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결심해야 하나?
(시 57:1-7)
(시 57:1) 『[다윗의 믹담 시, 인도자를 따라 알다스헷에 맞춘 노래,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굴에 있던 때에]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시 57:2) 『내가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시 57:3) 『그가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나를 구원하실지라 (셀라) 하나님이 그의 인자와 진리를 보내시리로다』(시 57:4) 『내 영혼이 사자들 가운데에서 살며 내가 불사르는 자들 중에 누웠으니 곧 사람의 아들들 중에라 그들의 이는 창과 화살이요 그들의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 (시 57:5)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시 57:6) 『그들이 내 걸음을 막으려고 그물을 준비하였으니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 그들이 내 앞에 웅덩이를 팠으나 자기들이 그 중에 빠졌도다 (셀라)』 (시 57:7)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성경에는영적으로 우둔한 인생들에게 이해를 돕기 위해서 여러 가지 비유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택하신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랑하시고 훈련시키시는가를 독수리 날개로 비유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신 32:11)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신 32:12)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모압 여인 룻이 홀로 된 시어머니 나오미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따라서 베들레헴에 까지 와서 이삭을 주우면서 나오미를 공경하는 모습을 본 부자 보아스가 룻을 이렇게 축복하였습니다.
(룻 2:12)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세상에서 아무리 안전한 피난처가 있다고 할지라도 독수리 날개 그늘과 같은 하나님의 피난처보다 더 안전한 곳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도 세상에 가장 안전한 피난처인 주의 날개 그늘아래 피하게 해달라고 여러 차례 기도하였습니다.
(시 17:8)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시 36:7)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사람들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나이다”
그렇다면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주의 날개를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얼마든지 달려가서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날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상징이라면 주의 날개 그늘아래 피하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인지 오늘 시편 기자를 통해서 배우고 본받아 우리도 환난 많은 세상에서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여야 하겠습니다.
1.주의 날개 그늘 아래
오늘 성경의 시편 기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 아니라 ‘재앙’이라고 할 정도로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 중에서 유일한 피난처인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 57:1)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여기서 ‘재앙’이라는 말(hW:h, 하우와))은 ‘깊은 구렁, 멸망시키려는 것’이라는 뜻으로 시편 기자의 육신만이 아니라, 그 영혼까지 파멸에 이르게 하려는 고난과 위협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가 소원한 것은 육체적인 재앙만이 아니라 그로 인해 마치 믿음이 없는 사람처럼 영적으로 깊은 좌절과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는 것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편 기자가 오늘 성경에서 왜 이런 기도를 하고 있는지 그 배경이 궁금하지 않습니까?
오늘 시편 57편의 표제를 보면 (시 57:1) “다윗의 믹담 시, 인도자를 따라 알다스헷에 맞춘 노래,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굴에 있던 때에” 라고 하였습니다.
그 배경은 다윗이 마치 독안에 든 쥐처럼 사울왕의 손에 잡히기 직전 사울 왕이 갑작스런 블레셋 군대의 침략 소식을 듣고 어쩔 수 없이 회군을 하여 블레셋의 침략을 막아야만 하였습니다.
사울 왕이 삼천 명의 군대를 이끌고 다윗을 쫓다가 우연이 다윗이 피신해 있는 엔게디 광야의 굴에 까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 때 굴 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다윗은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마치 독안에 든 쥐처럼 꼼짝없이 잡힌 몸인데 그 때 다윗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다윗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시편 기자가 처한 상황이 마치 화형을 당하는 사람과 같고 날카로운 창과 화살과 칼 끝으로 목을 노리는 것과 같은 위급한 상황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 57:4) “내 영혼이 사자들 가운데에서 살며 내가 불사르는 자들 중에 누웠으니 곧 사람의 아들들 중에라 그들의 이는 창과 화살이요 그들의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
이제 사울 왕과 그의 부하들이 창과 화살과 칼을 가지고 굴속에 숨어있는 시편 기자의 목을 겨눈다면 꼼짝없이 잡히거나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이 같은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바로 이 같은 상황에서 시편 기자는 독수리 날개 품과 같은 여호와 하나님께 피하는 것 외에 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시편 기자는 세상에서 어느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편 기자는 어느 누구보다 많은 고난을 겪었고 이제는 시편 기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재앙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그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한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그 때문에 여호와의 날개 그늘을 찾았습니다.
그 이유는 세상에서 어느 누구보다 시편 기자를 사랑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재앙처럼 보이는 사건을 통해서 시편 기자를 구원하여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시 57:2) 『내가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여기서 ‘이루시는’이라는 말(rm'G;, 가마르)은 ‘끝마치다, 완성하다’라는 뜻의 현재형으로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으로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신 분이시라는 믿음입니다.
