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두려운 날에 누구를 의지할까? /시 56:3-11

미션(cmc) 2015. 6. 13. 07:08

두려운 날에 누구를 의지할까?
(시 56:3-11)

(시 56:3)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시 56:4)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시 56:5) 『그들이 종일 내 말을 곡해하며 나를 치는 그들의 모든 생각은 사악이라』(시 56:6) 『그들이 내 생명을 엿보았던 것과 같이 또 모여 숨어 내 발자취를 지켜보나이다』(시 56:7) 『그들이 악을 행하고야 안전하오리이까 하나님이여 분노하사 뭇 백성을 낮추소서』(시 56:8)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시 56:9)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들이 물러가리니 이것으로 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내가 아나이다』(시 56:10)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리이다』(시 56:11)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가난하고 힘들게 살았던 시절에는 찬밥 더운밥이든지 배불리 먹을 수만 있었으면 좋았고, 크고 작고를 막론하고 내 집 하나만 있으면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좀 살만해지면 여러 가지 먹을 것 중에 맛있는 것을 고르게 되었고, 아무리 큰 평수의 집이라고 할지라도 할 수 있으면 교통 좋고 공기 좋은 곳을 찾게 되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제는 사람들의 가치관이 양이 아니라 질을 따지고 생존만이 아니라 안전을 자유만이 아니라 인권을 따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의 행복은 소유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행복감을 얼마나 느끼며 살아가는가 하는 행복지수로 평가합니다.
 2015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경제 규모는 세계 11위라고 하는데 행복지수는 부끄럽게도 세계에서 47위 밖에 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실히 증명하는 것들은 OECD 국가 중 우리나라의 자살률, 가계부채, 저임금 노동자 비율, 국가채무 증가율, 학업시간, 근무시간 등이 OECD 국가 중에서 1위라는 점입니다.
설상가상이라고 이런 상황에서 메르스 전염병의 전국적인 확산으로 초비상이 걸렸습니다.
 메르스가 무서운 것은 전염율이 높다는 것 만이 아니라 마땅한 치료약이 없고 병을 고치는 병원에서 시작되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심지어 서울에 대표적인 대형병원에서 의사들까지 감염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이 될 수 있는대로 많이 모인 곳을 피하고 사람과의 접촉을 꺼리다보니 점점 관계가 깨어지고 있는 점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누구를 의지해야 하는지, 이럴 때 우리는 무엇을 하여야 하는지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서 그 답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1. 내가 두려워 하는 날

 오늘 성경 말씀을 보면 시편 기자는 매우 불안한 상태에서 이 시편을 기록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시 56:1)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사람이 나를 삼키려고 종일 치며 압제하나이다』(시 56:2) 『내 원수가 종일 나를 삼키려 하며 나를 교만하게 치는 자들이 많사오니』

 때로 우리가 복통으로 고생하는 경우는 둘 중에 하나인데 하나는 평소에 건강했던 사람이 급체나 식중독으로 인해 갑자기 배가 아픈 경우가 있고 또 하나는 평소에 위염이나 궤양이나 장염을 앓고 있기 때문에 자주 배가 아픈 경우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시편 기자의 불안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지난 주 시 55편의 말씀을 돌이켜 보게 되면 지속적인 고난으로 말미암은 불안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시 55:1) 『하나님이여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할 때에 숨지 마소서』 (시 55:2) 『내게 굽히사 응답하소서 내가 근심으로 편하지 못하여 탄식하오니』

시편 기자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던 그 자리에서 피하고 심은 심정으로 자기에게 비둘기처럼 날개가 있으면 멀리 날아가 사람이 살지 않는 광야애 머물고 싶다고 하소연 할 정도였습니다.

