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굽어보신 사람들
(시 14:1-7)
(시 14: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시 14:2)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시 14:3)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시 14:4)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냐 그들이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시 14:5) “그러나 거기서 그들은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 (시 14:6) “너희가 가난한 자의 계획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의 피난처가 되시도다”(시 14:7)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포로된 곳에서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가 믿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나름대로 바람과 기대가 있는 법입니다. 그래서 만나고, 이야기 하고, 함께 식사하면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보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실까요? 물론 인간이라는 존재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귀로 듣는 오감을 통해서 사실을 확인해야만 알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은 인간들과 달리 보거나, 듣지 않고 멀리 하늘나라에서도 우리가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훤히 다 아시는 전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시 139:2)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시 139:3)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시 139: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하나님의 심정을 인간과 동등한 심정으로 표현 한 곳이 많이 있습니다.
1. 세상을 굽어보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유일하게 인간을 당신의 모양과 형상을 따라 지으시고 만물의 영장이 되게 하신 것은 인간에 대한 바람과 기대가 지극하시기 때문에 주야로 살피신다고 하였습니다.
(시 139:1) “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여기서 ‘살펴보였음으로’라는 말(rq'j; 2713, 하카르 )은 ‘찾다, 조사하다, 시험하다’라는 뜻의 완료형으로 이미 다 살펴보셨다는 뜻이고, ‘아시나이다’라는 말([d'y:(3045, 야다) )은 와우 계속법 미완료형으로 아직까지 ‘알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1) 창조주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실 때 매일 보시기에 좋으셨다고 하셨으나, 마지막 날 인간을 창조하여 창조를 마감하신 후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고 하신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창 1: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여기서 ‘보시니’라는 말(ha;r)은 '바라보다, 조사하다‘라는 뜻의 와우계속법 미완료로 지금도 계속보고 계시는 것을 뜻합니다. 또 ‘심히 좋았더라’는 말(daom], b/f )은 ‘굉장히, 엄청나게, 대단히 좋아하셨다, 즐거워하셨다’ 라는 뜻은 이전 보다 더욱 크게 기뻐하셨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조상 아담은 배은망덕하게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하고 뱀의 말을 따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인간을 아주 버리지 않으시고 친히 찾아오셔서 그를 부르셨고 만나 주셨습니다.
(창 3: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은 아담의 불순종의 죄에 대한 징계와 심판만 내리신 것이 아니라 허물을 덮는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고 여인의 후손을 통한 구원의 길을 약속하셨습니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그것만이 아니라 아담의 후손들을 땅위에서 번성하게 하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배은망덕한 죄를 일삼고 뿐만 아니라 그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함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마음에 근심하시고 사람 지으셨음을 후회하시 노아 홍수를 통해서 심판하셨습니다.
(창 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창 6: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3) 뿐만 아니라 노아 홍수 심판 후에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도 아담에게 하셨던 것과 동일한 축복을 거듭해서 선포하셨습니다.
(창 9: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창 9:7)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아의 자손들은 번성하게 되자 온 세상에 흩어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하나님에게 도전하기 위해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그 때에도 하나님은 성급하게 심판하시지 않고 먼저 사람들이 쌓는 바벨탑을 친히 보시기 위해 세상에 내려 오셨다고 하였습니다.
(창 11:5)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그 하나님께서 오늘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마치 무엇이 궁금할 때 목을 길게 뽑고 이마에 손을 대고 허리를 살짝 굽혀 사방을 살피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인생들을 굽어 살피신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혹시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혹시 한 사람이라도 있는가 살펴보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시 14:2)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여기서 ‘굽어 살피사’라는 말(#q'v; 8259, 샤카프)은 ‘위에서 내려다 본다’는 뜻의 완료형으로 이미 다 보셨음을 뜻합니다.