(시 57:3) 『그가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나를 구원하실지라 (셀라) 하나님이 그의 인자와 진리를 보내시리로다』(시 57:4)
오늘 우리 민족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습니까? 우리 민족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어려움입니까? 천안함 폭침, 세월호 침몰 거기에다 설상가상으로 메르스의 확산으로 중병을 앓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에 큰 도움을 주는 관광객들이 집단으로 예약을 취소하고 한국에 오기도 한국 사람들이 오는 것도 기피하는 부담스런 나라가 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시장 경제가 침몰하고 그와 더불어 도미노 현상처럼 경제 침체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설상가상으로 극심한 가뭄이 논밭은 물론 저수지와 강바닥이 거북이 등처럼 쩍쩍 갈라져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한 농작물 피해와 물 부족으로 인한 수원지 수력 발전의 차질과 공업용수와 식수난으로 인한 생존의 위협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과연 이러한 일련의 사태는 재난이라기보다 재앙이라고 할 정도이며 이 난국을 우리 스스로 어떻게 극복해 나갈 수 있는지 난감하기가 그지없습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오늘 시편의 말씀은 우리에게 그 답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이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지만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오늘 시편 말씀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제라도 이 나라 백성들이 하나님을 찾아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 기자처럼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주의 날개 그늘 아래로 피해야 할 때입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만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시편 기자처럼 여호와 날개 그늘로 이 민족과 한국교회를 지켜 주시기를 기도하는 기회로 삼아 또 한 번의 역전 드라마를 만들어 내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2. 주께 영광을 돌리는 기도
시편 기자가 겪는 위기는 오늘 성경에 처음 있는 일이 아니라 그동안 짜증이 날 정도로 반복되고 오랜 동안 질질 끌고 있는 고통꺼리였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럴 때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기도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말을 수 없이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정답은 오직 기도라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라와 민족이 위기를 당하였을 때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기도는 고사하고 믿음이 없는 사람처럼 두려워 떨고 있다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지금까지 우리가 그렇게 방심하며 살아왔다면 시편 기자와 같은 재앙을 만난 이 나라와 이 민족과 한국 교회를 위해 누군가 시편 기자처럼 기도해야 할 때가 아닙니까?
기도는 기독교인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슬람교도들은 공공연하게 어디에 있든지 기도시간이 되면 모든 것을 중지하고 메카를 향해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그와 같은 기도의 열정을 찾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는 기도의 횟수나 시간이나 폼이 아니라 마음 중심입니다.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도를 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 또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기도가 아닐까요? 오늘 시편 기자가 바로 그와 같은 기도를 하였음을 오늘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라고 온 백성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때문에 부단한 위협 속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 연속되는 중에 오늘 성경은 굴속에 숨어있는 다윗을 향해 사울의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이 이르렀다고 하였습니다.
천하제일의 다윗일지라도 이제는 꼼짝없이 사울 왕에게 잡혀 죽는 구나! 지금까지 오로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했지만 그 모든 것이 헛되고 이제는 죽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구나! 라는 최대의 위기에 맞닥뜨리기 되었습니다.
만일 오늘 내가 그와 같은 위기를 만났다면 ‘하나님 나를 살려주세요’ 라는 기도밖에 더 이상 무슨 기도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시편 기자는 그 때문에 자기가 죽을까봐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그 때문에 원수들이 하나님을 조롱하는 기회가 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이 온 세상에 높이 드러나는 기회가 되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시 57:5)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그것도 한번 만이 아니었습니다. 거듭 거듭 하나님의 영광이 하늘 위에와 온 세계에 드높아지는 기회가 되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하였습니다.
(시 57:11)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금번 메르스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걱정을 많이 해야 할 부분이 바로 이것이어야 합니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메르스에 감염될 까봐 불안에 떨며 두문불출할 때 우리가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 그리스도인들마저 불안과 두려움에 떠는 연약한 모습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이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연약해진 믿음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무능한 하나님, 무능력한 신앙인으로 전락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깎아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도를 위해서 우리도 오늘 시편 기자처럼 새벽을 깨워 위기에 처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의 등불을 높이 들고 일어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회가 되게 하여야 합니다.
(시 57:8)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3. 주께 감사와 찬양
사람은 누구나 오늘 시편 기자와 같은 위기를 만나게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입에서 원망과 불평이 터져 나오게 됩니다. 그것도 혼자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게 되고 그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기에 급급하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아담과 하와입니다.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은 책임을 결국 부부가 서로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전가하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한 죄를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그 궁극적인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기까지 하였습니다.