(시 55:6) 『나는 말하기를 만일 내게 비둘기 같이 날개가 있다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시 55:7) 『내가 멀리 날아가서 광야에 머무르리로다 (셀라)』

 물론 성경의 순서가 연대기적으로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지난 시편 55편은 다윗이 왕이 된지 오랜 후에 일어난 압살롬과 아히도벨의 배반을 배경으로 한 말씀이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그 때로부터 거슬러 올라가서 왕이 되기 전 사울 왕이 시편 기자를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을 때 다윗이 이리 저리 피해 다녔을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시 56:1) 『[다윗의 믹담 시, 인도자를 따라 요낫 엘렘 르호김에 맞춘 노래, 다윗이 가드에서 블레셋인에게 잡힌 때에]

 여기서 가드라는 지방은 다윗이 죽인 골리앗 대장의 고향입니다. 만일 가드 사람이 그 사실을 안다면 다윗을 죽이려고 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하여 블레셋의 가드까지 도망친 것은 놉땅에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떡과 칼을 제공 받았지만 이스라엘에서는 어디를 가더라도 신분이 노출되기 때문에 더 이상 피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피하여 자기를 알아 보지 못하는 곳으로 해외 도피를 한 것입니다.

 (삼상 21:10) 『그 날에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가니』

 그렇다면 시편 기자는 가드에서는 안심할 수 있게 되었나요? 다윗이 가드 왕 아기스로 갔을 때 아기스의 신하들이 다윗을 알아보고 왕에게 고발을 위험 인물로 고발을 하였습니다.

(삼상 21:11) 『아기스의 신하들이 아기스에게 말하되 이는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 무리가 춤추며 이 사람의 일을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한지라』

 시편 기자 다윗은 사면초가가 되었습니다. 다윗의 손에는 놉 땅 제사장으로부터 받은 골리앗의 목을 벤 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제 가드 왕 아기스가 다윗이 바로 골리앗을 죽인 장본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면 다윗은 자기발로 도살장에 자기 발로 걸어 들어온 양처럼 죽임을 당하게 될 위기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다윗은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습니다. 또한 믿고 기댈 사람도 없습니다. 사방에서 시편 기자를 감시하고 죽이려고 하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불안과 두려움만이 가중되는 최악의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 시편 기자 다윗은 그 위기를 모면하려고 미친 체하면서 대문짝에 낙서를 하고 침을 수염에 질질 흘리는 연기를 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다윗의 체통이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얼마나 두려웠으면 그렇게 하였을까요?
 아기스 왕은 다윗의 그 모습을 연극이 아닌 진짜로 알고 다윗을 미치광이로 알고 쫓아냈기 때문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삼상 21:14) 『아기스가 그의 신하에게 이르되 너희도 보거니와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

 누가 아기스 왕의 눈을 어둡게 하였을까요? 누가 아기스 왕으로 하여금 신하의 말을 귀기울여 듣지 않고 다윗을  미친 사람처럼 여기게 하였을까요?
 그것은 다윗이 두려운 날에 의지했던 주님이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닙니까? 주님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우리가 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놀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주님이 마치 가정부나 머슴처럼 우리가 할 일을 대신 해주시는 게으름뱅이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기스의 눈과 마음을 어둡게 하여 시편 기자 다윗을 위기 중에 건지신 까닭은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일이 남아 있는 사명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2. 주를 의지하는 사람
 시편 기자는 자신의 한계 상황에 이르게 되었을 때 삶을 포기하거나 불의와 타협하는 쪽을 선택하지 않고 위에 계신 하나님을 의지하기로 선택하였다고 오늘 성경에 기록하였습니다.

(시 56:3)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여기서 ‘의지하리이다’라는 말(jf'B, 바타흐)은 세상에 믿을 것이 없기 때문에 부득불 하나님을 믿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는 ‘믿다, 신뢰하다, 의지하다, 안심하다, 안전하다’는 뜻으로 자신의 두려움을 주께 다 맡겼을 대 마음에 불안과 염려가 사라지고 안심하게 된 미완료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시편 기자가 의지하는 주님이 사람처럼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하나님을 의지했더니 시편 기자를 괴롭히는 원수들이 다 물러가거나 하나님께서 없애주신 것도 아니라 여전히 시편 기자를 괴롭히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시 56:5) “그들이 종일 내 말을 곡해하며 나를 치는 그들의 모든 생각은 사악이라” (시 56:6) “그들이 내 생명을 엿보았던 것과 같이 또 모여 숨어 내 발자취를 지켜보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편 기자가 아무것도 의지할 것이 없고 누구도 믿을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오로지 주님을 의지하였을 때 그 입에서는 찬송이 흘러나왔고, 마음에는 두려움이 사라지게 되었고 이전과 달리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상태가 된 것입니다.