2. 어리석은 자
하나님이 세상을 굽어 살피셨을 때 마치 노아 시대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근심하게 하는 사람들만이 가득했음을 오늘 성경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시 14: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여기서 ‘어리석은’이라는 말(lb;n:)은 ‘무감각한, 분별이 없는’이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을 가리켜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론에서 이 세상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보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그 사람들이 학식이 부족하거나, 정신연령이 낮은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누구보다 많이 공부를 하고 누구보다 해박한 논문이나 책을 많이 쓴 철학자나 사상가나 엘리트 지식인들이라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신의 존재를 부인하고 특히 기독교를 적대시하는 유물론 공산주의와 진화론자들입니다.
1) 유물론 공산주의
유물론 공산주의는 계급투쟁이라는 공산주의 혁명 투쟁이 전부가 아니라 철저한 이론적 토대를 구축하고 많은 지성인들을 현혹하였습니다.
공산주의 핵심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 헤겔의 변증법이나 칼 마르크스의 유물론은 누구든지 한번 훑어보기만 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론체계가 아닙니다. 여러 사상들을 접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읽어도 쉽게 개념이 잡히지 않는 이론들입니다.
이를 테면 유물론 공산주의의 바이블과도 같은 변증법적 유물론은 헤겔의 정반합의 원리와 더불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의 제 1 차적인 근본적인 실재는 오직 물질이라고만 주장합니다.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이나 정신을 인정하지만 그것들은 물질에서 부차적으로 파생된 것으로 봅니다.
그 결과 유물론 공산주의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이나 영혼을 허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철저하게 부정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존재를 주장하는 기독교를 아편이라고 하면서 적대시하는 것입니다.
2) 창조를 부인하는 진화론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무신론자들은 당연히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하지만 세상에는 엄연히 눈에 보이는 많은 존재들이 있기 때문에 그 나름대로 그 존재를 규명해 내야만 합니다.
그것이 바로 다윈이 주장하는 ‘종의 기원’을 근거로 만들어진 진화론의 이론적인 배경입니다.
“다윈은 세상에 존재하는 종은 조금씩 진화하다가 새로운 종이 생기게 되며 이 내역이 화석에 기록되어있다고 종의 기원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신 다윈주의의 핵심내용은 돌연변이에 의하여 새로운 좋은 형질이 나타나면 자연선택이 이를 선택함으로 진화가 일어나며 이 진화의 내력이 화석에 기록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창조주를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진화론이 창조론보다 더 과학적이라고 생각하며 진화론을 거부하는 기독교를 반 지식주의, 반과학주의를 내세운 독선주의라고 비판합니다.
물론 그와 같이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상이나 주장하는 이들이 유명한 철학자들이요 과학자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선과 악을 판단하시는 최후의 심판장이신 하나님은 누구든지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는 자가 어리석은 자라고 하셨습니다.
(시 14:1) “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다시 말해서 이는 그들이 주장하는 이론이 매우 합리적이요 과학적이라고 말하지만 알고 보면 그것은 진실이 아니라 허구요, 그들만큼 비과학적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1) 유물론 공산주의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왜 하나님을 존재를 부인하는 자가 어리석은 자라로 말씀하고 있는 것일까요? 결과적으로 그와 같은 주장을 하는 자들의 그 때문에 자멸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좋은 예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유물론 공산주의의 정치적인 실험장이었던 동구권의 공산주의의 몰락과 공산주의의 원조 쏘련 공산주의의 붕괴가 공산주의의 이론이 허구임을 입증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아직도 실패한 공산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북한을 외부와 철저하게 차단을 하고 개방하지 않고 백성들을 속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공산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동안 오로지 전쟁 준비에만 골몰하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고 가정과 고향을 등지고 목숨 건 탈북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공산주의를 포기하지 않고 있는 북한 동포들이 얼마나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면 할수록 그들의 삶이 더욱 고통스러워 지고 있는데도 공산주의를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무리 보아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2) 무신론의 편에 서있는 진화론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과학을 앞세운 진화론이 절대 진리인 것처럼 주장하며 하나님의 존재와 창조를 부인하지만 그들이 어리석은 자인 까닭은 점점 더 세월이 지나면서 그들의 주장이 비과학적인 주장이라는 것이 입증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화론의 핵심인 돌연변이는 1950년 이후 DNA의 연구가 활발하면서 그 실체가 알알이 들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화석발굴과 그 분석 자료도 풍부하게 되어 화석자료의 부족이 고생물학에서 문제가 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 두 분야의 최신자료에 의하면 진화는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도리어 화석이 증명하고 있다는 것이 최신 진화론에 대한 결론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하고 실현 가능성이 없는 과학적인 가설에 불과한 이론을 마치 성경보다 우월하게 여기고 하나님을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마치 자기를 낳은 부모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어리석은 자인 것입니다.
