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예수님의 전도/(요 4:35-42)

미션(cmc) 2014. 3. 19. 19:14

예수님의 전도

(요 4:35-42)


(요 4: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요 4:27)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자가 없더라” (요 4: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요 4:29)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요 4:30)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요 4:31)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이르되 랍비여 잡수소서” (요 4:32)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요 4:33)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하니” (요 4: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흔히 지방마다 동네마다 특산물이나 유명한 음식이 있는데 예를 들면 안흥찐빵이나 홍릉갈비와 같이 유명세를 란 곳을 가보면 여러 가게들마다 서로 자기 집이 원조라고 간판을 내걸고 있어서 처음 찾는 사람을 당황하게 할 때가 많을 것입니다.

 그처럼 세월이 갈수록 전도가 어려워지면서 각 종 전도 비법과 전도 왕들이 자기가 가르치는 전도 비법이 전도왕의 비결이라고 원조처럼 주장하는 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전도의 원조는 예수님이시며 전도의 비법 중에 비법은 예수님이 전도하신 방법이고 전도 왕의 원조도 예수님이십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도 전도이고, 예수님이 공생애 내내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하신 일도 역시 전도이고 제자들에게 가르치시고 실습을 시키시고 훈련시키시는 일도 전도이기 때문입니다. 

  (막 1: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막 1:39)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여기서 ‘전도하시고’라는 말(khruvssw(2784, 케륏소)은  ‘고지하다, 큰 소리로 선포하다, 호소하다, 간청하다’라는 뜻으로, ‘전도가 무엇이며’ 또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잘 나타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성공적인 전도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예수님이 친히 모범을 보이신 ‘가장 모범적인 전도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예수님의 전도 대상자

 예수님의 사역지는 주로 북쪽 갈릴리를 중심으로 한 가버나움 지역이었지만 그곳에 국한하지 않으시고 때때로 남쪽 유다 예루살렘을 오르내리시며 전도하시다가 마지막에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남쪽 유다 사람들은 북쪽 갈릴리 지역을 차별하였을 뿐 아니라 그 중간에 있는 사마리아는 종교적으로 이방 혼혈족이 산다고 해서 상종도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방문을 기피하기 때문에 만일 예수님이 사마리아에 가신다면 비난할 줄을 잘 아시면서도 갈릴리로 복귀하실 때 베뢰아로 우회하지 않고 사마리아로 통과하는 길을 택하셨습니다.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요 4:3)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요 4:4)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요 4:5)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과의 관계를 화해시키시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지역, 혈통 또는 소유, 신분, 기타 등등의 이유로 계층 간에 갈등하고 있는 인간들을 화해시키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비록 유대인의 신분으로 세상에 오셨을지라도 유대인들처럼 민족이나 지역감정에 사로 잡혀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에 도착하셨을 때 아무도 예수님을 환영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태양빛이 강렬하게 내려 쪼이는 정오에 예수님이 사마리아 수가 성에 있는 야곱에 우물가에 도착하신 시간은 우리나라 시간으로 정오에 해당되는 한 낮이었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긴 여정에 매우 지치신 상태였습니다. 무엇보다 목이 가장 마르셨습니다.

(요 4: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여기서 ‘피곤하여’라는 말(kopiavw, 코피아오 )은 ‘피곤하다, 수고하다, 지치다’라는 뜻의 동 분사 완료형으로 매우 피곤하여 지쳐 있는 상태를 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먹을 것을 구하러 마을로 가고 예수님은 누가 물을 길러 오기만을 기다리실 때 마침 한 여인이 우물로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기다리셨다는 물을 깃는 여인에게 물 한 목음을 구하셨습니다. 아무리 몰인정한 사람일지라도 거절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리브가는 아브라함의 종이 물을 좀 마시게 해달라고 요청하였을 때 급히 어깨에서 물동이를 내려 마시게 하였을 뿐 아니라, 물을 길어다가 낙타들에게까지 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이삭의 아내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수가성의 야곱의 우물가에 물을 길러 나온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이 물을 청하였을 때 리브가처럼 예수님께 선 듯 물을 드렸나요? 결코 아니었습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첫 마디에 거절을 하였습니다.