(시 56:4)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그렇다면 시편 기자가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시편 기자가 하나님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붙잡았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시편 기자는 오직 하나님께서 반드시 악한 자의 손에서 지켜 주시고 부르짖음에 대해서 응답해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처럼 붙들었습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시편 기자의 마음을 짓눌러왔던 불안과 두려움이 물러가고 찬송이 흘러나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시 56:10)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두려움이 사라지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시편 기자의 마음에 더 큰 믿음이 밀물처럼 몰려 왔습니다.
 비록 몸은 여전히 쫓겨 다니는 신세이지만 마음 속에는 하나님께서 이미 자기를 사망의 자리에서 생명의 자리로 옮겨 주셨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마치 어둠속에서 헤매이는 사람처럼 앞이 캄캄했었고 길이 보이지 않았으나 이후로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빛 가운데로 다니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려야 하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였습니다.

(시 56:12)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서원함이 있사온즉 내가 감사제를 주께 드리리니” (시 56:13)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시편 기자가 인생 최악의 위기 상황에서 현실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 두려운 현실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그 하나님께 기도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결과 벌써 발각되고 벌써 죽었어야 하는 시편 기자를 하나님께서 가드 왕의 눈을 어둡게 하고 마음에 판단을 둔하게 하여 다윗을 미치광이로 보게 하였고, 다윗을 내쫓아 버리게 하였습니다.
   그것은 시편 기자의 연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시편 기자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또 다시 안전하게 건져내신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때가 되니 불신앙과 불순종의 사울왕을 페하시고 억울하게 모함을 쓰고 쫓겨 다니던 다윗을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후손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비록 생명의 위협을 당하고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피할 길이 없는 막다른 위기를 당할 때 마다 주를 의지한 다윗의 믿음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비록 현재 상황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지만 구원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주께 의지하고 마치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처럼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였을 때 그 믿음대로 되어졌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때가 되니 불신앙과 불순종의 사울왕을 페하시고 억울하게 모함을 쓰고 쫓겨 다니던 다윗을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후손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비록 생명의 위협을 당하고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피할 길이 없는 막다른 위기를 당할 때 마다 주를 의지한 다윗의 믿음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비록 현재 상황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지만 구원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주께 의지하고 마치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처럼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였을 때 그 믿음대로 되어졌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이 어떤 것인지를 시편 기자 다윗을 통해서   우리에게 본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3. 국가의 위기와 크리스천의 사명
 성경은 지금으로부터 3000 여년 전 과거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시간적으로 보면 고전입니다.
 사람들이 사는 현대 문명은 지나간 과거와는 판이하게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과거의 전통을 깡그리 부인하는 후기 현대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기존의 질서나 가치관을 부인하는 시대입니다.
 성경만이 영원한 진리라고 하면 그것을 받아드리고 믿으려고 하기 보다는 마치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처럼 여기고 비웃고 조롱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만일 변하게 되면 인류에게 재앙이 찾아오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곧 자연의 질서입니다.
 인간의 탐욕으로 자연이 훼손되어지면서 두드러지게 나타는 것은 이상기후입니다, 그와 같은 이상기후로 인해 점차 지구도처에 재앙들이 일어나나고 있습니다,
 자연 만이 변하지 말아야 하는 것만이 아니라 또 하나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 말씀입니다.
 그것은 영원히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의 말씀이고 영원히 변할 수 없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성경을 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비하면 의료 시설과 보험이 잘 되어 있어서 예전같으면 벌써 죽었을 사람이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곳곳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에는 갖가지 신상품이 진열되어 있고 카드만 가지고 가면 원하는 것을 얼마든지 살 수 있는 시대입니다. 옛날 사람들이 꿈같이 생각했던 것들을 현실에서 누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삶이 풍요로워질수록 사람들은 더 인간 중심적이고 자기 중심적이고 물질 중심적이고 쾌락 중심적인 삶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근래에 와서 그와 같은 사람들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하는 일들이 국내외적으로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상 기후와 각가지 재난들과 인간의 탐욕과 부주의가 만들어내는 인재들로 많은 사람이 일시에 죽거나 다치는 대형 사고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하고 첨단 시설을 갖춘 병원들이 많아도 고칠 수 없는 질병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병원이 사람의 병을 고치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병원에 가서 감염이 되고 의사조차 감염이 되고 병원조차 폐쇄를 해야만 하는 질병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병원이 사람의 병을 고치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병원에 가서 감염이 되고 의사조차 감염이 되고 병원조차 폐쇄를 해야만 하는 질병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의 공통점은 사람들이 창조의 질서를 무시하고 정직하게 못하게 양심을 속이고 탐욕에 빠짐으로 자초한 인재들입니다.
 이럴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오늘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고 믿음을 회복해야 하고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순응해야 합니다.
 성경 도처에 마지막 시대의 인간의 타락과 재앙이 임하게 될 것과 더불어 그럴 때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수 많은 사람들은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 예언의 말씀대로 순종하는가 아니면 그 예언의 말씀을 부인하고 인간의 생각을 절대시하는가?입니다.
  지금 전국을 불안의 도가니로 몰아가고 있는 메르스의 공포에 대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성경을 통해서 그 답을 찾아야 합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하나님께 봉헌을 하면서 하나님께 드린 기도를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왕상 8:30) “주의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왕상 8:37) “만일 이 땅에 기근이나 전염병이 있거나 곡식이 시들거나 깜부기가 나거나 메뚜기나 황충이 나거나 적국이 와서 성읍을 에워싸거나 무슨 재앙이나 무슨 질병이 있든지 막론하고”(왕상 8:38) “한 사람이나 혹 주의 온 백성 이스라엘이 다 각각 자기의 마음에 재앙을 깨닫고 이 성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무슨 기도나 무슨 간구를 하거든” (왕상 8:39)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사하시며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오니 그들의 모든 행위대로 행하사 갚으시옵소서 주만 홀로 사람의 마음을 다 아심이니이다”

