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두려움을 뛰어 넘는 믿음/(시 27:1-5)

미션(cmc) 2014. 4. 2. 11:03

두려움을 뛰어 넘는 믿음

(시 27:1-5)


(시 27:1) “[다윗의 시]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시 27:2)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시 27:3)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시 27: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시 27:5)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우리가 세상을 사노라면 때로 마음에 근심이나 염려나 두려움을 느끼게 될 때가 있습니다. 우리 중에서 어느 누구도 나는 단 한 번도 그러한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들에게 성경은 정반대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염려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강하고 담대하라” 등의 명령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왜 나는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일까? 

 혹시 내가 잘못 믿고 있는 탓일까?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일까요? 내 마음을 사로 잡고 있는 의구심에 대한 명쾌한 답을 얻지 못하면 교회를 다니지만 마음에 기쁨을 잃어버리고, 우울한 마음으로 정말 재미없는 신앙생활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흔히 심리학를 하는 사람이나 최면술을 하는 사람들은 조언하기를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어려움이라고 하면 즐겨라!’ 고 권면합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얼마나 무책임한 소리인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가장 다스리기 어려운 것이 사람의 마음인데 과연 마음에 걱정과 근심을 즐기고 싶다고 해서 우울한 마음을 금방 즐거운 마음으로 바꿀 수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방법이 있다면 과연 무엇일까요? 마치 고장 난 시계는 그 시계를 만든 사람이 가장 확실하게 고칠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의 상하고 병들고 고장 난 마음은 인간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만이 가장 확실하게 고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밀물 듯이 몰려오는 두려움을 겨우 물리치는 정도가 아니라 오늘 시편 기자는 밀려오는 두려움 앞에 무릎을 꿇지 않았습니다. 들을 겨우 견디어 내는 정도가 아니라, 그 두려움을 뛰어 넘어 기쁨과 감사와 찬송이 넘치는 삶으로 역전하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시편 기자에게서 그와 같은 믿음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1. 두려움의 실체

 우리가 그동안 살펴 본 시편의 말씀들을 보면 시편 기자가 세상에 어느 누구보다 고난을 많이 겪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 시 27:1의 말씀은 시편 기자가 처한 현실이 시편 기자를 얼마나 두렵게 하는 상황인지를 역설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 27:1) “[다윗의 시]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시편 기자가 처한 상태를 한 마디로 ‘캄캄한 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밤은 건강하게 일하고 열심히 운동한 사람에게는 꿀맛 같은 시간입니다.

 그러나 근심과 걱정이 많은 사람에게는 불면증으로 캄캄한 밤을 지새워야 하는 형벌의 시간입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밝은 대낮도 캄캄한 밤이나 다름없는 고통의  시간입니다.

 왜냐하면 누군가 나를 미워하고, 못살게 굴고, 어떻게 하든지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만 있어도 불안하고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신경이 쓰이는 법인데 시편 기자에게는 그러한 원수가 한두 명이 아니었습니다.

(시 27:2)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여기서 ‘악인들, 대적들, 원수들’ 이라는 말을 보면 시편 기자를 죽이려는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라 집단임을 뜻합니다. 

 그들의 권한이 얼마나 막강한지 나중에는 군대를 동원하여 시편 기자를 잡아 죽이려고까지 하였습니다.

(시 27:3)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뿐만 아니라 시편 기자를 죄인으로 몰기 위해 거짓증언을 하도록 위증자들까지 세웠다고 하였습니다. 

(시 27:12) “내 생명을 내 대적에게 맡기지 마소서 위증자와 악을 토하는 자가 일어나 나를 치려 함이니이다”

 왜 원수들이 그렇게까지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원수들이 합법을 가장하여 시편 기자를 죽이려는 비겁한 방법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인간이 얼마나 거짓되고 사악한 존재인지 증거 사실주의의 허점을 악용하여 거짓을 합법으로 가장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은 시편 기자를 다 버릴지라도 시편 기자를 버릴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부모일 것입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에게는 무슨 연유인지 부모까지 시편 기자를 버렸다고 아픈 상처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 27: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여기서 ‘버렸으나’라는 말(bz"[;, 아자브) )은 ‘남겨두고 떠나 버렸다’는 뜻의 완료형으로 이미 버림을 받은 상태를 뜻합니다. 