3) 무신론의 결말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무신론으로 인해 발생되는 그와 같은 부패와 죄악들은 비단 다윗의 시대만이 아니라 신약 시대에도, 더 나아가서 오늘 우리들이 살아가는 시대에도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무신론은 결과는 세상이 점점 더 악해진다는 경고입니다.
(시 14: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여기서 ‘부패하고’라는 말(tj'v 7843, 샤하트)은 ‘멸망시키다, 파멸하다’라는 뜻의 완료형이고, 행실이 ‘가증하니’라는 말(b[;T 8581, 타아브))은 ‘몹시 싫어하다’ 라는 뜻의 완료형으로 더 이상의 변화가 불가능한 재기불능의 상태를 뜻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선을 행하는 자’라는 말(b/f 2896, 토브), hc;[; 6213, 아사) )은 칼 분사형으로 현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을 행하고 있는 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은 ‘부패와 행실의 가증함과 선행의 부재’는 구조적인 악이나 잘못된 인습과 같은 사회적 현상 때문만이 아니라 보다 더 근본원인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무신론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입증해 주는 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세계 최대 강국인 로마제국 치하에서 고난 받는 로마교회에게 보낸 로마서에 로마제국이 하나님을 거부하고 황제숭배에 빠져 기독교를 거부하면서 로마제국은 심히 부패해졌습니다. 그 결과 로마 제국을 전염병처럼 휩쓴 것이 성윤리의 파괴였습니다.
(롬 1:26) “이런 이유로 하나님은 사람들을 부끄러운 욕망의 노예로 살게 내버려 두셨습니다. 여자들은 남자들과의 자연스러운 성 관계를 여자와 성 관계를 갖는 것으로 바꾸었습니다.”(롬 1:27) “이와 똑같이 남자들도 여자들과 행하는 자연스러운 성 관계를 버리고 남자들끼리 정욕에 불타, 남자가 남자와 부끄러운 짓을 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그 잘못에 합당한 벌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세계 도처를 쓰나미처럼 휩쓸고 있는 무자비한 테러, 묻지마 총기살인, 폭력과, 돈과 권력 앞에 지식인 경제인 정치인 종교인을 막론하고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고, 정치인들이 국정은 뒤로 하고 오로지 당리당략에 사로잡혀 온갖 술수로 상대방을 모함하는 모든 근본 원인이 타락한 인간의 양심을 거듭나게 하시는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불신앙의 열매라는 것입니다.
(롬 1: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롬 1:29, 개정)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사람들
하나님이 세상을 굽어보셨을 때 세상에서 찾으신 사람은 의인의 세대였습니다.
(시 14:5) “그러나 거기서 그들은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
여기서 ‘의인의 세대’라는 말(r/D(1755, 도르)은 의인의 사는 시대, 의인이 사는 거주지를 뜻하는 말로 하나님이 찾으시는 의인들이 거주하는 곳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과연 ‘의인의 세대’가 어디일까요? 방금 전까지 하나님의 찾으시는 의인은 한 사람도 없다고 하였는데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의인의 거주지가 있다니 말입니다.
그곳은 죄가 하나도 없는 의인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 의로우신 여호와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 때문에 악한 자들이 의인들을 삼키려 하지만 손을 댈 수 없는 거룩한 피난처를 가리킵니다.