 물론 그렇게 기도하면 메르스 물러갈 것이라고 성경에 약속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연약한 인간이 전능하신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외에 할 수 있는 다른 것이 없습니다.
 메르스를 통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이며 얼마나 악한 죄인인가 하는 것을 깨닫고 메르스보다 더 무서운 불신앙과 교만의 죄에서 벗어나야 하는 일입니다.
 이제 두려운 날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오늘 시편 기자처럼 전능하신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 뿐입니다.

(시 56:3)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성경에서 시편 기자만 어디를 가든지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것일까요?
 오늘의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도 예외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국가적으로 처한 상황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국민의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총체적인 난국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평소에 싸움을 하다가도 국가적으로 위기가 오면 전 국민이 단합을 하여 그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 온 민족으로 자타가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IMF 때 금모으기 운동이었습니다.
 그러나 광우병이나 세월호 사건을 거치는 동안 보수와 진보의 대립으로 민심이 좌우로 갈라져서 대립을 하는 동안 국민들 간에 신뢰가 깨져가는 것은 국가적으로 가장 큰 타격과 피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 국민들이 이제라도 과거 IMF 때처럼  서로 신뢰하는 마음으로 오로지 나라를 걱정하고 염려하는 마음으로 서로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찾고 서로의 생각들을 모으고 그것을 온 국민들이 따라간다면 능히 전화위복이 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보다 인간을 더 의지하고, 기도 보다 돈을 더 신뢰하는 것이 바로 이 시대에 애굽으로 내려가는 삶이며 그것은 결과적으로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든다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럴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오늘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고 믿음을 회복해야 하고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순응해야 합니다.
 성경 곳곳에 마지막 시대의 인간의 타락과 재앙에 대해서 예언하고 있고 그럴 때 하나님의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이 이미 나와 있습니다. 그법을 하나님의 사람들이 따라 오늘 시편 기자처럼 주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흉년이 들었을 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거역하고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큰 어려움에 봉착한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사 31:1)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치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거니와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가 흘리는 눈물과 아픔과 고통을 너무나 잘 아실 뿐만 아니라 그 눈물을 반드시 씻어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지혜이고 대안이고 정답입니다.

(대하 14: 11) 그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여호와여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 와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 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컨대 사람으로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