(요 4:9)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그러나 예수님은 건강한 자가 아니라 병든 자를 구원하려고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그 여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일부러 사마리아를 찾으셨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전도하셨습니다.

(요 4: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이와 같은 예수님의 모습은 오늘 우리들이 쉬운 전도의 대상을 찾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진짜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은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이고, 예수님에 대해서 부정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도 예수님처럼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에게 태신자의 대상에서 예외가 될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전도의 대상자요 태신자의 대상인 것입니다.


 2. 예수님의 전도 방법

 예수님이 물 좀 달라고 하셨을 때 유대인이라는 편견 때문에 물 한바가지 조차 주지 않는 몰인정하고 편협한 여인을 버리시지 않고, 정반대로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4: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요 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이는 오늘 성경 말씀은 우리가 작정한 태신자가 기독교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고 적대적인 반응을 보일지라도 어떻게 지혜롭게 전도해야 하는지 전략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물 한 목음을 구하셨을 때 유대인이라고 거절했던 몰인정한 여인에게 한번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 물한모금 주지 않던 사마리아 여인은 뻔뻔스럽게 예수님에게 생수를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요 4:15)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이것이 인간입니다. 설령 자신은 인색하고 몰인정할지라도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롬 12: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산상보훈을 통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전도자의 삶인지를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마 5: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 5: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 (마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예수님이 사마리아를 전도하시기 위해 수가성에 들어가셔서 여러 사람들을 불러 모으시고 대형 전도집회를 하시는 것이 보다 더 효과적이 아니겠습니까? 

 처음에는 예수님에게 적대적이었던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이 정반대로 여인의 말을 다 수용하시고 의문에 대해서 진지하게 대답하여 주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비로소 무려 남편이 다섯이나 되었던 비천한 자신을 인격적으로 대우하시고 또한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조차 정죄하지 않으시고 아픈 상처를 치료하여 주셨을 때 예수님을 신뢰하게 되었고 메시아에 대한 갈증을 갖고 예수님에게 마음을 활짝 열었습니다.

(요 4:25)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예수님은 그와 같은 여인에게 지체하지 않으시고 바로 당신 자신이 바로 여인이 찾고 있는 메시아임을 가르쳐 주심으로 그 여인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가 되어 주셨습니다.

(요 4: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사마리아 여인은 그 순간 마음에 크고 놀라운 변화르 경험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자신을 억누르고 있던 죄책감과 대인 기피증과 고독감에서 완전히 탈피하고 변하여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입으로는 사랑, 사랑하지만 나도 상대방처럼 반응을 하기 때문에 원수사랑은 고사하고 마땅히 사랑해야 할 신자들끼리 조차 미워하고 분노하고 갈등한다면 오늘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좋은 전도 방법은 사랑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사용하신 전도 방법인 것처럼 오늘 우리들도 예수님을 닮아 말 한 마디부터 상대방을 아프게 하지 말고 싸매고 위로하는 마음의 자세가 최우선이고 가장 좋은 전도 용품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예수님의 전도 결과

오늘 성경에서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육신의 목마름 때문에 무거운 물동이를 메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우물가에 나왔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 생수를 마신 후에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달려가서 사람들에게 자신이 만나 경험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최초의 이방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요 4: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요 4:29)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그 결과 놀랍게도 그 여인과 평소에 교제나 대화가 전혀 없었던 동네 사람들이 갑자기 나타나서 자신이 그리스도를 만났는데 한번 와서 보라고 간증을 하였을 때 놀랍게도 동네 사람들이 그 여인의 말을 듣고 믿고 예수님께로 나오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요 4:30)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여기서 ‘예수께 오더라’는 말(e[rcomai, 엘코마이)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계속해서 나아왔다는 미완료 동사로 눅 15장 탕자가 회개하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올 때에 똑같은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눅 15:20, 30).

 그 비결은 여인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신학적이고 논리적인 설교를 한 것이 아니라 단지 예수님께서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다 아셨으며, 자신이 궁금했던 예배의 장소에 대해서 명쾌하게 답변을 해 주셨으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분이 바로 자기들이 기다리고 있었던 그리스도 즉 메시아라고 간증하였을 뿐입니다.