 만약 오늘 우리가 시편 기자와 같은 처지였다면 우리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늘 불안과 근심과 두려움 속에서 살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시편 기자가 마땅히 그와 같은 고난을 겪어야만 할 큰 잘못을 범했기 때문도 아니며 나름대로는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겠다고 몸부림을 치고 있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고통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편 기자는 그와 같은 고통 중에서 피할 수 없는 마음에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을 해 나갔는지를 통해서 혹시 오늘 나에게도 그와 같은 고통이 있다면 시편 기자에게서 고통을 뛰어넘는 믿음의 지혜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2.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오늘 우리가 시편 기자의 처지와 똑같은 것은 고사하고 십분의 일 정도라고 할지라도 근심과 걱정과 두려움의 소용돌이 속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편 기자는 놀랍게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여러 번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 27:1) “[다윗의 시]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여기서 ‘두려워하리요’라는 말(arey, 야레) )은 미완료형으로 지금까지 무서워하지 않고 있다는 뜻입니다. 

 설령 그 원수가 한두 명이 아니라 군대로 떼를 지어 시편 기자를 에워싼다고 할지라도 시편 기자는 두려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태연 할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시 27:3)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여기서 ‘태연하리로다’라는 말(jf'B;, 바타흐) )은 ‘안심하다, 신뢰하다, 안전하다’라는 뜻의 현재 형으로 두려움을 뛰어 넘어 오히려 안심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시편 기자의 현실이 고통스러워 보이지만 실상 고통스럽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그와 같은 고통을 잘 견디고 나면 더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보이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것은 그 고통 중에 겪게 되는 어두움보다 더 밝은 빛이 그에게 비취고 있었기 때문이고 고통을 주는 원수들보다 더 능력이 많으신 여호와 하나님이 시편 기자의 구원이 되심을 믿기 때문이었습니다.

(시 27:1) “[다윗의 시]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하나님이 흑암과 혼돈한 세상에 빛을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 자신이 빛이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1) 혼돈과 흑암 뿐인 세상에 빛을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이 시편 기자에게 어두움을 밝히는 빛이 되어주시고 원수들보다 더 큰 능력을 가지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편 기자를 은밀하게 숨기시고, 높은 바위 위에 들어 올려서 원수들의 손이 미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지켜 주심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시 27:5)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2) 시편 기자는 고통이 크면 클수록, 두려움이 밀려올수록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서 더 크게 부르짖어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긍휼히 여기시고 응답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부르짖었기 때문입니다.

(시 27:7) “여호와여 내가 소리 내어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3) 우리가 자주 경험하는 일이지만 기도가  결코 내 힘과 의지대도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경험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시편 기자는 자신이 고통 중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방황하고 있을 때에 주께서 시편 기자의 마음속에 기도를 시키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 27:8)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그 하나님께서 시편 기자에게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고 마음으로 주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시편 기자가 주의 얼굴을 향해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세요, 나를 버리지 마시고 떠나지 마세요’라고 부르짖어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시 27:9)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마시고 떠나지 마소서”

 무론 여기서 ‘내 얼굴'이라는 말은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인간들과 같은 얼굴이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얼굴이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실체를 신인동형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시편 기자와 같은 고난을 허락하실 때 눈앞에 펼쳐진 상황만 보고 두려워하는 대신 성령께서 세미하게 내 마음속에 말씀하시는  음성에 귀를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어서 성경을 열고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명령이 무엇인가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대상 16:11]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항상 그의 얼굴을 찾을지어다[대하 7: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시 24:6]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셀라)


 3. 아름다운 소원

 시편 기자는 누구보다 여호와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그가 왕위에 오른 후 제일 먼저 소원은 여호와의 법궤를 옮기는 것이었고, 그가 왕위에 머물러 있으면서 최대의 소원은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성경에서 시편 기자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한 것은 단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종교적인 본능 때문이 아니라 누구보다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선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시편 기자가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원수들의 위협이 아니라 그 때문에  이리 저리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되니, 하나님의 집인 성소에 가까이 나아가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가 바라는 오직 한 가지 소원은 두려움에서 겨우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뛰어 넘어 평생토록 여호와의 집에서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여호와를 사모하며 사는 것이 유일한 소원이요, 또한 최대의 소원이었습니다.

