제 안에서 가능한 일이다. 상대의 힘과 부딪힘으로 마찰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흡수할 수 있는 수용력이 온유함이다. 셋째, ‘오래 참음’이다. 오래 참음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모든 인간관계는 오래 참음을 통해 주어진 결과다. 고전 13장에서 바울은 사랑의 속성을 말할 때 가장 먼저 “오래 참고”로 시작한다. 수 없는 분쟁과 갈등 속에 있었던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사랑이라고 진단했다. 사랑이란 오래 참음이라고 정의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참는 것이다. 좋은 관계는 오래 참음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겸손과 온유라는 성품도 결국 오래 참음이라는 성품 안에서 완성된다. 넷째는 사랑 안에서의 ‘용납’이다. 용납도 오래 참음의 연장선상이다. 날카로운 지적보다는 상대의 연약함을 돕고자 하는 섬김의 삶이 공동체를 세운다. 사랑 가운데서 용납하라는 말은 다름을 받아들이라는 말이다. 다른 것을 틀린 것이 아니라 그냥 다를 뿐이다. 이견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진리가 아니라면 나의 생각이나 주장을 절대화하지 않는 태도다. 인격의 용량은 나와 다른 사람을 얼마나 품는가에 달렸다. 은혜를 받는다는 것은 가슴이 넓어지는 것을 말한다. 결국 용납은 균형감각에서 나온다. 전체를 보고 넓고 깊게 보는 통찰력이 있을 때 치우치지 않은 균형감각을 갖게 된다. 바울은 하나됨을 깨뜨릴 수 없는 이유를 말씀하고 있다. 본문에서 바울은 ‘하나(one)’이라는 단어를 7번 사용하고 있다. 하나됨은 기독교의 중요한 목표다. 그리스도인은 모두가 한 몸이고, 한 성령으로 예수 믿게 되었고, 한 소망의 부르심을 받았고, 믿음도 하나고, 같은 세례를 받았고 한 하나님, 한 아버지를 모셨다는 것이다. 나누어질 수 없는 절대적인 이유들을 바울은 열거하고 있다. 건강도 건강할 때 지켜야 하듯 공동체 역시 마찬가지다. 사탄은 교회의 하나됨을 깨뜨리고자 발악한다. 따라서 하나됨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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