 예수님을 만나 변화를 경험한 여인은 동네 사람들에게 예수님께로 나아가서 자기처럼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어 과연 예수님이 여인의 말처럼 그리스도인지를 확인해 보라고 초청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단지 한 여인을 전도하여 변화시키셨을 때 그러나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여인의 간증을 듣고 믿은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나아왔습니다.

(요 4:39)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더구나 동네 사람들도 예수님이 분명히 자기들을 적대시하는 유대인임을 잘 알면서도 사마리아 사람들은 자청하여 예수님을 자기 마을로 모시고 가서 더 많이 복음의 소식을 듣기를 원하였을 예수님도 거절하시지 않고 제자들과 더불어 이틀을 더 유하셨습니다.

(요 4:40)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그 결과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자세히 풀어서 설명해 주시는 복음의 말씀을 듣고서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자기들에게 예수님을 전해준 사마리아 여인에게 자기들이 예수를 믿게 된 것은 여인의 말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친히 듣고서 예수님이 참으로 그들이 기다려온 구세주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요 4:41)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요 4: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여기서 ‘구주신 줄 앎이라’는 말(ei[dw, 에이도) )은 ‘사람의 말이나 책을 읽고 아는 지식이 아니라 자기들이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하여 알게 된 확실한 지식’을 뜻하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읽고 듣는 성경 말씀이 바로 예수님이 직접하신 말씀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성경에 사마리아 여인의 전도를 오늘 우리도 본받아 실천할 때 우리를 통해서도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추수하게 하실 것입니다.

 첫째, 물동이를 버려두고 가서 주님을 증거 했습니다. 수가 성 여인이 물동이를 버렸다는 것은, 그의 가치관이 변했다는 말입니다. 

 둘째,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말해서 주님을 증거 했습니다. 이 여자가 동네 안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말을 했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을 피해 다니던 그 여자가, 사람들이 많은 동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부끄러운 자기의 과거를 누가 말할까봐서 겁내 피하던 그 여자가 사람들을 찾아가서, 나의 과거를 다 들추어 낸 분을 만나보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사람이 달라진 것입니다. 태도의 변화, 가치관의 변화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말씀은 우리 인간들의 참된 신앙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늘 우리가 믿음으로 태신자를 작정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생각에는 태신자를 작정하는 일이 하찮은 것 같으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사람이 변화되고 사람을 구원하고 사람을 주님께로 데리고 나오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는 주님이 혼자서 하시는 것도 아니고 우리의 힘만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주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어 동역함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가리켜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고전 3: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물론 두려울 것입니다. 자신감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여인 한 사람을 통해 온 동네를 복음화시킨 주님이 바로 오늘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십니다.

 복음서에 보면,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주님을 만나자 마자 즉시, 주님을 증거 했다는 사실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즉 새 신자였을 때 주님을 전도했다는 것입니다. 안드레가 그랬고, 베드로도 그랬고, 수가 성 여인도 주님을 만난 즉시 주님을 증거 했습니다

 우리가 전도 하는데 있어서 최종 목표를 사람들을 예수께 나오도록 하여 그들 스스로가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고 예수님과 영적 교제를 나눌 수 있도록 하는데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태신자를 작정하여 기도하고 그들을 교회로 인도하는 것이 여인이 한 일과 같다면 이후에 교회가 할 일은 예수님의 말씀을 그들의 귀에 직접 들려주는 일이며 그 때 성령님께서 그 듣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믿음을 심어 주시는 일은 하나님의 몫인 것입니다.

 전도의 원조가 되시는 주님이 직접 다 하실 수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태신자를 작정하고 지속적인 사랑으로 접촉하여 마음을 열게 하여 주님께 나아오기만 하면 믿게 하시는 분은 주님의 성령의 사역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에게는 하늘에 상급을 약속하셨습니다.

(단 12: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오늘 우리는 앞으로 있을 새 생명 축제를 앞두고 내가 누구를 전도의 대상자로 삼고 기도할 것인가? 구체적으로 이름을 적어내는 태신자 전도 작정 주일입니다. 

 우리는 인류 구원의 메시아 되신 예수님을 우리의 가족과 친척, 이웃, 더 나아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