(창 3: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아담의 자손인 우리 모두는 그와 같은 아담의 DNA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 함께 문제를 풀어가야 할 사람들끼리 책임전가와 책임 추궁을 하면서 마음에 상처를 받게 되고 관계가 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서 사단이 시편 기자에게 노리는 것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 불평하게 하고 사울 왕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을 미워하게 하고 나라를 반으로 갈라서 원수처럼 서로 대적하게 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에서 시편 기자는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까? 마치 새가 그물에 걸리고 야생 동물이 사냥꾼이 파놓은 함정에 빠지는 것처럼 시편 기자의 생명을 노리는 원수가 굴속에 숨어있는 자기를 향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다가오고 있는 것이 마치 그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시 57:6) “그들이 내 걸음을 막으려고 그물을 준비하였으니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 그들이 내 앞에 웅덩이를 팠으나 자기들이 그 중에 빠졌도다 (셀라)”
여기서 ‘빠졌도다’라는 말(lp'n:, 나팔)은 ‘떨어지다, 넘어지다, 엎드러지다’라는 뜻의 완료형입니다. 희망사항이 아니라 믿음사항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자기가 그물에 걸리고 웅덩이에 빠질 것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께서 원수들이 그 그물에 걸리고 그 함정에 이미 빠지게 하셨음을 믿었습니다.
그것을 믿은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곧 잡히게 되고 곧 죽게 된 자기를 왜 안돌아보십니까? 라고 하나님을 향해 원망 불평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원수들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주를 찬송하겠다고 굳게 결심을 하였습니다.
(시 57:7)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여기서 ‘확정되었고’ 라는 말(@WK, 쿤)은 앞으로 상황을 두고 봐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겠다는 결심이 아니라 지금 현재 하나님을 찬송하기로 이미 결심을 실행에 옮긴 상태를 뜻하는 분사입니다
누구보다 수금을 잘 연주하고 찬양하기를 즐기는 시편 기자는 하루의 첫 시작인 새벽을 깨워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리는 것으로 매일을 시작하겠다고 굳게 결심하였습니다.
그것도 은밀히 남이 보지 않는데서가 아니라 자기가 위기에 빠진 것을 보고 즐거워하는 원수들과 만민 들 앞에서 감사와 찬송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기로 결심을 하였습니다.
(시 57:9)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매일 교통사고 산업재해 만성질환 노환 등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메르스 환자를 만난 사람은 다 감염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메르스에 걸리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다 죽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대한민국은 온 국민들이 메르스 스트레스에 빠져 들어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세계 보건기구 WHO 의 조사단이 와서 조사를 마치고 지나치게 염려하지 말고 매뉴얼대로 잘 따라주면 된다고 말을 해도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그와 같은 메르스의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릴 수 있는 백신이 무엇일까요?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우리도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위기의 순간마다 하나님이 이 대한민국을 어떻게 지켜주셨고 우리 가정과 교회와 나를 어떻게 지켜주셨는지를 돌이켜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이미 우리에 대한 대안을 가지고 계심을 믿고, 오늘 시편 기자처럼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기로 굳게 결심하고 바로 지금부터 실천에 옮기는 것입니다.
그 결과 시편 기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울에게 잡혔나요? 아닙니다. 사울왕에게 급한 볼일이 생기게 만드시고 다윗이 숨어있는 굴속에 들어가서 끙끙대며 일을 보는 동안 시편 다윗은 얼마든지 사울을 죽일 수 있었지만 옷자락만 베었습니다.
어찌 보면 그러한 시편 기자가 답답해 보였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된 사울 왕은 다윗에게 눈물을 흘리면서 용서를 빌었습니다. 다윗이 승리하는 기회가 된 것입니다.
시편 기자의 소원과 기도대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시편기자의 믿음대로 원수들이 자기판 함정에 빠지고 자기가 친 그물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편 기자는 기도할 수 없을 때도 기도하였습니다. 단지 육신의 생명 때문이 아니라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였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해야 할 자리에서 도리어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기로 굳게 결심하고 즉시 실천에 옮겼습니다.
믿음의 승리입니다. 기도의 승리입니다. 찬송에 승리입니다. 하나님은 시편 기자에게만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아니 우리를 시편 기자보다 더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니엘과 세 친구를 기억하십니까? 베드로가 옥중에 갇혀 있을 때 예루살렘 교회가 밤을 지새워 기도한 것을 기억하십니까?
바울과 실라가 매를 맞고 빌립보 지하 감방에 갇혔지만 밤중에 일어나 하나님을 원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미하였을 때 감옥 문이 열리고 간수의 가정이 열리고 빌립보에 교회가 세워지는 기회가 되게 하신 하나님을 믿습니까?
과거에는 위기가 닥치면 더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몰려들어 기도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금번에는 기독교인들마저 두려움에 빠져 교회를 나오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 바로 영적인 위기입니다.
비록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메르스의 위기와 계속되는 가뭄과 가속화되고 있는 경제 침체 속에서 과연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 깨닫고 시편 기자처럼 일어서야 합니다. 건강에 이상이 있는 사람은 주의 날개 그늘아래 조용히 피하여 시편 기자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아직까지 건강을 주신 사람은 위기에 처한 이 민족을 위해 새벽을 깨워야 합니다.
시편 기자처럼 두려움과 원망과 불평을 버리고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더욱 단단히 붙들기고 결심해야 합니다.
(사 43: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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