(시 27: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그렇게 되기만 하면 시편 기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노래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삶을 사는 것이 소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 자기를 긍휼히 여기시고 원수들의 손에 죽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고 자기를 버리고 떠나지 마시라고 간절히 부르짖어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설령 시편 기자의 부모는 자신을 버렸을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은 결코 자신을 버리지 않으시고 도리어 영접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도우심을 구하였습니다.

(시 27: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여기서 ‘영접’이라는 말(#s'a;, 아사프)은 마치 추수하는 것처럼 ‘모으다, 거두어들이다’라는 뜻의 미완료 동사로 지속적으로 거두어 주실 것을 구하였습니다.

 어느 누구든지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두려움을 뛰어 넘기는 고사하고 두려움을 이길 수조차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서는 죽음의 문제에 대한 해결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오늘 시편 기자는 그와 같은 두려움을 하나님께 지난날의 죄에 대한 회개와 하나님을 변함없이 신뢰하는 믿음으로 극복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오직 한 가지 소원인 하나님을 성전을 사모하는 믿음으로 두려움을 뛰어넘어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송하고 사모하는 더 좋은 믿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육신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기 때문에 온갖 시험과 유혹과 고난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것이 질병이든지, 실패이든지, 사고이든지, 배신이든지 그 어느 것 한 가지도 우리가 원치 않는 불청객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것들은 우리의 마음에 근심과 불안과 두려움을 가져다 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만들고, 우리의 믿음을 약화시키기까지 합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세상의 것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그 모든 고통들의 근본 원인은 죄이며, 모든 고통의 최종 목적지는 죽음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두려워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그 모든 고통들의 근본 원인은 죄이며, 모든 고통의 최종 목적지는 죽음입니다. 

 어느 누구든지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두려움을 뛰어 넘기는 고사하고 두려움을 이길 수조차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서는 죽음의 문제에 대한 해결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오늘 시편 기자처럼 나를 두렵게 만드는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였습니까?  이 문제를 놓고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시편 기자보다 훨씬 더 큰 은혜와 복을 받은 사람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시편 기자도 사모하고 기다리던 구세주이신 메시아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캄캄한 이 세상에 빛으로 오신 일입니다. 그 빛이 바로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요 1:9) 라고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설령 우리가 원수에게 위협을 당할지라도 두려워하거나 겨우 이기는 정도가 아니라 시편 기자처럼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말고 그것을 뛰어 넘어야 할 이유는 주님이 우리가 주님을 말미암아 이미 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고 주님이 보증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1) 그 예수님이 나를 두렵게 하는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속죄의 어린양이 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피 흘리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해주심으로 우리를 두렵게 하는 인생 최대의 원수인 죄를 단번에 해결해 주셨습니다.‘

 2) 그 예수님이 장사 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우리를 두렵게 하는 인생 최대의 강적인 죽음을 단번에 해결해 주셨습니다. 

 3) 오늘의 교회는 그 예수님의 몸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피 값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두려움이 찾아 올 때 아니 두려움이 찾아오기 전에 주님의 몸된 이 전에 나와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송하고 묵상하고 사모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1) 희망이 보이지 않던 캄캄한 어두움 속에서 찬란한 빛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2) 깊은 절망의 늪에서 나를 끌어 올리시는 권능의 손을 보게 될 것입니다.

 3) 미세먼지처럼 내 마음을 뒤덮고 있던 두려움과 불안이 말씀과 성령의 빗줄기에  씻겨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 비로소 우리가 어떤 처지에 놓이든지 시편 기자처럼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태연한 마음을 가지고 주의 전에 나와 하나님을 예배할 때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고 더욱 주를 찬양하고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축복이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시 27:13)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었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