(시 14:6) “너희가 가난한 자의 계획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의 피난처가 되시도다”
여기서 ‘가난한 자’라는 말(ynI[;(6041, 아니))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악한 자들의 억압으로 말미암아 가난해진 사람들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피난처와 요새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렘 17:17) “주는 내게 두려움이 되지 마옵소서 재앙의 날에 주는 나의 피난처시니이다”
구약의 율법에는 사람을 살인한 사람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죽임을 당하지 않고 사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살인한 자가 어떻게 죽지 않는단 말입니까? 그것은 레인이 살고 있는 성읍에 어디서든지 하루 길이면 도달할 수 있는 곳에 도피성을 만들어 고의가 아니라 부지주에 실수로 살인을 한 사람이 복수하는 자가 쫓아오기 전에 도피성으로 피하여 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피하여 있다가 제사장이 죽은 후에는 자유의 몸으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였습니다.
(민 35:28) “이는 살인자가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도피성에 머물러야 할 것임이라 대제사장이 죽은 후에는 그 살인자가 자기 소유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느니라”
오늘 성경에서 하나님을 부인하는 악한 자들에게서 위협을 당하는 가난한 자들이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고 도피한 그곳에 여호아 하나님이 함께 계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시 14:6) “너희가 가난한 자의 계획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의 피난처가 되시도다”
시편 기자도 마땅히 죽어야 할 죄인이요 또한 사울 왕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해 다윗을 죽이려고 할지라도 성공하지 못하는 까닭은 시편 기자가 여호와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렘 17:17] 주는 내게 두려움이 되지 마옵소서 재앙의 날에 주는 나의 피난처시니이다
칼빈의 주석에 의하면 시편 기자는 악인에 대한 심판은 악인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장소에서 돌연히 있을 것이고 정반대로 의인이 거주하는 피난처가 되는 구원은 시온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시 14:7)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포로된 곳에서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여기서 시온은 '보호받는, 양지바른' 이라는 뜻으로 원래 예루살렘의 기드론과 투로포에온(Tyropoeon) 골짜기 사이의 산등성이의 남쪽 정상에 있는 바위로 된 비탈면에서 점차 예루살렘이 펼쳐져 있는 동쪽 산등성이 전체에 대해서 사용되었는데 후에는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 도시 전체를 시온이라고 지칭하였습니다.
이는 성전이 있는 시온만이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이스라엘이 회복될 수 있는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루살렘 성소에는 하나님의 법궤가 있고 그 법궤를 덮고 있는 시은소에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있는 곳익 때문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 위의 모든 인간들의 도덕적 타락의 근본 원인이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거부하는 데서부터 시작됨을 지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점점 더 무신론자들이 지성인의 대우를 받고 하나님만을 믿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독선주의자로 비난하고 마치 잘못 믿는 것처럼 모함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버리거나 위축을 당하고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과학이 발달하고 지식 수준이 높아지고 경제가 발달할수록 사람들이 점점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그처럼 사람들이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의 삶 속에서 철저히 하나님의 존재를 거부하면 할수록 세상의 도덕과 윤리가 붕궤도고 사람들의 성품과 소행이 점점 더 악독해져 가기 때문에 세상은 더욱 살기 힘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점점 더 그렇게 되어갈수록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고 살아가는 의인들은 하나님이 인생들을 굽어 살펴보심을 믿고 다른 사람들은 그 생각과 말과 글과 행동이 어떠하든지 오늘 나만이라도, 나부터라도 하나님이 찾으신 의인의 세대가 되어야 합니다.
(렘 29: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렘 29: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우리가 그렇게 간절히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주시고 하나님을 만난 우리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에게 거룩하시고 사랑과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전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1) 하나님을 찾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전심으로 찾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3) 하나님을 찾되 겸손히 기도로 구해야 합니다.
4)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5) 하나님을 찾는 사람답게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세상을 굽어보시며 그러한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실 뿐 아니라, 예수님이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듯이, 하나님을 찾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부인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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